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수면모드였던컴퓨터가돈다
먼지쌓인모니터에깜박깜박글자가표시된다
성에꽃이핀입술을슬금슬금움직이며
캡슐안에냉동인간이말을한다
너무춥긴하지만,
22세기라는말은미래같지않아
둘러대는변명같잖아
잠깐만더얼어있자.
―'4차산업혁명시대의생활과건강'에서
진찰실에아이는윗옷을번쩍들어올렸다.최선생은배위적당한부위에청진기를가져다대고,잠자코폐나심장소리를들었으면좋았을것이다.
“너는1,483번째배꼽이란다.”
최선생이아이에게실제로한말이다.
이말이아동학대인지아닌지를두고논란은확산되었다.
―'n번째배꼽'에서
악마는네가어린시절아껴두었던
금색크레파스와라임색크레파스를마음껏쓴다
딱히좋아하는색깔도아닌데
네가남긴생선을화분에심는다
고등어는초심자가기르기좋고갈치는유려하게떨어지는
곡선이우아하다굴비는향이오래간다
실은나였어
네가식탁아래로몰래건네던
강낭콩과브로콜리를받아먹은존재
초코가그런걸좋아할리없잖아
―'악마에관한오해'?에서
동물원에한남자가
기린쪽으로시집을던지고있다
한권은드럼통에넣고태웠고
한권은아파트화단에묻었고
한권은다리위에서하천아래로
한권은씹어먹었고
그중한권을길가는꼬마에게건넨혐의로
남자는형을기다린다
―'요즘누가시같은거읽는다고'에서
버터칼이면충분합니다.여자를죽이는데에는,버터칼하나면!놀라까무러치며피를뿜어대는죽음만있는게아닙니다.늙고지친이를애달파하다가끝내외면하는죽음만죽음이아닙니다.한겹씩향과멋이사라지고,다늙기전에,깜짝놀라기도전에,“당신의무른두볼,몇입떠다맛보았으니남긴목숨이아깝지않다.”선언하는,여유넘치는마음이면충분합니다.여자는일찌감치죽었을것입니다.여자와더놀고싶은내가없었다면.
―'반려동물'에서
이집에소파는죽은동물의가죽으로만들어졌다
그는죽어서네모나고폭신해졌다
나를반듯하게잘라줘빈틈이없도록
사각형의포옹을해줘
가족들은그의유언대로
무덤위에거푸집을세우고
시멘트를부었다
―'홈,스위트,홈'에서
축축한행주로빈식탁을닦는동안에도엄마의얼굴에는웃음의잔상이지우다만문신처럼남아있어.내가이미닦았다고말해도,엄마는무심결에손을움직여.곱씹고다시곱씹는거야.모양을접었다가반대로편색종이처럼,자국이남아서자꾸만그때로돌아가.그게좋은거야.구겨진것처럼보여도,행여선을따라반듯하게찢기더라도,너를알기전의새얼굴로돌아가고싶지는않을거야.
집에개라도한마리있었으면저딱한얼굴을열심히핥아줬을텐데.
너는꾸역꾸역울고있다.더는눈물이나오지않는데도우는얼굴만하면우는줄안다.“뛸거야,말거야,”나도울음이터질것같다.
―'너의정원'?에서
당신발주위에는모든
멸망에관한알리바이가있죠
당신이삽질을멈추지않으면
내이야기도안멈춰요
그리고쉬어요
도통짖지않았던개가
아주짖지않는개가되는순간처럼
누워요우리
악수나포옹없이일단
눕기나해요
―'흰밤,흰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