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의 재조명 (타공의 영웅, 특무부대장은 왜 참모총장에 의해 암살되었나)

김창룡의 재조명 (타공의 영웅, 특무부대장은 왜 참모총장에 의해 암살되었나)

$25.00
Description
1956년 1월 30일, 이승만 정부의 정보기관장이던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 소장이 출근길에 암살되었다. 현직 육군 대령이 지휘한 암살단의 배후에는 현직 제2군사령관(중장)에 이어 육군 참모총장까지 있었다. 이 사건은 건국 이후 국가권력 핵심부에서 벌어진 최대의 정치·군사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건의 실체는 충분히 규명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에게 김창룡은 ‘독재정권의 비밀경찰’, ‘고문과 조작의 상징’, ‘김구 암살의 배후’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과연 사실에 입각한 것인가. 『김창룡의 재조명』은 대한민국 건국과 호국의 격동기 속에서 사실상의 국가 정보기관장 김창룡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왜 그는 도중에 흉탄에 쓰러졌는지를 새롭게 추적한 연구서이다.

이 책은 김창룡 암살사건 재판기록, 군 자료, 당시 언론, 회고록과 증언 등을 종합 분석하여 사건의 실상을 복원하는 한편, 김창룡이라는 인물이 사후 어떻게 대한민국 현대사의 ‘악인’으로 재구성되었는지도 함께 추적한다. 아울러 이 책은 건국 초기 한국 정치가 왜 파동과 투쟁으로 점철되었는지도 구명한다. 이 책은 제목 ‘김창룡의 재조명’에 머물지 않고 그가 몸담았던 이승만 시대의 정치에 대한 전면적 재해석도 시도한다.
저자

이영훈

서울대에서한국경제사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한신대,성균관대를거쳐서울대경제학부교수로정년퇴직,현재이승만학당의교장으로활동중이다.『조선후기사회경제사』(한길사,1988),『수량경제사로다시본조선후기』(공저,서울대출판부,2004),『대한민국역사』(기파랑,2013),『한국경제사』Ⅰ,Ⅱ(일조각,2016),『반일종족주의』1·2권(공저,미래사,2019~2020)등의저서가있다.

목차

발간사
머리말

제1부김창룡사건의진실과왜곡
11956년특무부대장김창룡암살사건의진상
26·25전쟁후육군특무부대팽창과작전계통과의충돌
3한국현대사의악인이된김창룡
보론김창룡장군유족의KBS사자명예훼손손해배상청구사건판결
4대한민국건국기군정보수사기구의조직과활동

제2부한국정치의원형
5대한민국초창기정치사의재해석

제3부나의아버지김창룡
6아버지의아리아
7오래기다린기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김창룡은누구인가?
1916년함남영흥출생.만주의일본군헌병대에서공산주의자수사의실무를익혔고,1946년월남후대한민국육군에투신하였다.해방후남한에서공산세력은미국후원하의대한민국건국을저지하려대규모폭동을일으켰고,1948년8월15일대한민국건국후에도남북공산세력은국회와사법부내첩자침투,군대의반란,무장유격대파견으로신생국가의내부전복을기도하였다.이때김창룡은미군정의CIC를모델로형성된한국군정보수사기구를실질적으로운영하며군내외공산주의세력색출에앞장섰다.그는대한민국국가수호와안보역량구축의핵심공신이었다.그는1951년육군특무부대장에취임한뒤,1956년1월암살당할때까지이승만대통령의신임을바탕으로정부최고의정보기관장으로활동하였다.

그의대공수사는집요하고철저했다.그는혐의만으로서둘러체포하지않았으며,확실한증거가포착될때까지몇달이고잠복과미행을거듭하였다.유족과부하들의기억에의하면그는청렴하고강직한군인이었다.계절별두벌의군복이그가가진외출복의전부였고,5년가까이정보기관장직에있었지만부정하게남긴재산은한푼도없었다.신상필벌에엄격하여부하들은그를두려워했지만,사적으로는자애로운상관이었다.그는장교와사병의식당구분을없앴으며,일상대화에선하급자에게도경어를썼다.일이바쁘면사무실야전침대에서군복을입은채잠들곤했다는부하들의증언도남아있다.

하지만1956년1월,김창룡은일단의군부인사들에의해암살되었다.이사건은단순한개인원한사건이아니라,특무부대의군비리수사와군벌간갈등,작전계통과정보계통의충돌,이승만의군통제체제와군파벌의대립이한꺼번에폭발한사건이었다.본서는암살사건재판기록을토대로그과정을치밀하게복원한다.


특무기관장은왜육군참모총장일당에의해암살되었나?
1956년1월30일아침,출근길에나선김창룡의지프를번호판없는차량이가로막았다.군복차림의괴한둘이다가와권총여섯발을쏘았다.다섯발이명중했고김창룡은그자리에서절명했다.현역육군대령허태영일당의범행이었다.

70년간이사건은‘사원私怨이빚어낸비극’혹은‘군부파벌싸움의결과’로설명되어왔다.그러나이책의결론은그보다깊다.김창룡암살은단순한개인원한사건도,단순한비리은폐살인도아니었다.그것은이승만통치체제를지탱하던두축,곧군부내최대실력집단이던정일권군벌과대통령직속정보기구역할을하던김창룡특무대가정면으로충돌한사건이었다.

당시김창룡의특무부대는육군참모총장정일권을정점으로하는함경도파벌의비리를수사하고있었다.국방부원면부정사건,장성들의비자금과사생활문제,군고위층의부패가수사망에걸려들었다.그러나정일권군벌은단순한부패집단이아니었다.6·25전쟁이후비대해진군부를장악하고있던정일권은이승만정부가군을통솔하는데의지하지않을수없는핵심인물이었고,자유당의2인자이기붕과도연결되어있었다.반면김창룡특무대역시이승만이군부를감시하고통제하기위해의지한또하나의핵심보루였다.

결국김창룡암살은이승만체제외부에서가해진공격이아니라,그체제를떠받치던내부세력들사이의충돌에서발생한비극이었다.이승만은군벌을이용해군을통제했고,특무대를이용해그군벌을감시했다.그러나국가정보기구가제도적으로확립되지못한상황에서특무대의정보권은군지휘계통의작전권과충돌할수밖에없었다.군부의비리와파벌을파헤치던김창룡은바로그충돌의한복판에서희생되었다.

이승만대통령은정일권에대한전면적수사가군통수체제의파탄을초래할것을우려하여수사범위를제한하였다.그결과사건의최고배후로지목될정일권은끝내단죄되지않았다.김창룡암살은군고위층비리은폐사건이었을뿐아니라,신생대한민국이군부를장악하고국가정보체계를세워가는과정에서빚어진통치체제내부의파열이었다.


희생자가‘현대사의악인’이된이유는?
1956년암살직후,이승만정부에비판적이었던경향신문과동아일보조차그를'타공전선의제1인자','공과사를엄연히구별한모범적군인'으로애도하였다.그러나불과30~40년뒤그는'고문과조작의기술자','김구암살의배후'로규정되기에이른다.무엇이이극적인전도를가능하게하였는가.

악마화의시동을건것은암살범들자신이었다.허태영과강문봉등은김창룡을'전횡과조작의화신'으로매도하였다.4·19로이승만정권이무너지고5·16이후암살가해자들이오히려득세하자가해자들이'민주화영웅'의지위를얻었고그들의자기정당화서사가대중에유포되었다.

결정적인전환은1980~90년대민중민족주의사관의확산과함께왔다.'반공투쟁을통한자유민주주의국가의성립'이라는국가서사가'분단과양민학살'의서사로뒤바뀌면서,반공투쟁의최전선에섰던김창룡은'국가폭력의상징'이되었다.KBS드라마는아무런사실적근거없이그를김구암살의배후로묘사하여이이미지를수천만시청자의뇌리에각인시켰다.유족이사자명예훼손손해배상소송을제기하였으나법원은1심부터대법원까지모두기각하였다.'믿을만한상당한이유'가있으면허위사실도방송해도좋다는것이었다.역사왜곡에법원까지면죄부를준셈이다.

이책이밝히듯이김창룡개인의악마화는대한민국건국의정당성을부정하는역사서사전복과동전의양면이다.역사의공로자를악인으로만드는사회는병든사회이다.


이승만정권이독재정권?
김창룡의특무부대가지키고자한이승만정권은오늘날흔히민주주의를후퇴시킨독재정권이었다고평가된다.이책의제2부는이승만정권이독재정권이었는가를정면으로다룬다.

당시야당은부산정치파동(1952)과사사오입개헌(1954)을이승만독재의증거로내세웠고,이러한주장은오늘날까지도널리받아들여진다.그러나이것은당파적입장에서의피상적인관찰에불과하다.1948년제헌헌법은국회가대통령을선출하고국무원이과반수의결기관이며대통령임기를4년의1차중임으로제한한'준내각제적'체제였다.유진오등몇몇법률가와임정출신의신익희와한민당등은이승만을대통령으로추대하면서도내각제적헌법으로실권을국회에붙들어두려했다.1948년당시세계에서대통령임기를4년의1차중임으로제한한나라는대한민국이유일하였다.제헌헌법이일그러진공화체제를담았던것은이승만에대한제헌의원들의‘당쟁하는마음’에서기인하였다.결국,이승만은직선제및중임제한철폐의두차례개헌을관철하였는데,그것은억압과무리수를동반하는정치파동의형태를띨수밖에없었다.

이렇게이책은1950년대정치사의혼란을이승만개인의권력욕으로돌리는통설에정면으로도전한다.야당이내세운'민주주의'는막스베버가말하는'신념윤리'의수준을크게벗어나지못하였다.그것은선의와정의라는명분에따라행동하되그결과는중요시하지않는전통적도덕정치였다.조선왕조이래혈연·지연·학연에기초한가산제(家産制)문화와신념윤리가지배하는정치풍토에서이승만은국가와민족의생존이라는목표를위해강건한책임윤리의정치를추구한것이었다.이런해석이타당하다면,야당이'독재'라규탄한이승만의행동은전통적당파정치의한계를뚫고근대적책임윤리의정치를실현하려는소명의과정이었다고재해석될수있다.

이승만은1904년한성감옥에서집필한『독립정신』에서부터국민이선출하는대통령중심제를'인간사회가고안한가장선미한정부형태'로보았다.야당과한국정치학계는이점을외면하였다.이승만대통령은공산세력으로부터국가를수호하고또야당의거센당쟁을이겨내고군을통솔하는가운데이나라자유민주주의의토대를닦았다.그통치체제의핵심보루였던김창룡특무부대의역할역시새롭게평가받아야한다.


왜지금김창룡인가?
오늘날대한민국에서는1948년건국의정당성이의심받고있다.건국을반대한김구가국부로추앙받고,이승만은친일독재자로매도된다.아울러김창룡도국가폭력의실행자로간주된다.
그러나한국가의성립과유지과정에서폭력여하가판단기준이될수는없다.대한민국이실제로어떠한위협속에서건설되었으며,국가를유지하기위해어떠한정보·수사체계를필요로했는가.그리고그과정은왜훗날‘국가폭력’의서사로만기억되게되었는가.이책은우리가이질문에새로답할것을촉구한다.


가족이기록한‘인간김창룡’
본서제3부에는김창룡의두딸이쓴글이수록되었다.아버지가암살된뒤가족은긴세월사회적낙인과왜곡된기억속에서살아야했다.먼브라질로의이민,타국에서의생존과자립,그리고아버지에대한그리움이담담하면서도절절한필치로기록되어있다.‘현대사의악인’으로기억되는인물의실재모습과남겨진가족의삶역시이책의중요한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