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계엄령

$22.00
Description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공포를 극복하고 폭력에 저항하면 그 체계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1947년, 소설 『페스트』는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찬사를 받으며 알베르 카뮈를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는다. 『이방인』으로 이미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페스트』가 처음이고, 그렇기에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치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알베르 카뮈의 다음 작품은 소설이 아닌 희곡이었다.
「계엄령」이라는 제목의 이 희곡은 1948년 10월 27일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스페인(에스파냐)의 작은 마을 카디스에 불길한 혜성이 나타난 후, 한 독재자가 불현듯 등장해 계엄을 선포하고 도시를 장악해 나가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 희곡의 중심 줄기를 이룬다.

그러나, 초연 이후 평단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객석의 호응도 크지 않았다. 1939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1947년에 상연된 또 다른 희곡 「칼리굴라」의 상업적 성공과는 대조적인 결과였다. 「계엄령」 비평에는 주로 정치적 시각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주요한 비판은 ‘왜 극의 배경이 실제 민중에 대한 탄압이 이뤄지던 공산주의 국가(소련이나 동유럽 국가들)가 아니라 스페인인가?’라는 부분에 집중되었는데, 카뮈는 이에 대해 ‘그러한 지적은 논점을 일탈한 것이다’라는 취지의 답을 칼럼으로 작성하기도 했다.

카뮈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전체주의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였기에, ‘작품의 배경 도시가 어디인가?’ 같은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카뮈는 실제로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나치즘과 공산주의(특히 스탈린 치하의 소련)를 동일하게 비판해 왔다.
좋은 문학 작품이 가진 힘은 결국 시대를 뛰어넘는다. 초연 당시의 반응은 열광적이지 않았으나 폭력과 전체주의에 대한 은유를 담지하고 있기에, 「계엄령」은 최근까지도 여러 나라에서 무대에 올려지곤 한다. 정치적 억압 상황이 닥칠 때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카뮈 사후 반세기 이상이 흘렀으며 21세기가 도래했음에도 세계 각처에서는 여전히 권력화된 이념으로 인한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출발한 이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권력화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부조리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카뮈의 메시지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계엄령」에 묘사된 민중의 두려움이나 각계 지도자층의 이기적인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실생활에서 목격하는 인간군상의 모습들과 상당 부분 닮아 있기도 하다.

인간은 역사마다 다른 얼굴을 한 이데올로기가 교묘하게 내세운 계엄령(실제 계엄령 혹은 계엄령으로 은유 되는 다양한 검열들)하에 지속적인 억압과 이에 따른 혐오의 감정을 겪어왔다. 그 혐오의 감정은 때때로 그것을 촉발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같은 민중에게 향한다. 이런 감정이 심화되면 혐오와 증오는 예상치 못한 폭력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지나간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역사이며, 보이지 않게 우리 사회 안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잠재된 위험이기도 하다.
“증오에 복종하지 마십시오. 그 어떤 것도 폭력에 내주지 마십시오”라고 썼던 카뮈의 말을 잊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여기며 누려왔던 자유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

알베르카뮈

저자:알베르카뮈(AlbertCamus)
1913년알제리의몽도비(Mondovi)에서아홉남매중둘째로태어났다.포도농장노동자였던아버지가1차대전중에사망한뒤,가정부로일하는어머니와할머니아래에서가난하게자랐다.1918년에공립초등학교에들어가뛰어난교사루이제르맹의가르침을받았고,이후장학생으로선발되어알제대학철학과에입학한다.카뮈는이시기에장그르니에를만나많은가르침을받는다.1934년장그르니에의권유로공산당에도가입하지만내적갈등을겪다탈퇴한다.1936년에고등교육수료증을받고교수자격심사에지원해대학교수로살고자했지만결핵이재발해교수직을포기했다.이후진보일간지에서기자생활을한다.
알베르카뮈는1942년에《이방인》을발표하면서이름을널리알렸으며,같은해에에세이《시지프신화》를발표하여철학적작가로인정을받았다.또한1944년에극작가로서도《오해》,《칼리굴라》등을발표하며왕성한작품활동을했다.1947년에는칠년여를매달린끝에탈고한《페스트》를출간해즉각적인선풍을일으켰으며이작품으로‘비평가상’을수상한다.1951년그는공산주의에반대하는내용을담은《반항하는인간》을발표했다.이책은사르트르를포함한프랑스동료들의반감을사기도했다.
1957년에카뮈는마흔네살의젊은나이로노벨문학상을받았으며이때의수상연설문을초등학교시절자신을이끌어준선생님에게바쳤다.삼년후인1960년겨울가족과함께프로방스에서크리스마스휴가를보낸후친구가운전하는차를타고파리로돌아오던중빙판길에차가미끄러지는사고로숨졌다.사고당시카뮈의품에는발표되지않은《최초의인간》원고가,코트주머니에서는사용하지않은전철티켓이있었다고한다.《이방인》외에도《표리》,《결혼》,《정의의사람들》,《행복한죽음》,《최초의인간》등을집필했다.

역자:안건우
도서출판사소서사에서출판기획과번역을맡고있으며,공연예술영역에서도활동하고있다.몰리에르의국내미번역작품을엮은『날아다니는의사외』,『사랑과전쟁외』,『성가신사람들외』,『스카팽의간계외』등의희곡집,알베르카뮈의『계엄령』,쥘구페의『프랑스요리의모든것』,시도니가브리엘콜레트의『지지』,마리잔리코보니의『에르네스틴의이야기』등의역서를작업하였다.경북대학교에서불문학을배운뒤,현재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공연예술학을공부하고있다.

목차


책머리에
계엄령
해설
사소한저항:느슨하지만강건하게정의를말하기
알베르카뮈연보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내가바로지배자다.이는사실이며,당연한권리다.이론의여지가없는권리이므로그대들은이에맞추어적응해야만한다.(중략)당신들은모조리처음부터다시배워야한다.당신들의왕은손톱에까무잡잡한때가끼어있고,딱딱한제복차림이다.옥좌에앉지않고,평범한의자에앉을뿐이다.병영이궁궐을대신하며,사냥터의천막이재판정이다.계엄은선포되었다.(P.74~75)

앞으로매일밤아홉시부터소등을시행한다.어떠한사유를막론하고정식통행증을소지하지않은자는공공장소에체류하거나시내도로를통행할수없다.통행증은극도의예외적인경우에한해임의의결정에의거하여발급된다.이조치를위반할경우법에의거하여엄벌에처함.(P.68)

너희들의소박한기쁨따위는질색이야.배불리살처지도못되면서뻔뻔하게자유를요구하는이나라를생각하면신물이난다고.내손은감옥도,사형집행인들도,권력도,피도모조리쥐고있어!이도시는곧파괴될것이다.그잔해위에건설된,완벽한사회가아름답게침묵하는동안마침내도시의역사는이세상에서완전히없어질것이다.그러니조용히해라,그렇지않으면너희모두짓밟아죽여버릴거야.(P.149)

“이력.”
“모르겠는데요.”
“당신이살아오면서거쳐온중요한일들을적으라는거예요.당신이어떤사람인지알수있는방식이죠!”
“내인생은내것이요.사적인것이죠,다른사람과는아무상관없어요.”
“사적이라고!그런말은우리에게안통해요.이제부터중요한건당신의공적인삶이죠.게다가당신에게허용된유일한것도그것이에요.시장님,구체적으로물어보세요.”(P.86)

“그자들은사랑을금지해버렸어!아!온힘을다해서당신을추억하고있어!”
“안돼!안돼!제발!저들이무엇을원하는지알았어.저들의속셈은사랑을불가능한것으로만들려는거야.하지만나는그걸극복할거야.”
“나는아무래도극복할수없겠어.당신과함께나누고싶었던건이런패배감이아니었는데!”
“나는멀쩡해!나는사랑밖에몰라!아무것도무섭지않아,하늘이두쪽이난다해도,당신손을쥐고만있을수있다면나는행복을소리치며내한몸기꺼이바치겠어.”(P.117)

망할년.분명히말하는데,너희들은끝장났어.너희들이누릴수있는가장분명한승리의한가운데에서,너희들은이미패배한거야.왜냐하면인간에게는-내눈을봐-너희들이굴복시킬수없는어떤힘이,그리고두려움과용기로뒤섞인,무모하지만언제나승리를거머쥐는순수한정열이있기때문이지.바로그힘이솟아날것이고,그때가되면너희들은너희들의위세가피어올랐다허공에흩어지는한낱연기와같았다는것을알게될거야.(P.130)

무슨혁명이라도일어난줄알겠어,정말!당신들도잘알겠지만그런일이일어날정도의상황은아닌데말이에요.게다가요즘은민중이혁명을일으키는때가아니에요,자,그런건완전히구식의사고란말이에요.혁명은더이상민중의봉기를필요로하지않아요.하물며정부를전복할생각이라해도,지금은경찰로도충분하거든요.사실이게나은거아닌가요?식견있는사람들몇몇이민중을대신해고민도하고또민중이만족할만한적당한수준의행복도결정해주니,민중은가만히쉬기만하면되니까요.(?.145)

싫어.그런방식은나도알아.살인을없애기위해서는죽이지않을수없고,불의를바로잡기위해서는무도해지지않을수없다는것.이따위논리가수백년을버텨온것이지!지난수백년간너와같은권력자들은이세상에난상처를치료한다는구실로오히려악화시키기일쑤였어.그리고그런방식을대단한것인양치켜세웠지,왜냐면아무도그들의면전에대고코웃음친적이없었으니까!(P.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