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하의 것들

보통 이하의 것들

$22.00
Description
시시하고 쓸데없고 하찮은 보통 이하의 삶.
너무 익숙하기에 주목 받지 못하는 사물들과 장소들.
한 남자가 빌랭 거리 24번지 앞에 서 있다. 남자의 이름은 조르주 페렉. 페렉은 남다른 실험 정신과 감수성, 독창적인 언어감각으로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빌랭 거리 24번지 앞을 서성였지만, 차마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아버지는 그가 네 살 때 2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했고, 어머니는 그가 여섯 살 때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생을 마감했다. 빌랭 거리 24번지는 부모님과 함께 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였음에도, 그 기억은 대부분 잊혀졌다는 것이 페렉에게는 큰 트라우마였다.

빌랭 거리는 파리 도시정비사업에 의해 철거가 결정되었기에 페렉의 어린 시절 집이었던 24번지 또한 몇 년 후에는 완전히 사라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마주하기 쉽지 않았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소들(Les Lieux)’이라 명명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빌랭 거리를 다시 찾았다. 페렉은 ‘장소들’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장소 열두 곳을 골라 약 12년간 기록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빌랭 거리’를 주기적으로 기록하는 건 당연히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그는 매달 열두 장소 중 두 곳을 골라 묘사한 다음, 해당 장소와 관련된 지하철 티켓, 영화관 티켓, 팸플릿 등을 원고와 함께 봉투에 넣어 봉인했다. 기억들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시간이기에, 친숙한 장소들과 사물들을 기록하는 행위는 시간의 횡포에 맞서는 것이라고 페렉은 믿고 있었다.

이번에 녹색광선에서 출간 예정인 조르주 페렉의 『보통 이하의 것들』에는 「빌랭 거리」 텍스트를 포함하여 서로 다른 스타일의 아홉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아홉 편의 텍스트 모두 평범한 것들을 다루는 ‘일상의 글쓰기’ 라는 테마를 조금씩 다른 양식으로 관통한다. 페렉이 살아 생전 시도했던 글쓰기 스타일이 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렉은 평소 자신을 네 개의 밭을 가는 농부라 일컬었다. 사회학적, 소설적, 유희적, 자전적 글쓰기가 그 네 개의 밭에서 나온 결실이라 할 수 있는데, 『보통 이하의 것들』에는 페렉이 이 네 가지 양식에 따라 쓴 '보통의 것들'에 관한 글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빌랭 거리나 보부르 구역 주변처럼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장소를 기록하기,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무실 묘사를 통해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풍자하기, 철저히 주관적으로 '좋아하는/싫어하는' 목록 작성하기, 런던을 여행하며 그곳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고 전파하기, 가상의 여행지를 수학 공식을 통해 배열하고 상상 속에서 세계를 떠도는 여행자가 되어 지인들에게 보내듯 엽서들을 작성하기 등과 같은 일상의 소재를 다룬 글들로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결코 독창성을 잃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출근하고, 먹고, 마시고, 산책하고, 여행을 떠나고, 좋아하는/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떨듯 페렉의 이 에세이들 또한 일상을 관통한다. 그러면서, 우리 주변을 둘러싼 ‘보통 이하의 것들’을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바라보게 만든다.

『인생사용법』, 『공간의 종류들』, 『어느 미술 애호가의 방』, 『겨울 여행/어제 여행』등 페렉의 주요 작품들을 번역한 국내 최고의 조르주 페렉 전문가 김호영 교수가 번역을 맡아 페렉의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이 전반적으로 담긴 『보통 이하의 것들』을 국내 독자에게 처음 선보이게 되었다.

시간의 힘이 때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도 기억도 장소도 모두 풍화되듯 변모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죽거나 사라지거나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어 버린다.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지만, 페렉이 보여준 ‘일상의 글쓰기’는 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작은 저항과도 같다. 『보통 이하의 것들』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자신만의 자서전에 실을 일상의 글쓰기를 한 번 쯤 시도해 보셨으면 한다.

저자

조르주페렉

저자:조르주페렉

1936년파리에서태어났다.부모님은1920년대에프랑스로이주한폴란드계유대인이었다.1940년이차대전에참전한아버지가전사한후1943년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어머니가목숨을잃자,고모에게입양되었다.소르본대학에서역사와사회학을공부하던시절,『라누벨르뷔프랑세즈』『파르티장』등의문학잡지에기사와비평을기고하면서글쓰기를시작했다.1959년군복무를마친뒤국립과학연구센터CNRS신경생리학자료조사원과파리생탕투안병원문헌조사원으로일하며글쓰기를병행했다.직업상다양한자료와방대한기록을다루어야했던이경험은그의작품세계전반에큰영향을미쳤다.1965년『사물들』로르노도상을받았다.1967년작가와화가,수학자등으로구성된실험문학모임울리포OuLiPo에가입하고,예술적창조의근간을형식제약에두는울리포의실험정신을수용해매작품마다새로운세계를구축해낸다.그중프랑스어에서가장자주쓰는모음e만빼고쓴소설『실종』(1969)과e만쓴『돌아온사람들』(1972)은‘언어’와‘기억’에천착한작가의특별한작품으로주목받았다.특히1978년메디치상을수상한『인생사용법』은10차직교그레코라틴제곱방진과체스행마법을도입해완성한명실상부한걸작으로손꼽힌다.이독특하고방대한작품으로전업작가의길로들어서지만,1982년45세의이른나이에기관지암으로생을마감했다.길지않은생애동안『잠자는남자』(1967),『어두운상점』(1973),『공간의종류들』(1974),『W혹은유년기의추억』(1975),『나는기억한다』(1978),『어느미술애호가의방』(1979),『생각하기/분류하기』(1985),『겨울여행』(1993)등다양한작품을남기며독자적인문학세계를구축한페렉은,오늘날20세기프랑스문학의실험정신을대표하는작가로꼽힌다.



역자:김호영

서강대학교를졸업하고프랑스파리8대학에서문학박사학위를,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에서영화학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한양대학교프랑스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지은책으로『시간은다른얼굴로되돌아온다』,『프레임의수사학』,『아무튼,로드무비』,『영화관을나오면다시시작되는영화가있다』,『영화이미지학』,『프랑스영화의이해』등이있고,옮긴책으로조르주페렉의『인생사용법』,『공간의종류들』,『겨울여행/어제여행』,『어느미술애호가의방』,발자크의『미지의걸작』,자크오몽의『영화속의얼굴』,장자크상페의『얼굴빨개지는아이』등다수의역서가있다.

목차

책머리에

보통이하의것들
무엇에다가갈것인가?
빌랭거리
생생한컬러엽서이백사십삼장
보부르주변여행
런던산책
지성소
천구백칠십사년한해동안내가먹어치운유동식과고형음식들의시험적목록
스틸라이프Stilllife/스타일리프Styleleaf

나는좋아한다,좋아하지않는다

해설
보통의삶,보통너머의글쓰기

조르주페렉연보

출판사 서평

페렉은평소자신을네개의밭을가는농부라일컬었다.사회학적,소설적,유희적,자전적글쓰기가그네개의밭에서나온결실이라할수있는데,『보통이하의것들』에는페렉이이네가지양식에따라쓴'보통의것들'에관한글들이모두포함되어있다.이책은빌랭거리나보부르구역주변처럼누구도주목하지않는장소를기록하기,우리가매일출근하는다양한유형의사무실묘사를통해인간의물질적욕망을풍자하기,철저히주관적으로'좋아하는/싫어하는'목록작성하기,런던을여행하며그곳의색다른매력을발견하고전파하기,가상의여행지를수학공식을통해배열하고상상속에서세계를떠도는여행자가되어지인들에게보내듯엽서들을작성하기등과같은일상의소재를다룬글들로가득하다.그러면서도결코독창성을잃지않는다.마치우리가출근하고,먹고,마시고,산책하고,여행을떠나고,좋아하는/싫어하는것들에대해수다를떨듯페렉의이에세이들또한일상을관통한다.그러면서,우리주변을둘러싼‘보통이하의것들’을우리로하여금다시한번바라보게만든다.

『인생사용법』,『공간의종류들』,『어느미술애호가의방』,『겨울여행/어제여행』등페렉의주요작품들을번역한국내최고의조르주페렉전문가김호영교수가번역을맡아페렉의다양한글쓰기스타일이전반적으로담긴『보통이하의것들』을국내독자에게처음선보이게되었다.

시간의힘이때로는두려움으로다가올때가있다.시간이흐르면사람도기억도장소도모두풍화되듯변모한다.그리고종국에는죽거나사라지거나아무것도남지않게되어버린다.시간의흐름은누구도막을수없지만,페렉이보여준‘일상의글쓰기’는이시간의흐름에대한작은저항과도같다.『보통이하의것들』을통해독자여러분들께서도자신만의자서전에실을일상의글쓰기를한번쯤시도해보셨으면한다.

책속에서

매일일어나고날마다되돌아오는것,흔한것,일상적인것,뻔한것,평범한것,보통의것,보통-이하의것,잡음같은것,익숙한것.어떻게그것들을설명하고,어떻게그것들에대해질문하며,어떻게그것들을묘사할수있을까?
---p.16

익숙한것에대해질문해보자.그런데문제는우리가이미그것에익숙해져있다는사실이다.우리는익숙한것에게질문을제기하지않고,익숙한것또한우리에게질문하지않으며딱히문제를일으키는것같지도않다.마치익숙한것은어떤질문이나답도전하지않고아무런정보도지니지않는것처럼,우리는그것에대해생각하지않은채그것과함께살아간다.그것은더이상삶의조건조차되지못하며,일종의무감각상태같은것이된다.우리는생애동안꿈도없는잠을자고있다.하지만우리의생은어디에있는걸까?어디에우리의육체가있을까?어디에우리의공간이있을까?
---p.17

당신의거리를묘사해보자.또다른거리도묘사해보자.그리고비교해보자.주머니와가방의목록을작성해보자.거기서꺼낸물건들각각의내력,용도,미래에대해스스로질문해보자.(중략)이러한질문들이어떤방법을거의필요로하지않을만큼단편적이며기껏해야하나의계획에불과하다는사실은내게별로중요하지않다.내게그보다훨씬더중요한것은,이러한질문들이시시하고쓸데없어보인다는사실이다.바로그점이이질문들을우리가진실을포착하기위해헛되이시도했던수많은다른질문들만큼이나,아니그보다더중요하게만드는이유이다.
---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