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그러고보면지난계엄사태는글자형태와정치의관계를여러모로생각해볼기회였다.예컨대윤석열이지지자들에게'보낸'손편지들이있다(실제로는손편지사진을자신의페이스북계정에올린것이었다).물의를일으킨연예인이사과문을자필로쓰지않고워드로작성해발표한일을힐난하는여론을보면서손글씨가고생이많다고생각했는데,이제내란에실패해감옥에갇힌전직국가원수가붓글씨나혈서도아니고고작A4몇장에휘갈겨쓴편지를사진으로찍어소셜미디어로배포하는시대가왔다.그런데손글씨가진심을전한다는믿음은어디에서온것일까?설마손편지는워드에서작성한문서에비해준비하는데정성이필요하니,그렇게수고를들여전하는메시지는진심일수밖에없다는믿음일까?그렇다면훨씬더많은정성이필요할발편지를시도해보면어떨까?
최성민,「“진심을전하고자제손글씨체로인사를드리오니”」,130쪽
우리는이번프로젝트에서'분열에반대하는선언'을'분열을재생산하지않는디자인'으로실현할수있을지를실험해보고싶었다.디자인은종종어떤견해를강화하는도구가되지만,동시에갈등을중재하거나서로다른견해사이의공간을가시화할수있는언어이기도하다.디자인이그사이를지날가능성을시험해보고싶었다.그균형을지키는건어렵지만,어렵기에해야할작업이라고생각했다.
누군가는“이제정치도콘텐츠로소비되는시대가되었다.”라고말했다.하지만우리는여전히포스터한장을만들때마다그종이안에담긴현실의무게를느낀다.디자인이그런시대에서도윤리의언어로기능할수있기를바랐다.그러기위해서는먼저,어떤언어가분열을촉발하는가부터스스로에게질문해야했다.
심우진(+권준호),「《시대정신》프로젝트되돌아보기,우린어디로흘러가는가」,141-142쪽
타이포그래피는단지예쁜디자인을위한도구가아닙니다.브랜드가어떤톤앤드매너로존재하는지를유지하게해주는핵심적인언어이자아이덴티티의한축입니다.그래서많은브랜드가'브랜드전용글자체'를개발하거나글자체의종류와크기,자간과행간,텍스트배치까지세세하게규정한타이포그래피가이드를운영합니다.브랜드가어디에노출되든,누구의손을거치든,그브랜드다운모습을잃지않게하기위해서입니다.
전우성,「브랜드를인식하게하는또하나의요소,타이포그래피」,152쪽
글자체디자인권제도가도입된지20년이지난지금,이제도가실제로창작자와산업에어떤영향을미쳐왔는지되짚어볼필요가있다.디자인권은본질적으로강력한독점배타적권리를부여하는제도이지만,산업현장에서실질적으로작동하기위해서는창작자,권리자,실시권자간의관계설정과함께라이선스체계도정비되어야한다.
서유경,「글자체디자인보호20주년의여정」,195쪽
JP:저는디지털타이포그래피와디지털디자인자체가본질적으로정밀하지않다고생각해요.어떤크기의화면을위한디자인인지,그디자인이화면크기에따라어떻게반응할지알수없잖아요.저에게피그마에서일하는건,뭔가를마무리짓는다기보다는아이디어를구상하고스케치하는작업에가깝습니다.
CH:맞아요,타당합니다.화면이라는매체를위한디자인이갖는한계만큼이나,피그마같은툴로실제구축할수있는것에도분명한계가있다고생각해요.이툴은온라인기반이고협업중심이다보니,또는새로운방식을도입했을때발생하는다운스트림효과들때문에겉보기보다훨씬복잡해질수있거든요.다른제품의기능을피그마에도추가하면되지않을까싶지만,실제로는그렇게단순하지않은경우가많아요.
크리스하마모토,요한프라그,「피그마,디지털타이포그래피」,206쪽
본박사연구는탕구트(서하)제국(1038-1227년)에서사용되다가사라진문자체계인탕구트문자에초점을맞춘다.탕구트문자는언어학자와역사학자들에의해잘문서화되고연구되어왔지만,글자체디자인연구에서는거의주목받지못했다.본프로젝트는탕구트문자의역사적형태를기반으로현대적용도에맞게변형된디지털글자체를개발함으로써이연구의공백을메우는것을목표로한다.또한이과정을체계적으로문서화해,다른문자체계의유사한복원작업을지원할수있는하나의프레임워크를제안한다.
시청양,「탕구트문자의재해석:소멸한문자체계를위한디지털글자체디자인의새로운패러다임」,213쪽
연구소는'탈네모틀'구조를단순한시대적조형양식이나실험적유행으로간주하지않는다.탈네모틀은오늘날의디지털타이포그래피환경안에서충분히유효하게작동할수있는조형시스템이며,이는창작자와사용자모두에게다양한표현가능성을제공하는기반이될수있다.따라서연구소는탈네모틀을각기다른문화와창작자의시각언어에따라유연하게변주될수있는열린디자인플랫폼으로바라보고,이를바탕으로다양한실험을꾸준히이어간다.
김주경,「탈네모틀한글의가능성탐구와조형적실천」,230쪽
의도적으로책의물리적경험을우선시한결과,바니시타이포그래피는디지털환경에서다소낯선방식으로마주했습니다.바니시는투명하고반사되는재질이다보니우리가사용하는디자인소프트웨어에서는실제와전혀다르게보였습니다.1년가까이화면에서반투명한크림색사각형만계속들여다봤죠(웃음).디지털PDF초안을만들어기고자들과공유했을때는,명확한제목이없어당황스러워한분들도있었어요.한분은제목페이지가빠진채로원고를보낸줄알았다고하시더라고요(웃음).이는의도치않게편집주제의반향을불러일으켰습니다.물리적제작처리에우선순위를두면서일종의디지털'위장'을만들었습니다.이런여러하이브리드한경험을거치며타이포그래피가의도와기술,그리고물성적처리를통해어떻게의미를전달할수있는지새삼실감하게됐습니다.
캣웬트워스,마이크털리,「『퍼스펙타56:낫파운드』」,249쪽
핸드폰을통한읽기는어쩔수없는차선책이아니라,문학을향유하는유효하고효과적인방식으로이해된다.문고본처럼핸드폰은손에쥘수있고,주머니에넣어다닐수있으며,독자들이하루중틈틈이콘텐츠와만날수있게해준다.『지금우리는누구인가?』는사람들이일상에서책을읽는방식에주목하며,그흐름을해치지않도록가독성,단순함,매끄러운읽기를중심에두고디자인되었다.
이책은생물학,생태학,섹슈얼리티,역사,문화가어떻게얽혀들며'우리'라는개념―자연적이라고도인공적이라고도단정할수없는,유동적이고끊임없이변화하는사회적정체성―을형성하게되었는지를탐구한다.책의중심에는저자가2016년부터2021년사이에미국전역의수천명의익명응답자들을대상으로실시한일련의설문조사가있다.이설문은이들의행동과정체성,특히젠더와성적정체성과관련된경험에관해질문한다.
김민경,제임스고긴,「평행출판:하나의책,여러개의형태」,255-256쪽
2024년발표한「편산」은「산유화」와「산작」에서시도한낱글자의구조탐구에이어,새로운배열질서를고찰한결과이다.…「편산」을통해김태룡은(사용자는알아차리지도못할)보이지않는격자의리듬을체계화해,엄격함과자유로움사이의긴장감을한글조판에부여할수있는새로운질서를제안한다.
이것은외래의문자를한글의세계관속에통합해,한글의관점에서새롭게그리고배열해보려는시도이기도하다.그동안한글과조화를이루는문장부호,아라비아숫자,라틴알파벳의조형과너비를찾는연구가없었던것은아니지만,이처럼한글고유의리듬감에맞춰통합적으로글자의너비를통제하는과격한시도는없었다는점에서「편산」이지향하는바는더욱흥미롭게다가온다.
석재원,「새로움을위한체계화,한글글자체디자이너김태룡개인전《편산》」,2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