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14.17
저자

김유

저자:김유
1955년전남광주출생
휘문고졸업후고려대학교입학
독립운동사및친일반민족사에관심을가짐
1982년(주)선경입사
1988년부터일본주재원을지냄
민족문제연구소창립회원으로서바른역사찾기에
부단히노력하고있음
1993년(주)하코를홍콩및중국에설립
독립운동의현장을틈틈이답사
중국청화대학대학원졸업
경희대대학원수료
민주평통자문위원역임
현)순국선열추념문화재단상임이사
은퇴후집필에전념

목차


|서문|남북한양쪽에서추앙받는독립투사6
|추천사|언젠가는역사의재평가가이루어지길11

제1부총사령으로부임하다
1)사령관취임과요녕농민자위단성립20
2)연합전선을펴다.중·조인민최초의군중대회25
3)중·조연합군최초의승리,제1차영릉가전투29

제2부탕쥐우의요녕민중자위군성립,그리고다시연합
1)국민당정부동북군탕쥐우와만남36
2)신개령전투와양세봉의후퇴41
3)제1차흥경전투43
4)제2차흥경전투와통화,그리고특무대48
5)귀녀의죽음50
6)관전현보위전53
7)김일성과만남56
8)요녕성정부출현과특무사령부62

제3부만주와국내에서항일투쟁
1)조선국내와압록강연안에서항일투쟁72
2)청원공격전,가족과만남75
3)윤희순,그리고철도연변투쟁78
4)서진원정그리고무순공방전,그외전투80
5)통화를다시빼앗기고자위군해산81
6)이회영선생의친서,만남의불발87

제4부조선혁명군,다시일어서다
1)양세봉의회고92
2)의목수(依木樹)회의,조선혁명군재정비96
3)제3차흥경전투102
4)중국공산당동북혁명군과만남104
5)양세봉의인품과에피소드105

제5부출생과소년시절
1)출생112
2)1894년동학농민운동115
3)강화도조약,임오군란117
4)을미사변,아관파천(노관망명)120
5)간도그리고연해주123
6)소년시절,서당생활그리고아버지로부터교육128
7)안중근을배우다.그리고한일병합,서당문을닫다130
8)윤재순132
9)아버지의죽음과양세봉의혼인134

제6부중국으로이주,독립군이되다
1)흥경현영릉가138
2)양세봉,독립운동에뛰어들다142
3)천마산독립군에입대하다144
4)다시찾은집그리고양시봉의결혼145
5)참의부참가,고마령전투147
6)양세봉,정의부에가다.그리고길림에상주149
7)왕동헌과만남151
8)금구자로이사,김형직의죽음155
9)삼부정립과갈등157
10)길림에서안창호를경호하다161

제7부국민부,조선혁명군설립
1)국민부창립166
2)금구자에서가족과만남169
3)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출범174
4)국민부의약화,내부이념다툼177
5)9·18사변과연합항일의서막,중국공산당의대두182
6)흥경사건과양세봉189
7)조선혁명군과무장투쟁제일주의192

제8부1934년
1)쌍립자회의200
2)중국공산당의동북인민혁명군203
3)최후209

|에필로그|
‘한국광복군’에맥락이닿아있는양세봉의‘조선혁명군’219

|부록|
양세봉연보234

출판사 서평

남북한양쪽에서동시에기리는독립운동가이며,그투쟁기록에반해그다지많이알려지지않은양세봉장군의무장투쟁과더불어한인간의삶을그리고있다.나라를잃은식민지백성이자부모형제와처자식을건사해야하는생활인의갈림길에서분연히나라를위해삶을바친양세봉장군의삶은우리를숙연하게한다.

책속에서

봉오동전투와청산리전투가일회성싸움이었다면양세봉장군은만주국군대및일본정규군을상대로영토를점령하고그근거지에서계속하여일제에저항한독립투사였다.그중에는찬란한승리도쓰라린패전도있었으며사랑하는딸을잃는아픔도있었다.그러나‘조선혁명군’은자기의기지를보유하고줄기찬투쟁을이어나갔으며이것은곧우한(武漢)에서설립된‘조선의용대’의기반이되었다.
우리가봉오동그리고청산리전투승리에만초점을맞추다보니상대적으로‘조선혁명군’이이룩하였던눈부신성과가가려진점이적지않다.해방후극심한이념의대결이앞서고친일인사나‘만주군관학교’,‘간도특설대’출신들이남쪽에서주도권을쥐게되었다.그래서독립투쟁의역사하면마치북한만혼자한것처럼되어버렸고우리의침묵이특별히당사자인김일성에게는멋대로역사를왜곡하도록무대를제공한꼴이되고말았다.
평양에있는애국열사릉에가보라.양세봉장군묘비에그가이끌었던‘조선혁명군’이라는말은한마디도없고
‘독립군사령관’이라고만적혀있다.‘조선혁명군’은정부와당,곧‘국민부’와‘조선혁명당’의실제적물리력을갖춘단체였으며설립이래양세봉장군의지휘아래온갖어려움을헤치고일제및만주국을상대로무력투쟁을벌여온군사조직이었다.마치1940년대임시정부에소속된광복군과같은존재였던것이다.그러나‘혁명’이라는단어가북한정권의입맛에맞았는지어느새그들만사용하는말이되고말았다.(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