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노자」와 「묵자」 의 컬럼 모음》
- 『노자』와 『묵자』를 보는 새로운 시선 -
동양 철학의 두 거두, 『노자』와 『묵자』의 사상을 일상적인 ‘칼럼’이라는 그릇에 담아냈습니다. 고전 철학을 보다 쉽고 친숙하게 풀어내고자 한 개인적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이 칼럼들을 마중물 삼아 원문과 대조하며 깊이 있게 탐구해 나간다면 고전이 주는 참된 지혜를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세대를 넘어 이 칼럼 모음집에 담긴 동양 철학의 통찰을 배운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현대 사회의 여러 과제를 지혜롭게 풀어가는 데 귀중한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확신합니다.
5. 책 내용 일부
1) 〔칼럼] 길을 잃은 도덕경: 「노자(老子)」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노자를 ‘제대로’ 읽기 위한 두 가지 질문 -
서점에 나가보면 수십, 수백 종의 『도덕경』 번역서와 해설서가 진열되어 있다. 저마다 ‘동양 철학의 정수를 담았다’며 화려한 수식어를 뽐내지만, 막상 책을 사서 읽어본 독자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문장이 앞뒤가 맞지 않고, 뜬구름 잡는 신비주의 같기도 하다가, 갑자기 처세술을 늘어놓는 것 같기도 하다. 시중의 노자 해설서들이 이토록 중구난방(衆口難防)인 이유는 독자의 이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번역하고 해설하는 학자들 스스로가 노자의 텍스트를 관통하는 명확한 ‘지도(Map)’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경은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다〉
노자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먼저 그 텍스트를 둘러싼 환상부터 깨야 한다. 우리는 노자가 공자에게 禮를 가르친 위대한 스승이며, 훌쩍 소를 타고 떠나 단숨에 5천 자의 도덕경을 남겼다는 신화를 믿는다. 그러나 동양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고전인 『논어』, 『묵자』, 『맹자』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노자’라는 이름이나 『도덕경』의 구절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미스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993년 중국 곽점(郭店)에서 발굴된 전국시대 죽간본은 오늘날 통행본의 3분의 1 남짓한 분량으로, 지금 우리가 아는 도덕경의 상당 부분이 훗날 덧붙여졌음을 실물로 증명했다. 짧은 격언들에서 출발해 한나라 시대의 백서본을 거쳐 오늘날의 통행본으로 내려오며, 이 텍스트는 수백 년간 끊임없이 덧붙여지고 편집되었다. 여기까지는 문헌학적 사실이다.
2) 〔칼럼〕백 년을 가둔 철창을 부수다.
- 풍우란의 묵자관과 박진우 박사의 묵자관 -
중국 철학사의 거목 풍우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와 『간명 중국철학사』는 현대 묵자 연구의 뼈대를 세웠으나, 동시에 묵자를 전체주의적·획일적 군사집단으로 오독하게 만든 ‘백 년의 철창’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박진우 박사의 연구는 바로 이 풍우란이 세운 낡은 프레임을 근본에서부터 깨뜨린다.
두 사람의 시각차는 묵가를 바라보는 기본 전제에서부터 출발한다.
첫째, 집단의 정체성이다. 풍우란은 묵가를 무사(유협) 계급으로 규정하고, ‘거자(鉅子)를 정점으로 절대복종하는 군대식 상명하복 조직’으로 보았다. 반면 박진우 박사는 ‘인민과 묵가를 비명론(非命論)에 입각해 노동으로 삶을 개척하는 능동적 주체’로 보며, 묵가 조직 또한 평등하고 수평적인 협동 연대의 장으로 파악한다.
둘째, ‘상동(尙同)’과 지도자의 역할이다. 풍우란에게 상동은 위에서 아래로 시비의 기준을 강요하는 전제주의적 메커니즘이며 지도자는 정답을 강요하는 절대자다. 그러나 박진우 박사에게 상동은 흩어진 민의를 모아내는 합의 민주주의 과정이며, 지도자는 백성의 억울함과 갈등을 공정하게 조율하는 ‘현장의 조정자’이자 매개자다.
셋째, ‘겸애(兼愛)’의 철학적 지향이다. 풍우란이 겸애를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계산된 공리주의와 처세술로 읽었다면, 박진우 박사는 천하무인(天下無人)의 절대적 평등을 바탕으로 약자를 내 몸처럼 여기고 몫을 바르게 나누는 분배 정의이자 ‘안생생(安生生)’의 대동 사회를 향한 민본 철학으로 정립한다.
20세기 격동기의 시대적 한계에 갇혀 묵자를 절대 권력과 공리주의의 틀로만 바라보았던 풍우란의 해석은 지난 백 년간 주류 학계의 금과옥조처럼 다루어져 왔다. 박진우 박사가 백성을 주체로, 지도자를 조정자로 되살려낸 작업은 단지 새로운 해석 하나를 더한 것이 아니다. 묵자를 통제와 복종의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백 년 묵은 철창을 정면으로 부수고, 21세기 다원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온전히 피워낸 사상사적 쾌거다.
- 『노자』와 『묵자』를 보는 새로운 시선 -
동양 철학의 두 거두, 『노자』와 『묵자』의 사상을 일상적인 ‘칼럼’이라는 그릇에 담아냈습니다. 고전 철학을 보다 쉽고 친숙하게 풀어내고자 한 개인적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이 칼럼들을 마중물 삼아 원문과 대조하며 깊이 있게 탐구해 나간다면 고전이 주는 참된 지혜를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세대를 넘어 이 칼럼 모음집에 담긴 동양 철학의 통찰을 배운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현대 사회의 여러 과제를 지혜롭게 풀어가는 데 귀중한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확신합니다.
5. 책 내용 일부
1) 〔칼럼] 길을 잃은 도덕경: 「노자(老子)」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노자를 ‘제대로’ 읽기 위한 두 가지 질문 -
서점에 나가보면 수십, 수백 종의 『도덕경』 번역서와 해설서가 진열되어 있다. 저마다 ‘동양 철학의 정수를 담았다’며 화려한 수식어를 뽐내지만, 막상 책을 사서 읽어본 독자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문장이 앞뒤가 맞지 않고, 뜬구름 잡는 신비주의 같기도 하다가, 갑자기 처세술을 늘어놓는 것 같기도 하다. 시중의 노자 해설서들이 이토록 중구난방(衆口難防)인 이유는 독자의 이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번역하고 해설하는 학자들 스스로가 노자의 텍스트를 관통하는 명확한 ‘지도(Map)’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경은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다〉
노자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먼저 그 텍스트를 둘러싼 환상부터 깨야 한다. 우리는 노자가 공자에게 禮를 가르친 위대한 스승이며, 훌쩍 소를 타고 떠나 단숨에 5천 자의 도덕경을 남겼다는 신화를 믿는다. 그러나 동양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고전인 『논어』, 『묵자』, 『맹자』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노자’라는 이름이나 『도덕경』의 구절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미스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993년 중국 곽점(郭店)에서 발굴된 전국시대 죽간본은 오늘날 통행본의 3분의 1 남짓한 분량으로, 지금 우리가 아는 도덕경의 상당 부분이 훗날 덧붙여졌음을 실물로 증명했다. 짧은 격언들에서 출발해 한나라 시대의 백서본을 거쳐 오늘날의 통행본으로 내려오며, 이 텍스트는 수백 년간 끊임없이 덧붙여지고 편집되었다. 여기까지는 문헌학적 사실이다.
2) 〔칼럼〕백 년을 가둔 철창을 부수다.
- 풍우란의 묵자관과 박진우 박사의 묵자관 -
중국 철학사의 거목 풍우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와 『간명 중국철학사』는 현대 묵자 연구의 뼈대를 세웠으나, 동시에 묵자를 전체주의적·획일적 군사집단으로 오독하게 만든 ‘백 년의 철창’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박진우 박사의 연구는 바로 이 풍우란이 세운 낡은 프레임을 근본에서부터 깨뜨린다.
두 사람의 시각차는 묵가를 바라보는 기본 전제에서부터 출발한다.
첫째, 집단의 정체성이다. 풍우란은 묵가를 무사(유협) 계급으로 규정하고, ‘거자(鉅子)를 정점으로 절대복종하는 군대식 상명하복 조직’으로 보았다. 반면 박진우 박사는 ‘인민과 묵가를 비명론(非命論)에 입각해 노동으로 삶을 개척하는 능동적 주체’로 보며, 묵가 조직 또한 평등하고 수평적인 협동 연대의 장으로 파악한다.
둘째, ‘상동(尙同)’과 지도자의 역할이다. 풍우란에게 상동은 위에서 아래로 시비의 기준을 강요하는 전제주의적 메커니즘이며 지도자는 정답을 강요하는 절대자다. 그러나 박진우 박사에게 상동은 흩어진 민의를 모아내는 합의 민주주의 과정이며, 지도자는 백성의 억울함과 갈등을 공정하게 조율하는 ‘현장의 조정자’이자 매개자다.
셋째, ‘겸애(兼愛)’의 철학적 지향이다. 풍우란이 겸애를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계산된 공리주의와 처세술로 읽었다면, 박진우 박사는 천하무인(天下無人)의 절대적 평등을 바탕으로 약자를 내 몸처럼 여기고 몫을 바르게 나누는 분배 정의이자 ‘안생생(安生生)’의 대동 사회를 향한 민본 철학으로 정립한다.
20세기 격동기의 시대적 한계에 갇혀 묵자를 절대 권력과 공리주의의 틀로만 바라보았던 풍우란의 해석은 지난 백 년간 주류 학계의 금과옥조처럼 다루어져 왔다. 박진우 박사가 백성을 주체로, 지도자를 조정자로 되살려낸 작업은 단지 새로운 해석 하나를 더한 것이 아니다. 묵자를 통제와 복종의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백 년 묵은 철창을 정면으로 부수고, 21세기 다원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온전히 피워낸 사상사적 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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