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상옥

독립운동가 김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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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진정한 용기와 사랑을 가진 사람”

김상옥 의사는 어린 나이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해야 했지만, 끊임없이 공부하고자 했고, 열심히 힘든 일을 했어요. 그런 가운데 누군가는 꼭 해야 하나 아무도 할 사람이 없는 일을 나서 했어요. 우리는 그런 분들을 위인이라 불러요.

김상옥 의사는 위인이었어요.

해야 할 일을 보고 선뜻 나서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 일이 어렵거나 위험할 때, 특히 자기 이익과 관련 없는 일일 때 더욱 그러하지요. 그럴 때 나서서 하는 사람이 지도자이지요. 진정한 용기와 사랑을 가진 사람 말이에요. 김상옥 의사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김상옥은 어린 나이에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사업가로 성장하는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보여 주었어요. 3·1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어요. 혁신공보를 만들어 민족의식 높이고 종로경찰서를 폭파하고, 10일간 1대1000으로 일본군경과 서울시가전을 벌이고 최후에는 자결합니다. 3·1운동 이후 실망감에 빠져 있던 한국 사람들은 독립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김상옥 의사는 ‘동대문 홍길동’, ‘경성피스톨’ 이라 불리며 온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독립 영웅’이예요.
저자

이정은

서울대및서울대대학원문학박사
(사)대한민국역사문화윈원장
(사)3ㆍ1운동기념사업회회장
전,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수석연구원
《유관순-불꽃같은삶,영원한빛》(2004)
《김상옥평전》(2014)등책과논문을다수저술함

목차

1.동대문근처에서있었던일
2.소년노동자
3.밤에공부하는학교
4.미국유학의꿈과영어공부
5.기독교서점운영과권서일
6.영덕철물점창업
7.3.1운동의함성
8.비밀독립단체혁신단과혁신공보
9.암살단우두머리
10.미국의원단의한국방문을맞춘비밀계획
11.탈출
12.상하이
13.장례치를관대신권총을
14.종로경찰서폭파-10일간의시가전시작
15.삼판통의포위망탈출
16.효제동1:1000의대결과최후

출판사 서평

독립운동가김상옥은어린시절대장간에서일하며야간학교를다니며꿈을이루기위해공부한다.야간학교가문을닫았을때야학을만들고일하는청소년들에게배움의기회를주며자신도공부를하였다.

유학의꿈을갖고영어공부를하고,기독교서점운영과전국을다니며권서일을하여모은돈으로동대문에형제들과동대문에‘영덕철물점’을열고,50명의직원을두는큰제조업회사로성장하며사업가로성공한다.3·1운동이후본격적으로독립운동에투신한다.

비밀독립단체‘혁신단’조직‘혁신공보’를발행하여민족의식고취및독립사상계몽에전념하다일경(日警)에잡혀종로경찰서에서40여일간고초를당한다.

‘혁신단’을중심으로‘암살단’을조직하고,미국의원단내한에맞추어대대적인일제고관처단,기관파괴거사를추진하다당일오전예비검속으로탄로나실패하고2달간경성에서은신하다10월말만주로망명한다.

 상해에서임정요인들과독립운동에대한많은논의를하며,국내로들어와모은독립자금을임시정부로가져갔다.상하이대한민국임시정부는3·1운동이후모여들었던독립운동지도자들이거의떠나고어려움에빠져있을때김상옥의사는대한민국임시정부를중심으로단결해야한다고생각하며임시정부를공격하는사람들로부터임시정부를지키고자하였다.

1922년임정요인들과총독주살및‘총독부폭파’거사협의후12월초서울에잠입.암살단동지를재규합하고독립운동탄압본거지인종로경찰서폭파,조선총독부와경찰을놀라게한다.서울시내에비상경계망을펼쳤으나범인을찾을수가없었다.

일본의회에참석차동경(東京)에가는사이토총독을서울역에서처단코자은신중1월17일은신처에일본형사대21명이기습,총격전에서4명처단,일본군경1,000여명이포위한대설쌓인남산을종단탈출,왕십리안정사에서승복을빌려변장하고,짚신을거꾸로신고시내잠입한다.

1월22일효제동생가(72번지)옆이혜수동지댁(73번지)에은신,동상치료중적(敵)군경1,000여명이삼엄한경계속4중포위하자2정의권총을양손에쥐고,생가주변다섯집(효제동72,73,74,75,76-2번지)을넘나들며3시간여혈전끝에적16여명이상처단,마지막남은1탄으로자결순국(34세)한다.


일제강점기암울했던시기에김상옥의사가펼친독립운동은국민들에게희망을보여주며우리민족의애국애족의정신을고취시키는데앞장선위인이다.김상옥의사의숭고한희생정신과용맹은온국민들과어린이들에게큰교훈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