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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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이 속담은 내게 격언으로 작동했다. 아이러니한 건, 이 말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포항의 작은 학교, 어느 반 교단에 서 있던 선생님이었다. 모든 어른이 사람은 서울로 가야 성공한다고 믿었기에 입을 모아 ‘서울로 가라’고 성화였다.
그들의 믿음처럼 서울에서 사는 것이 성공의 척도라면, 서울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실패한 삶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어른이 됐을 때 서울에 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떻게 되진 않았다. 나는 지금도 포항에서 잘만 살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던 그 말은 온데간데없고 지방에 청년들이 살지 않는다며 이제는 돌아오라고 야단이다.
지방 소멸은 출생률 저하와 엮이며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문제였다. 사회가 고령화되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지방 청년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도 저마다의 이유로 청년들은 지방을 떠나 서울로,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으로 옮겨간다. 나 역시 한때는 서울에서 살기를 간절히 바랐고, 내가 갈 곳은 서울뿐이라 믿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두 발은 포항 땅을 밟고 있다.
인터뷰 때마다 받았던 질문이 있다. 그럼에도 왜 지방에 남아 있느냐는 물음. 시간이나 지면의 문제로 그동안 충분을 답을 하지 못했다. 이제 그 대답을 제대로 할 차례다.

저자

히니

노동조합활동가로,여성청년독서모임운영자로지냈다.
평생할수있는활동을찾다가고향포항에서독립서점겸수제디저트카페를열었다.앞으로배울것도,해야할것도많다고생각하지만그중에서도당장할수있는최선은글쓰기라믿는다.

목차

프롤로그
1미투이전에우리가있었다
-부엌을뛰쳐나온엄마
-밥상머리페미니즘
-쓸모와자기만의방
-훈육의방식
-미투이전에우리가있었다

2서울밖에도사람이산다
-서울이아닌곳에서
-지방러생존보고
-서울밖페미니스트
-이런말하면안되나요?
-최후의1인
-태풍이지나간자리엔
-나는일어설수있을까

3벤츠는없다
-그섹스는강간이다
-모르면외우자,NoMeansNo!
-그건정말Benefit이었을까
-얼굴뜯어먹는연애의말로

4더넓은세상으로
-나는될성부른썅년이었나
-1Kg의기분
-담배한개비의권력
-아니라고말할용기
-만들어진범죄자
-해일앞에조개를줍는것은너희다

출판사 서평

알록달록서울밖,무채색사람들이산다

‘사람사는데가다똑같지’라는말은틀렸다.인프라가다르고일자리수와질이다르고,사람들인식이다른데어떻게똑같을수가있을까.나는5년전에경기도외곽으로밀려나며‘지방러’가되었다.서울을맘껏누릴때는알지못했던불편함을온몸으로체감하고있다.경기도는‘수도권’이니나름괜찮지않느냐고묻는사람이있는데,나름괜찮지않다.수도‘권’과‘수도’에도차이가존재한다.자동차로30분정도면오갈수있는거리지만,그30분동안30년전후로시간여행을하는기분이다.5년전이곳으로이사왔을때,가장많이했던말이“아니,이게없다고?”“이게안된다고?!”였다.당연했던것이당연한게아니었음을알았을때느껴지는당혹감이란….
이책은편집자의당혹감에서시작됐다.‘나름’수도권에사는나도이렇게불편한데소위말하는‘지방’에사는사람들,특히여성들의삶이궁금했다.대한민국에서가장보수적인곳,그곳에서활동하는페미니스트를작가군으로찾았다.그렇게인연이닿은히니작가가‘이래도되나?’싶을정도로거침없는글을써주었다.

<1장.미투이전에우리가있었다>에서는가부장제가점령한가정,폐쇄적이고폭력적이었던교육현장을고발한다.<2장.서울밖에도사람이산다>에서는지방청년여성의일자리와주거문제,소멸된문화생활,그리고경북을대표하는기업인포항제철의진실을밝힌다.<3장.벤츠는없다>에서는‘인연은가까운곳에서찾으라’는말,‘눈을낮추라’는조언을받들어흐린눈연애를했던작가의처참한엔딩을고백한다.<4장.더넓은세상으로>에서는그럼에도다시일어서는,서울밖사람들의오늘을조명한다.

책속에서

가부장제의최전선에있는엄마에게필요한건“왜그러고사느냐”는비난이아니라엄마의노동을인정하는한편개인으로서의엄마를존중하는태도일지도모른다.엄마를낳아서처음부터키워주지못한다면,나는엄마가선택한삶을인정했어야했다.그것이딸이엄마를위해할수있는최선의방법이었다.
---「밥상머리페미니즘」중에서

경북에는아직도학생의인권을최소한으로보장하는장치인학생인권조례가없다.단한번도교육개혁을말하는교육감이당선된적이없으니어쩌면당연한일일지도모른다.내가고등학교를졸업한지10년이더지났지만지금도지자체는학생인권조례를제정할의지가없다.이런여건에서교사들의권위가떨어질리만무하다.
---「훈육의방식」중에서

출국을앞둔예비노동자에서백수가된내가할수있는일은없었다.눈치주는사람은없었어도,눈치가보여서아르바이트라도해볼까싶었지만대부분은일주일에하루이틀,하루1~2시간만근무할초단기아르바이트노동자를찾고있었다.게다가웬만한곳은나이제한을써둔탓에지원조차못했고,나이제한이없는일은요양보호사나사무보조,간호조무사등주된업무가돌봄이거나,남성을보조하거나,일정자격이필요한직종이었다.이렇게일할곳이없는데대체포항사람들은무슨일을하며먹고사는건지궁금했다.
---「지방러생존보고」중에서

언제인지기억나지않지만포항에제철소가어떻게들어섰는지알았을때,나는무슨말을해야할지몰라우물쭈물했다.그전까지는박정희전대통령이경제개발을위해포항에제철소를지어준것이라고생각했다.모두가공평하게가난하던시절,무슨돈으로제철소를지었는지는궁금하지않았다.내가사실로알던것이사실이아닐때따라오는건민망함과뒤얽힌감정들이었다.
---「최후의1인」중에서

건물주는빗자루를든채나를따라책방안까지들어왔다.뒷문으로들어온물이앞문까지찬흔적이있었다.진흙과벌레,나뭇잎이물과뒤섞인바닥을보며간밤의소동을가늠했다.얼빠진표정으로책방안을확인하던내게건물주는“돈많이벌어서다음에는물안새는곳에서장사하세요.”라는말을남긴채돌아갔다.
---「태풍이지나간자리엔」중에서

대학시절한선배가자신의애인이흡연자였다는사실에충격을받았다고이야기했다.그자리에함께있던남자들은어이없고황당하다는표정으로그선배를위로했다.그들의손에는담배가쥐어져있었다.선배는여자친구가순수한줄알았다며,담배를꺼내는순간을상세하게묘사하면서자신이얼마나큰충격을받았는지재차설명했다.그의말에맞장구치던남자들은대화하다말고밖으로나가흡연을하고돌아오기를반복했다.
---「담배한개비의권력」중에서

돌아보건대나는늘거대한해일앞에있었고,그때마다조개를줍고있었다.여성이부차적존재로취급받는한나는앞으로도거대한해일을마주하며조개를줍겠다.아니사실해일은여성이고조개를줍는것은남성일지도모른다.없던길을만들며나아가는여성들이거대한해일의모습을하고있으니말이다.
---「해일앞에조개를줍는것은너희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