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우리는사랑과욕망을찾아걸어나간다.교훈이라거나,이른바위대함이요구되는쓰라린철학을구하고자하는것이아니다.태양,입맞춤,야생의향,이이외의모든것들이헛되게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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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향기와태양의소용돌이에서빠져나와이제는선선해진저녁공기속에서,정신은차분해졌고이완된몸은충족된사랑에서비롯된내면의침묵을음미하고있었다.나는벤치에앉았고,저물어가는해와함께둥글게사그라드는들판을바라보았다.나는충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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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기이한기쁨이밀려들었다.고요한정신에서비롯되는바로그기쁨이.(……)나는내배역을훌륭히수행했다.인간이라는내직업을완수했다.내게는하루온종일기쁨을누린것이특별한성취라기보다는,어떤경우엔행복해야할의무가부과된우리인간조건의감동적인완수로여겨졌다.이후엔고독이찾아들었으나,이번엔만족감속의고독이었다.
---p.26
잠시후압생트풀밭에몸을던져그향이몸에배게할때,나는모든편견에맞서진리를실현하고있음을깨닫게되리라.그진리는태양의진리이고,또한내죽음의진리일것이다.어떤의미로는내가지금내거는건다름아닌내삶이다.뜨거운돌의맛이나는삶,바다의숨결과지금울기시작하는매미들로가득한삶.
---p.23
꽃,미소,욕망,여자들을떠올리며,죽음에대한내모든공포가삶에대한질투에서비롯되었음을깨닫는다.나는내가죽은뒤에살아있을사람들을,꽃과여인에대한욕망을그들의살과피로감각할사람들을질투한다.
나는이기주의자가되지않기에는삶을너무사랑하기에시샘하는것이다.
내게영원따위가무슨소용인가.
---p.36
나는초인적인행복이란없고,하루의흐름이외에영원한건없음을깨닫는다.부질없으나핵심적인이행복,이상대적진실만이오직나를감동시킨다.
그밖의것들,그러니까‘이상적인것들’을이해하기엔내영혼으로역부족이다.바보처럼굴어야해서가아니라천사들의행복에서의미를찾지못하기때문이다.나는오직이하늘이나보다더오래지속되리라는것만을안다.내가죽은뒤에도계속되는것,그것이아니라면대체무엇을영원이라부르겠는가?
---p.53
이미계절은흔들리고여름이기운다.숱한폭력과경직끝에,9월의첫비가내린다.마치며칠새이고장에부드러움이스며든듯,해방된대지의첫눈물같은비다.같은시기에캐롭나무가알제리전역에사랑의향기를퍼뜨린다.저녁이나비가내린뒤에,쌉싸름한아몬드향정액으로배를적신대지전체가여름내내태양에바쳤던몸을쉬게하고휴식한다.이제이냄새는다시인간과대지의결혼을축복하고,우리에게이세상에서진정으로생생한단하나의사랑을일깨운다.끝내는스러질것이나너그러운사랑을.
---p.55
깊이사랑하는여인의매력을항목별로조목조목읊을수있겠는가?그럴수없다,그냥전체를사랑하는것이다.굳이감행한다면,특유의입술을삐죽거린다든지고개를설설거리는식의사람마음을녹이는한두가지구체적인보기를들수는있겠다.
---p.133
‘나는나의시대를증오한다.’죽기직전생텍쥐페리는,내가이야기한것과별반다르지않은이유로이렇게썼다.그러나이외침이아무리인상적이더라도,인간을경탄스러운존재들로여기고사랑했던그의입에서나온것이기에,우리는그외침을받아들이기어렵다.그럼에도어느때는이음울하고삭막한세상에등돌리고싶은유혹이어찌나강렬한지!하지만이시대는우리의것이고,우리는자신을증오하며살수없다.
---p.147
세계의부조리는어디에있는가?이찬란한햇빛인가,아니면햇빛이없던날의추억인가?그숱한햇빛의기억과함께나는어떻게무의미에기댈수있었을까?
---p.152
그모든세월동안나는막연히무언가가아쉬웠다.일단한번강렬한사랑을맛보면,또다시그격정과빛을찾느라인생을보내게된다.아름다움과자신에게주어졌던감각적행복을포기하고오직불행만섬기려면위대함이요구되겠지만,내겐그위대함이없다.
---p.166
그렇게나는오래도록방치하면존재가말라붙게될두가지갈증을해소했다.두가지갈증이란바로사랑하는것과찬탄하는것.사랑받지못하는것은그저불운일뿐이나,사랑하지않는것은불행이기때문이다.
---p.170
자정,해변에홀로있다.조금더기다린다.그리고떠날것이다.바로이시간,전세계에서불빛들로반짝이는저여객선들이항구에멈춰검은물을비추고있는것처럼,하늘자체도모든별들과함께멈춰있다.공간과침묵은똑같은무게로가슴을누른다.갑작스러운사랑,위대한작품,결정적인행동,빛나는사상은어느순간저항할수없는매혹과함께견딜수없는불안을안겨준다.존재의달콤한번민,우리가이름을모르는위험의감미로운임박,그렇다면사는것은파멸을향해달려가는것일까?다시한번,쉼없이,우리의파멸을향해달려가자.
---p.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