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느낀다 (남정국 시집)

불을 느낀다 (남정국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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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만 스물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문학청년 남정국이 사후 46년 만에 그의 시집 ‘불을 느낀다’를 엠엔북스에서 펴내며 시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지인과 문인들을 중심으로 그의 요절이 애석한 것은 물론 그가 남긴 시편들이 시간이 갈수록 남다른 수준을 넘어 이른바 ‘천재적인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그의 시편들은 나이와 연륜을 뛰어넘어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치고, 직설적이면서도 탁월한 은유로 시적 긴장감과 깊이를 잃지 않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사랑을 비롯한 서정적인 주제와 시대적 고통과 존재적 갈등까지 시로 육화되고 시적인 아포리즘으로 승화되면서 지금 중견 시인들의 시적 성취와 비교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형도 시인을 발굴했던 임우기 문학평론가는 “기 시인보다 젊은 나이에 좀 더 치명적인 면모를 보여준 남정국의 시에 대해서는 문학적 관심과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정국의 시들을 분석한 백학기 시인은 “시편들을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갓 스무 살이 채 안 된 시인이 이러한 시어와 울림을 빚어내고 구사할 수 있을까 찬탄이 흘러나온다. 무릇 천재란 어느 시대에나 어느 역사에나 존재했음을 상기하면 지나친 일도 아니다.”라며 그를 천재 시인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여고 시절 그를 통해 랭보와 김수영을 알게 됐다는 노혜경 시인은 “질풍노도 시대를 함께 헤쳐오던 도중에 사라져 버린 그를 46년의 시간 뒤에 다시 만난다. 이 불새는, 불을 안고 산 이 미완의 천재는, 겨드랑이의 날개를 어쩌지 못하였구나.”라며 시인으로서 요절과 미완의 천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재욱 문학뉴스 대표도 “우리 가슴 속에 응어리로 간직하고 있던 남정국이라는 인물과 시편(詩篇)을 비롯한 기록들이 그동안 박제(剝製)가 되어있었다.”라며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는 말로 그에 대한 재발견을 전했다.
저자

남정국

1958년부산출생
1974년부산수영중학교졸업
1978년부산고등학교거쳐
서울여의도고등학교졸업
1978년3월고려대학교인문학부입학
11월4일경기도가평군대성리
북한강에서타계
1975년시동인지<상(象)>발간
부산고문예반,부산전원문학회,고대문학회등에서활동

목차

시집을내면서
깊이가라앉은기억을새삼불러내며…/남인복

Ⅰ시
이반데니소비치의밤
수양버들
흑선풍이귀

어떤풍경
독백체6
독백체7
독백체8
알겠습니까·가겠습니다
봄·밤·가랑비

돌아오라쏘렌토로에부친하나님의말
답장을기다리며
수꽃이암꽃에게
어둠속에서
불을느낀다
주점(酒店)·밤
시말서(진정서)
사랑은
여름·하오(下午)
십대(十代)
죽음이오네요
착란과이유
따가운유월(六月)
사랑타령
나무
시계(視界)

Ⅱ초고·메모
일기
후기-그를한권의시집(詩集)으로남긴다는것

Ⅲ해설
‘고통’을통해‘별’에이른시인/백학기(시인)

Ⅳ부기
46년만의해후…뒤늦은고해성사/김강석
마지막여덟달의존재증명/이재욱
국이와그친구들에게/안상호

출판사 서평

‘박제가되어버린천재’시인남정국

시집『불을느낀다』(엠엔북스)가세상에나오던날,문득‘박제가되어버린천재’라는말이슬며시다가왔다.“박제가되어버린천재를아시오?”프란츠카프카가썼다는이말을작가이상(李箱)이〈날개〉라는소설의첫문장으로써서유명해졌다.하필이면왜‘박제가되어버린천재’란말이남정국의시집과겹치면서떠올랐을까?46년전홀연히우리곁을떠난시인에대한감성의발로이긴할텐데,오히려우리가슴속에응어리로간직하고있던남정국이라는인물과시편(詩片)을비롯한기록들이그동안박제(剝製)가되어있었다는안타까움때문이아닐까?

『불을느낀다』는지난1978년11월4일경기도대성리북한강에서심장마비로세상을떠난남정국이남긴작품을모은시집이다.반세기전에금쪽같은시편들을이황량한지상위에던져놓고불의의사고로사라진남정국.그때그의나이스무살이채안된다.이번시집에는선혈같고목숨같은시27편(새로찾은시한편포함),그리고일기,초고와메모등이실려있다.시인이이지상에남겨놓은것들이다.그가남긴시를한편한편넘기며읽은감회는한마디로이황량한지상의동네에서‘고통’을통해‘별’에이른시인이라는것이다.

시인의깊고깊은우물속고통의언어와생각의편린(片鱗)들은저마다밤하늘의별이되어우물속으로내려온듯신비롭다.이같은시인특유의감성과시어의울림은지금읽어도전혀반세기전의문학청년이썼다고보기힘들정도로현대적정신을모던의형식과내용에담아시로빚어낸융숭한깊이를지니고있다.어떤면에서는포스트모던까지갖춘생각의깊이를발견하고시인은반세기전에반세기를앞서서,반세기앞을내다보는예술가적시인의풍취를지녔다고짐작된다.

반세기전인데도지금인듯살아있는시

46년이라는거의반세기가까운시간차에도불구하고시집에담긴시편들은지금의세상과삶을다루고있는것처럼리얼하고생생하다.펄펄살아있다는느낌이그것이다.

대학1년,새봄을맞은신록의계절5월에시인은헐벗고굶주린시대의거울에비춘자신의목마른영혼을적나라하게빈생의원고지에채워나간다.5월에쓴‘독백체’시는봄날모든물상이새롭게옷을갈아입는날,시인자신은토요일오후네시희망처럼피는꽃과평화처럼살랑이는바람의안부에도심심하다고적는다.이는5월의가뭄,5월의목마름을통찰하며5월의위선과허구와뜬소문을직시하기때문이다.그럼에도시어는일상적이며,호흡은정갈하고차분하다.그러나시인은불편한엉덩이를뒤뚱거리며걷는거리의사람들을바라보며‘수상하다암만해도수상하다’라고토로한다.
사랑하는사람‘순이’에게시인은‘불새’가되고싶었다고고백하는시‘독백체7’은‘어떤코뮤니스트의깃발보다도더욱더욱붉게’‘활활타며날아가는새’‘불같이붉은새’가되고싶다고술회한다.시인은불새가되기위해온몸으로허물어지고,피흘리고,자유롭고싶은것이라고거듭고백한다.마지막유작이된‘독백체7’은저도저한1960,1970년대순수와참여를아우른두산맥같은시인신동엽과김수영의화법이되살아난듯한느낌을지울수없다.

시집제목이된시‘불을느낀다’는‘시’와‘불’의불가분(不可分)의결기를느끼게하는5행전문의짧은시다.‘불을느낀다’는시인의생애를함축적으로연상시키는시이면서시인만의개성과철학을일별하는시정신이올곧게담겨있다.
불을느낀다/발끝에서머리끝까지/마침내가슴으로쳐들어가는/결심하는자의망설임/그의광기(狂氣)를듣는다
그의시정신을목도(目睹)하는절체절명의언어다.20세전에쓴시라고는믿기지않는다.

이번시집에는일부중고교시절에쓴시편들도있다.중2때쓴시로추정되는‘시계(視界,1973)’도놀랍거니와고3때쓴‘여름ㆍ하오(下午,1977)’도수작이다.1974년부터1976년까지쓴6편의작품들중‘사랑타령(1975)’은매우주목되는시로그의작품가운데유일하게산문형식을취한다.시인의내면호흡이비교적잘유추되는장점을지녔다.‘철들때부터나는무던히도사랑을투정해왔는데’로시작하는‘사랑타령’은다소관념적인표현과구조를띠고있으면서도~하라,~하자와같은어미처리를보면고교1년생이쓴시라고하기에는놀라울정도로성숙한작품이다.더욱이‘잘익은호박껍질’같은비유나‘설움이북받쳐오를때는’표현은당시고교생이쓰는어투로보기에는예사롭지않다.마치1920년대김소월이나1930년대모더니즘시인이상의화법을연상시키기도해흥미롭다.

시뒤에이어지는초고와메모는시인의시상과시가되기이전의생각들이진솔하게그려져있다.어느문장에서는시인이얼마나시대와역사를치열하게온몸으로살아내려노력했는지엿보인다.무엇보다도“모름지기현대의문학은인간의소외에대하여쓰지않으면안된다.”라며인간해방,인간회복의문학을꿈꾼청소년시절젊은시인의육성이피가맺히듯서려있다.

이번시집을통해2024년7월지금여기에서,고남정국시인의삶과시문학을느끼는두가지감정속에는그의가족이느끼듯‘낯섦’과또다른면인‘생생함’이공존한다.남정국시인은“내가길떠날땐숟가락,젓가락,강아지,봉선화,요강,이불,마누라,곡괭이,모두모두남겨놓고그냥떠날겁니다.”라고했다.묘한‘낯섦’과귀에쟁쟁울리는‘생생함’이담겨있는글이다.시인의한생애가문뒤로닫히고,그의생애를관통해시집이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