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 양산숙 (역사가 숨긴 충격적인 진실)

유성룡 양산숙 (역사가 숨긴 충격적인 진실)

$25.00
Description
조선 중기, 가장 뼈아픈 국난의 진실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문제작 『유성룡 양산숙』(매거진U, 2만5천 원)이 출간됐다. 이 책은 ‘난세의 명재상’, ‘임진왜란의 영웅’, ‘『징비록』의 저자’로 추앙받아온 “유성룡”의 실체를 집요하게 파헤치며, 430여 년간 이어져온 역사 통념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징비록』이 감춘 것은 무엇이며? 또 우리는 왜 양산숙을 기억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답하며, 오늘날 ‘진짜 리더는 누구였는지?’을 묻고 있다.
저자

양성현

양성현은고려대경영대경영학과를나와내일신문에서기자생활을했다.역사이야기,인물이야기를쓰고있다.간간이칼럼니스트로도활동하고있다.의미를찾아가는글쓰기를하고있는것이다.『다시보는임진왜란』,『실사구시』등의책을통해임진왜란과실학의역사를찾아나섰다.줄곧의병의역사와실학의역사를따라간것이다.이번에낸책〈유성룡기축옥사〉는그동안알려진기축옥사와다른이야기다.430여년동안주류세력에의해철저히왜곡된기축옥사이야기의진실을파헤친것이다.이를위해많은기록들을찾아봤고,쓰고또썼다.양성현은역사를기록으로남긴박동량,그리고역사대중화를이끌어온이이화선생의역할을모델로삼고역사를바라보고있다.뉴미디어에새로운역사관을말하는‘디지털-의병운동’을궁리하고있다.

저서『징비록』,『다시보는임진왜란』,『사암박순』,『실사구시』,『흥학관』,『무산고제환,세도정치에맞서다』,『한양도성가는길』,『보성義이야기』,『무등,시대의스승을품다』,『매간당고택』,『이진래고택』,『영암구림마을종가여행』,『양림동걷다』,『앙코르와트4박6일』등

목차

서문_역사다시쓰다!진짜징비(懲毖)의이름으로…
역사연표

차례

임진왜란전후주요역사일정
표:서애유성룡임진왜란전후행적
표:충민공양산숙의병장연보
표:전란을맞아유성룡동인측&양산숙서인측이보인행적비교

최악의군주선조와백성의고통
최악의군주선조,그리고그의최측근
1592조선은지옥이되었다;역사가만든참극
1591임진왜란,예고된참사였지만외면했다
1555위기의시대,양산숙이전쟁을대비한이유
1587년손죽도,양산숙이본전쟁의징조
1587양산숙,왜사신통해조선의위기직감하다

봉쇄당한개혁
1589양산숙과유생50여명은왜상소했을까?
1590유성룡이보낸전라도관찰사홍여순
1569양명학배척한유성룡,애초부터개혁반대
1575당쟁의시작은개혁에대한반발이었다
1579더욱심해지는동인들의공세
1573유성룡,젊은선비들의언로를틀어막다!
158210만양병반대한자는유성룡이었다!
1583노비면천놓고갈등
1583그들은왜?

파행
1589정철은주도자가아니었다-기축옥사의진실
1589유성룡-한준-최황에쏠린의문들
1589기축옥사의주도자는오히려유성룡?
1590최영경죽음과숨은방조자
1591곧전쟁인데,대대적인서인탄압
1591송강정철제거로시작된동인의폭주

임진년,희망의싹
1592유성룡의방관vs양산숙의결단
1592전쟁대비막은책임자들처벌하라!
1592임진왜란-양산숙,가장먼저깃발들다
1592한양으로가는양산숙
1592전쟁의흐름을바꾸다…양산숙의의주보고
1592소잃고서야외양간찾은유성룡
1592두왕자포로로잡히다
1593한양수복과포로협상

진주에서의슬픔
1593진주성에서
1593양산숙,명나라총병유정을만나다
1593전투가시작됐다
1593혹시유성룡보셨어요?
1593무너진성,처절한죽음
1593유성룡의두얼굴…왜장과내통?

오독오판
1593,유성룡복귀직후…정철탄핵에올인
1594유성룡,전쟁중1년내내죽은정철탄핵
유성룡,“남탓”민낯…『운암잡록』에담긴이중성
1594무서운정치…유성룡의병들을죽이다
1596또의병장김덕령과김언욱을죽이다
1597이순신까지…유성룡의치명적오판
1594의병에충격적인막말…유성룡의민낯
누가영웅인가?
1597진주성의숨겨진영웅,양산숙!
1597누가나라를지켰나?양산숙vs유성룡

출판사 서평

‘영웅’으로포장된유성룡민낯폭로!…『징비록』서사전면뒤집다

조선중기,가장뼈아픈국난의진실을정면으로파고드는문제작『유성룡양산숙』(매거진U,2만5천원)이출간됐다.이책은‘난세의명재상’,‘임진왜란의영웅’,‘『징비록』의저자’로추앙받아온“유성룡”의실체를집요하게파헤치며,430여년간이어져온역사통념을송두리째뒤흔든다.

저자양성현은단언한다.“유성룡은조선을구한영웅이아니다.그는개혁을막고전란을키운장본인이다!”
수십년간의사료분석을통해,“유성룡이임진왜란발발전까지개혁을거부하고군사대비를방해했음”이명백히입증된다.특히김성일의“전쟁은없다”는발언을두둔,조선이참혹한전란에무방비로노출되게해인구60%인252만명희생이라는비극적참사의결정적책임을지게했다.
국방최고책임자였던유성룡은전쟁발발직후가족부터피신시켰고,6만명전멸한진주성전투를도체찰사직분을망각한채외면했다.영의정에오른뒤에는이산겸·김덕령등의병장들을‘역모’로몰아죽게했으며,조카사위김홍미를통해이순신파면과사형논의까지주도하는파행을저질렀다.전쟁후집필한『징비록』과『운암잡록』은이모든비겁함과만행을은폐하고자신을영웅으로포장한‘자기미화’에불과하다는것이저자의결론이다.

책『유성룡양산숙』은그동안제대로밝혀지지않았던기축옥사(1589년10월)의주도자로유성룡을지목한다.역병과대가뭄으로민생이붕괴된최악의상황.이혼란속에서유성룡과주류동인세력은정여립역모사건을고변·주도·확대하며‘정적숙청’의도구로활용,주류동인권력강화에나섰다.
‘유성룡주도설’의결정적근거들은넘쳐난다.기축옥사2~3개월전,유성룡은고향인동에서권문해·유운룡등동인핵심인사들과소위‘인동회동’을가졌다.이회동의주역인유운룡과권문해가기축옥사고변직후핵심수사책임자로등장했다.정철이위관을맡기한달전에이미주류동인이수사권을장악했다.역모고변자와초기수사책임자모두유성룡의대과동기이자측근이었다.인사권마저유성룡이쥔다.
사건확대역시유성룡이중심이된주류동인의개입으로이뤄졌다.1590년3월유성룡이동인계강경파홍여순을전라도관찰사로파견하고,이어5월유성룡자신이직접위관(옥사수사책임자)으로나선때부터다.무차별적으로체포·탄압이자행된다.이른바‘유성룡-홍여순라인’이작동하며최영경·정개청등비주류동인들에대한대대적인숙청이었다.기축옥사말기에는서인계인사들에대한줄탄핵이이어졌고,심지어이발의노모와자식까지압슬형으로죽이는참극이벌어진다.이는유성룡이송강정철을몰아낸뒤자행한대대적인정치보복이었다.송익필은물론역모자로몰린정여립역시희생자였는데,정여립이수괴로지목된배경에는1583년율곡이이에게보낸편지에서“파당을조장한거간은유성룡”이라비판한일이무관치않다.
이모든정황은“기축옥사이후서인이집권했다”는통설이허구임을명확히보여준다.사건전후내내동인이권력을장악했고,그중심에유성룡이있었다는것이다.기축옥사는단순한역모사건이아닌,임진왜란대비를철저히방기하게만든결정적정치참사였다.

이책은유성룡과대척점에서있던충민공양산숙을소환한다.역사의어둠속에묻힌‘진짜리더’를불러들인것이다.양산숙은젊은시절부터왜의침략을경고하고,개혁을주장했으며,심지어“유성룡을버려야조선이산다!”는직언까지임금에게했으나끝내묵살당했다.
그러나전란이터지자그는의병을일으켜전세를반전시키고,‘의주보고’를통해의병을정규군화하고,임금에게희망을전달했다.유성룡이외면한2차진주성전투에서는명군파병을집접독려하며싸웠고,서응로돌아와장렬히순절하며헌신의표상이되었다.그의숭고한헌신은유성룡의비겁함과극명히대비된다.
저자는“우리역사가바로서려면,일제가남긴식민사관과유성룡이『징비록』으로만든왜곡서사를동시에깨야한다”고강조한다.식민사관은역사를축소했고,유성룡서사는진실을뒤틀었다.그결과조선을무너뜨린책임자들이면죄부를받았고,진정한교훈은사라졌다.『유성룡양산숙』은이왜곡의벽을허물고,잊힌영웅의이름을오늘에되살리기위해펴냈다.
“『징비록』이감춘것은무엇이며?또우리는왜양산숙을기억해야하는가?”이책은그물음에답하며,오늘날‘진짜리더는누구였는지?’을묻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