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 대군 만유기

양녕 대군 만유기

$18.00
Description
양녕 대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양녕 대군의 유쾌 통쾌 조선 유람기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양녕 대군은 대중들에게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양녕 대군의 동생이 어마어마한 업적을 쌓은 세종 대왕이며, 세종이 왕위를 물려받는 과정과 양녕 대군에 대한 여러 ‘썰’들이 대중문화 속에서 재현되어 왔기 때문이다. 때로 주색에 미쳐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왕자로, 때로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부러 미친 척 흉내를 내는 왕자로 상반되게 그려졌던 양녕 대군. 실제 양녕 대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오랜 시간 양녕 대군을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되살려내며 그에게 역할을 부여한 대중 혹은 시대의 무의식일 것이다.
양녕 대군이라는 캐릭터에 일찌감치 주목한 이로 유추강을 들 수 있다. 그는 『야담』 1936년 12월호부터 1937년 11월호까지 총 10회에 걸쳐 「양녕 대군 만유기」를 연재한다. 땅에서 솟아나는 돌부처, 피 묻은 몽둥이, 죽은 지 1년 만에 다시 살아난 시체, 깊은 물 속에 웅크리고 있던 천년 묵은 이무기 등… 사건과 사연이 끊이지 않는 조선을 돌아다니며 이를 해결하는 작품 속 양녕 대군을 보다 보면 어사 박문수나 홍길동이 생각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나왔던 시대가 일제 강점기라는 점을 잊지 말자. 암울한 시대를 살며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온갖 문제를 척척 해결해 줄 영웅과 같은 존재가 희구되었으리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양녕 대군을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위안과 감동의 서사를 제공한 유추강이, 역설적으로 일제 말에는 징병을 홍보하는 선전 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는 점을 부기한다. 「양녕 대군 만유기」에서 전국을 유람하는 듯했던 양녕 대군의 행보는 황해도, 평안도, 경기도, 충청도로 끝이 난다. “뒤에 다시 기회가 있는 대로 다시 만나 뵙기로 하겠다“던 작가의 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자의든 타의든 일제에 협력하는 처지에서 백성을 구원하는 양녕 대군의 서사를 다시 잇기는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저자

유추강

庾秋岡,1886~1955
유추강은서울에서태어났다.본명은유석우(庾錫祐)이며,호는추강(秋岡)이다.그는가을의풍경을좋아하고,특히단풍물이든뫼를사랑해서추강이라는호를지었다고한다.1906년경성학원(京城學園)을졸업하고일본교토대학(京都大学)에서철학을공부하였다.이후3·1운동과연관되어옥고를치르기도했다.그가야담가로활동을시작한것은1933년경으로추정된다.당시야담은1930년대에접어들며본격적인오락독물로서그위상을떨치고있었다.잡지,신문등과같은지면뿐아니라라디오방송을통해서도야담의활용은그야말로다대하게진행되었다.이과정에서여러지식인은야담의흥행을못마땅하게여기기도했으나,독자들의폭발적수요는여러문인과다양한작가층의공급이라는결과로이어졌다.그중에서도인기있었던야담의작가가바로윤백남이나신정언,김동인과같은사람이었는데,유추강또한그들과함께당대손꼽히는야담가의하나로이름이거론되었다.그는1930년대이후라디오방송뿐아니라야담대회및여러지면을통해야담가로서다양한행보를이어갔고여러작품을남긴바있다.1940년대에는신정언과함께〈매신교화선전차대〉에소속되어징병을홍보하기도했으며,해방후에도야담과관련된활동을하다가1955년에세상을떠났다.

목차

여정에앞서/9쪽
황해도평산,구월산/25쪽
평안도대다리,평양/41쪽
평안도평양/66쪽
평안도안주/93쪽
평안도의주/123쪽
경기도과천,수원/143쪽
충청도온양,예산/167쪽
충청도광천/191쪽
충청도공주/215쪽
충청도부여/239쪽

해제암울한시대에되살아난양녕대군의쾌할유람기/260쪽

출판사 서평

◆암울한시대를이겨내는방법
활력넘치는인물들과생동하는이야기

「양녕대군만유기」는양녕대군을‘주연’으로내세우고있지만,‘조연’역할로나오는다양한인물을보는재미가쏠쏠한작품이기도하다.양녕대군은지혜와관록을지닌인물이나나이가들어체력이약해진데다가무력을겸비하지는않았다.이런양녕대군의한계를보완해주는이들이바로그의가신이라할수있는‘범이’와‘봉이’다.범이와봉이는위기에처한양녕대군을구해주면서그의수하가되는데,양녕대군과함께억울한일을당하거나위험에빠진백성들을도와준다.범이,봉이두콤비의활약을보는재미도크거니와어리숙하면서도천진스러운이들의모습은작품의긴장된분위기를이완시키며서사에생동감을불어넣는다.
‘만유기’라는특성상인물이한곳에머물지않고계속해서이동한다는점또한서사의재미를배가한다.다음장소에서는어떤인물과사건이기다리고있을지독자를궁금하게만들며,각지역에서만나는백성들이쓰는입말(방언)은그지역을더실감나게느끼고상상할수있는요소이다.요컨대「양녕대군만유기」의생동감은양녕대군혼자서만들어내는것이아니라,그의여정에등장하고개입하는수많은백성에의해만들어진다.양녕대군과백성들이어우러지며빚어지는생동감이가장잘드러나는공간은‘마방집’이다.

“얘,그럼마방집에들어가하루쉬어가자.”
“원망령의말씀이신지.마방집에를어찌들어가십니까.그리고이제길을떠나서몇걸음걷지도않고벌써쉬어가시렵니까.”
“아니다.우리무슨볼일이있어가는사람이냐.어찌그런지평양을떠나기가싫구나.어디널찍한마방집하나찾아봐라.”
“아무리그래도마방에서어찌쉬십니까.그러면감사가그렇게더묵어가시라고야단을하는데왜이렇게급히떠나셨어요.음,참망령이시지.”
“얘들아,그런말말아라.감사가아무리잘대접을해주어도원불편해견디겠더냐.막걸리한잔도못먹고그도토리깍지만한잔에감홍로인가무언가발그레한소주를눈물만큼씩주니어디혓바닥이나축여지더냐.아마너희도뱃가죽이쭈글쭈글하리라.어서얘봉아,마방집하나찾아들어가자!”
-본문중에서

양녕대군,범이,봉이는다른지역으로넘어갈때마다그곳의마방집에머문다.마방집에는“아랫목윗목에누워있는사람,앉아있는사람,티끌먼지가자욱한속에서움찔움찔하는말몰이꾼,봇짐장수,늙은이,젊은이”등온갖백성들로가득하다.사건은언제나마방집여기저기에서들려오는백성들의사연에귀를기울이는과정에서시작되며,봉이와범이를시켜사건의전말을조사한후양녕대군이직접그현장에출두해문제를해결하며하나의에피소드가끝이난다.일제강점기,대중들에게「양녕대군만유기」가인기를얻은까닭에는백성을구원하는양녕대군의매력만큼이나마방집의저떠들썩함과활기가자리하고있었는지도모를일이다.

◆틈에서찾은이야기,틈많은책장에서보내는편지

지금까지우즈베키스탄,타이완,일본의20세기초문학작품을독자들에게소개해왔다.네번째책은우리나라작품이면좋겠다고막연히생각하다가,근대야담중한작품을고르게되었다.꽤오랫동안함께근대야담을읽고공부해온멤버들이이번책의현대어번역과해제를맡아주었다.
근대야담은일제강점기에대중독자들이즐겨읽던이야기지만,조선시대야담을조합한오락적읽을거리일뿐문학적·예술적가치는찾을수없다고평가받으며문학계에서크게주목받지못한작품군이다.근대야담을쓴작가들에대한관심도미미한데,유추강의경우해방후냈던작품집중현재다시발간된것도없고그에관한연구도거의없다는점에서잊힌지식인이자작가라할수있다.한때는독자들의열렬한사랑을받았으나,지금은책들뒤에가려져틈에숨어있는미지의작품「양녕대군만유기」를소개한다.근대야담이현대의독자들에게는어떻게읽힐지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