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한 소녀가 또 사라진다 - 사유악부 시인선 6

세계에 한 소녀가 또 사라진다 - 사유악부 시인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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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난해 동인지 〈시애틀도 아닌데 잠 못 이루는 밤〉을 펴내 지역 문학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창원의 창작 동인 ‘울’의 시인들이 1년 만에 2집 동인지 〈세계에 한 소녀가 또 사라진다〉를 펴내 주목을 받고 있다. 창원의 중진시인 8명이 창작 동인 ‘울’을 결성하고 첫 동인시집을 사유악부에서 펴낸 뒤 왕성한 시작 활동을 이어 가 또 한 권의 동인시집을 세상에 선보였다. 김승강 정남식 임성구 이주언 박은형 김명희 서연우 최석균 시인은 이번 2집에서는 특집으로 ‘기후변화 시대의 시’를 화두로 삼아 극심한 기후 변화시대를 맞이하는 시인들의 정서를 각 각 시에 담았다. 특집 기후 변화시대의 시 외에도 신작시 7~8편을 시인별로 게재해 동인시집을 읽는 기대와 감동을 전하고 있다.
이들 ‘울’ 동인은 이번 2집 서문에서 ‘ 실제로 집 앞으로 배달되는 물건들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매일이다시피 배달되는 각종 물건을 뜯어보면 플라스틱이나 비닐류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일주일에 한 번 버리는, 가슴까지 차오르는 재활용품 꾸러미를 들고 나갈 때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위기의식을 느끼고는 한다. 물론 상당수 페트병 중에 술병이 들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물건들을 치우고 나면 다시 출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지난밤에 시킨 총알 배송품들을 먹거나 소비한다. 이것이 기후 위기와 무슨 관계일 것인가? 지구 온난화가 일으키는 생태 파괴적인 여러 현상을 간단하게 말한다면, 근미래인 2050년경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지고, 지구에 사는 생물종 가운데 4분의 1이 멸종하며, 해수면 상승으로 방콕이나 호찌민 같은 대도시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2100년이면 부산의 해수면 높이가 건축물의 바닥 높이와 같아진다는 보고서도 나와 있다.’고 전제한 뒤 ‘그 미래를 우리가 현재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인식이 이 기후 시를 쓰게 한 원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후 시가 하나의 장르가 되는 것을 우리는 원치 않는다. 기후 소설이 이미 출현했듯 기후 시가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전개되고 발전할 것인가 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 행동가들은 저의 몸으로 기후를 말하고, 심지어 그 행동의 결과로 노역을 자처하기도 한다.’고 선언한다.
저자

창작동인울

저자:창작동인울

목차


서문|4
정남식북극의잠|17
서연우무슨|18
임성구식물들의삶|20
김승강밥솥안의뻐꾸기|21
이주언지구에,그린|22
박은형51°|24
최석균물의눈물|26
김명희내이마를짚어주듯|28
지구의이마를짚다

-특집-

정남식

목서통신|32
작은빨간집모기|34
벌마늘|35
수미감자|37
노역|40
일몰에대하여|42
한라산남쪽끝|43
따뜻한물가|45
국경|48

서연우

침묵|52
코코넛이야기|54
上이라는갑골문자|56
밥의크기|58
도깨비바늘|60
불안|61
잠시,산다|62

세계에한소녀가또사라진다|63

임성구

매실엑기스를쏟다|64
문장치매|65
팬텀싱어|66
하느님,참잘살았다고말해주실래요|68
마침표증후군|70
더블double거짓말|71
순한악마의섹시한분통憤痛|72
식물에미안하다고할뻔했다|74
선생님시는무척아파요|75

김승강

장마|78
청담동|79
그많던흑백|81
친구의초대|82
원탁의술자리|83
시집을돌리다|85
회장님께|87
동생과춤을|89
학교는언덕위에있었다|91

이주언

바퀴와분홍깃발|94
인지장애저녁무늬나방의날개를본적있다|96
출토를위한가설|98
옛집|100
없는당신을본다는거|102
카페라떼|104
이팝나무|106

김명희

달방|108
거인|110
이주|112
여든|114
평범한하루|115
남은자의날|116
못둑|117

박은형

백구,그후|120
캔디주먹|121
나비문장|122
나의작은세월|124
새인사|126
만복사지편겨울|128
배회중|130

최석균

벌|134
죽순|136
신발의유전|137
미로|138
구절초가피었었지|140
선크림|141
사랑|143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나는십자얼음탑에기어올라누웠다어깨를구부리며등을기대니불면의밤낮에선이얼음침대는포근하다이때비치는일광은노곤한빛이리라나는오랫동안지쳐꿈도잃었다그러니곰에서사람을꿈꾸는일이란결코없을것이다꿈꾸기는커녕사람을본다면잡아얼음굴속에냉동시키리라쑥과마늘대신얼음으로꿈꿀원시의시원이그립다오래잠드니햇살이뜨겁다빙탑에서물이흘러내린다발목이젖는다어슬렁,마음이차가워진다햇빛뜨겁다빙하에뜨거운봄이오다니....
---p.17「정남식-북극의잠」중에서

다시아침입니다
황급히무도회장에서떠난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놓였지만
유리구두를찾는왕자는나타나지않습니다
눈이빠지고넋이빠질
이때,
정체성의혼란이찾아옵니다
바람에흔들리는잡풀로덮일듯이
마침내귀중한걸잃어버린사람같이
하이힐은서있습니다
---p.53「서연우-침묵」중에서

쉼없이쉼표찍고쉼없이연결한문장
숨이찬끈으로도산다는게고마워서
해안끝황홀한낙조여!
차마너를못들인다
---p.70「임성구-마침표증후군」중에서

동생아저놈이나를원망하는눈으로쳐다보는구나괜찮다저런놈에게미안해할필요가없지동생아우리작전성공한거지뿌듯하구나내가내동생의부탁을다들어주다니오빠가미안하다오빠가미안하다하나밖에없는내동생
---p.90「김승강-동생과춤을」중에서

나침반침이떨면서사랑의지극을찾고있다
거의찾아온것같은데
불안에떨고있다
어쩌면진짜가발굴될지도모를
그러나발굴되어봤자
역시그유물은증명할길이없을
순수하고아름답고진부한
오랜연금술처럼
여전히발굴되지못한채꿈속을나뒹굴며
심지어거짓인지도모를우리의심장을점령하며
낯설고벌겋고순수한얼굴을만들어쓴
인간의미로를따라
---p.98「이주언-출토를위한가설」중에서

달의방달빛출렁이는방달을보는방
무엇이든좋습니다
서늘한골목의저녁달을기다리듯누군가를기다립니다
달에는노숙의냄새가배어있어노란작업복을말리며
달의냄새를먼곳까지타전하던그때를생각합니다
손금을후벼파며
끊어내지못한인연처럼골목구석구석서성이는
겨드랑이젖은달을몰래방으로들일수없을까요
---p.108「김명희-달방」중에서

더는보이지않는백구자리에눈곱낀봄이오고밭주인남자는괭이처럼구부러진구석을도맡았다.이따금여름을내려온새끼고라니가목줄없이묶인남자의눈빛을뒤적여백구를불러냈다.투두둑,밭귀퉁이에서는도라지꽃잇몸새로돋는소리떨어지고믿고싶지않다는데도흰저녁이조각조각긴슬픔을따로물려주었다
---p.120「박은형-백구,그후」중에서

멀어진길만큼시간이늘어나고있으니
그대를오래그리워하기에이보다좋은곳이없습니다
늘어나는시간만큼좁아진길을마주하면서
들찔레개망초번지는바람속으로
나는날마다그대와나란히걷는일을생각합니다
빛과어둠을넘어나이와황금과무관
세상에서가장길고향기로운그곳은
내가멀리가고싶어높이둔곳입니다
---p.143「최석균-사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