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p 칩 (박성희 단편소설집)

chip 칩 (박성희 단편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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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단편소설집을 내게 됐다.

어느 문학상 예심에서 알맹이가 없다는 평을 들은 이후, 나는 내 소설을 돌아보았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내가 대학 4년 동안 했던 작업이 그저 겉만 만드는 시간은 아니었는지 반성했다. 그러다 장편을 쓰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단편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단편 쓰는 법만 가르쳤다. 혼자 좌충우돌 써보는 수밖에 없었다. 170매, 250매, 400매, 1,200매까지의 장편소설을 썼다. 하지만 난해한 문장을 덜어낸 나의 소설은 이제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어있었다.
25년간 몇 개의 장편을 쓰고, 응모하고, 떨어졌다. 그러다가 ‘됐다.’라고 스스로 말하는 순간이 왔다. 1940~50년대에 태어난 내 부모 세대에 대한 장편-수정 원고를 완성한 날이었다. 이건 더 이상 고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주제로는 이것 이상 쓸 수 없었다.
그즈음이었다. IMF 시절 버려졌던 아이들이 주민등록 시스템이 바뀌면서 버린 부모가 밝혀지는 바람에 그나마 받던 지원도 못 받게 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1950년 전쟁 이후를 살아낸 세대와 그 아이들이 현대사회 비극의 꼭짓점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90년대생에 대한 장편소설을 하나 썼다. 역시 공모에 떨어졌다.
주제가 낡은 것도 아닌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내 소설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을 모으고 합평 모임을 만들었다. 홀로 쓰는 동안 낡아버린 문장과 시선을 고치고, 여러 단편소설을 쓰며 이것저것 실험을 했다. 이번 소설집에 묶일 단편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순수문학을 한다는 건 아무도 없는 우주에서 전파를 쏘는 것과 같다. 주파수가 맞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자신의 전파를 공들여 가꾸지만 그게 누군가의 가슴에 가닿았는지는 알 수 없다.
30년간 나의 소설은 수없이 버려졌다.
이 단편소설 역시 그럴 운명이었지만, 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았다.

단편집을 내며 합평을 이끌어준 응오 선배와 함께해준 은실 선배, 상희, 문희에게 감사를 건넨다. 소설을 쓸 때마다 읽어주고 합평 모임을 뒷바라지한 남편에게도 사랑을 전한다.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를 바라며, 전파를 쏘아 본다.
저자

박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