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한대이외다

사랑은 무한대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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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대를 앞서가 멀리에서 홀로 빛나던 작가 ‘김명순’
백 년 만에 되새기는 그의 깊고 짙은 목소리

“우주가 무한대한 것과 같이
인생, 즉 사랑도 무한대이외다”
김명순. 그는 백 년 전 나혜석, 김일엽 등과 더불어 활동한 선구적인 작가이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1896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명순은 1917년 잡지 『청춘』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면서 등단 제도를 통해 문단에 데뷔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이며, 여성 최초로 작품집을 낸 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번역해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 번역가, 평론가, 극작가, 기자, 배우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다재다능한 작가이다. 하지만 그의 출신이나 안타까운 개인사를 두고 희롱하는 당대의 일부 작가들로 인해 글쓰기를 중단하고 1951년 일본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비운의 작가이기도 하다.
김명순은 『생명의 과실』(1925), 『애인의 선물』(1929 추정) 등 시, 소설, 희곡 등을 한데 묶은 작품집을 두 권이나 펴냈을 만큼 그 누구보다도 글쓰기에 열정적이었고, 시대를 앞서간 글을 써낸 놀라운 작가였다. 『사랑은 무한대이외다』는 김명순이 1918년부터 1936년까지 발표한 에세이를 묶은 모음집으로, 문단의 미더운 시인 박소란이 읽기 어려운 백 년 전의 근대 한글을 현대어로 옮기고 정리했다. 이 작업을 통해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저 멀리에서 홀로 빛나던 ‘김명순’이라는 소중한 이름을, 그가 못다 이룬 문학의 꿈을 오늘날 되살리고자 한다.

시공을 뛰어넘어 여전히 살아 읽히는 김명순의 진면목

『사랑은 무한대이외다』는 김명순이 등단한 이듬해인 1918년에 쓴 「초몽」을 시작으로 1936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생활의 기억」까지 총 19편의 에세이가 4부로 나뉘어 수록되었다. 산문의 형태로 쓰였지만 깊은 사유가 응축되어 시에 가깝게 읽히기도 한다.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이 짙게 배어든 글들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세련되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플롯은 백 년 전의 한 지성과 마주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표제의 대목이 실린 작품 「사랑?」은 ‘사랑’이라는 막강한 힘을 지닌 채 자신만의 세계를 지탱해내는 한 사람의 숭고한 내면을 발견하게 하는 수작이다.
2부 ‘힘 있는 대로 싸워왔노라’에 실린 「이상적 연애」「여인 단발에 대하여」는 현대에도 여전히 경각심을 높여야 하는 외모 평가, 데이트 폭력 등의 사회 문제를 곱씹게 한다. 놀랍게도 「염문을 탐독하는 신여성의 위기」는 책을 엮는 과정에서 박소란 시인이 새롭게 발굴한 글로, 이 책의 사료적 의의를 더해준다. 그만큼 김명순에 대한 자료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로 흩어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테지만, 우리가 그의 작품을 새롭게 알아가는 기쁨의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에세이집의 후반부에서는 김명순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일본 유학을 두 번이나 다녀온 김명순은 외국의 문학작품과 음악, 문화 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지만 오랜 타지 생활로 향수를 앓고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지적인 면모와 삶에 대한 통찰, 번역가로서의 재능이 글 안에 고스란히 드러나 그의 매력을 더한다.

우리 곤란하더라도 희망하기로 해요
나만은 기필코 나의 편이 되어주기로 합시다

“지금 다시 김명순의 글을 읽는다는 건 행복한, 그러나 분명 무거운 일”이다. “뜻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여러 단어들, 얽히고설킨 문장들 앞에서 자주 머뭇거리게” 될 테고, “갖가지 이유로 자주 웃고, 자주 탄식하게 될 것”(박소란 발문)이다. 김명순이 신문과 잡지의 지면에 이러한 글을 발표했을 1920~30년대의 시대상이나 ‘나의 편’이 없다는 막막함으로 어두운 도시의 거리에 외롭게 서 있었을 한 작가의 쓸쓸한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리고 인생의 아득함을 떠올리다가도 종내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희망하여라!”(120면) 하고 말하는 김명순의 문장을 읽으며 다짐한다. “김명순, 그가 그러했듯이” “사는 일도, 쓰는 일도, 또 그 어떤 일도 내 편이 아닐 때 나만은 기필코 나의 편이 되어주기로 합시다.”(박소란 발문)
저자

김명순

소설가,시인,언론인,영화배우,연극배우.1896년평안남도평양군융덕면에서태어났다.1913년진명여학교를졸업하고일본시부야국정여학교에편입하였으나중퇴했다.1917년잡지[청춘]의현상소설모집에단편소설「의심의소녀」가당선되어문단에등단했다.1919년에는일본유학길에올랐으며도쿄에체류중인소설가전영택의소개로당시일본에유학중인문학가들이창간한종합문예동인지[창조]...

목차

1부왜살아가려느냐
초몽(初夢)
봄네거리에서서
사랑[愛]?
네자신의위에
동인기(同人記)

2부힘있는대로싸워왔노라
부친보다모친을존숭(尊崇)하고여자에게정치사회문제를맡기겠다
이상적연애
염문(艶文)을탐독하는신여성의위기
여인단발에대하여
대중없는이야기

3부언니여슬프지않습니까
겨울날의잡감
××언니에게
계통없는소식의일절
거울앞독백[鏡面獨語]
잘가거라

4부이정경을오래오래잃지않으리라
향수
시필(試筆)
귀향
생활의기억

발문
사랑하는호을로―박소란

출판사 서평

시공을뛰어넘어여전히살아읽히는김명순의진면목

『사랑은무한대이외다』는김명순이등단한이듬해인1918년에쓴「초몽」을시작으로1936년매일신보에연재한「생활의기억」까지총19편의에세이가4부로나뉘어수록되었다.산문의형태로쓰였지만깊은사유가응축되어시에가깝게읽히기도한다.시인으로서의감수성이짙게배어든글들은읽을때마다새로운감각을일깨우고,세련되면서도단순하지않은플롯은백년전의한지성과마주하는즐거움을선사한다.특히표제의대목이실린작품「사랑?」은‘사랑’이라는막강한힘을지닌채자신만의세계를지탱해내는한사람의숭고한내면을발견하게하는수작이다.

2부‘힘있는대로싸워왔노라’에실린「이상적연애」「여인단발에대하여」는현대에도여전히경각심을높여야하는외모평가,데이트폭력등의사회문제를곱씹게한다.놀랍게도「염문을탐독하는신여성의위기」는책을엮는과정에서박소란시인이새롭게발굴한글로,이책의사료적의의를더해준다.그만큼김명순에대한자료가아직정리되지않은채로흩어져있다는방증이기도할테지만,우리가그의작품을새롭게알아가는기쁨의여지가많다는뜻이기도할것이다.

에세이집의후반부에서는김명순의외로움과그리움을엿볼수있다.당시로서는드물게일본유학을두번이나다녀온김명순은외국의문학작품과음악,문화전반에해박한지식을지녔지만오랜타지생활로향수를앓고생활고에시달리기도했다.그럼에도숨길수없는지적인면모와삶에대한통찰,번역가로서의재능이글안에고스란히드러나그의매력을더한다.

우리곤란하더라도희망하기로해요
나만은기필코나의편이되어주기로합시다

“지금다시김명순의글을읽는다는건행복한,그러나분명무거운일”이다.“뜻을정확히파악할수없는여러단어들,얽히고설킨문장들앞에서자주머뭇거리게”될테고,“갖가지이유로자주웃고,자주탄식하게될것”(박소란발문)이다.김명순이신문과잡지의지면에이러한글을발표했을1920~30년대의시대상이나‘나의편’이없다는막막함으로어두운도시의거리에외롭게서있었을한작가의쓸쓸한마음을헤아려본다.그리고인생의아득함을떠올리다가도종내“아무리곤란하더라도희망하여라!”(120면)하고말하는김명순의문장을읽으며다짐한다.“김명순,그가그러했듯이”“사는일도,쓰는일도,또그어떤일도내편이아닐때나만은기필코나의편이되어주기로합시다.”(박소란발문)

엮은이의말

김명순,이라는이름에처음관심을두게된것은더한참전의일입니다.여러해전우연한계기로근대여성시인들의대표작들을한데모아읽은적이있었는데,많은시편들가운데유독그의시를반복해서읽게되었어요.너무깊었다고할까,짙었다고할까.“나는세상에다신안오리다/그래서우리는아주작별합시다”(「유언」)같은선득한목소리앞에서는누구라도일렁이는마음을누를도리가없는것이겠지요.언젠가제대로읽어야지,공부해봐야지,막연한결심을구실로가까스로책을덮었던기억이납니다.(…)

그러면서여름이가고가을이왔습니다.함께도읽고,혼자서도읽는동안제뇌리는온통김명순이었어요.그즈음문학하는사람들을만나면저는습관처럼김명순이야기를꺼냈습니다.그를아느냐고.읽어본적이있느냐고.반응은크게두가지였어요.하나는“김명순?그게누구지?”하는것이지요.그난감한표정을대하자면괜히서운해지는것이었습니다.또하나는“알긴알지.근데지금와서웬김명순?”고개를갸웃거리는것.이또한서운해지기는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글은언제어디서나읽혀야마땅한것일텐데요.그렇지만에세이를정리하기로하면서저또한속으로되풀이해물었던게사실입니다.왜김명순인가?그러나이는‘지금왜김명순인가?’하는질문보다‘나는왜김명순인가?’하는질문에가까운것이었어요.전자는그의작품을얼마간자세히들여다본다면누구라도쉽게해소할수있는의문이라확신했으니까요.‘지금왜’는곧‘지금도반드시’로바뀔것을의심치않았습니다.

책속에서

우주는적멸하고인류는사멸합니다.그러나이멸망해가는우주와인류간에도영구불멸의것이있습니다.그것은곧신념이요지성(至誠)이요진리요사랑이외다.그러므로모든것이멸망해서자취를찾을수없으나그대로인간에게남아있는것은사랑입니다.우주건설의전초가사랑이요지지가사랑이요인생의토대가사랑이외다.
---pp.23~24

사람사람마다잠시사랑이라는것을맛보고는그것이전체의사랑인줄로오해합니다.그래서혹은실패니실연이니합니다.참으로우스운것입니다.사랑은무한대이외다.사랑은무한대이외다.아름다운K양이여,아무쪼록이혼돈한사회에서아름다운구원의여성이되기를바랍니다.비록남녀의갈피는있으나이긴편지를사랑으로받으세요.
---p.27

‘단발’은여자에있어서도남자에있는것과같이서슴지않고실행하여도무방할것입니다.또단발을한다고여자의미를손실하는것도모름지기없을터인즉사람의형체에따라서는한개인을미화하는화장(化粧)도되겠습니다.그러므로단발을하였다고그경우와필요를사회에서특별히논의해야할아무런이유도없겠습니다.
---p.53

당신들은나를비웃기전에내운명을비웃어야옳을것이다.나는이지경에겨우이르렀어도힘있는대로싸워왔노라.아아벗들이여,더러운시냇물이졸졸흐르는그동안에도합해질여러냇길과강과바다와가늘게굵게,짧게길게,머물렀다급했다,천천했다,모든일이당연한듯이서로서로합해도지고갈리워도졌으리라.그동안에는너희들중한여인의말과같이깨끗하던것이더러워지고더럽던것이깨끗해도져서내[川]가되고바다가되고또짜지기도했을것이다.
---p.65

하나언니여슬프지않습니까.사랑은지극히드물게있습니다.사람의인격완성과같이드물게있습니다.아득거리고변하고속이는것이사랑이아님은당연합니다.참사랑을얻으면노래하지요.그때까지밀어입니다.
---p.88

역시나는내이상을실현하자고끊임없이붓을잡을것이다.아아참인생의아득함이야악마로다”하며그는창백한손가락으로물끄러미유리창에쓰기를
“너희들아무리곤란하더라도희망하여라!보앙카레”
하고굵고튼튼히하였다.
겨울날맑은빛이빛나듯이그의눈에는청신(淸新)한빛이빛났다.
---p.120

이제막우리의숙제는시작되었고앞으로긴시간계속될것입니다.
---p.172

반복해읽을수록깊이를더해가는단어와문장.그것을되뇌며보낸여름,가을,그리고겨울이었습니다.이낯선단어가품은뜻은무엇일까,이문장속에깃든것은어떤마음일까.김명순,그를헤아리는시간이좋았습니다.다좋았습니다.“차디찬겨울의따뜻한꿈이로구나”(「시필」)합니다.
---p.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