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인
저자:신영인 단양시멘트공장사이에서태어났다.명료하게반짝이는길에매료되어사범대수학교육과에들어갔다가슈트라우스의Morgan(내일)을듣고창문을넘어달렸다.그로부터3개월뒤성악의길에들어섰다.음악은수학과다른빛으로아름다운것.그러나모든것이프리즘으로번진하나의빛이었다.슈만,브람스,라흐마니노프를사랑했다.한때음악을들고소년원아이들을가르쳤다.음악은어둠속에서더욱깊게번진다는걸아이들은알아주었다.그때부터그늘진곳을찾아다녔다.한방의료봉사단에서무의촌을두루다니며같은온도를가진사람들과어르신들의손을잡고새벽일터에서는빵을굽는다.내빵은,수학과음악과그늘을보듬는마음이늘같이반죽된다. 이모든길을걸어오며한손에늘잡고있었던것은책이다.그토록아름다운종이가,우레의문장들이지금의나를이끌었다.나의문장은숨쉬는빵속에,수식안에,음악안에,내가손잡는그늘아래아름다운흐름으로있다. 2023년봄날,시와반시제1회에세이스트신인상을수상했다.
1부붉은담장을넘어다비붉은담장편지1밴드당귀은목서휴일페이스트리타원진공관스피커2부당신을서랍속에재웠더라면오븐침엽수편지2고압선에매달린채계단에사는사람2월편지당신을서랍속에재웠더라면순소동파한접시복년씨3부그런데당신,내가구운편지를먹어봤나요?포앙팥빵막대파이잎에쓰다나무의꿈계피빵SweetballSaiGonBaguette반미달빵당신이별가루로얼룩진쿠키를받는다면4부공전하는것은결국돌아오니까불두화소원기체엄마빛칼Limit파이허수iExtrabone길을나서는시간세글자로불리는사람사랑뫼비우스의띠
책속에서의자가없는주방에서빵의날재료를모두비운상자를깔고앉아쓴다.오븐은돌아가고...흙부엌아궁이앞에먼얼굴로앉아지난날을하나씩태우던할머니처럼나는불앞에앉아하이힐을하나씩불속에던졌다.5cm,7cm,나는자꾸높아지고싶었지.높이는무너지듯불타고오븐은뜨겁다.예쁘고무거운가죽가방을질질끌고와쑤셔넣는다.산동물의피부는더부드럽다는말이그제야생각나서,내가어깨에멘것은순한동물의비명이어서,비었을때조차살을짓누르도록무거웠다는사실이이제야생각나서나는가방을불속에넣으며내부드러운살을불에대어보기도했지.오븐은내살위에서더뜨겁다.그러고보니빵을만들기시작하면서빼어버린반지가이젠다시들어가지않는다.굵어진손마디가반지를거부한다.반지가불타면반지에새긴약속들은어떻게되는걸까.약속을불에녹이는연금술도있을까.알려면해봐야한다.온도를더올려야했기에두꺼운책들을찢기시작했다.어려운철학책일수록불이잘붙으니활활훨훨휘이훠이니체선생,맹자선생편히쉬시오.오븐은다투듯뜨겁다.저렇게뜨거운운동장에키가1미터조금넘는작은아이가서있었다.전교생이줄을맞추어벌을받을때화장실가겠다는한마디가어려워서오줌을싼아이,타닥타닥소리를내며불타는운동장한가운데그아이주변만밤처럼젖었다.운동장네모퉁이를접어그오랜비밀과까만부끄러움을약첩지싸듯이감싸넣는다.미안해.젖은기억은잘타지않아요.기저귀처럼,썩는데에도오래걸린다지만오븐은뜨겁다.탈피한제껍질을깔고앉아글을쓰는이는누구일까.이젠깔고앉은상자마저태워야한다.그래야끝이다.그래야시작이다.---p.15「다비」중에서세상의아름다움밖에사는곁가지들을붙들고나는붉은선가장자리에서움찔거리다첫장을뒤집었다.무단횡단!길을뒤집고정해진칸을글자로밟아넘는일은일탈이었을까.결국칸을단하나도채우지않은채뒷장에빼곡히쓴편지로만한권의원고지를다쓰고말았다.나는아직도원고지를뒤집어편지를쓴다.담을넘던열세살의아이는보내지못할편지들을쓰다가아직도칸밖에산다.어느날엔붉은담장을넘다올려놓은유리를깨뜨리기도하였지.와장창소리가천둥친날에는밤새칸밖을서성여도문장에서유릿가루가빛났다.---p.18「붉은담장」중에서그녀석이오고나서눈이많이내렸다.눈위에또눈이,졸린것처럼이불처럼자꾸만덮었다.태국에서는보지못했을눈이견딜수없이쏟아지던날진탁이는눈을감았다.세종의화장장,은하수공원에는별무리를뒤집어쓴듯눈이쌓였다.그곳에눈이별처럼빛나는아이셋이있었다.처음보는눈을만지며얼어붙은아버지의땅에자꾸자꾸별을떨구었다.---p.25「당귀」중에서비극을완성하려는사람처럼,그는볕에한번도내보인적없는창백한시간을접고쌓는일을어둠속에서하고있다.한겹한겹이독립된하나의삶으로일어서자기노래를끝까지부를때까지,기다리면서끝내는부서지기위해매일을결결이쌓는일,이작업의끝에서그는평생차곡차곡모은LP판을쌓아두고거대한해머로단번에내리치려는것이다.완전히부서져야마침내완성되는빵을만들고있다.---p.34「페이스트리」중에서아주오랜만에두개의철문이동시에열렸다.버스안에선노래가멈추지않았다.“너를뜨겁게안고서두팔이날개가되어언젠가네게약속했던저달로,우리푸른꿈싣고서한없이날아오를게….”버스가노래를싣고날았던가노래가버스를싣고날았던가.치한아,얘들아~가자!!!진공의세계에서우리는날개를펼쳤다.서른개의필라멘트를켜고.*미평소년원합창단은그해가을,[오해피데이],[파일럿]두곡으로전국소년원합창대회에서금상을받았다.---p.40「진공관스피커」중에서人生到處知何似사람사는이세상무엇과같은지아는가應似飛鴻踏雪泥날아가던기러기눈밭걷는것과같다네****형부의생일밤,다같이소주를한잔하고나서는데함박눈이세상의모서리를지우고있었다.“눈온다.영인아”눈속으로입김처럼하얀말이번졌다.그말은어느나라의말도아니었다.모든선이사라진눈위를우리는함께걸었다.20여년이지난지금도눈이내리면처음맛본동파육의향과접시에담았던소동파의시가떠오른다.나는오늘흰눈같은종이를펼쳐접시에담지못한그다음시구를적어본다.雪上偶然留指爪눈밭위에우연히발자국남기고飛鴻那復計東西기러기는날아서어느방향으로간걸까이젠가족이아닌형부는어느하늘에고향을짓고있을까.밖에나서니밤새쌓인눈에지난발자국은다지워져온데간데없다.---p.71「소동파한접시」중에서런던의물가는가난한여행객을주눅이들게하기에충분했지만,대부분박물관이무료였기때문에더없이만족스러운날들을보냈다.나는매일담배한보루만큼의밤을보내고트라팔가광장의내셔널갤러리에서하루를시작했다.모네의[수련]앞에앉아서안개가흩어놓은물소리를듣다가어느날은고흐의[삼나무가있는밀밭]에앉아서오전을다보냈다.고흐가정신병원에있을때완성했다는이작품앞에자주머물렀다.밀밭은전신을비틀며아름다운춤을추고있었다.나는밀밭을바라보다가문득마에스트로크리스토프에셴바흐를떠올렸다.전쟁에서부모를잃고난민수용소에서실어증을얻게된피아니스트.전쟁의참혹함과열병은어린고아에게서말을앗아갔고전쟁이끝난뒤에그는스스로말을버렸다.그것이세상이준크나큰고통으로부터자신을지키는벽이었을것이다.---p.105「SweetBall」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