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성 (민병훈 중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금속성 (민병훈 중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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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미 균열된 세계를 주유하며 완고했던 세계의 흔적을 발굴해가는 작가
완고한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응시의 감각을 지닌 자가 아닌, 이미 균열된 세계 속에서 완고함의 흔적을 온몸으로 발굴해가는 작가. 소설집 『재구성』 『겨울에 대한 감각』,장편소설 『달력 뒤에 쓴 유서』를 펴낸 민병훈 작가의 신작 중편소설이 문학실험실 〈틂-창작문고 시리즈〉 22권으로 출간되었다. 민병훈 작가는 “죽음, 상실 등 인간 내면에 자라는 근원적 어둠을 언어적로 형상화한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삶의 자리를 역설적으로 반추해온 작가이자, 보통의 사람이 “자신의 현재를 의탁하고 스스로를 분석하며 미래를 견”디는 데 반해 “민병훈의 소설은 기억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방황을 수리”(노태훈)해온 작가이다. 그리하여 그는 “한 개인의 모색과 불안을, 자신의 몫으로 치러야만 하는 시간과의 무한한 대화”(양선형)에 나서는데, 신작 중편소설『금속성』은 사건과 세계라는 망루에서 시간과 의미라는 들보를 제거함으로써, 주저앉은 채 수습할수도 극복할수도 없는 ‘지금-여기’의 ‘나’와 ‘우리’의 실존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이 표면상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듯하나, 그 속에서 발견하는 진짜 디스토피아는 진즉에 도래해 있으며 이미 높은 밀도로 압축되어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GPS가 세계의 구석구석을 밝혀주고 있는 시대에, 지도에도 없는 소설”(박혜진)을 구축해온 민병훈이 그려놓은 이 미지의 세계는, 끔찍하지만 유러스럽고 엉뚱하지만 참담한 나-현실의 분명한 이름이다.
저자

민병훈

저자:민병훈
1986년대전에서태어나,서울예술대학교문예창작과를졸업하고동국대학교대학원국어국문학과를수료했다.2015년『문예중앙』을통해등단하여,소설집『재구성』『겨울에대한감각』,장편소설『달력뒤에쓴유서』를펴냈다.

목차


금속성

장편(掌篇):금속성외전
感:그래도사랑해_강보원

출판사 서평

추천사

모종의방식으로거기에혹은여기에있는우리의삶
인생이제대로흘러가지않는다는느낌은무엇일까?이것다음에는저것이와야한다.그런데이것다음에다른어떤것이온다.마치다리가달린뱀처럼.고양이가되려다심각하게어긋나버린뜻밖의생물처럼.또는이상하게조립된장난감처럼.그것들은어떻게보면웃기고어떻게보면귀엽고어떻게보면슬프다.온갖우스꽝스럽고슬픈일들이일어나는이소설이그런것처럼말이다.민병훈은우리에게글을쓰는시간뿐만아니라살아가는시간전체가곧“폐품을해체하거나,조립해서넘겨주거나,다른기계물품과교환하는시간”(115쪽)임을보여준다.어느수상한컨테이너작업실에서깡!깡!하는소리가들려올때그곳에서무엇인가가제대로만들어지고있는지,아니면누가자신의손등이나발등을찧고있는지알수는없다.그러나그것은여전히괜찮은일일텐데,이제우리는어느쪽이든상관없이거기에누군가의삶이있으며,그삶이우리의삶과모종의방식으로연결되어있음을알고있기때문이다.
_강보원시인의추천사중에서

책속에서

마르코는선반과밀링이있는구역,나는과거에개발된컴퓨터와기상시스템이전시된구역에서일했는데,틈만나면내가있는곳으로넘어와말을걸었다.사람들은박물관에과거만있다고착각하는데,기술에과거는없어,기차만해도그래,증기기관차가지금철로를달리면,어떤기분일것같아?추월하는거야.내말이해되지?(15쪽)

나는죽은개와삽을챙겨뒷산으로갔다.계속땅을팠다.그뒤로도집에서죽은동물들은모두비슷한곳에묻었다.언젠가비가많이내려,뒷산이말그대로흘러내렸다고할수밖에없는지경이되었을때,사체들을볼수있을까기대했지만보진못했다.그래도계속같은곳에묻었다.닭과쥐,거북이를묻었다.토끼,햄스터,앵무새를묻었다.다시살린순없을까.꿈을꿀때마다난생처음듣는동물의울음을궁금해하며눈을떴다.(19쪽)

그러자가로수뒤에서,마치내가무단횡단을하길기다리고있던것처럼,제복을입은경찰관두명이달려나왔다.신분증을요구했고어디서나오는길이냐고물었다.치과간판을가리켰다.손에들린처방전을내밀자둘은등을보이고돌아서서속닥거렸다.약국안에있는사람들이이쪽을쳐다봤다.경찰관중한명이다가와말을걸었다.치과에는왜가셨습니까.사실대로얘기하자뒤에있던다른경찰관이다가왔다.잇몸에동상이걸리는게말이나됩니까.나는잠깐당황했는데,잇몸에동상이걸렸다는게말이안된다는건지,동상때문에치과를갔다는게말이안된다는건지헷갈려서였다.(35쪽)

팔콘이하늘을날면어떨까.그런생각을종종한다.
가끔은개로태어난걸후회하지않을까.그런생각은하지않는다.
내가안하는게아니라팔콘이하지않을것이다.
가끔은꿈을꾸는지도모르지.하늘을나는꿈을.
높은상공에서아래를내려다보는시선으로.
다리를더이상움직이지않아도되는몸짓으로.
팔콘은이제앞다리까지움직이기힘든것같다.
자꾸풀썩풀썩주저앉는다.
조수는슬픈표정을짓지말라고말했다.
팔콘이알아차린다는것이다.
그말을하고조수는울었다.(45쪽)

왜말이여기서저러고있나.조수는생각을중단하고말에게다가갔다.말에올라타기위해서.조수는수치를기록하는사람이다.수치를기록하고수치에서벗어나기위해안간힘을쓰는사람이다.
-말이우리머리위에서날뛰는것같았어요.
-비가내리고먼지가가라앉았어요.
-마르코가기차역에도착했다면곧바로기차를탈수있었을까.(80쪽)

개를사랑하는도시인들.
어색한TV탑.
아크릴판으로외형을감싼기차와그앞에서라디오를듣는아이.
밀링으로세공한반지를약혼자에게건네주기위해철교를건넌사람은꿈속에서비가내릴거라는암시를느꼈지만서서히깎여나가는몸짓으로공중전화를찾고.
몸을파고드는쇠의느낌.
금속의공간.
폐품을해체하거나,조립해서넘겨주거나,다른기계물품과교환하는시간.
수치와그래프.
나는보이는것에열중했다.(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