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십우도』, 『붓다평전』으로 불교사상을 작품화해 온 작가 백금남의 신작.
불교문학을 통해 삶의 진수를 형상화해온 백금남 작가에 의해 「금강경」이 소설 화 되었다. 「금강경」은 교리 전파의 목적 보다는 진리를 깨닫는 근본 이치를 담은 경전이다. 그러므로 그 난해함에 소설화가 쉽지 않았다. 이 한 문장으로 「금강경」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모든 현상이 진실상이다. 진실상이 아니라고 하는 그 자가 허상이다. 허상을 제거했을 때 진실상이 드러난다(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만약 모든 현상이 진실상이 아닌 줄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가 되겠지만 작가는 악승 데바의 비판적 시선으로 「금강경」을 풀어나간다. 그러면서도 전혀 요란스럽지 않다. 오늘날까지 무비판적인 경지를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거칠거나 섣부르지 않다. 경이 가진 사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진리의 깊이, 그 깊이의 아름다움, 거룩함의 깊이, 그 거룩함의 아름다움, 진리 탐색의 여정, 그 사유의 아름다움. 그런 아름다움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악승 데바와 불조 간의 언쟁은 견각(見覺)의 궁극이다. 불조의 시살을 꿈꾸는 데바에게서 우리는 불교의 묘의를 간파할 수 있다. 불법을 버리지 않고 불법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금강경의 묘의다.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여래를 만날 수 있다. 불조 스스로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형상이 진실상이 아님을 알 때 여래를 만나리라.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붓다의 가치관이다. 이미 비어 버린 붓다 안의 모습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보여준다고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저 하찮은 풍경에서 풍광을 본다. 풍광 자체가 붓다다. 붓다는 발에 채는 풀잎일 수도 있고, 이슬일 수도 있고, 밤하늘의 별일 수도 있다. 이것이 구원의 메시지다. 그렇게 붓다는 높은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모든 현상이 진실상이다. 진실상이 아니라고 하는 그 자가 허상이다. 허상을 제거했을 때 진실상이 드러난다(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만약 모든 현상이 진실상이 아닌 줄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가 되겠지만 작가는 악승 데바의 비판적 시선으로 「금강경」을 풀어나간다. 그러면서도 전혀 요란스럽지 않다. 오늘날까지 무비판적인 경지를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거칠거나 섣부르지 않다. 경이 가진 사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진리의 깊이, 그 깊이의 아름다움, 거룩함의 깊이, 그 거룩함의 아름다움, 진리 탐색의 여정, 그 사유의 아름다움. 그런 아름다움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악승 데바와 불조 간의 언쟁은 견각(見覺)의 궁극이다. 불조의 시살을 꿈꾸는 데바에게서 우리는 불교의 묘의를 간파할 수 있다. 불법을 버리지 않고 불법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금강경의 묘의다.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여래를 만날 수 있다. 불조 스스로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형상이 진실상이 아님을 알 때 여래를 만나리라.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붓다의 가치관이다. 이미 비어 버린 붓다 안의 모습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보여준다고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저 하찮은 풍경에서 풍광을 본다. 풍광 자체가 붓다다. 붓다는 발에 채는 풀잎일 수도 있고, 이슬일 수도 있고, 밤하늘의 별일 수도 있다. 이것이 구원의 메시지다. 그렇게 붓다는 높은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소설 금강경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