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상상하는일은결국오늘을묻는일이다
산업혁명에서인공지능과우주시대까지,SF라는렌즈로다시읽는인간과사회
SF,즉공상과학은현실에서완전히벗어난상상의산물처럼보인다.그러나좋은SF의상상은언제나현실의과학과기술,그리고인간이살아가는사회에한쪽발을딛고있다.그렇다면우리는한가지질문을던질수있다.무한히자유로울수있는상상이왜굳이현실의가능성과과학적근거를붙들고있는가.어쩌면그이유는SF가단순히존재하지않는세계를보여주는데그치지않고,현실의조건을낯설게비틀어우리가미처보지못했던문제를드러내기때문일것이다.
김치훈의『SF와사회:미래를읽는8개의렌즈』는바로이지점에서출발한다.이책에서SF는먼미래의기계와우주선을구경하는오락물이아니라,기술과인간,기후위기,인구변화,인공지능,자본주의,우주개발까지우리사회가지나왔고또앞으로마주하게될문제들을비추는렌즈로기능한다.저자는SF를통해사회변화의징후를읽고,기술이인간의삶과제도를어떻게바꾸어왔는지다양한작품과사회사의흐름속에서짚어나간다.
상상은언제나현실에서출발한다
화성인의침략에서유럽열강의제국주의를읽어낼때
이책은산업혁명에서시작해디지털혁명과기후위기,인구절벽,인공지능과가상현실,자본주의와우주개발에이르기까지인류가경험한변화와앞으로맞닥뜨릴가능성을SF콘텐츠와함께살펴본다.중요한것은저자가역사를설명하고그곁에작품을단순히덧붙이는방식을취하지않는다는데있다.기술과사회가어떻게변해왔는지살피고,그변화가SF속에서어떤모습으로과장되고변형되었는지를교차시키며읽는다.
외계인의침공을그린H.G.웰스의『우주전쟁』에서저자는단순한침략서사너머에당대유럽제국주의의모습을포착한다.압도적인기술력으로인간을학살하는화성인의모습은군사력과기술력을앞세워아시아와아프리카를침탈했던유럽열강을떠올리게하고,화성인과인간사이의철저한비소통은식민지의원주민을동등한인간으로바라보지않았던제국주의의시선을연상시킨다.결국외계인은두려운타자이면서동시에인간문명이과거에보여준자신의얼굴이된다.
이러한독해는SF를바라보는시선을바꾸어놓는다.『멋진신세계』에서대량생산의논리가인간의삶까지규격화하는사회로확장되고,『타임머신』의미래인류가산업사회와계급분화의극단을보여주듯SF속낯선세계는아무것도없는곳에서태어난것이아니다.기술발전과자본,노동과계급,전쟁과제국주의같은당대의현실이상상력이라는프리즘을거쳐새로운사회구조와인간형으로재구성된결과다.
그렇기때문에SF를읽는일은이야기속설정의기발함을감상하는데서끝나지않는다.중요한것은그상상이어떤시대적불안과욕망에서출발했는지,그리고익숙한현실의질서를어떤방식으로과장하거나뒤집어보여주는지를살펴보는일이다.현실에서는분명하게드러나지않던문제도시간과공간을멀리이동시키면오히려그윤곽이선명해진다.SF가사회를이해하는하나의해석도구가될수있는이유다.
『SF와사회:미래를읽는8개의렌즈』가산업혁명에서인공지능의시대까지긴시간을횡단하는이유도여기에있다.기술은끊임없이발전해왔지만,새로운기술이등장할때마다인간의노동과삶,사회의권력관계역시함께재편되어왔다.산업혁명기의기계가인간의육체노동을대신하기시작했다면,오늘날인공지능은인간의지적노동까지대체할가능성을보여준다.이책은서로다른시대의기술변화를나란히놓음으로써,기술의진보와사회의진보가반드시같은속도로나아가는것은아니라는사실을보여준다.
SF는예언이아닌질문이다
아직오지않은세계가우리에게묻는것
그렇다면왜하필SF인가.현실을비판하고사회의문제를이야기하는다른장르도얼마든지존재한다.그럼에도SF가갖는특별한힘은아직오지않은일을마치이미일어난것처럼경험하게한다는데있다.과학적가능성과현실의징후를토대로한상상은‘언젠가일어날지도모르는일’을눈앞의구체적인풍경으로바꾸어놓는다.막연한경고가하나의세계가되고,숫자로만존재하던문제가그안에서살아가는인간의삶이된다.
오염과자연재해,해수면상승으로더이상사람이살수없게된지구를그리는작품이나물부족으로식수가새로운계층의기준이되는미래는터무니없는공상이아니다.우리가이미경험하고있는기후변화와자원불평등을조금더먼곳까지밀어붙인결과에가깝다.현실에서는통계와전망으로접하는문제가SF에서는한개인의삶과선택,생존의문제로구체화된다.그래서독자는단순히위험의규모를이해하는데서그치지않고,그변화가인간의일상에어떤영향을미칠것인지까지상상하게된다.
인공지능역시마찬가지다.AI가인간의노동을대신하고막대한생산성과풍요를만들어낸다고해서그자체로더나은사회가완성되는것은아니다.그혜택은누구에게돌아갈것인가.기술을소유한일부에게부가집중된다면우리는이를진보라고부를수있는가.저자는〈AI2041〉등의사례를통해인공지능의발전만큼이나금융과사회시스템의변화가중요하다는점을짚는다.결국기술의성능보다중요한것은그것을둘러싼제도와분배의방식이며,새로운기술이등장할수록사회적합의의필요성도더욱커진다는것이다.
딥페이크와가상현실의문제역시기술의편리함을넘어인간의판단기준자체를흔든다.진짜와가짜를구분하기어려운기술이발전할수록우리는무엇을믿을것인지,기억과역사는어떻게보존할것인지,기술을어디까지허용할것인지다시결정해야한다.우주개발또한단지더먼곳까지갈수있느냐의문제가아니다.달과행성의자원은누구의것이며,새로운영역에서도인류는지구에서반복했던경쟁과착취를되풀이할것인가.기술이인간의활동반경을넓힐수록윤리와제도의범위역시함께넓어져야한다는문제가따라붙는다.
이처럼SF는현실에서아직충분히드러나지않은문제를극단적인상황속에배치함으로써그본질을선명하게만든다.이미모든변화가끝난세계를보여주는것이아니라,하나의선택이어떤결과로이어질수있는지를서사의형태로시뮬레이션해보는셈이다.그래서SF를읽는독자는단순한관찰자가아니라,그세계가만들어지는과정과결과를함께검토하는참여자가된다.
SF가비추는세계는결국기술자체보다기술을사용하는인간의선택을더크게드러낸다.같은기술도어떤사회적합의와제도속에서사용되느냐에따라인간을더자유롭게만들수도있고,반대로새로운불평등과통제의수단이될수도있다.기후위기와인공지능,가상현실과우주개발을서로다른주제로만볼수없는이유도여기에있다.모두인간이무엇을만들수있는가의문제인동시에,그것을어떤방향으로사용할것인가의문제이기때문이다.
그런의미에서SF를읽고보는일은사회를바라보는자신만의시선을기르는일이기도하다.작품속설정과사건을따라가다보면기술의발전만이아니라그뒤에놓인자본과권력,노동과윤리,인간의욕망까지함께보게된다.하나의콘텐츠가재미있는이야기에서출발해사회의구조를읽는단서로확장되는순간,SF는가장대중적인방식으로가장현실적인문제를생각하게하는장르가된다.
『SF와사회:미래를읽는8개의렌즈』는그과정을보여주는한권의안내서다.SF를소비하던독자가작품을통해사회를읽고,기술과제도의관계를살피며,우리가만들어가고있는세계의방향을생각하도록이끈다.그리고책을덮은뒤에는한가지질문을남긴다.우리가상상하는미래는과연어떤오늘로부터만들어지고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