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산책

남극산책

$15.00
Description
이 책은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남극세종과학기지에 1년간 일하러 간 응급의학과 의사의 기록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편하게 비행기로 가지 못하고, 배를 타고 78일의 긴 항해를 해서 간 남극세종과학기지를 갔다 오며, 그런 경험을 글로 남겼다.
매일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그리 편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도 작가의 내면에 일어나는 일들을 산책하며 마주치는 풍경을 적듯이 끄적끄적 적어나갔다. 또한 세종기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의료나 남극의 생태계나 과학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고립된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고, 관계를 돌아보는 내면의 이야기를 서술한 책이다.
저자

최영미

1970년12월31일강원도양구에서태어났다.초등학교교사이던아버지를따라자주이사를다니며강원도시골에서어린시절을보냈다.고등학교에입학하면서춘천에정착을하였고그곳에서대학생활과인턴,레지던트과정을마쳤다.응급의학과전문의가되어대전,부천,서울,거제도,인천,경기시흥,제주서귀포시,제주시에서직장생활을하다가2020년여름남극세종과학기지의료대원에지원을하였다.그해10월아라온호를타고남극세종기지에갔다가다음해인2021년12월귀국을했다.현재는시흥시의종합병원응급센터에근무중이다.거친여행,힘든운동,그리고도수가높은맥주를즐긴다.한때는스쿠버다이빙의매력에빠져자격증을취득하기도했다.

2012년2월타이항공기내에서크룹으로숨을쉬지못하던6살아들을응급처치로구하고,2014년5월세월호침몰현장바지선에서잠수부의료지원을하던중희생자를건져올리고수습하는과정을지켜보면서,앞으로는응급의학과의사로서할수있는일을다해보자고결심했다.진주보건대한가람봉사단과함께라오스와몽골,다일공동체와함께필리핀,캄보디아,네팔에서의료봉사를했고,2014년12월에는대한민국긴급구호대일원으로에볼라바이러스의진원지인서아프리카시에라리온에서이탈리아NGO단체인EMERGENCY와함께에볼라양성환자를돌보았다.고등학생인두자녀를두고있다.

목차

여는글:“왜남극에가려고하니?”
1부:항해
1.물위의집
2.잃어버린10년
3.오늘하루
4.적도페스티벌
5.‘아무도아니’
6.이번정류소는‘장보고기지’
7.강태공
8.페트병과알람
9.난득지화難得之貨
10.푼타아레나스
2부:남극살이
11.배여,안녕
12.엄마와딸
13.다시,흔들리는집
14.산책
15.쓴맛을봐야진짜인생이지
16.커피한잔
17.세종도서관
18.기계동2층
19.남극의셰프
20.인생은비극이다
21.헤어짐을준비하며
22.바톤반도
맺는글:
여행하는인간:낯선것을갈망하는인간에대하여

출판사 서평

여행하는사람

사람들중에는여행을전혀하지않으며,다른도시를그다지궁금해하지도않는사람이있다.그런반면에어떤사람은낯선곳에대한호기심이많고,그리고꽂힌곳에대해서는병적일정도로갈망하는유형의사람도있다.
저자최영미는아마도두번째유형의사람인듯하다.
그런사람이아니면남편과고등학생자녀둘을서울에두고1년이라는긴기간,그것도가면오고싶다고해서중간에돌아올수도없는남극으로떠나지는못했을것이다.
물론여행으로남극엘간것은아니다.남극세종과학기지에있는사람들의건강을책임지기위해서의사로서간것,즉일하러간것이지만,남극을자원한것에는저자의여행에대한갈망,미지의세계,여행자라하더라도쉽게가지못하는남극이라는곳에대한호기심이컸을것이다.
코로나로인해긴기간배를타고남극에가고,얼음과눈,펭귄,스쿠아가있는남극에서저자는책을읽고,커피를마시고,산책을하고남극을탐색한다.그러는와중에고등학생자녀들은이런저런사고를치고,그렇다해도도와주러오지도못하는남극에서엄마로서느꼈을그괴로움은얼마나컸을것인가.몸은남극에있어도온신경은서울에있었을시간.
그런과정을통해서저자도저자의자녀들도모두‘개인’으로더성숙해졌으리라.저자는아마지금이순간또다른여행을꿈꾸고있을것이다.
저자의또다른여행,색다른모험을응원한다.

책속에서

너울이점점배에가까이다가와배를위로들어올렸다가툭떨어뜨리기를반복하는데,배가올라갈때에는내가서있는곳이위로번쩍들렸다가떨어질때는바다를마주보듯기울어지며물속에잠긴다.그러면서큰거품을토해낸다.배가뿜어낸거품은거센바람에작은물방울로부서지면서요란한소리를낸다.배가요란하게흔들려도망망대해한가운데여서기수를돌려출발했던항구로돌아갈수도없다.우리가목표로하는곳,아니잠시정박하는항구에도착할때까지무조건견뎌야한다.사방을둘러봐도의지할곳하나없다.오직바다,바다뿐이다.하지만우리배를졸졸따라다니는갈매기들은이상황을즐기고있는듯하다.거센바람,비,파도가휘몰아쳐도갈매기들은늘똑같은모습으로날고있다.
-1.물위의집

오늘은하루종일GPS만들여다보고있다.적도를지나는순간을놓치고싶지않아서다.다시날이흐리고빗방울이간간이떨어지는데,습한공기가폐안으로깊숙이밀려들어온다.선내방송에서모두헬리데크로모이라고한다.이제적도에가까워져통과하는시간에기념촬영을하려는것이다.반바지에반팔티셔츠차림을하라기에나는방으로들어가박스깊숙이넣어두었던옷을꺼내입은후위에빨간색단체복을걸쳐입고밖으로나간다.조금전까지“후두둑”쏟아지던비는오지않는다.내옆에있던승조원한분이손가락으로먼바다를가리키며“저기저쪽에적도를표시한빨간색깃발이보인다”고말한다.나는‘어디있지?’하며눈을가늘게뜨고바다위를훑다가‘도대체여기서보일게있을까?’하며승조원의얼굴을보는순간‘아차’하는생각이들었다.그가장난기가득한얼굴로웃고있었던것이다.
-4.적도페스티벌

태양은너무도찬란한빛을쏟아냈다.남극대륙은우리배를밝고따뜻하게맞아주고있었다.우리는12월3일오전7시54분에남극대륙에도착했다.배가해빙에처음닿는순간진동과함께얇은얼음이순식간에지그재그로갈라졌고,배의왼편얼음위에서는한무리의펭귄이갈라지는얼음틈새를피해우르르달아나고있었다.그와중에도달아나지않고서있는몇마리펭귄이있었는데,그녀석들은깨진얼음위에균형을잘잡고서서흰배를우리쪽으로향하고있었다.나는우리배가펭귄들의휴식을방해한것같아미안한마음마저들었다.
-6.이번정류소는‘장보고기지’

“문명의욕망은결국인간을더욱더큰자극에로휘몰아가며,인간은결국삶의정로正路를잃게된다.”
이글은남극에가고있는나를돌아보게만든다.경쟁을통해(어느때보다경쟁률이낮았지만)선발되어좋은시설을갖춘장소에서자가격리를한후배에올라필요한모든것을제공받고,남극을향해가는길에특별한경험을하고있는나자신말이다.밤새쉬지않고달리는배의왼쪽동녘하늘을은은한주홍빛으로물들이던아침놀,산호해의수평선구름사이로보이던옅은분홍빛석양,줄을맞춘듯낮게드리워진남태평양의뭉게구름을어떤말로표현할수있을까.비가세차게내리던날거친파도위를유유히날던갈매기들,수면위를쏜살같이날아가는날치무리,브릿지에서처음마주쳤던장엄한남극대륙,대륙과해빙이하나인듯온통하얗게펼쳐져있던설원,바다의얼음을깨고대륙에다가가던쇄빙선의요란함,갈라지는얼음을피해도망가던펭귄들,장보고기지앞바다에출몰한바다표범,로스해역활동중에마주친끝이보이지않던거대한빙벽등이모든것들을과연누가경험할수있을것인가.
-9.난득지화難得之貨

세종기지부두의평평한땅에발을디딘순간그동안사진으로만보아왔던기지의주황색건물들이눈앞에펼쳐져있었다.33차대원들이부두에서우리를맞아주었고,나는인사를나누면서두터운구명복과조끼를벗었다.뒤이어조디악이도착했고,34차대원모두가부두에올라왔다.우리는태극기게양대아래에서서고전재규대원의흉상앞에고개를숙였다.17차대원으로활동하다가사고로목숨을잃은의인앞에서묵념을하며앞으로이곳에서일년을지낼대원들모두가안전하기를,건강하기를기원했다.길고도험한여정의목적지,세종기지에서의내생활은이렇게시작되었다.
-12.엄마와딸

지금은걱정된다.솔직히두렵기도하다.지난번교육때“대피가필요할정도의큰지진이일어나면소각장왼쪽공간으로모여라”고하셨다.쓰나미가몰려오면소각장옆이아니라바위언덕으로냅다도망쳐야겠지만말이다.‘메렛백’도점검했었다.지진이든화재든이가방만들고튀면바로치료가될수있을정도로그안에필요한게다들었는지확인했다.그런데모든재난상황에서도적용되겠지만‘사람’이우선이라그렇게대피해생명을건졌다하더라도,메렛백을어깨에둘러메고언덕으로잘뛰어올랐다고해도,집도없고옷도없고먹을것이다없어진상황에서나는남극에서살아남을수있을까?
-13.다시,흔들리는집

옷을마구주워입고밖으로나갔다.눈발이섞인바람이거세게불고있었다.바람에등떠밀리듯서쪽세종곶을향했다.누군가에서도망치는사람처럼해안자갈위를달렸다.바람은더거세지고파도는해안으로거세게몰아치고있었다.자갈길이점점물에가까워지면서파도의거품이내발로튀어올랐고,장갑을끼지않은손이저려왔다.주머니에손을넣고걷기시작했다.왼쪽에호수가나타나면서바다사이의길이더좁아져천천히걷는데,저앞오른쪽해안에스쿠아두세마리가머리를조아린채무언가를먹는모습이보였다.그옆을지나가다가소스라치게놀랐다.스쿠아들이작은펭귄한마리를사정없이뜯어먹고있었던것이다.화가치밀었다.‘불쌍한펭귄을먹어?’그놈들의모습에질려얼굴을돌리고서둘러지나쳐가려는데스쿠아두마리가길을막고서있었다.난화가나그놈들을향해돌을던졌다.“이놈들아,꺼져!”하지만그놈들은내가던진돌을피하더니하늘로날아올라오히려나를공격하기시작했다.
-20.인생은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