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복음서는 신앙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본문입니다. 예수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하고 예수 그분의 가르침에 자기 인생을 걸고자 다짐하는 신앙인들에게 복음서는 알아야 할 알짬을 모아 놓은 보물 창고와 같습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형식이 파괴되거나 새롭게 전환된 것들이 많습니다. 오늘날에는 동물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음식 정결법도 준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본질입니다. 예배의 본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과 당대 종교 권력자들의 갈등은 본질과 형식의 싸움입니다. 예수님은 형식을 준수하고 있는 예루살렘 종교 권력자들이 아니라 본질은 지켜내면서 형식을 새롭게 전환했던 요한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도 어떤 문제가 벌어졌을 때 본질을 더 중시해야 합니다. 본질을 더욱 붙잡아야 합니다. 형식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어떤 형식에 익숙해져 버리면 형식을 전환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형식을 고수하는 분이 아니라 본질을 지켜내는 것을 훨씬 더 중시하는 분입니다. 복음서 강의는 신앙인들에게 형식보다 본질이 무엇인지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하는데 공관이라는 말은 ‘관점을 공유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떤 관점을 공유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던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어졌는가를 강조하는 것이 공관복음입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그 반대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성부와 함께하셨던 신이심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우리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이신 것입니다. 태초부터 신이셨던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음을 강조하는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단순하게 구분하면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인성을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합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관련하여 공관복음은 공생애 기간을 1년 미만으로 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짧으면 몇 개월 길어도 1년 미만으로 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3년 정도로 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인 공관복음은 세 개의 본문이 있고 요한복음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세 개의 복음서가 말하는 것보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내용에 더 익숙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대한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3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3년이라고 말하는 것은 요한복음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마태, 마가, 누가복음 세 권이 말하는 것을 우리가 더 신뢰해야 합니까, 요한복음 한 권이 말하는 것을 더 신뢰해야 합니까? 그런데 대부분 요한복음이 말하는 3년을 정답처럼 생각합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가 요한복음 중심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복음서 강의」는 요한복음을 과도하게 짝사랑하고 있는 한국 교회 현실에서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균형 있게 읽고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형식이 파괴되거나 새롭게 전환된 것들이 많습니다. 오늘날에는 동물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음식 정결법도 준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본질입니다. 예배의 본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과 당대 종교 권력자들의 갈등은 본질과 형식의 싸움입니다. 예수님은 형식을 준수하고 있는 예루살렘 종교 권력자들이 아니라 본질은 지켜내면서 형식을 새롭게 전환했던 요한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도 어떤 문제가 벌어졌을 때 본질을 더 중시해야 합니다. 본질을 더욱 붙잡아야 합니다. 형식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어떤 형식에 익숙해져 버리면 형식을 전환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형식을 고수하는 분이 아니라 본질을 지켜내는 것을 훨씬 더 중시하는 분입니다. 복음서 강의는 신앙인들에게 형식보다 본질이 무엇인지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하는데 공관이라는 말은 ‘관점을 공유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떤 관점을 공유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던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어졌는가를 강조하는 것이 공관복음입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그 반대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성부와 함께하셨던 신이심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우리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이신 것입니다. 태초부터 신이셨던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음을 강조하는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단순하게 구분하면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인성을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합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관련하여 공관복음은 공생애 기간을 1년 미만으로 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짧으면 몇 개월 길어도 1년 미만으로 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3년 정도로 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인 공관복음은 세 개의 본문이 있고 요한복음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세 개의 복음서가 말하는 것보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내용에 더 익숙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대한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3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3년이라고 말하는 것은 요한복음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마태, 마가, 누가복음 세 권이 말하는 것을 우리가 더 신뢰해야 합니까, 요한복음 한 권이 말하는 것을 더 신뢰해야 합니까? 그런데 대부분 요한복음이 말하는 3년을 정답처럼 생각합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가 요한복음 중심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복음서 강의」는 요한복음을 과도하게 짝사랑하고 있는 한국 교회 현실에서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균형 있게 읽고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복음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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