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달걀 세우기 (오창헌 시집)

날달걀 세우기 (오창헌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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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창헌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날달걀 세우기』는 울산 지역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살면서 삶의 큰 주제인 ‘생명, 평화, 사랑’이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고래와 바다, 태화강과 산, 십리대숲과 하늘 등 울산의 자연이 주는 영감에서부터 이웃과 함께 호흡하고 교류하며 느껴왔던 울산 지역민으로서의 고민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

오창헌

1997년‘울산공단문학상’시부문최우수.1999년《울산작가》창간호로등단.2004년울산대학교대학원정보디자인학과졸업.석사논문『수용자중심의시감상멀티미디어컨텐츠제작』.1991년동인시집『이상한일이요즘엔』,2008년시노래북음반『울산이라는말이별빛처럼쏟아져내리네』,2018년첫시집『해목』,2023년시낭송시화집『바다의선물』출간.‘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울산작가회의’‘울산사랑시노래회’활동과《울산작가》편집주간을거쳐무크지《고래와문학》편집주간을맡고있다.시창작교육,시노래·영상시공연,‘고래문학제’‘고래와바다詩展’운영등지역문학에애정을쏟고있으며,부산가톨릭문인협회·한국해양문학가협회·금정문인협회·늘창문학회회원,경부울문화연대사무총장,‘고래를사랑하는시인들의모임’대표,바다동인,봄시동인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자서

제1부

봄비인사법ㆍ14
웃음꽃한송이ㆍ16
삼월이간다ㆍ18
헛발질한증거ㆍ19
날달걀세우기ㆍ20
별이반짝이는이유ㆍ24
지구의검지ㆍ25
얼음등대ㆍ26
바다의눈ㆍ29
바다의문ㆍ32
안개와수평선ㆍ34
물빛사랑ㆍ36
한몸이되는순간ㆍ38
바람의지도ㆍ40
하늘핏줄ㆍ42
치자꽃ㆍ44
늪속의바람ㆍ46
저녁가로등ㆍ48
매미껍질ㆍ50
꿈꾸는숲ㆍ52
ㅎㅎㆍ54
신불산갈대ㆍ56
별ㆍ57
푸른불꽃ㆍ58
빈집ㆍ60
애통과애통ㆍ62

제2부

불안ㆍ66
팽이ㆍ68
새벽풍장ㆍ70
어느선생님의낙서ㆍ73
이름값ㆍ76
어떻게단풍들까?ㆍ78
겨울심장ㆍ79
화해ㆍ80
환장하겠네ㆍ82
돌담의노래ㆍ84
사월파도ㆍ86
사월의이유ㆍ87
바람의노래ㆍ88
고양이가아냐ㆍ90
우화1ㆍ92
우화2ㆍ94
우화3ㆍ96
물이라도좋으니아껴줄래?ㆍ98
고양이가운다ㆍ100
봄달무리ㆍ102
꽃핀자리ㆍ104
겨울수도자ㆍ106
물방울탑파ㆍ108
새벽별ㆍ110
감사의그릇ㆍ112
시작일까끝일까ㆍ114

시인의글ㆍ115

출판사 서평

〉시인의글

시창작의여정

2011년9월3일토요일,나는울산의몇몇시인들과함께울산기행행선지로웅촌의은현리적석총과이웃한웅상의우불산성,우불산신사를찾았다.두루돌아보고웅촌면곡천리에있는한식당에서점심을먹고커피한잔을하고있을때였다.맞은편회야강건너대숲에바람이불었다.
대숲은좌우로흔들리더니이내멈추었다.순간바람의집이무너지는것을보았다.‘바람의집이무너졌다’와그것이‘폐가’라는인식은지금까지경험해보지못한나의시안(詩眼)이되었다.동시에그간품었던시에대한의문이눈녹듯사라지고있었다.
대상의그너머를보는눈이내게도생긴것이다.나는흥분을감추지못한채집에돌아왔고다음날새벽네시에눈을뜨고「폐가」라는시를썼다.이어함께갔던시인들의시나눔사랑방인다음카페‘쏘울비상구’에올렸고토씨하나고치지않고첫시집『해목』에「투명한폐가」라는제목으로실었다.

바람이멎었을뿐인데
대숲이새파래졌다
햇살은댓잎위로덩치를키우고
투명한詩體는적멸중이다
-「투명한폐가」전문

바람의집이무너지는순간과시에대한나의열망이담긴이시는내게기념비적인첫작품이되었다.이후내게온이기적이이한편으로끝나지않음을알게되었다.그래서나는그간내시창작의여정을담은한편의시를《시애》에발표했다.

옛날에오씨라는사람이밥먹고하는일이
자신의빈문패를쓰러뜨리고세우는일이었다
아침에쓰러뜨린문패를저녁이면세웠다
칠흑같은밤이기도했고
비오는새벽녘의일이기도했으며
세우지못한날도있었다
세울때면붓으로맹물을찍어
빈문패위에무언가를적었다
그는자신을찾고있었다
누구인지알고싶었다
왜사는지묻고있었다
그걸위해시를썼다
한편씩쓸때마다자신을찾아갔다
한편씩쓸때마다빈문패가세워졌다
어느날빈문패를쓰러뜨렸는데도편안했다
이제그는굳이자신을찾아떠나지않아도되었다
그는자신을찾는일로더이상시를쓰지않았다
가끔자신과어울리는세상에대해읊조리면그만이었다
그는빈문패위에먹물을찍어자신을써내려갔다
空頭,비어있는것은모두머리다
그는허공에머리를내밀었을뿐인데
사람들은그를‘허공의머리’라불렀다
-「空頭」전문

내가쓴시가나를위무하고있다니비로소나는내게시인의타이틀을붙여주었다.
시인이라는타이틀은남이달아주는이름표가아니다.내가쓴시는누구보다내가잘안다.내가어떻게썼는지나보다잘아는사람은없다.내리듬으로썼는지남의리듬을흉내냈는지….자기만의방식으로표현을찾아쓴다면그것이곧나를매료시키는내시의시작이아닌가.
이를계기로나의시쓰기는이전과는확연히달라졌다.시적대상과나의대화는즐거워졌고,마음이뜨거워지면한편의시가새어나왔다.

이전나의시쓰기는참답답하고암담했다.순식간에쓴글이시가되기도했지만내가쓰고자했던내용은시가되지않았다.어떤것은시가되고어떤것은왜시가되지않는지그답답한속내를어찌다설명할수있을까.내리듬이무엇인가고민하고,여유없는나를여유있는나로이끌어도보고,사랑하는마음이부족한까닭이라는생각에이르렀을때는내속을넓히는마음공부를하기도했다.천재시인으로타고나지않은자가시인이되려면어느누구라도이런고민과시간을들이지않고서는한줄의싯구가나오지못하는것이다.그중에서도나는둔재시인이기에그기간이오래걸렸다.
나는시공부를하면서소위‘좋은시’라고알려진시들을필사하지않았다.남의영혼과습관이내글에묻어나올까하여매우경계했다.10년이고20년이고파고들다보면제대로된시를쓰겠지,하는막연한기대같은게있었다.
시를정식으로공부하기전에고등학교때까지나의꿈은화가가되는것이었다.어머니에게내꿈을밝혔을때,어머니는“화가가되면빌어먹을정도로가난하게산다”며장래를걱정했다.그래서어린생각에돈걱정안하면서그림을그릴수없을까?하는물음을내게던지곤했다.그래서나름찾은방법이이중섭의은지화를미술책에서보고는은지화를그리는것이었다.그래서1986년‘국립현대미술관과천’이개관했을때이중섭의은지화가전시된다는기사에몇번찾아가서유심히살피기도했다.이후두장의은지화를그리며꿈을키웠지만,돈걱정없이할수있는다른방법을알고서는이내꺾이고말았다.하나는애플이만든매킨토시라는컴퓨터에서포토샵앱으로표현할수있는그래픽디자인이고,다른하나는종이와필기구만있어도되는글쓰기였다.매킨토시를활용한디자인은나에게창의력을발휘하도록하여먹고살게해주었고,글쓰기는나에게정신적자양분이되었다.

1987년나는은사인신명석시인을만나본격적인시공부를시작했다.신명석선생님이말씀하시길,10년간시공부를하다보면시인이될수도있고,아니면시의고급독자라도되어있지않겠냐고하셨다.이말씀이내마음을편안하게했다.10년공부해보고아니면독자로남지뭐…,라고쉽게생각했다.어떻게하면돈을많이벌까?좋은직장을얻을까?라는생각은하지않았으니지금생각해보면참어리석은나였다.
시수업료는가끔해녀인어머니가잡아놓은문어몇마리,해산물을드리는게전부였다.그럴때마다신명석선생님은문어좋지,하고웃으시며나를다독이셨다.
시를몇편써서선생님을찾아뵈면빨간색볼펜으로단어들에동그라미를쳐주셨다.이단어에대해생각해보라는것이다.한번은자갈치시장에가서온종일앉아서지나가는사람들을살펴보라고하셨다.자갈치시장한귀퉁이에앉아,이게무슨의미인지몰라도대체내가무슨짓을하고있는지한심하기까지했다.
한2년이지났을까.시원고에는파란색볼펜으로밑줄친싯구들이연결되며시한편의의미가되어갔다.대학을졸업하고군대를다녀오고난어느날,시원고에는연필로쓰인감상평이내눈을반겼다.그러나시는도통알수없는존재였다.
1991년,서울에서박재삼시인의자제인박상하씨가운영하는삼하문화사의도움으로그동안써왔던시들을모아시전집(詩展集)을출간하고부산가톨릭센터에서시전을열었다.시전을끝내고나는먹고사는일을서울동대문에있는‘지성의샘’출판사에서시작했다.그인연으로박헌호시인을만나고,문학통신사대표인이지룡선배가중심이된서울문학회활동을시작했다.격려를아끼지않던김규동시인과김신용시인의시가가슴을울렸고,부산에서먼길을마다하지않고찾아왔던변의수시인,시집『사랑도아프터서비스를받을수있다면』으로주목받던이복희시인등과교류했다.일년간다니던출판사를그만두고이지룡선배의배려로1991년12월종로1가에자리잡은문학통신사한쪽에매킨토시두대와전자사식기한대를놓고‘한줄기획’이라는인쇄기획사를차렸다.젊었기에가능한무모한도전이었다.
1992년여름,서울생활을뒤로하고부산에내려와중앙동에사무실을차렸다.그해가을에결혼했고1994년5월큰애‘한솔’이태어났다.
부산에와서는최영철시인을만나‘부산·경남젋은시인회의’의일원으로활동했다.이상개시인이운영하는빛남출판사에서출간한송유미시인의시집『파가니니와의대화』표지,시계간지《시와사상》표지를디자인하는등겨우입에풀칠하며운영하던한줄기획은1996년울산에인쇄관련일자리가생기면서세상에한줄기획을긋고자했던부푼기대와는달리아쉽게도한줄기획으로사라지게되었다.
현재,시계간지《사이펀》발행인인배재경시인과는마음이맞아울산에와서도1998년에창간한무크지《가마문화》,‘고래와바다시전’등여러문학활동을함께해오고있다.최영철시인과서규정시인은선배로서후배를아끼는마음에《문학지평》에시를추천하고싶으니정식등단절차를밟으라고내게조언하였으나시인으로서나의준비가덜되었기에정중히사양했다.
1996년5월,1년만고생하자는생각으로울산에왔지만,울산에는‘부산경남젋은시인회의’의의장인김태수시인과정일근시인이있었다.그해부산작가회의에이어울산작가회의가설립되면서나역시자연스럽게울산작가회의의일원이되었고,김태수시인이회장,정일근시인이사무국장,내가사무차장으로활동하게되었다.
1997년,울산상공회의소기관지《울산상공》을디자인하게되었는데담당자에게서울산공단문학상공모사업에회원인산업체근로자가아니더라도울산지역의근로자와가족은응모할수있다는말에시열편을보냈다.운이좋게도「깨끗함을위하여」외시2편이최고상인최우수를받았다.그해7월둘째‘한길’이태어났다.
1999년,나는어깨너머로배운디자인에한계를느끼기시작했다.세상은인터넷이라는새로운방식의매체에주목했고,웹은곧세상을새로운물결로이끌었다.그래서나는울산대학교정보통신대학원정보디자인학과에입학하여정식으로웹디자인등새로운디자인을공부하게되었다.문학관련컨텐츠를책만이아닌새로운방식으로디자인해보고싶은욕심도있었다.직장과공부를병행하다보니여러가지로어려움이많았다.2004년2월에야겨우석사논문『수용자중심의시감상멀티미디어컨텐츠제작』이통과되어졸업했다.논문은‘영상시제작’에관한내용이다.이후고래영상시등영상시와영상시노래제작에힘을기울여여러문학콘서트와시교육에문학활동가로서참여하게되었다.
울산작가회의사무처장,이사,《울산작가》편집주간을맡고,정일근시인,안성길시인과함께고래문학제와시노래운동,무크지《고래와문학》발간,푸른고래출판사설립등지역출판운동을하며나름지역시인으로활동해왔으나시에대한고민은늘나를압박했다.내가쓰고싶은내용이시가되도록온힘을다해보았지만만족스럽지않았다.번번이깨졌다는표현이맞다.오랜시간내시에내가깨지는동안내시도내게틈을보이기시작했다.그래서내가쓰고싶은시한편을쓰게되었다.

“내게고향이란...군소개작전에따라소각된
잿더미모습그대로머리에떠오르는것”*

거미야흩어진기억을붙잡으러왔니저미는봄빛을붙잡으러왔니니가더듬듯갓피운꽃잎하나,낡은집이기우뚱거린다
니가새로집짓는것이밤이슬속에서새벽이슬속까지마냥애태우는것이허공에눈틔우는길이라는걸웅크린새벽에도여명을보면안다
바람불적마다낮은목소리섞어기록하던키작은집들
그집에살던청미래덩굴과밥연기와빈마을을어슬렁거리던햇살과추적추적내리던빗줄기의오랜이야기는아직곡예중이다그무엇도땅짚지못하고허공을떠도는곡예사들이다
살에이는꽃샘바람에도사월은꽃잎을피운다
무거울정도로어두운집터,꽃이란오랜기억을갈고갈아투명한속살이되는이슬,잠시머물다떠나고다시돌아와오랜나무의벗이되는한해살이
꽃잎이하나하나오름을오르고
낡은집은무너져내린다

*현기영作「순이삼촌」에서
-「꽃잎하나」전문

이후첫시집에함께실린「지리망산으름꽃」,이번시집에실린「돌담의노래」등어쩌다보니몇편건졌지만,제주4·3과세월호사건을빼닮은남영호사건이라는역사적트라우마에갇힌내가족과제주민에대한시적자각은늘내시창작의여정을곤혹스럽게만드는주제이다.그러는사이어느덧시간은흘러내나이육십을바라보고있다.고래를사랑하는시인들의모임,한국해양문학가협회,부산가톨릭문인협회,금정구문인협회,늘창문학회,나로문학회,바다동인,봄시동인의시벗들과시를나누고,‘경부울문화연대’문화예술인들과함께경남·부산·울산지역문화의현안에대해고민하며산다.
심수향시인은시집『사바나를벗어난동물처럼』에서“시에게미안하다”고했다.나역시겨우한고비넘겨시를쓰고있지만내게주어진과제앞에선허둥대고있으니아직갈길이멀다.그과제들을마음껏휘어잡지못하니부끄럽게도시에게고백할수밖에없다.
“시야,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