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름 (양장본 Hardcover)

아름다운 여름 (양장본 Hardcover)

$22.00
Description
“모든 이들을 용서할게. 그리고 나도 모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할게. 됐지?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줘.”

1950년 여름, 체사레 파베세는 『아름다운 여름』으로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스트레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뒤, 그는 토리노의 작은 호텔 방에서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파베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유서는 그가 평생 문학 속에서 응시해 온 고독과 허무를 압축한 듯하다.
토리노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출판사 에이나우디의 핵심 편집자였던 파베세는 파시즘 체제에서 수감 생활을 거친 뒤 번역과 비평으로 미국 문학을 이탈리아에 소개했다. 그의 영향은 이탈로 칼비노를 비롯한 수많은 동시대 작가들에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단순한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유는 언제나 인간 존재의 고독과 사랑의 실패, 구원 없는 각성을 탐구하는 독자적인 문학 세계에 있었다.
그의 대표작이자 중편소설인 『아름다운 여름』은 십 대 소녀 지니아가 겪는 사랑과 욕망, 배신을 통해 개인이 피할 수 없는 고독의 운명을 보여준다. 눈부신 계절인 여름은 청춘과 사랑의 열기를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허망하고 덧없는 순간의 은유로 자리한다. 지니아가 맞닥뜨리는 불안과 열정, 설렘과 두려움은 결국 하나의 성장 서사로 귀결되지만, 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환희가 아닌 차가운 각성이다.
『아름다운 여름』은 빛나는 청춘의 찰나와 그 뒤에 드리운 그림자를 포착한다. 파베세가 남긴 질문, “우리는 왜 사랑하고, 왜 고독한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2023년 라우라 루케티 감독에 의해 영화로 재탄생한 이 작품은 지금도 서늘한 울림을 건넨다.
저자

체사레 파베세

시인, 소설가, 번역가. 1908년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작은 마을 산토스테파노벨보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누이 손에서 자랐으며 토리노로 이주해 학업을 마쳤다. 다첼리오고등학교 때 작가이자 반파시즘 활동가인 교사 아우구스토 몬티에게서 큰 영향을 받고, 영문학을 공부하던 토리노대학 때는 레오네 진츠부르그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과 사귀며 문학적 야망을 키운다. 1932년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번역 출간한다. 파시즘에 맞서고 당대 문학을 쇄신하는 방편이었던 파베세의 미국 문학을 향한 열정은, 엘리오 비토리니와 함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문학을 여는 계기가 된다. 1935년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인을 지키려다 공산당 협력자로 몰려 파시즘 정권으로부터 감금 3년형을 받고 남쪽 바닷가 브란칼레오네 마을로 유배된다. 그 무렵 소용돌이치는 속내를 하루하루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일기 쓰기는 확고한 습관으로 굳어진다. 1936년 사면되어 토리노로 돌아와 첫 시집 『피곤한 노동』을 펴낸다. 초창기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이때 많은 작품을 구상한다. 이차대전 발발로 파시스트군에 징집되지만 천식을 이유로 면제되어 반년가량 로마에 머문다. 1943년 에이나우디에서 『피곤한 노동』 최종판을 내면서 시인으로서의 한 시절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이차대전 종전 후 공산당에 입당해 당 기관지 『루니타』 편집에도 참여한다. 이후 소설에 매진한다. 왕성한 창작열로 『동지』 『닭이 울기 전에』 『언덕 위의 집』 등을 발표하고, 독특한 형식의 『레우코와의 대화』 같은 작품을 내놓는가 하면, 1949년작 『아름다운 여름』으로 1950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스트레가 문학상을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유명 작가로 발돋움한 그해 여름, 갑자기 세상을 등져 많은 이를 충격에 빠트렸다. 같은 해 봄에 출간됐던 『달과 불』은 그의 마지막 소설로 남게 된다. 사후에 시집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가 출간되었고, 유배 시절부터 썼던 방대한 일기가 『삶이라는 직업』이란 제목의 책으로 엮여 출간되었다.

목차

책 머리에
아름다운 여름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그시절의삶은,마치끝도없는축제같았다.집을나서길을건너는것만으로도우리는곧잘제정신을잃었다.모든것이경이로웠다.특히밤은더욱그러했다.죽도록피곤에절어돌아가는길에도마음은여전히무언가를갈망했다.불이라도나주기를,집안어딘가에서아기가태어나주기를,아니면느닷없이새벽이찾아와사람들이거리로쏟아져나와주기를.그리고우리가들판을지나언덕저편까지걷고또걷는날이오기를.
(P.16)

그는화가처럼보이지않아서더멋졌다.처음만났을때다정한미소를지으며그가내민손,어두운방안에서들려오던그의목소리,불이켜진순간로드리게스와아멜리아와는별개로마치둘만있는것처럼자신을바라보던그의눈빛이떠올랐다.(P.70)

목소리를듣기위해서만이라도그를다시만나야만했다.아멜리아가왜귀도가아닌로드리게스와관계를가지는지이해할수없었다.그녀는아멜리아와귀도가함께유리잔을깨뜨리던시절에무슨일이있었는지알지못해다행이라생각했다.
그때자명종이울렸다.그녀는이미깨어있었고,따스한이불속에서수많은생각에잠겨있었다.
첫새벽빛이스며들자지니아는이제겨울이된것을안타까워했으며,그아름다운햇빛을더이상만날수없는것을슬퍼했다.귀도는,색이전부라고말했었지.
‘정말아름다워.’
지니아는그렇게중얼거리며침대에서일어났다.(P.93)

‘귀도앞이라면포즈를취해도괜찮을텐데.그가원하기만한다면.’그녀는생각했다.하지만알고있었다.아멜리아가자신보다훨씬더성숙한몸매를가졌다는것을.화가라면당연히아멜리아를선호할것이다.아멜리아는이미다자란여자였다.(P.95)

부티크를나설때마다늘어떤새로운일이문앞에서기다리고있기를바랐고,무엇도자신을기다리고있지않은것을알게되면하루가통째로사라진듯한허탈감을맛보았다.그녀는내일이오기를,모레가오기를,아니결코오지않을어떤것을기다렸다.
‘난아직열일곱도안됐잖아.’그녀는생각했다.‘앞으로도시간은얼마든지있어.’
하지만아멜리아는왜?그날모자도안쓰고쫓아왔던아멜리아는왜더는나타나지않는걸까?혹시내가무슨말을할까봐겁을먹은걸까?(P.100)

유리창을통해약간의빛이들어왔다.지니아는그의어깨에얼굴을묻었다.셔츠를통해느껴지는체온이따뜻했다.그들은소파에앉았고,지니아는말없이울었다.
‘만약귀도도같이울어준다면….’
그런생각이들자마음한가운데가뜨겁게조여오는듯했고,온몸이녹아버릴것같아기절할것만같았다.
갑자기그온기가사라졌다.지니아는눈을떴다.
귀도가일어서서그녀를당혹스럽게바라보고있었다.사람들앞에서우는기분이들어서그녀는울음을그쳤지만,그시선아래서눈물이다시차올랐다.
“진정해.”귀도가장난스럽게말했다.
“우린세상에이렇게잠시머물뿐인데,이런일로울필요는없는거잖아.”
“너무행복해서우는거야.”지니아가조용히답했다.
“그럼다행이네.”귀도가말했다.“다음엔미리말해줘야해!”(P.109)

귀도가그녀를바라보았다.그녀는그의웃는얼굴을볼수있었다.
“행복해?”그가물었다.그들은소파에나란히앉았다.지니아는그의눈을보지않으려고그의어깨에머리를기댔다.“난두려워.네가날사랑하지않을까봐.”그녀가말했다.
(P.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