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코 여자

하얀 코 여자

$17.31
Description
일본 아쿠타가와상 최초의 여성 심사위원
고노 다에코의 미스터리한 역작

사랑과 낭만을 대신한 집착과 광기
과연 그녀의 삶은 비극이었을까?
“17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어느 소도시 국가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로 처형받게 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마지막 이별 자리에서 결혼한 지 겨우 2년 된 아내의 코를 물어뜯었다. 이것은 그 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살아간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 소설의 첫 장은 주인공 엘레나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간 가장 큰 사건을 무덤덤하게 소개하며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양초 가게 엘레나’라 불리며 모두의 이목을 끌고 세간의 소문에 오르내리며 살아간 여인, 엘레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항구 도시에서 시작한 신혼 생활에는 사랑과 낭만 대신 그녀를 향한 남편의 집착과 광기가 함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분노와 의심으로 자신을 옭아매는 남편이 저지른 살인 사건과 그에 따른 사형 소식으로 인해 그녀의 삶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한다. 남편의 죽음으로 어쩌면 엘레나는 아름다운 미망인이자 자유로운 여인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사형대를 뒤로한 채 아내에게 달려든 남편의 행동은 그녀를 평생 ‘하얀 코 여자’로 살아가게 한다. 한 번의 결혼과 한 번의 상처. 《하얀 코 여자》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이 휘몰아친 그날 이후, 그녀에게 남겨진 평범하고도 기구한 나날에 대한 기록이다.
선정 및 수상내역
제41회 마이니치 예술상 수상
제10회 이토세이 문학상 수상
저자

고노다에코

河野多恵子
1926년오사카에서태어났다.1950년〈문학자文学者〉동인을통해작가로서의활동을시작하며1962년《유아사냥幼児狩り》으로신초샤동인잡지상을,1963년《게蟹》로일본문학계최고권위의문학상이라평가되는아쿠타가와상을수상했다.이밖에도소설《뜻밖의목소리不意の声》와평론〈타니자키문학과긍정의욕망谷崎文学と肯定の欲望〉으로요미우리문학상,《미라채집엽기담みいら採り猟奇譚》으로노마문예상,《하얀코여자》로는마이니치예술상과이토세이문학상등다수의문학상을수상했다.일본전후시대에활동한여성소설가로서자신만의입지를다지며1986년여성으로서는최초로아쿠타가와상심사위원이되어20년간활동했고,2014년일본문화훈장을수여받았다.

목차

제1부소문
제2부상처
제3부불꽃

해설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나는아내가영원히나를잊지않기를원합니다.”

17세기토스카나의어느작은마을에서벌어진충격적인사건
뒤틀린욕망과사랑이바꿔놓은하얀코여자의삶

전구가발명되기도전인17세기이탈리아,그곳에는대를이어품질좋은양초를판매하는나르디상회가있었다.100킬로미터떨어진피렌체지역까지양초를납품할정도로규모가있는상회를운영하는나르디씨의고민거리는딱하나,스무살을모두넘긴네자녀의혼사였다.어린시절에는그나이애들같지않게무뚝뚝한표정과적은말수로‘양초가게엘레나’라고불리며시장상인들의입에오르내리던나르디상회의막내딸엘레나는어느덧숙녀티를내는아름다운여인으로자라,이제는마을청년들의입에오르내리며‘양초가게엘레나’라는별명의의미를바꿔나갔다.
그녀의어머니프란체스카는그시절의여느여인들(예를들어엘라나의언니아디나같은)이그러하듯엘레나가정숙한여인이길바랐지만,엘레나는사교모임에가“러브레터따위하나같이장황하고허풍스럽고자신에게취해있다”는말을하며어머니의화를돋우기도했다.그랬던그녀가나르디상회의네자녀중가장먼저결혼소식을알려온건뜻밖의일이기도,혹은너무나자명한일이기도했다.하지만새하얀드레스를입고성당에서결혼식을올릴때는아무도알지못했을것이다.머지않은미래에그녀가불행에휩싸인미망인이되어친정으로다시돌아가게되리라는사실을.어쩌면결혼첫날밤,자신의아내가순결한여인이라는사실을깨닫고귀한양초를백개나챙겨성당에달려가신께감사의기도를드리는남편자코모의행동에서,엘레나의평탄치못한삶은이미예견되었을지모른다.

처형대를뒤로한채아내에게달려든사형수와
평생‘하얀코여자’로살아가게된비운의여인

결혼식을올린지겨우2년을조금넘겼을무렵,엘레나의남편자코모는살인사건의범인으로현장에서체포된다.짧은결혼기간동안에도엘레나를향한짙은의심과집착을보인자코모였기에,순간적인분노를참지못하고자신을모욕한이를향해칼을휘두른행동은갑작스럽지만어쩌면언젠가찾아올(혹은언젠가엘레나에게닿았을지도모를)필연적인위험처럼보이기도한다.사형대를뒤로한채아내와의마지막접견에서그는눈물을흘리고있는아내에게로달려든다.자신의죽음이후아름답고젊은미망인이될‘양초가게엘레나’를향해다가올남자들을미리처단하기위해,그들대신그녀의얼굴을훼손시키기로결심하곤그녀의코를물어뜯는다.결국엘레나는또다시자신을세간의입방아위에평생올려둘깊은상처를얻게되었다.그녀의나이고작22살의일이었다.
질투심과욕망에눈이멀어사형대를뒤로한채아내를공격하기위해달려든사형수와그로인해칩거생활을하며자신의코를하얗게칠하는여자.이끔찍한사건이무색하게도《하얀코여자》는17세기이탈리아항구도시의이국적인전경과함께너무나평온하게,그리고아름답게흘러간다.토스카나지역에서생산된품질좋은밀로엮은밀짚모자와우스꽝스러운모습으로거리공연을하는악단,교역이활발한수출항시장의상인들이파는조그마한수제바구니나싱싱한소라고둥,드넓은해안가를가로질러다니며여유롭게산책하는수많은마차들….저자고노다에코가아쿠타가와상심사위원이던시절에상을수상한소설가가와카미히로미는그녀의소설에대해이런말을남겼다.

“마치명필이붓을움직이는것처럼고노다에코는소설을만들어내는듯하다.그리고몇번이나말했지만그것은거의틀림없을것이다.하지만그런매우침착한형태에의거한수법,그것만으로고노다에코의작품은완료되지않는다.그것만으로도충분하지만,어쩐지그이상의무언가가분명히있다.그리고나는그미스터리를도무지풀수없다.”

《하얀코여자》를집어든독자들에게고노다에코가전하고자하는것은그저파격적이고섬뜩한하나의사건이아니다.수백년도전에이탈리아의어느도시국가에살다간어느한여인의삼십여년의생애그자체이다.

일본아쿠타가와상최초의여성심사위원이자
일본예술가최고의영예인일본문화훈장을수여받은시대의거장
고노다에코의문학적정수를담다

엘레나에게발생한일련의사건은그녀의삶에서일어나는가장충격적인사건일지모르나이소설이보여주는가장기이하고미스터리한면모는아니다.남편이아내를때리지않고,아내가원하는사소한일들에싫은티없이기꺼이응해주는것.이것만으로도17세기의토스카나에서자코모는좋은남편으로평가받기에충분했다.그사실을알기에엘레나는종종광기에가까운집착과질투를보이는남편의모습을어머니에게도알리지않았다.세간의사람들이엘레나에대한소문을통해그녀의행실이나사건의숨겨진뒷이야기를함부로상상하듯,‘남편’이란존재에대해엘레나도세간의평판을거울삼아자신의코를물어뜯은살인자라는사실보다세간이말하는‘좋은남편’으로그를평가했기때문일까.그녀는사건이후에도그를그리워하며그와다시한몸이되길원하고,자코모가그랬던것처럼그녀또한사형대에오르기위한방안을고민한다.

“엘레나가방화의이유를깊이고민하는것은방화그자체가하고싶은것이아니고,죽고싶기때문도아니고,어떤방식이라도괜찮으니누군가가자신을죽여줬으면해서도아니었다.엘레나는벽돌에고개를올리고도끼로내려쳐진자코모와그저같은몸이되고싶었다.”_본문중에서

대체누가양초가게엘레나의심리를이해할수있을까.그녀가방화를계획하고죽음을통해자코모와의합일을원하게된데는복수심이나자기파괴적인마음이작용한게아니다.이소설은단순히폭력적이고강압적인남편으로인해삶이무너진여인의삶을통해무엇이올바른삶인가를고민하게만드는작품이아니기때문이다.고노다에코는소설작법에대한저서인《소설의비밀을벗긴12장》에서‘소설은인생의지침이아니다’라며소설의역할을정확하게명시한다.

“교양을위해소설을읽는다는생각은전혀해본적이없다.재미있기때문에읽었고,지금도그렇다.재미있는작품은읽고있는동안의기쁨에더해,다읽고났을때의묘미또한각별하다.그작품의내용이,설령내용면에서는거칠더라도,혹은주인공의자살로끝맺고있더라도,인간이라고하는것,자연을포함한이세상이라는것이이처럼깊은맛이있는것이었던가라고,인간과이세상이라는것이그작품을읽기전보다도신선하게느껴진다.”

고노다에코의이러한생각에대해일본의소설가다케다다이준은이런말을남겼다.“작가가그럴작정으로쓴작품이더라도,독자는역시인생을어떻게살아야하는가를찾아내려한다”라고.‘양초가게엘레나’라고불리며평생을세간의수군거림속에살아간위태로운여인.우리는그녀의삶에서교훈을얻을필요는없을지모른다.하지만그녀와같이타인시선과평가,뒷말속에서살아가는우리현실속의수많은‘양초가게엘레나’를떠올리고,그들이그저‘하얀코여자’라불리며살아가지않기를,그들의삶은조금더행복할수있기를염원해볼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