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와 역사 : 데리다 철학에 대한 하나의 입문 - 필로버스 총서 2

데리다와 역사 : 데리다 철학에 대한 하나의 입문 - 필로버스 총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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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민호

저자:김민호

서울대학교법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교철학과에서데카르트의『정념론』에관한논문으로석사학위를받았다.파리8대학산하철학의현대적논리연구소에서샤를라몽의지도아래그라마톨로지이전부터유령론너머까지이어지는데리다사유의전개를주제로박사논문을썼다.「데리다의시원적사유로서의『발생의문제』」,「리듬게임,가장빈곤해서가장자유로운」,「긍정부재신학으로서의자크데리다의철학」,『이야기꾼과놀이꾼』(2023,공저)등을썼고,『비밀의취향』(2022),『우편엽서』(공역,근간)를옮겼다

목차

프롤로그7

1강해체,자연학과형이상학사이에서15

데리다와역사?19
인사라는문제:우연과필연25
역사화:우연과필연의사이35
해체의자리혹은역사의자리40
기호의자의성에관한학”으로서의그라마톨로지43

2강원에크리튀르:역사쓰기의원폭력47

‘두죽음사이의생’으로서의역사52
역사‘쓰기’의원폭력:생에서다시죽음으로58
폭력의경제로서의역사62
역사적인식?75
사례의이중구속79

3강“텍스트-바깥은없다”혹은역사-바깥은없다87

그라마톨로지에대한언어학적오해91
그라마톨로지에대한그라마톨로지적해석110
“사물자체가하나의기호다”117

에필로그123
데리다의삶에대한짧은소묘140

출판사 서평

20세기가장빛나는철학자이자가장난해한철학자,자크데리다
데리다철학은역사를다르게사유하기위한것이었다!

해체,역사를다르게사유하기

자크데리다(1930~2004)는20세기가장빛나는철학자이자가장난해한철학자로유명하다.그의철학이난해하다는것은그만큼많이오해되어왔다는의미이기도하다.푸코를비롯한많은학자들이데리다철학은실제의삶,인물,역사를간과한다고평가했다.데리다의사유전체가언어로부터탈출할수없다는이야기라고,데리다는상대주의적이고회의주의적인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주장하는학자도있다.
데리다를이런시선으로보면이책의제목이기도한‘데리다와역사’의조합은어울리지않아보인다.그러나이책의저자김민호선생은데리다의‘해체’개념은근본적으로또다른역사성을사고하는문제였으며“데리다의이념적이고철학적인여정은역사성의곁에서개시”되었다고말한다.세간의오해와달리데리다사상에서역사개념이중요한위치를차지하고있다는얘기다.
이책『데리다와역사:데리다철학에대한하나의입문』은데리다의사상에서역사가얼마나중요한위치를차지하고있는지,데리다의주요개념들이역사,역사성과얼마나밀접하게관련되어있는지살펴본다.데리다의역사에대한이해를따라가다보면,그의철학이향하는지점이보이게될것이다.
그렇다면데리다에게역사란무엇일까.저자에따르면,데리다는‘역사철학’이존재하는곳에‘역사’는없다고단언한다.

“데리다자신의표현을빌리자면“존재-신학-시원-목적론”의시간속에서역사는,즉생은고유하고독특한펼쳐짐을망실하고앞선현재들의한낱필연적산물이되어버린다.그러나모든것이이미정해진생,목적지가정해진생은더이상살가치가없는것처럼보이지않는가?”
(김민호,『데리다와역사』,9쪽)

데리다는역사철학처럼역사에필연적인목적이있다는“존재-신학-시원-목적론”의역사성을비판한다.모든것이필연적인곳에서는의미가생겨날수없다.데리다는역사철학이생을무의미한상태로만든다고보았다.역사가필연적인목적지를향해간다면“생은더이상살가치가없는것처럼”보이기때문이다.그러면생은그저정해진목적지로가기위한도구로전락해버리고이런이념적필연성은물질적필연성만큼생의고유한풍요로움을거세한다.

저자에따르면데리다는이런무의미의압도적폭력에맞서서의미를확보하기위해노력한철학자이다.의미는그렇지않을가능성과부재를경유해야만,또우연성과우발성을승인해야만도출될수있다.
데리다는우연성과필연성이교차하면서사건이만들어지고역사가생산된다고보았다.저자는데리다에게“역사를살아간다는것은나에게주어진우발적인기회를필연적인리듬속에서소화”하는것이었다고말한다.역사는무질서한사태(우연)에질서(필연)를만드는일,기호를통해의미를재단하고포획하고절취하는액자화의운동으로이루어지는것이다.
역사는액자화의운동이고,액자화에따라동일한사태도다르게이해될수있다.데리다는역사는단선적계열로쉽게결정되고정리될수없기때문에역사다워진다고보았다.
기호는의미를적재하고있는물질이지만,기호와의미사이에어떤필연적인관계도없다.기호가그자체로우발성을체현하는최소형태인것이다.
흔히우리는언어가무의미를진리로만들어준다고말한다.그러나또한편으로언어는의미를유실할위험,무의미에내맡겨질위험에처해있다.이책의저자는언어의역사가무의미와진리라는두죽음사이에있다고,물질적인필연성과이념적인필연성양자모두와거리를두고특정한우발성을적극적으로긍정하고소화하려는노력속에역사와생과우리사유의운동이있다고말한다.

에크리튀르의원폭력
역사쓰기를통해비로소생성되는역사

기본적으로선사와역사를가르는기준점인에크리튀르는기록하고기호화한다는것입니다.그런데기호signe란무엇이죠?기의가적재된기표,의미가적재된기호,이념이적재된물질입니다.그렇다면기호작용signification은무엇일까요?이것은기호라는개념의두축,즉이념과물질중어느한쪽으로의환원을거부하고그사이에서머무는작용이됩니다.이사이가곧의미signification의장이고역사의장이자삶의장이라는이야기를저번에말씀드렸죠.
(김민호,『데리다와역사』,56쪽)

기록,문자,글쓰기를뜻하는에크리튀르는데리다에게역사와철학의가능조건이다.기록은기호화이다.기호화는인용가능하고반복가능한의미의단위를재단하고절취하는것을의미한다.저자는“기호화가반복가능한단위의생산이라는사실을이해하는것은역사를쓰는행위가근원적인폭력이라는사실을이해하는데꼭필요하다”고말한다.
데리다가보기에차이와반복의체계속에대상을집어넣는“원에크리튀르의제스처”는고유성에대한위협이자폭력이며,이는다른모든종류의폭력에앞서는폭력이다.고유하려면모든차이와무관해야하고반복불가능해야하는데,기호의의미는차이의망속에서의미를가지고,반복가능한것으로서인지되어야하기때문이다.
그러나데리다는고유성을고유한채로내버려둘수는없다고생각했다.기호화되고기록되는한에서만역사가되고,그래야만우리가역사를역사로서살아갈수있기때문이다.역사쓰기는근원적으로폭력적이지만,우린그폭력바깥으로나갈수없는것이다.
요컨대선택,선별,여과를포함한모든규정은폭력이지만,우리는규정하지않을수없다.우리는무엇을선별하고규정함으로써만의미를생산할수있기때문이다.그것이데리다가무의미와허무주의에맞서는방법이었다.

그렇다면역사가되는특별한사건이따로있는것인가.데리다가보기에처음부터원본적인사건으로주어지는사태는없다.의미있는사건이먼저있는게아니라는말이다.데리다는기록되고전승되는반복가능성속에서비로소의미가생성된다고보았다.그런데무언가가기록된다는것은기록되지않는것이있다는의미이기도하다.그래서무언가를배제하고,죽이고,누락하면서역사로서액자화되어야만의미가만들어지고되새길만한무엇이되는것이다.그러므로어떤사건이사건인지아닌지는사건의시점에서즉시결정될수없다.이런결정불가능성이우리가무언가를사건으로생산할수있게끔허락한다.
또기록의가능성은늘그기록을하는사람의부재가능성,사멸가능성을전제하는것이기도하다.기호와서명은서명자가부재해도여전히기호로서기능할수있어야하고,그기호가가리키는대상이부재하더라도여전히이해될수있어야한다.
그러므로역사와생은이념적인죽음과물질적인죽음에저항하는것,양자로의환원에저항하는것이다.즉역사와생은“두죽음모두를미루는운동,차연시키는운동”이다.마찬가지로텍스트도실재적인대상을지시하는활동으로환원되지않고,이념적인대상을전사하는활동으로도환원되지않는다.텍스트는그사이에서길을낸다.

“텍스트-바깥은없다”혹은역사-바깥은없다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ie’란‘그라메gramme’,즉서기소,문자,기록,에크리튀르에관한학문을의미한다.저자에따르면그라마톨로지는일개언어학이아니다.데리다의그라마톨로지는“기호의자의성에관한학”이고“흔적의비동기성에관한학”이다.
그라마톨로지를언어학으로환원하는독해때문에데리다의“텍스트-바깥은없다”라는테제는“언어-바깥은없다”로오해받아왔다.그러나데리다는모든것이언어안에유폐되어있다고말한적이없다.

여기에“텍스트-바깥은없다”라는악명높은테제의한가지의미가있습니다.텍스트의운동,기호의운동을관장하고규제하는초월적인심급,“바깥”은존재하지않는다는것이죠.한편으로는초월적인기의,의미,이념도없고,다른한편으로는초월적인기표도없습니다.나아가기호의운동은기호를발신한서명자signataire의의지로도통제되지않고그것을통해서가리켜지는지시체로도환원되지않죠.기호의운동을영구적으로정박시키는그런“바깥”은없다는것입니다.그어떤“바깥”으로도환원되지않고정박되지않는기호고유의운동이있고,거기에역사가있고우리의생이있습니다.
(김민호,『데리다와역사』,56~57쪽)

저자의말처럼데리다의“텍스트-바깥은없다”는실제적인역사를무시하고텍스트적인유희에집착하는말이아니다.그것은텍스트바깥에의미가따로있어서텍스트에의해재현,모사,반복되는것이아니라텍스트가의미의유일한거처라는말이다.이는역사를쓰는것은텍스트를직조하는것이고이역사를다스리는초월적심급은없다는말이기도하다.그러므로이책의저자는“텍스트-바깥은없다”는“역사-바깥은없다”라는말로이해해야한다고말한다.
데리다에게말,기호,텍스트에담긴주권적주관은없다.이는텍스트는자의적인절취,인용,반복의가능성속에있고,의미의변질가능성이나유실가능성의위험에서자유로울수없다는뜻이다.의미는변질되고유실될수있기때문에개별주관의자의적인해석도때때로가능해지는것이다.이는역사에어떤필연성도없다는얘기다.역사는변전하고생성되는것이다.이것이데리다가말하고싶은새로운역사성의의미다.

데리다는우발성,우연성,무상성이야말로절대적이라고보았다.그런데리다의사유를허무주의라고공격하는것은어불성설이다.데리다는존재의이유,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은오히려존재자체가아니라존재의부재가능성에의해존립한다고보았던것이다.즉의미는이러저러하게있는무언가가이러저러하지않을수도있다는가능성,아무것도존재하지않을수도있다는가능성으로부터,요컨대무상성으로부터피어나는것이다.
“텍스트-바깥”은없기때문에,즉텍스트의전개를미리규정하고보장하는의미,목적,텔로스같은것은존재하지않기때문에우리는이무의미한것들한가운데에서의미를생산해낼수있는것이다.
저자의말처럼텍스트-바깥이애초부터없다면우리에게는무상하고무의미한이세계를진지하게살아내는것외에다른선택지가없다.다른바깥이없기때문이다.“역사는이무상한세계를약간덜무상하게만드는일이되고,근본적으로나사빠진이무논리한세계에서약간의논리를찾는일이”된다.
이렇듯데리다에게역사는생을조금더풍요롭게만들기위한수단이었다.그것이데리다가역사를강조한이유이고,『데리다와역사』를읽어야할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