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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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이라외

강이라
제24회신라문학대상에단편「볼리비아우표」가,2016년국제신문신춘문예에단편「쥐」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으로「볼리비아우표」,「웰컴,문래」가있고앤솔러지「나,거기살아」,「당신의가장중심」,「작은것들」을함께썼다.

목차

레이먼드레이먼드
사방
나와당신의머나먼이야기
걸음
사소한일
선을지키는일

출판사 서평

오마주의시도는창작자가필연적으로마주하게되는원작자의‘영향’에대한당당한맞부딪힘그긍정적작법과다양한변이의발생을부추기는실험이면서도결코기껍지만은않은도전이기도하다.세익스피어가우리를발명했다는에머슨의말에뒤따르는문장은‘그가계속우리를구속하고있다’이기때문이다.

「레이먼드레이먼드」에서강이라는대가의강점을적절하게솎아쓴다.쇠락한어촌마을에잠시머무는외지인인입주작가들과폐쇄된냉동창고의음산함은‘냉동창고위에서떨어진사람은어디로갔는가?’라는심상찮은수수께끼와함께소설의분위기를단박에만들어낸다.뛰어내린사람에대한후사혹은사인은그리중요치않다.결코서사에대한실패를뜻하지않는이방식은소설이빚지고있는다른레이먼드,즉챈들러에서카버로능숙하게옮겨갈뿐이다.

김도일의소설「사방」이달성하고있는성취는얼핏작품자체가단말마와같은한줄의문장을향해달리다내리꽂히는「운수좋은날」의서사작법으로보이면서도,그내부에흐르는선배작가에대항하는‘대조적’줄기그러니까인물의불운은‘어쩐지’에담긴운수라는우연의산물이아니라사실은온갖개연성의연합으로이룩되고있다는차별성의구축에있다.그것은한국사의질곡그역사적맥락을비루하기짝이없는인물삼대의삶에겹쳐놓음으로써역사의권위가결코제출하지않는보통사람들,보통이하의인물들을불러오는일,역사를뒤밟으며소란이쓸고간자리를챙겨줍는일.그것이소설이역사와구별되는지점임을명확히제시하는소설의사회적기능의표방이기도하다.

조영한의「나와당신의머나먼이야기」는손창섭을오마주한다.어쩌면생,그러니까우리의삶의비밀은그자체로욕되고수치스러운일면을지니고있다는그자체에있을지도모른다.그건우리의생이대체로무구한채로놓여져있기때문이다.그러니인물의열패감은사실은삶이작동한데대한결과값이아니라이미주어진인간의조건일수있다.그래서생은‘쓰는자’인지도모른다.그를끊임없이괴롭히는‘문학적패배’라는인식역시어쩌면원인으로지목한함구에대한대가가아니라끊임없이회의해야하는자들의숙명은아닐는지.

박지음의「걸음」의따뜻함은종종위태로운경계들을향해있곤했다.디아스포라,정치적쓸모에의해내몰아지고다시불필요에의해버려진자들.조국이배신하고이국이배척한사람들의삶은끝내작가의소설속에서되살려진다.온갖수모를겪어내고조국의품으로돌아오고싶었던것은평범한삶그러니까강간의위협으로부터놓여나성실히노동하는로자의삶,곤궁한삶속에서억눌려왔던자기말하기를글로써내며사는기철의삶이었다.그것이디아스포라의숙명이라도된다는듯한번제자리를잃은사람들에게원자리란영영존재하지않음을숱한전쟁과분쟁으로또가난과삶을위해떠나고쫓겨가는사람들을통해보여준현실의증명처럼로자와기철의꿈은이룩되지못한다.

유희란의「사소한일」은각인물들의심리를대단히치밀하게쫓으며여성인물의자아감각을지배하는가난의흔적과그래서더가장하는여유에대해기드모포상의원작을충실히오마주하면서도끝내아영이흑진주주머니를잃어버리는사건을삽입해그를남루한처지로몰아상미의속앓이를중단시킨다.상미는결국자신의열등감을아영의실패로치환하면서어줍잖게자기위안에이른다.그러니까상미의자아극복양상은타자를생성하며이루어지는철저한자기기만으로얻어지는임시방편에지나지않는다.이런면들은인물을신뢰할수없게만들면서도가난이아닌그로인한상처를얼룩묻은행주처럼쥐고있는상미라는캐릭터를작동시키는것이다름아닌지극한현실이라는점에서오묘한지점에가닿는다.

조미해의「선을지키는일」에서는모든이가‘선’을넘는데,그래서소설은줄곧팽팽한긴장으로이어진다.특히‘나’는남편보다연상이라는점을자신의콤플렉스로여겨‘어린’이웃과남편의친구들,그부인들에대해자못예민하다.유라가가버린자리에새로이사온이웃이오해를받은김에선배의애인과결혼해버린자신의사정을밝힐때,마치말해지지않은‘진짜’비밀은소설의아래에깔려있다는듯소설은모든인물을되돌아보게만든다.인물은선을넘지않으면될거라는다소안일한마무리로자신을다독이는데,이결말로부터독자의의심은다시금시작된다.내가남편과주고받은크리스마스선물은전혀다른의미로‘사랑을확인’하길요청하고있는것이다.

끊임없는반복속에서만들어지는복잡하고묘한구조를일컫는프랙탈Fractal은자기복제혹은유사패턴과그변용을가리킨다.그러니까무한히반복되는고사리잎의모양같은것들.이때중요한것은자기유사성과반복성은그러나결코완전히같은것을생산하지않는다는사실이다.우리에겐무슨과제처럼깨어진채이어붙여지길기다리는도자기의조각들이놓여있다.테세라로이어지길기다리는보석같은순간들은조금멀리서보면하나의아름다운프랙탈을이룰것이다.이번‘오마주’와같은아름다운기획과도전으로인해우리는이렇게나즐거운변이를읽을수있다.고단하고멀리가는이길위에서언젠가우리는고사리의숲을보게될지도모른다.

(평론가황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