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별장, 그 후

여름 별장, 그 후

$17.50
저자

유디트 헤르만

저자 : 유디트 헤르만 (Judith Hermann)
1970년 서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자유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극단 ‘폴크스뷔네’에서 연극을 하고 베를린 팝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998년에 첫 작품집 『여름 별장, 그 후』를 발표하면서 '독일 문학이 고대했던 문학적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휴고 발 상과 브레머 문학상, 클라이스트 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또한 이 책은 25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고 17개 국어로 번역되는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극히 사실적이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문체로 소통이 단절된 인물들의 모습과 어긋난 사랑의 양상을 포착해 낸 이 작품은 유디트 헤르만이 직접 각색 작업에 참여하여 1999년 연극으로 올리기도 했다.
그 후 4년 만에 두 번째 작품집 『단지 유령일 뿐』을 발표했는데, 여행을 주제로 한 이야기 일곱 편을 묶은 이 작품집은 오늘날 젊은 세대가 처한 파편화된 세계와 그들의 복잡한 내면을 잘 그려 냈다는 평을 받았다. 2007년 독일에서 영화화되었고 2009년에 국내에서도 개봉했다. 2009년 출간한 『알리스』는 주인공 알리스가 소중했던 이들을 떠나보내며 느끼는 아픔과 고독을 담담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써 내려간 작품으로, 이전보다 더욱 성숙해진 통찰력이 어김없이 빛을 발한다. 특히 죽음이라는 우울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삶과 희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어두웠던 이전 작품들과 차별점을 보인다. 《슈피겔》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고, 프리드리히 횔덜린 상을 수상했다. 현재 베를린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역자 : 신동화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표현주의 문학에 나타난 과학 기술 인식-되블린의 『산 바다 그리고 거인들』을 중심으로」 연구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한국문학번역원 번역 아카데미 특별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게르하르트 노이만의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 알프레트 되블린의 『무용수와 몸』, 토마스 만의 『괴테와 톨스토이』, 레오 페루츠의 『9시에서 9시 사이』, 『심판의 날의 거장』 등이 있다.

목차


붉은 산호 -9
허리케인 -35
소냐 -69
무언가의 끝 ?111
발리 여인 ?129
헌터 톰슨 음악 ?153
여름 별장, 그 후 ?185
카메라 옵스큐라 ?213
오데르강의 이쪽 ?227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아홉 편의 이야기에는 저마다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 누군가의 손녀, 연인, 예술가, 옛 친구의 딸, 때로는 그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의 삶에 들어와 잔잔한, 때로는 거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흔적을 남긴 채 사라진다. 이들에게는 변치 않음이나 지속, 영원함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고, 때로는 제멋대로인 듯 보이며, 어느 순간 유령처럼 사라져 버린다. 헤르만은 인물의 삶을 설명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잠시 카메라를 비추듯 인물의 한순간을 포착한 뒤 조용히 화면을 거둔다. 그래서 이야기에는 늘 빈자리가 남는다. 인물의 진심도, 인과관계도, 그 후의 삶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잘 모르겠다. 정말로 잘 모르겠다.” -11쪽, 「붉은 산호」

‘잘 모르겠다.’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모호함과 알 듯 말 듯한 진심.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마음을 쉽게 직시하지 못한다. 손을 내밀고 싶으면서도 망설이고, 알고 있으면서도 다가가지 않는다. 그러나 망설임과 후회, 외면과 회피는 오히려 말해진 마음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작가는 말해지는 것과 보여지는 것 너머, 끝내 말할 수 없고 보여지지 않는 것들에 삶의 진실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 밤들에 내가 아마 행복했을 거라고, 오늘날 나는 생각한다. 과거가 늘 미화된다는 것, 기억이 완화 작용을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쩌면 그 밤들은 그냥 춥고 냉소적으로 즐거웠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내게 그 밤들은 마음이 아플 만큼 중요하고 상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90쪽, 「소냐」

지나간 시간은 기억 속에서 미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실된 것일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여름 별장, 그 후』의 인물들이 간직한 것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결말이 아니다.

“이유는 없어. 거기에는 아무 이야기도 없어. (…) 우리가 해결하지 않은 사소한 다툼들, 어떤 불화들. 내 생각에 우리는 서로 다르게 살았던 것 같다. 그게 전부야. 극적인 일도, 결정적인 사건도 없어.” -252쪽, 「오데르강의 이쪽」

『여름 별장, 그 후』를 읽다 보면 독자는 1990년대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결국 이어지지 못한 관계와 어긋난 마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의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잃었고, 그것은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소설의 인물들처럼.

헤르만은 사랑과 고독, 상실의 어떠함을 거창하게 말하는 대신 지나간 시간의 한 장면, 스쳐간 사람의 표정, 끝내 이어지지 못한 관계의 흔적을 담백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의 지나간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극적인 일도, 결정적인 사건’도 없지만 ‘마음이 아플 만큼 중요하고 상실된’ 무언가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소설집은 오래 묻어두었던 삶의 소중한 조각들을 떠오르게 한다.

뜨겁고 강렬한 여름이 지나고 난 뒤 찾아오는 가을처럼, 이 소설집의 쓸쓸함에는 이상할 만큼 맑은 빛이 있다. 짧은 아홉 편의 이야기이지만, 쓸쓸하고 아름다운 문장 앞에 잠시 멈춰 서서 그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옮긴이의 말

나는 ‘무언가’가 헤르만이 글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시적으로 압축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명확히 정의하거나 규정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감지되는 것. 가령 “거리에서 누가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듯한 느낌”. 『여름 별장, 그 후』의 등장인물들은 무언가를 느끼고,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떠올린다. 어쩌면 또 다른, 새로운 삶의 가능성. 때로는 삶 자체를 지시하는 것도 같다. 불가해하고 이상하고 우스꽝스럽고 슬프기도 한 삶. 「무언가의 끝」에서 스케치하고 회고하는 할머니의 지난 인생과 말년의 나날처럼. _신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