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 박찬익 : 독립운동의 주춧돌 - 망우인문학총서 1

남파 박찬익 : 독립운동의 주춧돌 - 망우인문학총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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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망우리공원(망우역사문화공원)은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서민이 공존하는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다. 우리는 그들의 비명(碑銘)을 통해 격동적인 한국 근대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망우리 인물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망우인문학총서’의 첫 번째 책 《남파 박찬익》은 ‘백범 김구의 오른팔’로 불린 독립운동가 박찬익의 생애를 소개한다.

박찬익은 임시정부 시절 대중국 외교를 전담하고 한국광복군 창설과 해방 후 재중 한인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 및 귀환을 담당한 주화대표단장으로 활동했으며 임시정부의 환국에도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지만, 관련 자료와 학계의 연구는 미약하다.

이 책은 소설가 박영만(1914~1981)이 지은 《주춧돌》(신태양사, 1963)을 현대 어법에 맞게 문장을 다듬고 고쳐 재출간한 것으로 박찬익에 대한 가장 충실한 자료이자,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유이민사와 독립운동사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이다.
저자

박영만

저자:박영만
평안남도안주출신.1929년진남포공립상공학교3학년재학시광주학생운동에가담하여퇴학당했다.1933년일본에유학하여와세다대학에서영문학을전공하였으나임시정부와주고받은영문편지가발각되어중퇴하였다.유학시석남송석하의권유로매년방학때마다귀국하여전래동화를채집하여《조선전래동화집》(1940)을펴냈다.1937년송촌지석영의일생을다룬희곡「선구자」를썼다가항일혐의로일경에압수당했다.이후1940년2월조선문인협회의친일문인을성토하는유인물을배포하고중국으로망명했다.광복군총사령부선전과장(중령)으로광복을맞아1945년9월임시정부선전부서울사무소장,1948년한미문화협회총간사로활동한것을마지막으로이후별다른공직을맡지않고드라마(KBS라디오)작가와소설가로생을마쳤다.주요저서로는,뛰어난문학사적가치와문학성으로재출간된《조선전래동화집》(보고사,2013),이범석을모델로한《새로운성》(학예사,1948~9),박찬익의전기소설《주춧돌》(신태양사,1963),광복군관련논픽션소설3부작《광복군》(협동출판사,1967~72)이있고유작으로한일고대사를다룬《동방의태양한민족》(육지사,1982)이출간되었다.1963년대통령표창,1977년건국포장,1990년애국장에추서되었다.

역자:김영식
망우리공원에관한최초의저서《그와나사이를걷다-망우리사잇길에서읽는인문학》(2009,문광부우수교양도서)을출간하고개정판을거듭하여2023년7월개정4판(완결판)을냈다.또한,망우리의의미와가치를정리하고에피소드를담은《망우리사잇길에서》(2023)를출간했다.2014년부터서울시와중랑구의망우역사문화공원관련학술용역을다수수행했으며산림청장상(2012,한국내셔널트러스트),서울스토리텔러대상(2013,서울연구원)등을수상했다.일문학관련으로《한줄에울다-명작하이쿠에담긴생각과기억》(2019)이라는에세이를썼고10여권의일본근대문학번역서를냈다.(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망우리분과위원장,중랑구망우역사문화공원운영위원회위원장이며2023년망우리연구소를설립하고2024년망우인문학회를결성하였다.

목차


〈망우인문학총서〉간행에부쳐
옮긴이서문
지은이서문

박정승댁도련님
새로운길
오리골탄실이
망국전야
망명
만주벌판
진구렁속에서
넓은무대
폭풍속에서
주춧돌

지은이후기
옮긴이후기

출판사 서평

침체에빠진임시정부와독립군재건의기틀을마련한외교의달인박찬익

손문(쑨원),장개석(장제스),송미령(쑹메이링),진과부(천궈푸),진기미(천치메이)등은대한민국독립유공자중에서최고등급인대한민국장을받은다섯명의외국인으로서모두중국인이다.우리와손잡고항일운동을펼쳤던배경도있었겠지만,이들의공훈이면에는뛰어난중국어실력을바탕으로중국혁명가들의존경과신뢰를받으며국민당정부의요인들과밀착외교를펼친박찬익의활약이있었다.중국에서벌인독립운동이중국정부의정책에영향을받지않을수없는상황에서광복군창설이나좌우합작을비롯해임시정부요인과가족의거주및생계문제,중국국민당정부의정책및자금지원을얻는일등에박찬익은특유의외교적수완과기지를발휘했다.가령박찬익은1933년백범김구와장개석을만나게함으로써이봉창,윤봉길의의거이후침체에빠진임시정부와독립군재건의기틀을마련,우리독립운동사상중요한비약과발전을가져오는일대전환기를마련한바있다.(290쪽참고)

그러나파주출신의독립운동가인남파박찬익의대중국외교활동은그중요성이나의미에비해구체적으로알려진내용이없다.1989년‘남파박찬익전기간행위원회’가펴낸《남파박찬익전기》가있지만이책은상당부분에걸쳐박영만선생의《주춧돌》을그대로인용하였다.다행히지난2015년박찬익의유족이경기도박물관에2천여점이넘는유물자료를기증해특별전시가개최되면서독립운동에헌신한박찬익의집안이야기가대중과언론의관심을받았을뿐이다.

백년전필름을보는듯생생한만주및중국에서의독립운동이야기

책의저자박영만은광복군출신으로중경에서직접남파선생을대면하고남파에대한많은이야기를직간접적으로들으며남파를존경하게되었다.저자는“남파선생같은분이야말로참으로많았던독립운동가중에서도특출한분”으로기억한다.특히남파에관한글을집필한계기를‘지은이서문’에명확히드러내고있다.

“한인간이아무리자기조국의독립을위한다해도그토록자기를돌보지않고다바칠수있을것인가싶도록그는조국을위해언제나전부를바치려고작정한순교자와같은성스러운데가있던분이다.그러므로참다운한인간이꾸준히걸어간길은언제나우리에게무엇을주리라믿기에,나는언제고그분을두고내무딘붓으로나마한번가다듬어써보고싶었던터인데,이번에뜻을이루었으니오랜체증이내린것같은후련함을느낀다.”(‘지은이서문’에서)

박영만저자의붓끝에서펼쳐지는대한제국의망국과정과만주와중국에서펼쳐지는독립운동이야기,그리고당시일반민중이감내해야했던현실은책의소설적구성에힘입어생생한현장감과몰입감을선사한다.무엇보다저자가서문에서밝혔듯이박찬익이라는인물의발자취를따라가다보면,가족과명예를돌보지않고자기가하는일이조국독립이라는집을짓기위한터닦이며주춧돌을마련해놓는것이라스스로믿고헌신한,순교자같은독립운동가를만난다.시인조지훈이쓴그의망우리묘비명“깊이감추고팔지않음이여지사의뜻이로다.한조각붉은마음이사백일이비치리라”라는구절의의미가통절하게다가온다.

길림성의왕장작상과교섭,중광단에실탄과무기제공

박찬익이할일은늘태산같았다.서간도의신흥학교에서는중국어와한국역사를가르쳐야했으며경학사(서로군정서)라는독립군양성소에서외교를도맡고있었다.당시두만강을넘어만주로들어오는의병들을끌어모은군사단체(훗날의북로군정서)인중광단단장이었던서일은어느날남파에게“사람은있으나무기가통없는빈손이라군대라고는명색뿐이니제발남파가와서중국당국과교섭하여무기를얻어달라”고부탁한다.(197~198쪽)남파는자신에게중국어를가르쳐준선생의소개장을들고만주의왕장작림의아우인장작상을만난다.장작상은당시만해도만나본사람이없다는길림성의왕이었다.남파는우리나라의독립이없으면만주의독립도보장할수없다는점을강조하면서망국의억울한사정과독립을기어코쟁취해야겠다는열변을토한다.남파는결국보병총삼백자루와권총열자루,수류탄백오십발,탄환오천발을얻어중광단에게제공한다.독립운동가들사이에남파의존재감이커지게된결정적인계기가된다.

장작림과장작상의인연또는악연은이후에도계속된다.가령장작림의동북군이신흥학교를포위하고한국인들을사흘안에내쫓으라는명령을내림으로써숱한동포들이굶어죽고자살하게된사건을남파는수완과기지를발휘해해결하기도했다.(215~219쪽)

임시정부의구상과예관신규식과의만남

남파는군사활동에만치중하는독립운동의한계를누구보다일찍간파했다.만주의군벌인장작림이나장작상에게대항할만한조직력과군사력도없는상황에서하루아침에만주에서쫓겨날수도있는상황이었기때문이다.이때남파의머리에떠오른생각이임시정부였다.

“그렇구나!우리도임시정부를세워야한다.흩어져있는모든독립군과독립운동가들에게명령할수있고총괄할수있는임시정부를세워야한다!장작림의세력과마주설수있는강력한발언권을가진임시정부를조직해야한다!”(227쪽)

이후남파는남북만주를두루돌아다니며임시정부수립과무장세력의단일화를역설하지만,그과정은험난했다.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서임시정부를설치한다는소식을접하고는뒤통수를맞은듯배신감과허탈감까지느꼈다.이때만난예관신규식은남파의삶에큰영향을끼친다.신규식과의만남으로박남파에게는넓은대륙에서의활동무대가펼쳐졌기때문이다.의형제관계를맺은신규식은상해에서독립운동가들의연락과지도기관으로동제사와한중혁명가들의조직인신아동제사라는두단체를조직해중국인혁명가들과친숙한관계를구축해놓은인물이었다.신규식은그의중국인동지들에게남파를소개해줌으로써훗날남파가대중국외교의최전선에서활약할수있는터전을마련해주었다.

삼일운동의도화선이자신호탄,무오독립선언서를선포하다

박찬익은미국윌슨대통령의민족자결주의를접하고중국혁명의거두호한민을찾아가미화450달러를얻어가지고온다.돈이마련되자남파와신규식은상해에와있던일본유학생지도자조소앙을불러이틀동안논의한다.며칠후조소앙은일본으로건너가명령받은바를실천하고만주로간다.그뒤를이어동제사회원방효상,곽경,정원택등과신규식의동생신건식등이신규식의밀서를들고본국으로떠난다.월남이상재나의암손병희등에게밀서를전달하기위한것임은말할나위도없다.남파자신도상해를떠나만주로가서일본에서본국을거쳐만주로온조소앙을다시만난다.이둘은서일,김좌진,나중소등을비롯한39명을끌어모아대한독립의군부를조직한후독립선언서를작성하여남북만주에흩어져있는독립운동가와동포에게뿌린다.이것이바로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의탄생배경이다.이후상해로돌아간남파는일본동경유학생들이독립선언을발표했다는소식과뒤이어본국의삼일운동을접하고감격과흥분을감출수없었다.

“입을다물리라!삼일운동을일으키자고나와예관형님이맨처음상의하여사람을일본으로보내고본국으로보내고만주로가서독립선언서를지어국내에보냈다는일들을모두입을다물어입밖에내지않으리라.”(246쪽)

세끼밥은굶어도담배는끊을수없다던백범이담배를끊은이유

남파의올곧은성미를경원해오던임시정부몇사람은남파가재정조달과대외적교섭을도맡고있는것에대한시기와질투심으로모략을꾸며백범김구마저움직이게만든다.결국남파의권한이자임무를안중근의셋째아우안공근에게맡기게되는데,남파는이때인생의쓰라림을뼈저리게맛보고백범및임시정부와갈라서며방황하게된다.

신규식과막역한관계였던호한민을찾아간남파에게호한민은이렇게말한다.“세상이란다그런거요.죽도록일을해주고나면열매는딴놈이따먹으려한단말이지.왜저강물을건널때여울을찾느라막대기를쓰지않아?막대기를짚으면서얕은곳을찾아강을건넌단말이지.강을건너고나면고마운막대기를내동댕이친단말이지.”(298쪽)

그러나남파대신새로임무를맡은이가하는일은불미스러운일뿐이고신통한성과가없자백범은크게뉘우치고이동녕의중재로남파와화해를한다.이때백범은남파를멀리하였던것을자기의죄책으로알고뉘우치며한가지결심을한다.백범이세상에서가장좋아하는담배를끊어버린것이다.(333쪽)세끼밥은굶어도담배만은끊을수없다고말하던백범이남파를대하는방식이이러했다.

임시정부중경시절의남파,광복군창설과오당통일의과업을이뤄내다

중경에서남파는국무위원이자법무부장을지내면서막중한몇가지일을수행한다.대표적인일은광복군의창설이다.(344쪽)중일전쟁이터지자본국에서수많은동포청년이밀물처럼중국각지로일자리를얻으러들어와임시정부의문을두드린다.남파는이들을조직해조국광복전선에내세워중일전쟁이세계전쟁으로번져가는절호의기회를놓치지않고조국의독립이라는민족의비원을풀때라고판단했다.이청천,이범석등의독립군출신장군들이나김구등과이마를맞대고의논에의논을거듭하고,집에돌아오면광복군창설에관한의견서나계획서,임시정부의공문을작성하는등의노고를바쳐마침내한국광복군을창설한다.

한국광복군을창군한것외에도,임시정부의유지비와공작금으로총9억원에달하는돈을중국정부로부터끌어내임시정부활동을지탱하였으며,중경에있는모든한국독립운동가와그들의가족에이르기까지나눠줄배급미인평가미(平價米)를매달여든섬씩지급하도록하였다.특히남파가정치적으로비범한수완을가진사람임을증명해준일은오당통일(五黨統一)이라는과업이다.임시정부에는각기다른정당이있었기에임시정부내부의단결에장애가되었다.임정에서의이고질을없애고자임시정부가애를썼으나성과를내지못하다중경에서남파의역할이주가되어마침내오당통일을해냈다.남파는자신이맡고있던법무부장자리도내주면서오당통일에힘을보탰다.

해방후주화대표단장을맡아수백만동포의생명과재산을지켜내다

세월의풍상을겪은임시정부와광복군사람들은해방이되자설레는가슴으로그립던조국산천을향해떠난다.그러나남파와그밖의적지않은사람들은중국을떠날수가없었다.중국천지에남아있는수백만의동포가있었기때문이다.남파는한인의생명과재산의보호및귀환을책임지는대한민국임시정부주화대표단의단장이라는막중한직책을맡는다.임시정부안에이러한중책을맡아볼사람은남파한사람밖에없었다.(356쪽참조)

이중책을맡자단장남파가처음으로한일은6억원이라는막대한돈을환국하는임시정부요원들의여비로얻어낸일이며,임시정부전체가족들이중국을떠날때까지의생활비를받기로한것,그리고장개석에게중국안에있는한국인들의생명과재산을절대로보호해주라는명령을내리게하였으며직접방송하게한일이었다.물론만주에있는동포들도이명령에포함되어있었음은말할나위도없다.중국과만주에있는수백만명의동포는남파박찬익이라는한사람의힘을크게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