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레시피 : 펜 대신 팬을 들다

아내를 위한 레시피 : 펜 대신 팬을 들다

$16.80
Description
출근하는 아내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등교하는 아이들 가방도 챙겨주고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면서 저녁 반찬은 무얼 할까 살짝 고민한다
20년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신세계다,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우리나라 최고의 번역가인 조영학 선생이 우연히 살림을 접수한 날부터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글로 담은 찐 에세이. 1부에는 아내를 위한 밥상 차리기의 이야기가, 2부에는 텃밭을 가꾸며 삶을 음미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밥을 차리고 밭을 가꾸는 이야기가 단지 음식을 하고 장을 보는 이야기가 아니고, 흙을 만지고 씨앗을 뿌리는 이야기가 아님을 몸소 보여주는 조영학 선생의 “이렇게 살아야 제맛이다”를 함께 경험해볼 수 있는 담백하되 여운이 남는 글이다.
1부는 저자가 부상을 입은 아내를 대신해 부엌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저자는 아내에게 당당히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으나 재료가 어디 있는지 몰라 허둥대기 일쑤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리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살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을 ‘부엌데기’로 깎아내리지만, 저자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일이다. 살림이란 곧 가족을 위해 사랑과 배려를 표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유대감과 사랑이 깊어지고, 이로 인해 평화가 찾아온 이유도 바로 자신이 부엌을 차지한 덕분이었다. 저자는 ‘붥덱’으로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면서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순간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아니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르는 (중년) 남성에게 요리하기를 권한다. “남자가 살림을 맡으면 가정에 평화가 찾아온다!”
2부는 저자가 도시농부로 텃밭을 일구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텃밭을 가꾸는 일도 살림처럼 만만찮은 일이었다. 원래 잠시라도 자연과 가까이하고 싶은 욕구에서 소일거리로 삼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즐거운 노동이 되어버렸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잡초로 뒤덮이는 텃밭은 그야말로 정글이었다. 저자는 어려움에 부딪히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때 비로소 나만의 속도에 맞추어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그에게 텃밭을 가꾸는 일은 취미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철학을 탐색하는 여정과 같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걷이를 통해서, 자연의 리듬에 따라 느리고 불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 삶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아내를 위한 레시피》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가족과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를 재조명하고, 텃밭을 가꾸는 일을 통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레시피를 담아냈다. 독자는 저자가 들려주는 향기로운 이야기를 따라 터득하게 될 것이다. 행복을 찾아가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말이다. 은퇴 후 부엌접수를 즐거이 꿈꾸는 남성들, “오늘 뭐 먹지?”란 말이 “오늘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사랑의 맛을 보여줄까?”라는 것을 체험한 집집의 셰프들,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가꾸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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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영학

저자:조영학

번역가이자저술가.스티븐킹,존르카레등,소설및인문서를90여편번역하였으며<서울신문><한국일보><더칼럼니스트>등의매체에정기칼럼을연재하였다.현재는<여성신문>에“아내를위한레시피”라는글을연재한다.이책의제목도그칼럼에서따왔다.저서로는《천마산에꽃이있다》《여백을번역하라》《딸에게들려주는영어수업》등이있다.지금은경기도남양주에서부인과살며매주한번가평텃밭을찾는다.

목차


들어가는글_삶의레시피를찾아서

1장_아내를위한레시피
살림은아무나하나|요리는어려워|아내의생일에미역국을끓인다|날달걀비빔밥|기억의조작|새로운날들|남자들의장담그기|외조를잘하시네요|압력솥은만능요리기구|쯔유를만드는이유|우리들의오해|조리법은없다|돈은없지만먹고는싶어서|시래기는위대하다|달래를다듬으며|중년남성들에게요리를권하다|국화차만들기|불온한김장노동|흰눈과김치찌개|주방이라는공간|괜찮아?

2장_리틀포레스트
내이름은붥덱|텃밭이뭔데?|도시농부가되다|농사는어려워|내텃밭이생기다|봄은텃밭에서부터온다|봄꽃이들려주는얘기들|리틀포레스트|봄을요리하다|농막의하루|이찬복씨는힘이세다|멧돼지가족의나들이|자귀꽃필무렵|하지감자를캐다|잡초이야기|꽃한송이꺾는것이곧멸종의시작이다|며느리밥풀꽃에대한보고서|텃밭에서살아남기|가난하게살권리,비겁하게살권리|가을걷이|느리고불편하게살기

나가는글_부부가함께늙어간다는것은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이책은요리책이아니다.애초에내가대단한요리사도아니다.웬만한음식은다내손으로만들고,생소한요리도레시피를쭉훑어보면흉내정도는내지만요리사처럼최고의맛을추구하지도않고더나은요리를위해연구를하는것도아니다.최고의요리를위해최고의식재료를찾아다니지도않는다.오히려재료는맛보다가성비를따지고마트에가면주로마감세일코너를기웃거린다.(…중략…)

이책이누군가에게는대리만족이되고누군가에겐갈증이될수도있겠다.왜저렇게사나,한심하게보일수도있다.어쨌거나어느날난선택했고그이후모든것이변했다.아내가변하고가족이변하고무엇보다내가변했다.생계수단에불과했던밥상위에얼마나많은가치와의미가있는지깨닫기도했다.선택은늘그렇듯기적을만들어낸다.

요리란그저음식을만드는일이아니다.텃밭역시단순히농작물을가꾸는일이아니다.모두삶에대한이야기다.사람과사람을이어주고사람과자연을이어주는일이다.살림은사람을살리는일이다.사소한일상이얼마나소중하고가치있는지깨닫게해주는일이다.나는살림을하면서,요리를하면서,김서령작가가말하는삶의맛이무엇인지깨달았다.행복이어떻게우리를찾아오는지느낄수있었다.여기에실린얘기는그런얘기들이다.맛이아니라삶을요리하는레시피.행복을찾기위한레시피다.모두가나름의레시피를찾아행복하기를빌어본다.
---「들어가는글_삶의레시피를찾아서」중에서

아내가발을다친후진짜음식을만들어보겠다고들어온부엌은말그대로정글이었다.한치앞이보이지않았다.냉장고에호박이보였다.호박볶음을해야하나?아니면호박국?인터넷에서보니새우젓이필요하다던데그건어디있지?이하얀가루는어디에쓰는걸까?다진마늘은또어디?밥이잡곡이던데잡곡은어디에두지?이것도아내한테물어봐야하나?모르긴몰라도중년남자들이요리에도전하고싶어도쉽사리덤벼들지못하는이유가여기에있을것이다.

어디부터손대야할지모를막막함.미지의세계는늘두려운법이다.요컨대한번도가보지못한세상에발을디민것이다.애초에자취와살림은차원부터가다르다.대충요리해서내한입챙기는것과온가족의입맛에맞게매일매일새로운메뉴를만들어대령하는일이어찌같겠는가.살림은사람을살리는일이다.누군가의헌신을연료로사랑하는사람들을살리는일.그래서살림이건만그저밥,반찬몇개만들고청소하고설거지정도로생각해왔다.(…중략…)

아내와의약속을지키기위해,부엌,아니주방에들어가고며칠후,퍼뜩머릿속에떠오른생각은“망했다”였다.번역일만으로하루가빡빡한데거기에살림까지?아내가다쳤어도,아내한테아무리미안하고고마운마음이들어도그냥먼산바라보며‘생깠어야’했다.물론,아내도내가사나흘끙끙거리다포기하리라고생각했을것이다.당연하잖아!다른것도아니고살림인데!이건남자가할일이못돼.절대로!
---「살림은아무나하나」중에서

제일기억나는음식이날달걀비빔밥이다.비빔밥이라고해봐야그저더운밥위에날달걀하나와조선간장한수저넣고비벼먹는데불과했다.내나이다섯살에어머니가집을나간후어린동생들을돌보던누이가자주해주던음식이었다.시골이라다들닭을키웠기에달걀구하기가그렇게어렵지는않았을것이다.프라이가아니라날달걀인이유는식용유든돼지기름이든어린누나에게는사기도다루기도만만치않았지싶다.(…중략…)

“맛있는음식에는노동의땀과나누어먹는즐거움의활기,오래살던땅,죽을때까지언제나함께사는식구,낯설고이질적인것과의화해와만남,사랑하는사람과보낸며칠,그리고가장중요하게는궁핍과모자람이라는조건이들어있으며,그것이맛의기억을최상으로만든다.”황석영의말이다.날달걀비빔밥은그러니까내“궁핍과모자람”의상징인셈이다.난지금도종종날달걀비빔밥을만들어먹는다.안하는요리는있어도못하는요리는없다고큰소리치는요즘이지만기억의맛은어느산해진미보다유혹이강하다.그역시양은도시락이나밀가루소시지와같은기억의맛이겠지만차이가있다면날달걀비빔밥만큼은당시의맛을그대로돌려준다.

이음식으로소환해야할기억이가난,외로움밖에없어서일까?지금도그때처럼나혼자만먹어야하는음식이어서?아내와아이들이싫어하는게어쩌면다행이다싶기도하다.그들에게외롭고가난한기억이없다는뜻이니까.
---「날달걀비빔밥」중에서

집에서가족을위해음식을해본사람은안다.흔히집밥이라부르는하찮은음식이사실은얼마나다양하고복잡하며그음식을제대로만들려면얼마나많은노력과고민과전문기술이필요한지.일류요리사들이야,전문분야몇가지만숙달하면그만이지만,집밥은말그대로뫼비우스의띠같은세상이다.출판번역을이십년붙들고,야생화를십오년이상쫓아다니고,텃밭재배를십년넘게했지만,집밥만큼고급기술이필요한일은단연코없었다.게다가집밥이야말로사랑하는사람들을먹여살리는일이아닌가.그런데도부엌일을하찮게여기고“집에서밥이나하는여자들”운운하다니!그러면서도인기좋은요리사는죄다자기들남자차지다.난그자리에서그간장난처럼써오던붥덱을내별명이자아호로정해버렸다.요컨대,여자들이하는일은천한일,남자들이하는일은가치있는일이라는식의뿌리깊은편견에반대한다는의미다.(…중략…)

붥덱,이십년을아내와가족을위해정성껏밥상을차리며얻은귀한별명이다.개폼만잡는남자가상남자가아니라누군가를위해제모든것을바칠줄아는남자가상남자여야하듯,부엌데기는집에서밥이나하는여자가아니라사랑하는사람들을위해자신을희생할줄아는사람을뜻한다.누구도함부로업신여길이름이아니다.밥상너머에도사람이있다는사실을이놈의사회는언제쯤이나깨달을까?
---「2장_리틀포레스트내이름은붥덱」중에서중에서

“형은이제행복할자격이있어요.”몇년전아내가한얘기다.남은삶,오로지아내의행복을위해노력하며살겠다고부엌에뛰어든지십오년쯤되었을때다.그사이주방에서길을잃고헤매던중년사내는된장찌개에서국,찜까지못하는요리가없는만능집밥요리사로탈바꿈하고,하루하루위태롭기만하던가정은어느새세계어느집보다화목하고편안한분위기로바뀌었다.“한사람의남성이누군가를사랑하기위해가부장적경계를용감하게넘을때여성과남성,그리고아이들의삶이더나은방향으로근본적으로변한다.”《두번째페미니스트》의저자서한영교씨의말이다.어느가정이나나름의사정이있겠지만적어도나한테만은100퍼센트정확한예언이라하겠다.가부장적권위를내려놓기로하면서가족의운명은나도모르게조금씩,좋은방향으로변화하고있었으니까.(…중략…)

아내는정확히그렇게말했다.이제부터형놀이터야.아마도내평생가장행복한순간일것이다.맙소사,나한테땅이생긴다고?내마음대로가꾸고놀땅이?평생꿈도꾸지못했던일이현실로이루어지고있었다.“형은이제행복할자격이있어요.”라고말한뒤아내는내내내선물을궁리했단다.형편상집가까이는어렵지만외진곳이라도내마음에든다면일주일에한두번오가는것도상관없단다.난좋다고대답했다.그리고우리는다음날땅주인을만나계약했다.비록오지에맹지이지만내생전처음으로땅주인이되었다.
---「내텃밭이생기다」중에서

6,7월은대한민국이아름다운시즌이다.4월에는벚꽃과더불어온갖나무꽃들이꽃망울을터뜨린다면요즘은키큰풀꽃들이일제히미모를뽐낸다.개양귀비,큰금계국,코스모스,끈끈이대나물……이런꽃들은번식력도좋아어느날,불현듯내텃밭까지날아와한구석에자리를잡는다.내가심지도않고텃밭이라는장소에어울리지않다해도내게는감자몇알보다,양배추한두개보다더귀한손님인셈이다.나는작물일부를포기하고애써그들의자리를보전해준다.배척이아니라공존의전략을택한것이다.

덕분에내텃밭에는계절에따라윤판나물,홀아비꽃대,나도송이풀,누린내풀같은보기귀한야생화들도한자리씩차지한다.농사는잡초와의싸움이절반이라고했던가?세상사사는방법도다양하건만우리인간은오로지싸움,경쟁으로환원하고만다.경쟁과배척은사람을지치고척박하게만든다.잡초하나없이깨끗한텃밭은어딘가비인간적이기까지하다.싸우고자한다면모두가적이겠지만품고자한다면잡초도꽃으로보이는게또세상일이다.《정원잡초와사귀는법》의저자히키치부부는잡초가있을때작물도나무도더생생하게웃는다고말한다.잡초와아름답게공존해야비로소정원도텃밭도진정한모습을찾는다.잡초가있어야텃밭도사회도건강해진다.한여름무더위속에서고추순을따다가,문득털별꽃아재비,개망초,유럽나도냉이같은소위‘잡초’꽃과눈맞춤하는것도기분좋은일이다.
---「잡초이야기」중에서

내가텃밭을포기못하는이유는그곳에삶이있다고믿기때문이다.텃밭하는사람을도시농부라고부르는이유가있다.텃밭을하거나,관심이있는사람은대부분도시인들이거나흙과무관한일을생업으로삼고있다.요컨대,도시의콘크리트밭에서부대끼며살아간다는뜻이다.콘크리트밭과텃밭은생태계자체가다르다.도시는철저히자본주의와경쟁,지배/피지배의세계이지만텃밭은원시세계에가깝다(도시농업과귀농은그점에서다르다.농사가업이되는순간자본주의논리에종속되고만다).이곳원시세계에는잉여가치도없고착취와비착취도없다.오로지몸과흙이만나삶을만들어내고삶을나누고그로써내가치유를받고살아갈힘을얻는다.도시농업인은땅을닮아마음이더없이풍요롭고너그럽다.그리하여흙이아낌없이모든것을내어주듯자신이거둔작물을이웃에게나누어준다.그것만으로도난도시농업인이많아질수록세상이밝아지고건강해지리라믿는다.(…중략…)

팬데믹시대를맞아땅과도시농업의치유능력이주목받고있다.삶이,살아간다는게얼마나중요한지깨닫게된것이다.텃밭은단순히취미경작이아니다.흙을만지고작물을키우고이웃과만나나누는행위만으로도도시농업이우리삶에미치는영향은무궁무진하다.나는사람들이텃밭의가치를제대로이해하고꼭텃밭에서살아남기를바란다.그래야텃밭에서만이라도살아남을수있다.
---「텃밭에서살아남기」중에서

예쁘게포장한호박,오이처럼예쁜결과만바란다면야노동이아니라소비가제격이다.자본주의가그런목적으로존재하기도한다.결혼후,서울을등지고교외로빠져나올때부터어느정도불편한삶을각오했지만그러다보니오히려그불편함의맛에빠지고말았다.텃밭의호박은종종멧돼지앞다리만하게자라고고구마는크기도모양도들쑥날쑥하지만그래도이곳엔손으로흙을어루만지고이따금하늘을올려다보며땀을식히는매력이있다.장인의막걸리는맛과향이뛰어날지몰라도,직접쌀을씻을때의간지러운손맛은포기해야한다.이런삶은느리고불편하고궁핍하고궁상맞다.하지만거기에도자발적불편함이주는매력이있다.느릴수록,불편할수록행복해지는삶이있다.

우리는이미너무빠르고편하다.어쩌면그럼에도더편해지려고만하는지도모르겠다.내가편하면주변이불편하고내가예쁘고깨끗하면세상이대신추하고더러워진다.스타벅스와CGV밖에도삶이,세상이존재한다는사실을뒤늦게나마깨달은것이다.올해는설즈음에석탄주를거를수있다.명절음식을몇개만들어아내와시음할생각이다.정말로사과,포도향이날까?한모금머금으면목으로넘기기가아쉬운맛일까?그러니까내가새해를맞아이양주를빚는일은일종의바람인셈이다.먹고사는문제야올해도길안의덫처럼내발목을잡아채겠지만,그래도조금더세상밖으로벗어나,조금더느리고불편하게살수있기를빌어본다.
---「느리고불편하게살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