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동화

팬데믹 동화

$15.00
저자

신경진

1969년부산에서태어났다.1996년한국외대헝가리어과를졸업하고,1998년부터2002년까지캐나다레스브리지대학,맥매스터대학에서영문학과컴퓨터사이언스를전공했다.이후한국으로돌아왔으나이렇다할내일의윤곽은없었다.무채색니힐리즘으로보낸사색의시간이펜을잡는계기로이어졌다.2007년,첫장편소설『슬롯』으로제3회세계문학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

『결혼하지않는도시』는그...

목차

1부·7

인간,인간은누구도연민없이는잘살수없다.
-도스토옙스키『죄와벌』

2부·77

나는욕심이많다고생각하지만,돈에대해서는욕심을내지않습니다.
그렇지만흥미진진한삶에대해서는욕심을냅니다.
-데이비드호크니

3부·155

‘단한사람이라도도울수있는사람은인생의목표를달성하는것이다.’
-슈테판츠바이크『초조한마음』

작가의말·273

출판사 서평

줄거리

주인공송화는고등학교수학교사로재직하던중사랑하는남편을말기위암으로사별한다.남편과의사이에미숙아로낳은아이가있었으나그아이마저떠나보내고강아지해리와함께외롭게살고있었다.그러던중고등학교에교사로재직중인옛친구를만났다가그녀의제자인스물넷의현수라는청년을알게된다.현수는준수한외모에천재적인두뇌를가지고있고특히수학을잘하나일찍부모님이돌아가신까닭에대학진학은커녕힘들게혼자서살고있었다.그녀는그런현수에게깊은연민과동정심을느끼고자기집에기거하게하고명문대학에갈수있도록아낌없는지원을결심한다.그녀는부모님은물론,친척도없이혼자서근근이사는현수의능력이아까워서순수한마음으로그를돕기로한것이다.

하지만현수는송화의집에살면서예나라는대학졸업을앞둔여자를만나게된다.현수는예나에게자신을졸업을앞둔명문대대학원생이라고속이고,예나는그런사실조차모르고급기야둘은헤어날수없는관계를맺게되고사랑의소용돌이속으로깊게빠지게된다.게다가예나는현수가기거하고있는집에갔다가미인이송화를보고현수의친엄마로착각하게되고,마침내둘은결혼까지약속하게된다.그러나시간이점점흐르면서현수의거짓은오래가지않았다.현수는예나를속였다는깊은자괴감에빠져마침내자신의거짓을예나에게털어놓게되고그사실을알게된송화의마음은깊은슬픔으로빠지게되는데....

신경진(지은이)의말

동화의세계는아름답습니다.무지개건너높은하늘과깊은숲이이어지고청옥빛호수가펼쳐집니다.그곳에서는사슴과토끼가뛰어놀고사자와여우가대화를나눕니다.이환상적인동화의세계에서어느날예쁘고용기를지닌여자아이가길을잃게됩니다.동화의숲저편에는무서운마법사와마녀가살고불을뿜는용과머리가셋이나되는커다란뱀이살고있습니다.사랑하는가족의품으로돌아가려는주인공소녀는마법사의주문을풀고용을무찔러야합니다.독자는숨을죽이며이야기에빠져듭니다.동화의배경은다양해도줄거리의결말은동일합니다.마침내악의세계는붕괴하고얼음으로꽁꽁얼어붙은동화의나라에온기를품은따뜻한봄이찾아옵니다.

동화와같은행복한세계를완성하는것은작가들의오랜꿈이었습니다.그러나이꿈을이룬현대작가는거의찾아볼수없습니다.현실을그려내는일을숙명으로삼은작가들은영원히지속될것만같은실패의예감을떨쳐내지못합니다.우리가사는현실세계와동화의세계가다르기때문입니다.

2020년봄,지구를덮친코로나바이러스는인류의삶을위협하는지독한악당으로등장했습니다.사람들은팬데믹이라는재난상황에서우왕좌왕했습니다.수년동안이어진거리두기와자가격리로우리는결속과연대의식을서서히잃어갔습니다.난파하는배위에서오직생존하기위해고군분투해야만했습니다.그리고이제바이러스와함께살아가야만하는위드코로나의시대가열렸습니다.
<팬데믹동화>에서저는사람들이잃어버린동화의세계를찾아서떠나는여행을그려내기위해노력했습니다.그러나한사람을도우려는마음씨착한행동이마치동화속의이야기처럼되어버린현실앞에서멈추어서야만했습니다.이것을우리는리얼리티라고부릅니다.그러나타인에대한연민과사랑이정말동화의세계에서만실현가능한일이되어버린것일까요.아마그렇지는않을것입니다.우리주변에는여전히삶의희망을포기하지않은정다운이웃들이살고있습니다.그들은숲속에서길을잃은아이를만나면따뜻한인사를건네고아이가숲을벗어나기위해도와줄것입니다.

실패의예감으로전진하지못한다면예술은죽음을맞이할것입니다.사랑의실패는새로운희망의씨앗입니다.동화의세계를포기하지않는사람들이많아질수록현실은변화할것입니다.역사의진보에회의를품는일은잠시미루어두어도됩니다.대신우리주변의사랑하는사람들의얼굴을보아야만합니다.그들이좌절하고외로워할때힘이되어줄수있다면삶은절망으로끝을맺지는않을것입니다.위드코로나의시대가아름다운동화의세계를이어주는샛길이되길소원하며글을마칩니다.

책속에서

영원한사랑을약속했던남편성훈이숨을거두었다.그녀가발을딛고선곳은세상의끝이었다.그런데도어김없이시간은그녀를낯선공간으로데려갔다.송화는길을걷다가문득세상의풍경이달라졌음을깨달았다.2020년봄,최악의유행병바이러스‘코비드19’가지상을덮쳤다.
---p.12

타인의불행을이렇게가까운거리에서확인하기는정말오랜만이었다.현대인들은타인의불행을먼거리에서감상하는데익숙했다.비극은텔레비전과신문,책과같은대중미디어를통해서소비될뿐이다.
---p.27

아마외도를먼저시도한쪽은송화였을것이다.미숙아로태어난아이가인큐베이터에서호흡하다죽은지일년쯤지났을때였다.남편성훈은아이의장례식이후송화의몸에손을대지않았다.침대에서잠을자다성훈이무심코손을뻗었다가송화의가슴에손을올렸는데도그는젖꼭지를움켜쥐지않았다.
---p.36

송화는숨을들이마셨다.그녀는현수가말한‘세상의수학적면모’를떠올렸다.빛의굴절과중력에의한물체의낙하는수학적으로설명가능했다.그러나사람들이조직한사회의법률과윤리는미시세계에서일어나는전자의충돌만큼이나무작위적이었다.송화역시매일겪는일상적인혼돈이었다.
---p.54

성훈이죽은이후로송화는삶이실제인지가상의환영으로이루어진것인지분간할수없었다.죽음은모호했다.성훈은그녀곁을떠나지않았다.그녀는매일그와대화하고그와함께잠들었다.몽상일수도광기일수도있었다.그러나그것은그녀가마주한유의미한현실이었다.
---p.61

불행은기습적으로찾아온다.형태도없고냄새도없다.식사가끝나고빈그릇들을개수대에옮길때초인종이울렸다.그들은현수를찾아온불청객들이었다.송화는거실유리창을통해마당을가로질러대문을향해내려가는현수를보았다.열린대문틈사이로가로등불빛을받은사람들의그림자가어른거렸다.
---p.71

우연이연속적으로일어나면운명이되는게아닐까?연애와결혼은자유로운여성의삶을한순간에무너뜨릴수있는힘을지니고있었다.현대소설의여주인공들이낭만적인감상에젖어사랑으로무너지는것을확인하며예나는남자들과거리를두고있었다.
---p.93

“내가지금여기까지오는데에는수많은우연이연이어일어났던것뿐이야.가정도직장도사랑도모두우연의결과물이었어.그이가암에걸려죽은것도,내가학교를그만두고새로운삶을살기로결정한것도모두어떤인과관계에의해일어난일이아니란걸알게되었다는거야.난그저무한한시간의한순간에서서생겼다가사라질운명일뿐이야.”
---p.119

“응.우리가마주한혼란을줄이기위해서는마음의크기를키워야해.세상이혼탁해지는건마음의크기가작은사람들이많아질때야.역사가그걸증명하고있어.”
---p.141

마르크스를버리고E.H카를버린후,니체마저내던진역사학자가운명처럼회귀한무대가바그너였다.아이들은마치음악이존재하지않는다는듯즐거운표정으로일상적인대화를이어갔다.저들에게는사랑을잃은이졸데의절규가들리지않는단말인가?송화는새삼스레아이들의순진무구한얼굴을바라보았다.
---p.179

“제행동이독재자게임의결과처럼비칠수도있겠네요.그래서사람들은가능한함께같은공간에서살아야하지않을까요.예나의지금행동도마찬가지일거로생각해요.사랑을하면비합리적인선택을해도후회하지않는게사람들의마음이니까요.”
---p.197

사랑은불완전하다.불완전하기때문에사람들은사랑에이끌린다.불완전함이내포한공백속에서사랑의꿈이자라난다.그러나사랑은부조화의혼란속에서태어나심연의어둠속으로추락한다.세계가붕괴되지도않았다.사라진것은오직미완성의사랑뿐이었다.
---p.223

그녀는바이러스가혈관을따라흐르며정상세포를공격하는초현실적인감각을느꼈다.순간격렬하게기침이쏟아져실내화가벗겨진것도모른채화장실로달려갔다.그것은확실히실존의구토가아니었다.
---p.229

가스레인지에올린냄비가끓고있었다.주방으로고개를돌린송화의얼굴에는핏기가없었다.눈동자의초점은흐릿했다.탁자에올려놓은핸드폰이울리자송화는진동하는전화기를내려다보았다.발신인의이름이뜨지않는미심쩍은전화는받지않는것이상식이다.떨리는검지로통화거절버튼을눌렀다.그러자외부세계를이어주는연결고리가끊어졌다.
---p.241

장례식이후정신과에서처방받은우울증약과불면증치료제를쓰레기종량제봉투에버렸다.정원에새잔디가푸릇푸릇올라와있었다.송화는한낮의몽유병환자처럼정원을어슬렁거리며태양을쏘아보았다.따가운햇살이주삿바늘처럼눈을찔렀다.그제야그녀는혈관에서아직도붉은피가흐르고있음을깨달았다.
---p.251

사라진것들에대한추억과생의허무를매일가슴에품고살아갈수는없었다.인생이공허하다면그자체로내버려둬도괜찮지않을까.삶이한낱그림자에불과한데무엇을애석해하고추모해야하는것일까.
---p.252

이혼과사별을동일선상에놓을수있는걸까?어쩌면그의말이맞는지도모르겠다는생각이들었다.결국혼자가된다는점에서는같은결론이니까.송화는그제야사랑의본질을이해할수있을것같은기분이들었다.사랑은대상의추상적의미를읽어내는적극적인행위였다.자신은성훈의존재를기억하는유일한독자였다.죽을때까지이지위는변하지않을것이다.물리적육신은사라졌지만그는자신의마음에불멸의존재로살아있었다.사랑은죽음으로소멸되지않았다.
---p.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