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긴 시대의 속내 (포항의 선정비)

돌에 새긴 시대의 속내 (포항의 선정비)

$18.00
Description
돌에 무엇을 새기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쇠는 녹이라도 슬고 나무나 종이는 썩기라도 하지만, 돌은 지구소멸까지 불변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비석 하나라도 세우기를 조심했다. 글자 하나도, 작은 사실도, 허위나 과장이 없도록 조심하고 조심했다. 그래서 오래된 비석들은 세월의 이끼와 함께 무거운 의미를 담고 서 있다.

그러다가 요즘 갑자기 그런 조심성이 풀렸다. 신분 제약이 없어지고, 염치가 없어지자 눈치 보기도 사라졌는데, 주머니에 돈도 좀 넉넉해지자, 사람들은 돌에 글자를 새겨 세우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착하게 살자” 비슷한 비석은 고을마다 섰고, “봉사한다”라고 큼직하게 새긴 돌도 곳곳에 서 있다. 모든 돌은 반드시 세운 자의 이름도 새겼고, 심지어 조상을 추모하는 비석에조차 돈 낸 후손의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동부마을, 서부공장, 남부학교, 북부회사, 중부협회’ 등의 안내판도 모두 돌에 글자를 새겨 세웠고, 신이 나면 돼지를 기르는 농장 이름도 돌에 새기고, 이름 없는 조상을 고위 관직에 임명하고 돌에 새겨 세웠다.

너무 많다. 이러다가는 영세불멸의 쓰레기들이 국토를 덮을 수도 있다. 아마 결국은 뜻깊은 비석과 단단한 쓰레기가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비석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읽지 않는 비석은 그저 돌덩이, 통행지장물일 뿐이다. 내용을 읽고 그 의미를 아는 이에게만 비석은 속내를 드러내고, 쓰레기에서 걸어나와 문화재로 거듭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석을 읽지도 않고 그냥 돌덩이라고만 한다.

우리가 비석을 읽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한자漢字이다. 한자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 조상들의 공용문자였는데, 최근에 사용이 줄어들면서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래서 한자는 그냥 어려운 글자라는 느낌만 남았다. 그러나 한자 자체는 어쨌든 편리한 문자의 하나이다. 그리고 당연히, 한자로 쓰인 글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모든 시민이 한문으로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좀 더 쉽게 비석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가공해서 제공하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다.
저자

김윤규

문학박사(한국문학).
한동대학교교수.청소년자유학교교장.
포항에대한연구로,「포항고전문학사」(2001)「입암시가연구」(2003)「암재창수록연구」(2015)등의논문과,『죽장입암시가산책』(2011)『다산장기시가산책』(2013)『벗님이새집을지으셨으니』(2015)『선정비의속내』(2017)『포항의서원』(2019)등의저서와〈포항의선정비〉(2019)〈충효열비〉(2020)〈명승창화시〉(2021)〈명승명명시〉(2022)등의자료조사연구가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선정비에대한공부

1.선정비를세우는이유·13
2.선정비의왜곡과훼손·20
3.선정비에대한사전공부·26
4.포항지역선정비의위치와목록·44

제2장 선정비읽기

1.옛흥해군·54
2.옛청하현·150
3.옛연일현·191
4.옛장기현·269
5.옛경주부·306
6.목관·339

제3장 선정비산책

1.선정비를이해하면서·353
2.선정비와만나기·356

출판사 서평

포항학총서를발간하며

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이포항학총서를발간하게되었습니다.대단히의미있는사업의성과를이루게되어기쁜마음이앞섭니다.융합문명연구원은현대문명의전환기를맞아우리사회의현재를진단하고미래를모색하는융합연구를위해설립되어그이름에걸맞은다양한사업을수행해왔습니다.포항학총서의발간은연구원이현실과보다밀접하게관련될수있게하는사업으로서매우의미있는일입니다.연구원이소속된우리나라최초의이공계연구중심대학인포스텍이그동안지역사회와맺어온관계를획기적으로발전시키는일이라는점에서도큰의미를지닙니다.
대학과도시는긴밀한관련을맺고있습니다.세계유수의적지않은대학들이대학의설립과더불어형성된도시와함께성장해왔습니다.지금도도시의랜드마크처럼시민들의사랑과자부심의대상이되는세계적으로유명한대학들이적지않습니다.영국의케임브리지와옥스퍼드,미국의프린스턴과버클리,하버드,MIT,독일의하이델베르크와프라이부르크대학등이좋은예입니다.이러한대학들은도시와일종의공동운명체적인관계를맺으며발전하고있습니다.포항학총서의발간을계기로포스텍과포항시도이와같이상생발전하는관계를한층더강화할수있기를희망합니다.
이러한희망을성취하기위해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의포항학총서는열린자세를견지합니다.무엇보다먼저,지역학이라는분과학문의틀에갇히지않고자합니다.필진을구성하는데있어전문학자에국한하지않을것입니다.포항을사랑하는시민들이자발적으로수행해온지역학적인노력들또한폭넓게끌어안고자합니다.둘째로주제의선정에있어유연한태도를갖추고자합니다.포항시민과우리나라국민에게유용한지식과정보를확충하는것이라면학문적인관심사와는다소거리가있더라도적극적으로다룰것입니다.셋째로지역의경계에얽매이지않으려합니다.포항이고립된도시가아님은물론이요포항의발전에국내외각지역과의교류가긴요한만큼,포항시안팎에걸치는다양한필자의다채로운시각을전할수있도록노력할것입니다.
포항의과거와현재를성찰하고이를바탕으로바람직한미래를꿈꾸는데있어서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의포항학총서가의미있게기여할수있도록노력하겠습니다.시민들의삶과밀접하게연관되는생생하게살아있는연구,사회와학문의전당이함께어우러지는현실적이고구체적인연구로포항학총서를채움으로써,포항의시민은물론이요포항에관심을갖는모든사람들이즐겨읽고서로대화할수있는장을열고자합니다.독자여러분들의성원을믿고기대하며이자리를빌려감사의뜻을표합니다.

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원장 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