Description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화하는 정치인의 언어!
선동의 수사학을 구별하기 위한 짧고 명확한 가이드
우리는 선동가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날이 갈수록 악마화된 정치인이 나타나며, 정치인들의 발언 또한 과격해지고 편 가르기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발언들은 왜, 그리고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선동의 수사학을 파악하고 그에 맞서는 방법을 알아본다.
선동가는 나쁜 사람일까?
선동하는 사람이 아닌 선동에 주목하라
선동가는 누구일까? 선동가라고 하면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선동가인 히틀러와 괴벨스를 떠올린다. 지금에 와서 우리는 이들은 명백히 나쁜 사람인 것을 안다. 그래서 선동가가 누구인지 분명히 구분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동가들은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비인간적이며, 사람들을 조종하는 포퓰리스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많은 선량한 시민들은 히틀러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동가는 나쁜 사람’이라는 단순한 정의는 지나간 일을 판단하는 데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당장 눈앞의 선동가를 가려낼 수 없다.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루는 얼 워런(Earl Warren)의 사례는 ‘선동가는 나쁜 사람’이라는 정의를 반증한다. 워런은 미국의 연방대법원장 재임 기간,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교육하는 것은 합법이라는 기존의 판례를 뒤집고 위헌을 선언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정치가이자 판사 중 한 명이다. 그는 미국의 인종차별 철폐에 큰 획을 그은 이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재판을 비롯해 여러 기본권 판결을 이끌어 내서 평등과 인권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워런도 선동에 가담한 적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제시한다. 1942년 태평양전쟁 당시, 워런은 미국 내 일본인은 누구든 사보타주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으니 강제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뚜렷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그는 자신의 논리에 기반해 인종주의적 주장을 펼쳤고 미국에서는 일본인을 강제수용하는 행정명령이 통과되었다. 선동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선동의 수사가 아닌 선동하는 사람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선동의 언어
문제는 선동을 허용하는 우리 안의 선동 문화다
그렇다면 선동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선동이란 우리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편을 희생양으로 삼는 담론이다. 선동의 수사학은 현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우리와 그들로 단순화시킨다. 그리고 논의의 쟁점을 정책이 아닌, 우리편과 상대편 중 누가 더 나은지로 몰아간다. 선동의 수사학은 간결하기에 매력적이고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편안하다. 선동은 우리는 틀리지 않고 그들이 틀렸다고 말한다. 선동의 수사학이 거세질수록 구성원 모두가 공동의 삶을 함께 걱정하고 정직하게 반대하고 생산적으로 숙의한다는 민주주의는 전제는 흔들린다.
고대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민주주의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선동도 있었다. 선동은 비판적 논증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데 효과적이다. 선동은 연못에 사는 조류와 같다. 적당하면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지만, 과해지면 생태계를 황폐화시킨다. 결국 진짜 문제는 선동적인 언어를 소비하고 확산하는 지금의 정치 문화다. 선동가를 사라지게 한다고 해서 공론장이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선동가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선동이란 무엇인지 사례와 함께 다룬 뒤에 선동을 구별하고 선동에 맞서는 몇 가지 방법과 선동이 주로 사용하는 논쟁 방식의 오류를 짚을 것이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고민하며 일상에서 실천을 행하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선동의 수사학을 구별하기 위한 짧고 명확한 가이드
우리는 선동가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날이 갈수록 악마화된 정치인이 나타나며, 정치인들의 발언 또한 과격해지고 편 가르기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발언들은 왜, 그리고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선동의 수사학을 파악하고 그에 맞서는 방법을 알아본다.
선동가는 나쁜 사람일까?
선동하는 사람이 아닌 선동에 주목하라
선동가는 누구일까? 선동가라고 하면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선동가인 히틀러와 괴벨스를 떠올린다. 지금에 와서 우리는 이들은 명백히 나쁜 사람인 것을 안다. 그래서 선동가가 누구인지 분명히 구분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동가들은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비인간적이며, 사람들을 조종하는 포퓰리스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많은 선량한 시민들은 히틀러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동가는 나쁜 사람’이라는 단순한 정의는 지나간 일을 판단하는 데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당장 눈앞의 선동가를 가려낼 수 없다.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루는 얼 워런(Earl Warren)의 사례는 ‘선동가는 나쁜 사람’이라는 정의를 반증한다. 워런은 미국의 연방대법원장 재임 기간,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교육하는 것은 합법이라는 기존의 판례를 뒤집고 위헌을 선언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정치가이자 판사 중 한 명이다. 그는 미국의 인종차별 철폐에 큰 획을 그은 이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재판을 비롯해 여러 기본권 판결을 이끌어 내서 평등과 인권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워런도 선동에 가담한 적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제시한다. 1942년 태평양전쟁 당시, 워런은 미국 내 일본인은 누구든 사보타주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으니 강제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뚜렷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그는 자신의 논리에 기반해 인종주의적 주장을 펼쳤고 미국에서는 일본인을 강제수용하는 행정명령이 통과되었다. 선동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선동의 수사가 아닌 선동하는 사람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선동의 언어
문제는 선동을 허용하는 우리 안의 선동 문화다
그렇다면 선동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선동이란 우리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편을 희생양으로 삼는 담론이다. 선동의 수사학은 현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우리와 그들로 단순화시킨다. 그리고 논의의 쟁점을 정책이 아닌, 우리편과 상대편 중 누가 더 나은지로 몰아간다. 선동의 수사학은 간결하기에 매력적이고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편안하다. 선동은 우리는 틀리지 않고 그들이 틀렸다고 말한다. 선동의 수사학이 거세질수록 구성원 모두가 공동의 삶을 함께 걱정하고 정직하게 반대하고 생산적으로 숙의한다는 민주주의는 전제는 흔들린다.
고대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민주주의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선동도 있었다. 선동은 비판적 논증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데 효과적이다. 선동은 연못에 사는 조류와 같다. 적당하면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지만, 과해지면 생태계를 황폐화시킨다. 결국 진짜 문제는 선동적인 언어를 소비하고 확산하는 지금의 정치 문화다. 선동가를 사라지게 한다고 해서 공론장이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선동가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선동이란 무엇인지 사례와 함께 다룬 뒤에 선동을 구별하고 선동에 맞서는 몇 가지 방법과 선동이 주로 사용하는 논쟁 방식의 오류를 짚을 것이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고민하며 일상에서 실천을 행하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선동의 수사학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