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지금,이작은교회의이야기를읽어야하는가
오늘의한국교회는여전히성장과부흥이라는말을자주사용한다.더많은사람,더큰예배당,더넓은영향력은오랫동안교회의성공을설명하는언어가되어왔다.그러나그말들사이에서한사람이지워지고,가장약한이들이예배의자리에서밀려난다면교회는무엇을잃고있는가.『바보이반교회』는바로이질문앞에독자를세운다.이책은대형교회적성공담도,특별한사역자의영웅담도아니다.성장과규모중심의교회문화에피로감을느끼는시대에,돌봄과환대의공동체가무엇인지다시묻게하는작은교회의증언이다.
왜‘바보이반’인가
저자가섬기는교회는히로시마제일교회이다.그럼에도저자가이책에‘바보이반교회’라는이름을붙인것은,이표현이자신의삶과교회를통해일하신하나님의인도하심을가장잘설명한다고보았기때문이다.톨스토이의「바보이반」에서이반은세상의명예와부,권력과군사력에쉽게흔들리지않는인물이다.세상사람들의눈에는어리석어보이지만,바로그바보스러움때문에악마의유혹이통하지않는다.저자가말하는‘바보’도그런사람에가깝다.하나님앞에서는지혜롭고,세상앞에서는바보가되는사람.계산보다순종을,성공보다사랑을,효율보다한사람을택하는사람.이책의제목은그런사람들이모여이루는교회를향한저자의고백이자초대다.
한사람을위해자기방식을바꾼교회
청각장애인교우한사람을위해수어를배운다.목회자가수어를배우고설교했다는사실만으로도눈길을끌지만,이이야기는거기서멈추지않는다.한사람이예배에서소외되지않도록교회와예배의방식자체를바꾸어야했고,다른성도들도그변화를함께받아들였다.모두에게익숙한예배보다한사람도배제하지않는예배를선택한것이다.이장면은독자에게불편한질문을남긴다.나는한사람을위해내방식을바꿀수있는가.우리교회는약한사람에게자리를내주기위해익숙한구조를고칠준비가되어있는가.
소외된이들곁으로움직이는교회
『바보이반교회』에등장하는사람들은단순히도움을받는사람들이아니다.그들은교회가무엇인지를다시묻게하는사람들이다.교회는건물안에머무는장소가아니라,한사람을찾아가함께예배하는공동체가된다.장애인과노인,재일교포,사회의가장자리로밀려난사람들을향한교회의책임이흐려지는시대에,이책은교회가누구의곁으로움직여야하는지보여준다.교회는프로그램으로만존재하지않는다.누군가의이름을부르고,찾아가고,기다리고,함께예배할때교회는다시교회가된다.
히로시마에서살아낸화해와선교
히로시마는이름만으로도아픔과상처의기억을품은도시다.그곳에서한국인선교사로22년을살아간다는것은단순한해외사역이상의의미를지닌다.언어와문화의장벽,한일관계의역사적긴장,원폭의기억이남아있는땅에서저자는자신이꿈꾸던교회가아니라하나님이맡기신사람들곁에서는교회를배워간다.이책에서히로시마는단순한배경이아니다.상처의땅에서사랑을배우고,경계의자리에서화해를살아내며,복음이실제관계속에서어떤모양을얻는지보여주는장소다.
가정에서교회로이어진사랑의방식
저자부부는일곱명의아이를입양했고,첫째를포함한여덟아이를홈스쿨로양육했다.장남과장녀는20대초중반에결혼해독립했다.이이야기가특별한까닭은숫자때문만이아니다.한아이를가족으로맞아들인다는것은한생을끝까지책임지겠다는약속이다.가족의해체와돌봄의위기가점점더깊어지는시대에,이들의입양과양육은사랑이감정이아니라생활의구조이며지속되는책임이라는사실을보여준다.저자부부가가정에서살아낸방식은교회에서도같은모양으로이어진다.누군가에게집이되어주고,자리를내어주고,끝까지곁에머무는삶.그것이이책이증언하는순종의실제다.
순종은삶의구조를바꿀수있는가
우리는순종이라는말을자주사용한다.그러나순종이내시간과공간,가족의형태와예배의방식,교회의시스템까지흔들때도그말을붙들수있는가.『바보이반교회』는독자에게이질문을피하지못하게한다.우리가말하는부흥은정말복음적인가.교회는더많은사람을모을때교회다워지는가,아니면한사람을끝까지포기하지않을때교회다워지는가.이책은교회론을주장한책이아니라,교회가되어버린사람들의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