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공립도서관선정1999년기념비적책
★퍼블리셔스위클리“1999년최고의책”
★2003년미국소도미법폐지판결에서인용
★2018년인도대법원의동성애비범죄화판결에서인용
★2020년스톤월북어워드논픽션부문최종노미네이트
지구생명체의성적정체성에관한웅장하고파격적인집대성
동성애를바라보는생물학의시선을통해,
섹슈얼리티의이데올로기를해체하고오롯이논증과해석으로맞선과학의힘
“우리의한계는,보는대상이아니라우리의시야다.”
브루스배게밀의문제작『생물학적풍요BiologicalExuberance』(1999)의번역서가국내에서출간되었다.캐나다출신의생물학자이자언어학자인배게밀이200여년에걸친동물성애에대한과학적분석을집적한이책은동물동성애연구의분수령이되었을만큼가히방대하고논쟁적이다.이책에는20세기후반까지과학적으로문서화한450여종의동물동성애사례중190여종의포유류및조류사례와파충류,양서류,어류,곤충,거미및가축동물의동성애목록이사진·삽화와함께종합적으로정리되어있다.동물섹슈얼리티에대한최초의백과사전혹은동물지라해도과언이아니다.동성애와양성애,트랜스젠더를포괄한동물의다양한섹슈얼리티에대한배게밀의분석은그범위와깊이에서봤을때압도적이고웅장하다.
그런데배게밀의이런방대한작업은차후연구를위한출처로기능하는것에그치지않는다.동물동성애에대한과학적연구역사는동시에동성애를보는인간관점의역사와궤를같이하기때문에논의는동성애,양성애,트랜스젠더에대한과학의해석문제로옮겨간다.그는1700년대부터2~3세기에걸쳐동물학과생물학에서이루어진동물동성애에관한연구를고찰하면서그들의논증방식,즉잘못된전제,가정,유추,일반화의문제를드러낸다.이는객관성의최전선에있다고여겨지는과학계에서조차암묵적으로통용되고있던이데올로기를직시하게만든다.흥미로운것은생물학자마이클짐머만의평가처럼,그런이데올로기에도전하는배게밀의대응방식에있다.그는자신의분석자료를동성애의수용을주장하는정치적문장으로바꾸지않고과학적기록이스스로말하는방식을택했다.‘옳고그름’의문제를‘맞고틀림’의문제로환치하는배게밀의시도속에서이데올로기를해체하는과학의힘을느낄수있다.
동물세계에대한인간의자기투사:이성애와번식중심주의
“기이한(queer)동물의삶은우리가상상했던것보다훨씬더다양하다.”
그간동물학과생물학계를지배한이데올로기는‘동물세계에대한인간의자기투사’라고표현할수있다.동성애,양성애,트랜스젠더를포괄한동물의다양한섹슈얼리티를인간이가지고있는신념과감정,바람을담아해석한것이다.이성애와번식중심주의로대표되는인간의자기투사는동성애를이성애로추정하기,동성애활동에대한용어상의부인,부적절하거나일관성없는적용,정보의누락이나억압등의형태로나타난다.같은성동물사이의마운팅이나기타성적인활동을이성애를보조하거나대체하는활동쯤으로보거나잘못된성식별이나병에의해발생하는오류로치부하는시선속에는동성애에대한혐오가짙게서려있다.
배게밀은방대한현장연구자료를통해이런시선의문제를폭로한다.포유류-영장류,해양포유류,유제류,유대류,설치류등-와조류에서나타나는동성애,양성애,트랜스젠더,비번식적성적행동의수많은사례를잘못된해석을반박하기위해일일이열거할뿐만아니라(제1부)해당종에속하는개별동물들의섹슈얼리티프로파일까지별도로정리해제시한다(제2부).그가열거한동물의성활동은이성애와동성애라는구분을무색하게할만큼다양하고,일관되게적용할범주가없을만큼혼잡하다.개체의삶,다양한공동체,다른종간,시간의순서등에따라무한히다양한형태로표현되는것이다.배게밀이보기에그간의생물학의무지는동성애,양성애,트랜스젠더,비번식적인성활동등으로나타나는동물의다양한섹슈얼리티를오직생식生殖에기반해서만설명하려는외골수적인시도에서비롯한다.기실이런시도는지금도여전히계속되고있다.배게밀도인용하고있는존홀데인의말처럼“자연계가우리가아는것보다더기이하다면,‘기이한queer’동물의삶은우리가상상했던것보다훨씬더다양하다”는사실도받아들여야할것이다.
획일적인종간비교로점철된허위논쟁
자연을해석하는인간이아닌자연자체로눈을돌려야한다
동물동성애를둘러싼논쟁은흔히다음과같은양극화된주장으로귀결되곤한다.“동물에게는동성애가없다.따라서인간동성애는비정상적인것이다”,“동물에게서동성애가나타나는것으로보아동성애는자연스러운것이다.따라서인간의동성애도자연스러운것으로받아들여야한다”.이논쟁에서쟁점은두가지로수렴한다.첫번째는동물세계에동성애가있는가,두번째는동물세계와인간사회를등치할수있는가.배게밀은이두가지주장모두지나치게단순한논리도식에빠져있다고지적한다.동물이곧자연이고,자연에서일어나는일이면인간에게도인정되어야한다는논리.오직동물동성애의발생유무만따지게된다.따라서관찰된혹은보고된현상에대해한쪽에서는정보누락이나편향된해석으로,다른한쪽에서는무차별적인수용과성급한일반화로각자의주장을뒷받침한다.흡사그리스신화의프로크루스테스처럼나그네의몸을침대길이에맞춰자르거나늘리는격이다.
배게밀은우선동성애의의미를섹스에한정하지않고,구애,애정,짝결합,육아를포괄하는넓은의미로확장한다.이활동들은상호배타적이지않고부지불식간에섞이지만,동물세계에서일어나는동성애의다양한양태를이해할수있게해준다.동시에그는동물동성애를의사소통,도구제작및사용,금기,의례등과관련해살피면서동물고유의문화형성을결코배제해서는안된다고밝힌다.동물역시그들만의고유한문화를가지며,동물동성애는생물학적인차원과문화적인차원이결합해수많은형태와변형,독특함을보여준다.동물섹슈얼리티는연속적이면서넓은스펙트럼을가지는것이다.
동물동성애를둘러싼양극화된논쟁에서드러나듯많은이들은동물행동을기반으로인간동성애의결론(긍·부정)에도달하려는강한유혹을느낀다.이에대해배게밀은동물과인간모두에서동성애표현의전적인복잡성과풍부함을고려하지않으면,동성애라는현상의본질적성격과맥락,종간비교의의미등을총체적으로파악할수없다고지적한다.‘동성애가자연스러운가?동성애가정상적인가?’라는물음은인간의주관적잣대로좌지우지되는소모적인논쟁에불과하다.배게밀의말처럼이제는자연을해석하는우리의눈이아니라연구대상인자연자체로눈을돌려야할때이다.
자연의비선형적복잡성을이해하는새로운패러다임:생물학적풍요
토착문화와현대사상의교차점에서생물의다양한섹슈얼리티를바라본다
그렇다면인간의주관적잣대를벗어나자연을연구하는방법은과연무엇일까?배게밀은200년넘게서구과학계를지배한강력한이데올로기를해독할방법을모색한다.그는이런모색이새로운이론이나설명으로기존이론을대체하거나보완하는일이아님을분명히한다.오히려이런탐색은우리가이해했다고생각하는것에대한근본적인관점의변화이자자연을바라보는새로운세계관에가깝다.그의말을인용하면,기존의지식에새로운사실을추가하는것이아니라기존사실에새로운지식패턴을추가하는일이다.
배게밀은흥미롭게도그간과학계에서비과학적이라고터부시한토착문화에주목한다.북미원주민,뉴기니와멜라네시아부족,시베리아와북극원주민문화에서공통적으로드러난동물동성애와트랜스젠더에대한인식은현대의과학적관찰과매우흡사하고그에부합하는성격을띤다.물론그들문화에서려있는환상적이고신화적인믿음을그대로수용할수는없지만,다多성애적·다多성별적자연세계를있는그대로받아들이는그들의포용적인시각에서자연을연구하는새로운패러다임을읽어낼수있다.배게밀이포스트다윈주의진화론,카오스이론,생물다양성연구와같은현대과학과조르주바타유의일반경제이론을융합하는것도바로이지점에서다.토착문화와현대사상의교차점에서보면비선형적이고예측불가능한자연현상,파괴적이거나비생산적인사건,일관성이없거나직관에반하는무수한변형,마치낭비처럼보이는과다한삶의양태등은진화나물리법칙,역사의진보와같은더큰힘의결과나부산물이아니다.그자체가부조화한전체를이루는구성요소며,자연계의과도한낭비와풍요는다른모든현상들이흐르는생명의원천이자본질이다.
“궁극적으로생물학적풍요로대표되는과학적견해의종합은우리를완전히한바퀴돌려놓는다.이러한관점은이분법적인반대를해소하고이원론을통합하는동시에다름을소중히여긴다.그리고양립할수없어보이는모순적인현상의공존을인식하면서역설을수용한다…원초적이면서도동시에미래적인이세계관에서성별은만화경처럼다채롭고,성애는다양하며,남성과여성의범주는유동적이고변화할수있다.한마디로우리가사는바로그세상이다.”
(‘I부제6장4절.현실세계의장엄한과잉’중에서)
패러다임의변화는진통과충격을수반할수밖에없다.우리가이전에얼마나많은거짓과편견을고수했는가를깨닫는것도고통스럽지만,우리앞에너무나많은진실과비밀이존재한다는사실을받아들이는것도버겁다.브루스배게밀의말처럼그의『생물학적풍요』는동물섹슈얼리티에관한최종적이고결정적인선언이아니다.그가용감하게연서막이어떻게전개되어어떤결말을맞을지는진통과충격을이겨내는우리의손에달려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