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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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강명

연세대공대졸업뒤건설회사를다니다그만두고동아일보에입사해11년동안사회부,정치부,산업부기자로일했다.기자로일하면서이달의기자상,관훈언론상,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대상등을받았다.장편소설『표백』으로한겨레문학상을받으며소설가로데뷔했다.장편소설『열광금지,에바로드』로수림문학상,장편소설『댓글부대』로제주4·3평화문학상과오늘의작가상,『그믐,또는당신이세계를기억하는방식』으...

목차

프롤로그소설가의‘일’이란무엇인가

1부소설가라는이상한직업
나는독자를보았다
저술노동자의몸관리
조지오웰과술과담배
집필실과레지던시
우리가열심히쓰고있습니다
해피엔딩이좋은데
고유명사를어찌할까요
표절공포
프로거짓말쟁이의걱정
작가님,이작품의의도는무엇인가요
동지애와꿀팁을얻는데실패했습니다
이두꺼비는수컷인가요
영상의은밀한유혹
한말씀부탁드립니다
소설가들은어떻게친해지나요
세계모든작가들의습성이란
작가님은이글을못읽으시겠지만
퀀텀점프!

2부소설가의돈벌이
내책은얼마나팔리는걸까
4쇄는5,000부?아니면2만부?
소설가와강연
강연료는얼마로…?
입금잊지말아주세요
추천사쓰기
요즘엔별걸다해야돼요
계약은어려워
표지정하기
제목정하기
소설가의자기소개
소설가의사진
2020년대한국소설가와영화판권
출간계약을해지하며
정부지원과한국문학
우리가사라지면

3부글쓰기중독
청소의도(道)와선(禪)
전업작가의일상
한국소설가와문학편집자
문학은나에게
재현의구조,재현하려는구조
‘거대하고흐릿한적’과작가들의공부
차이를가능하게하는것들
현대추리소설을쓰는법
타자조차되지못한
임성순의‘회사3부작’
우리의적의에대한당신의응답
작가와리뷰어
주작가의독서량과집필량이라면
품위냐,종잣돈이냐
나아질수있을까요?

작가의말나의사생활과한국문학

출판사 서평

“세상에10년노력이아깝지않은일이몇가지나있을까.
이건헌신할수있는직업정도가아니잖아.
헌신할수록더좋아지는직업이잖아.”
월급사실주의소설가장강명이털어놓는본업분투에세이

흔히소설가라는직업은영감을얻어상상의세계를펼치는예술의영역에속한사람으로,출퇴근을하고지루한일상을견디는평범한직장인들과는다른세계에속한사람들로여겨진다.그러나건설회사직원에서신문기자로,다시전업작가로업(業)을세번바꾼장강명은솔직히말한다.처음에는글만쓰고생계를유지해야하는생활이막막했지만작가로서살아남기위해고군분투했고지금도여전히그렇다고.그럼에도불구하고몸과마음을바쳐작품을쓰는소설가라는직업이돈하고상관없이되게뿌듯하다고.

그뿌듯함은‘임금의대가로종사자에게시간을,추가노동을,감정을,가끔은건강이나그보다더한것까지요구’받는것으로부터벗어나주체적으로일하는상태에서온다.스스럼없이‘내것’이라고말할수있는,손으로만질수있는결과물을생산하고,일을할수록부속품이되기보다는오히려일이자신의영혼을충만하게하고,자신이누구인지명확히대답해주며,삶의의미를부여해주는직업이라고.그래서하면할수록더욱헌신하고싶어질뿐이다.

“소설만큼은진지하게,내가믿는세계관에입각해서쓰고싶다”
아무도가르쳐주지않았던소설가의루틴,그리고창작과돈벌이를둘러싼고민들

소설가장강명은오후11시반쯤자고오전6시반전에일어난다.글쓰는시간은스톱워치로재고매일의생산량을엑셀에기록한다.앉아서오래일하는직업이라아프지않기위해일주일에두세번정도집에서간단한웨이트트레이닝을한다.롤모델은저널리스트출신소설가조지오웰,그와의공통점을하나씩찾아가는재미를쌓고있다.전업작가생활의외로움은일과이후맛있는맥주로달랜다.

장강명은책을낸뒤에는자신의소설을잘읽지않는다.읽어서즐거운소설이없다.해피엔딩애호가장강명은소설을쓸때마다늘후순위로밀려난다.소설만큼은쓰다보면진지해진다.작업을하는내내‘이걸왜하지?’라는생각을떠올리며이유를,의미를찾다보면그렇다.

소설을집필하다보면다른소설가들은어떻게해왔지하고궁금해질때가있다.실존고유명사를쓰고싶은데업계관행에따라현실과다른고유명사를꼭지어야하나?무슨가이드라인같은건없을까?(『재수사』를쓰면서는실제기관이나지명을쓰는대신,독자들이실존대상의특징으로착각할위험성이있는경우에는이름을바꾸는것으로결론을내렸다)소설에서표절의기준은무엇일까?(출처를밝힐의무가없음에도,작품속‘작가의말’에서어디서아이디어를얻었는지시시콜콜밝히고있다)발표한작품의주제를묻는사람들에게뭐라고대답해야할까?작가자신도책을내고낸다음에도정확히뭘썼는지모르는건아닐까?(소설을쓰는동안‘이작품의주제가뭐지?내가무슨이야기를하고싶은거지?’하고스스로에게자주물으며답을준비하는편이다)등등.

한편소설가의수입에관한궁금증도하나씩풀어본다.좋은점부터이야기하자면21세기문화강국이된덕분에소설판권이활발히팔리는중이고미디어업계에서는소설가에게협업및고용제안도한다.정확히책으로먹고사는건아니지만,2차판권수입은전업작가생활을유지하는데분명도움을주고있다.더불어대부분의작가들은강연으로돈을번다.단그강연료를먼저제시하지않거나안주는식으로공연히작가들을속앓이하게만드는단체들이많다.또고료체불이나인세지급누락은지금도현재진행형이다.끝내계약해지까지이른경험을토로하면서장강명은이렇게말한다.출판은문화운동이기이전에엄연한비즈니스이므로,기본을제대로지켜달라고.“입금,교정,예의같은것을.(241쪽)”

‘도대체뭐가잘못됐지?무엇을해야하지?’라고묻게하는힘,
기꺼이문학의도구로살아간다는자세로쓴다

어릴때문학은‘자유’였다.누구의허락도필요없이안전한모험의세계로언제든떠날수있었다.20대초반서툴게소설을쓸때도강렬하게사로잡은건자유의감각이었다.자신이쓰는소설속에서누리는자유.그러다자신의삶에책임을지게되고나서부터문학은‘의미’로다가왔다.작은것이라도의미를붙들고싶어서,아무리글을써도이르지못할것임을알면서도쓰고있다는위안이라도없으면무너질것같았다.

그리고지금은확신한다.앞으로도계속소설을쓸거고,무엇을어떻게쓰고싶은지정확히는몰라도무엇을어떤식으로쓰고싶은지는대충알고있다고.좋은작품을쓰고싶지만그좋은작품은상,돈,명성,자유,의미와는다른것이라고.대체로열정없는저에너지인간인장강명이지만앞으로도여전히문학,한국문학,출판에대해이야기할때면격렬해지고말거라고.

장강명은어떤작가로남을것인가고민끝에결론을내린다.작품만생각하며그저우직하게쓰자.문학을도구삼지않고문학의도구로자신이어떻게쓰일것인가를보여줄차례다.

“계속열심히쓰겠습니다.더잘써보도록노력하겠습니다.
어차피다른분야에별로관심이없습니다.”
_작가의말중에서

책속에서

소설가는어떤가.소방관만큼은아니지만그래도굉장히매력있는직업이다.신문사와건설사에서길고짧게일해본경험과비교하면,적어도내게는분명히그렇다.원고작업은가장괴로운순간에도내삶을갉아먹지않는다.오히려반대라고느낀다.그힘은돈벌이,밥벌이와는관련없는측면에서나온다.

소설가라는직업이불쉿잡이아닌이유를몇가지생각나는대로적어본다.우선주체적으로일한다.원고안풀린다며머리쥐어뜯을때에도그는자기일의주인이다.그는매번매순간새로운도전을하고,그건만만찮은모험이라서꽤흥분된다.드물지만상쾌한몰입의순간도찾아온다.

그는자신의개성이듬뿍담긴,스스럼없이‘내것’이라고말할수있는,손으로만질수있는결과물을생산하며,어떤순간에는틀림없이온전한보람을맛본다.역량을발전시킬수있고,그걸스스로느끼고,가끔은다른사람도그렇게평가해준다.희박한확률이라도대박을꿈꿀수있고,그래서전망을품을수있다.거대한의미의흐름에참여함을느낀다.부속품이되는것과다른,기분좋은감각이다.헌신할수있는직업이라는확신이든다.
---「프롤로그」중에서

근육,식사,커피,술등관리해야할대상들을적다보면거꾸로내가어떤경주에참여하고있는지깨닫게된다.단거리가아니라장거리,그것도울트라마라톤이나투르드프랑스같은초장거리경기다.그렇게관리를해가며내가매달리는프로젝트는무엇인가,하고내업(業)의본질에대해서도고민해보게된다.
그래서나는‘글쟁이’라는말을별로안좋아한다.아무글이나쓰는건내일이아닌것같아서다.책이될글을써야한다.나는‘단행본저술업자’라는표현을선호한다.
---p.32

비유하자면내게는소설의절정부를만들어내는일이바둑에서승부수를던지는일처럼여겨진다.그수를두고나면바둑의규칙에따라,이후로는외길수순이펼쳐진다.주인공이결단을내리면,세계를움직이는힘에따라그의운명도결정된다.아마도이게나의세계관이고내가세상을보는방식인모양이다.
그세계는회색으로,선과악이섞여혼란스럽다.한인간의내부도그렇고그를둘러싼외부환경도그렇다.그리고세상을움직이는힘은한사람의행복이라든가정의따위는신경쓰지않는다.고로‘이후로는착한사람들이아무일없이행복하게살다가늙어서편안히죽었답니다’라는결말도없다.그우주에는그런일을보장해줄하느님이없다.역사의심판도없다.그세계는기댈곳이없다.

그리고나는소설만큼은진지하게,내가믿는세계관에입각해서쓰고싶다.쓰다보면진지해진다.영화를보거나책을읽는일보다훨씬힘들고,강연이나방송출연보다투입시간대비이익이미미하기때문에,작업을하는내내‘이걸왜하지?’라는생각을하게된다.이유가,의미가있어야한다.그렇지않은소설을쓰느니낮잠을자는게낫다.
---p.61~62

소설을쓸때도그런자세다.나처럼강퍅한독자가책장을넘기다말도안된다며콧방귀를뀔까봐,읽던책을내려놓을까봐신경이쓰인다.첫문장을쓰기도전에이미글의성격이①~③중어느것에해당하는지를정하고,마지막문장까지그규정에서벗어나지않으려애쓴다.

원래도소설을쓰려고거짓말을지어낼때그게그럴싸한지를오래따지는편이었다.이과정에서시간을허비하고스트레스도제법받는데,얼마나유용한습관인지모르겠다.대개의독자들은나보다훨씬더관대한것같다.재미가있다면다소억지스러운전개나설정,현실과맞지않는부분도얼마든지받아들이는듯하다.

이버릇이더심해져요즘은거의강박이되었다.얼마전에는원고를쓰다가혼자이건아니라면서고개를절레절레저었다.울산에내려간주인공이고속버스터미널에서우동한그릇을먹는대목을쓰면서울산고속버스터미널에분식점이있는지없는지,있다면어떻게생겼는지를알아보는스스로를자각했던것이다.그정도는그냥지어내라고!
---p.79~80

특히전업소설가들은혼자있는시간이너무많다.사람이혼자있으면자꾸전날이나전전날있었던일에대해,또자기자신에대해곱씹게된다.‘그편집자한테내가한말이무례하게들리지않았을까’와‘이명단에내이름이없는이유가뭘까’를같이고민하다가어느순간그두생각이비극적으로만난다.흔히들고된밥벌이를가리켜“춥고배고픈일”이라고표현하는데,외로움도지나치면추위나허기만큼해롭다.그또한이업을택한사람이감당해야할몫이겠지만.
---p.132

“요즘엔별걸다해야돼요”라는푸념아래에는그보다훨씬더근본적인불안이깔려있다.나도,편집자도,마케터도,서점관계자도그렇다.우리가점점책이아닌다른무언가를팔고있는것같다는존재론적위기감.애써아닌척해도콘텐츠와책은다르고,크리에이터와작가도엄연히다르다.책은글자로돼있고,작가는글자로작업한다.책의본질이굿즈나토크에담길리도없다.우린다책이좋아서이일을시작했는데,지금뭘하고있는거지?
---p.190~191

사실내게는집필초기단계에서부터제목이무척중요하다.글을쓸때주제를중요하게여기는편이어서그런것같다.내가말하려는바가무엇인지먼저정리하고소설을쓴다.그런마음이자연스럽게프로젝트이름(가제)에반영되는것이다.소설을쓰는기간에는다른일을할때도원고를잊지않기위해그가제를반복해서중얼거린다.머리를감으면서“산자들산자들산자들……”이라고혼잣말을하는식이다.그러니원고완성전이라도제목은꼭있어야한다.
---p.208

나는방바닥의상태에주의를기울이지만,방바닥과소통하지는않는다.나는방바닥이원하는바가뭔지알지만(먼지로몸을덮어유적이되고자한다),그욕망을허락하지않는다.나는자연을밀어내고인공의세계를유지한다.나의질서를강요한다.먼지가쌓인다.쓸어버린다.얼룩이진다.제거한다.

이는소설로내가이루고자하는바와매우닮았다.소설이없는자연의세계는어떤모습인가?허무한세계다.사건의입자들이브라운운동을하듯이떠다니다가부딪쳐불을내기도하고떨어져바닥에쌓이기도하는혼돈.나는그것이세계의본모습이라고생각한다.어떤맥락도의미도없다.제정신인인간이살아가기힘든곳이다.

나는정보들을고르고이어붙여서맥락을일으킨다.상징을부여하고,이야기를세운다.이것은세계의본모습과상관없는,가공의질서다.나는그질서를독자들에게강요한다.내게있어소설쓰기는어떤사건을이용할것인가,어떤도구를쓸것인가,그도구로사건입자들을어떻게자르고잇고뒤틀고뭉칠것인가의문제다.기본적으로엔지니어의일이다.재료와도구가허용하는안에서내마음대로의미를발명한다.그렇게의미의집을지은뒤거기에불안한정신을누이는것이내가소설을쓰는이유다.
---p.276~277

내가원하는작가의이상적인일상은이거다.아침에일어나서소설원고를쓰기시작,배고플때식사하고,낮잠을조금잔뒤또원고를쓰고,다시배가고파지면두번째끼니를먹고,또원고를쓰고,자는것.그사이사이에운동을하고,집청소를하는것.한마디로교도소독방에갇힌죄수같은생활이다.

적어도내경우는몹시심심한상태가되어야만글에속도가붙는다.소설쓰기는대개장기프로젝트이고마감이명확하지않다.또세상에는소설을쓰는것보다흥미로운일이많다.그러다보니마음을다잡지않으면한눈을팔기도쉽고,그날써야할원고를차일피일미루게되기도쉽다.그래서낮시간에는휴대전화기를무음혹은비행기모드로돌려놓고,꼭찾아야할정보가아니면인터넷도접속하지않는다.자료검색을한답시고웹서핑을하다하루를홀랑다까먹은경험이여러번있다.

원고에푹빠져밥을먹을때에도,걸어다닐때에도이야기를구상하고인물들의대사를중얼중얼읊게되는바람직한상태를몇번겪어보기는했다.평생을그런상태로살고싶다는게내소망이다.소설쓰기의러닝하이,즉‘라이팅하이(writinghigh)’라고불러볼까?
---p.280

우리가함께만든책은성공할수도있고실패할수도있다.변덕스러운시장반응을놓고나중에누가옳았는지따지는게의미있을까?우리는성공하면함께성공하고실패하면함께실패한다.다만그렇게성공하거나실패하기전에활발히두머리를짜내어후회없이좋은책을만들수있기를원한다.한쪽에서는이런관계를맺는힘을에디터십이라고부를수있을텐데,다른쪽에서는파트너십이라고표현해도괜찮겠다는생각이든다.
---p.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