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영화’의연대,그은밀한교접
19세기발명품으로써의‘영화’와근대신화로써의‘뱀파이어’는거의같은시기에출현했다.이것은우연의일치일까?이책은먼저뱀파이어를다룬다.뱀파이어의탄생과의미를중세이전까지거슬러올라‘악’에대한인간의식의변화함께살펴본다.‘영화’와뱀파이어사이에놓인놀라운연관을밝히는데영화의소재로서영화속뱀파이어를분석하는일은논외로둔다.다만,근대라는자장안에서뱀파이어와영화가어떤인접성을갖는지,악을비롯한인간의의식수준이어떻게변화했는지그시대정신을탐색할것이다.그지난한생각의과정은늘하나의질문으로수렴된다.바로‘영화’란무엇인가?라는질문이다.
없으면서도있는것,머릿속에서떠돌다구전되고,명문화와서사화를거쳐새롭게창조되어마침내이미지로서실재하게되는것,뱀파이어와‘영화’는바로이지점에서만나며의심할여지없이우리눈앞에실재한다.그것은움직이는이미지이자우리를쏘아보는‘뱀파이어’의눈이며‘영화’의눈이다.
영화<블루벨벳>,<블로우업>,<샤이닝>,<황혼에서새벽까지>,<마부제박사>,그리고<왕좌의게임>등이매혹적인목록이뱀파이어의역사적추적에서얻게된뱀파이어의속성을모티브로해부될것이다.이를통해‘영화’의출현과‘뱀파이어’탄생의기묘한겹침,뱀파이어의속성,예를들면최면,투사등이어떻게‘영화’의특성에전이되었는지구체적으로살펴볼것이다.뱀파이어이미지가어떻게‘영화’에자연스럽게전이될수밖에없는지살펴보는것이이책의핵심이라할수있다.
‘영화’와영화,영화학박사인저자는영화의두개념을분류하기위해표기를달리함을항상서두에밝힌다.그것은독자들의이해를돕기위한배려인동시에핵심이다.여기서다룰‘영화’란,우리가떠올리는작품으로서의영화가아닌,우리가잊고살아온,수많은창작물이세상에선을보이기위해택했던방식,바로도구로서의‘영화’다.그가집필한전작『영화의역사』도바로이‘영화’에대한역사를다룬다.그책에서저자는,‘‘영화’보기’를<이상한나라의앨리스>의‘앨리스’에비유했다.우리가어두컴컴한영화관에들어가스크린에비친이미지에감정을이입하며온갖상황을경험하고밖으로나와다시본연의평범한일상으로돌아오는행위,이기상천외한경험의본질과실체에영화와‘영화’가있음을밝힌바있다.저자는이행위,이경험에대한심도있는논의를이책<뱀파이어,이미지에관한생각>을통해이어간다.
이책에는‘뱀파이어’에대한방대한분량의자료가일목요연하게정리되어있다.뱀파이어의탄생을설명하기위해서는십자군전쟁이벌어지던11세기이전부터근대에이르는장구한역사를필요로한다.드라큘라가문의시조는물론뱀파이어가발아한‘악’을다루며,수세기동안기록으로남겨진종교적일화와기사,관련자료들이함께제시된다.중세와근대를지나오며시대에따라변천한악의역사와인간의식의변화는,추상이어떠한방법으로구체가되어개념으로자리잡아우리눈앞에현현하게되었는지를보여주는동시에,뱀파이어와영화가갖는인접성을증명한다.
죽었거나혹은나쁘거나,뱀파이어의역사
뱀파이어는애초산송장,시체를뜯어먹는추잡한괴물,그러나전혀무섭지않은괴물에서출발했다.그리고시간이지나며점차우리가익히아는속성들이부여되더니브램스토커의소설과함께지금의뱀파이어,‘용의자식(악마의자식-‘드라큘라’의원뜻이다)‘으로자라났다.악마의자식이긴하지만그렇다고삶에암약한기독교적악마도아니다.왜냐하면뱀파이어는십자가는두려워는하지만정작신앙은두려워하지않기때문이다.이속성의변화를추적하면,우리가어떻게(본질로서의)추상과현상의세계를넘나들고어떤위치에서의미를규정해왔는지알게된다.바로,근대는추상에서현상으로,본질에서질료의세계로관심이넘어온시기이며,본질은버리지않되실체로여겨왔던것을개념으로수용한시대다.
‘영화’역시인간의식의산물이다.사람들은19세기끝에이르러서야비로소움직이는이미지를가질생각을했으며,눈에보이는세상을보이는대로기록할생각을했다.그리고그것은우리가다알다시피‘(언어와는다른방식으로)말하는도구’가되었다.이움직이는의미의탄생이어떻게뱀파이어의탄생과겹치고,뱀파이어가‘영화’안에어떻게개념화되어나타나는지,그리고둘의유사한작동방식까지파헤쳐볼것이다.본문에서충분히살펴보겠지만단순히우연의관점에서유사성을말하지는않는다.뱀파이어의탄생과관련해서‘악’이물질세계저편에있는의식혹은추상이라고봤을때,‘악’이현상에작동하는방식으로보아,뱀파이어의속성과‘영화’의속성을비교하는것이기때문이다.
그런점에서이책은누구도쓰지않은책이다.‘영화’를미학적인입장에서설명하는이론서가아니라,인간의식의역사와연관지어규정하는데서출발하며,그속성을가장잘설명해줄수있는장치의하나로써‘뱀파이어’를다루고있기때문이다.빛과어둠의히야투스,간섭,교차,서로에대한욕망,이렇게만말해도뱀파이어와영화가얼마나친숙한가!게다가어떤소재를다루고어떤이야기를하든,‘영화’는계속해서이개념을우리에게전사하고있다.즉이는과거이야기가아니며,현재우리에게서움직이는‘영화’를말하는것이다.그것이이미지이며,이미지의힘이다.
뱀파이어와의조우
오늘날우리에게뱀파이어는호기심과흥미거리를제공하지만사실뱀파이어는악의연대기를몸에지닌중요한문명사적존재이다.이책은일관되게뱀파이어의탐구가곧영화의탐구라는것이며,뱀파이어의개념적장치와영화의개념적장치사이의유사성을탐구한다.더중요한사실,‘악’과이각각의영화들,놀랍게도이들모두를관통하는것은도구적관점에서의‘영화’라는점이다.
‘영화’는하나의‘말’이다.‘영화’는언어는아니지만자신의방식으로우리에게드러낸다.이책은뱀파이어와‘영화’의연대,그은밀한교접을말하고있다.19세기발명품으로써의‘영화’의탄생과근대신화로써의‘뱀파이어’의태생은묘하게겹친다.이들이모두19세기에나왔다는사실에관심을가질것이다.하나의소재가아니라우리의식에끼어든뱀파이어와우리의의식속에서자라난‘영화’를들여다볼것이다.본질과현상,추상과현실,악과인간,그경계,‘왕자의게임’은거기에북벽,사실성없는그놀라운얼음벽을올렸다.결국,어떤경계에대해말할수밖에없는데,경계의무너짐,침투,간섭,뒤섞임등이바로영화들이지닌문제들이다.‘영화’나‘뱀파이어’나모두경계의문제이고,그침투에대해다루는형식이다.여기서말하는뱀파이어가소재가아닌우리의식의작동방식이며그근대의작동방식을고스란히담고있는것이‘영화’라는점에서이둘을역사안에서이어내는것이야말로이책의가장큰독창성이라할수있다.
뱀파이어,‘영화’의다른이름
‘영화’,이렇게말하면어떨까,<이상한나라의앨리스>의동굴은차원너머에있지않다.언니와늘다니던강둑의,정장에회중시계를허리춤에달고있는토끼를따라가서만나는입구다.<오즈의마법사>에서도로시의이상한마법의세계역시마찬가지이다.캔자스의회오리바람안에있는데,몸이한발짝만내밀어도날리는바람의혀가날카롭다.그러니까둘다,세상에있으면서세상에보이지않는입구이다.영화관도마찬가지이다.여느건물과전혀다를바가없는데,그안에들어가면별세계가펼쳐진다.토끼나여우,누군가바람을잡고,우리는그에끌려어두컴컴한방안으로들어간다.이책에서언급한영화들은모두그과정을다루거나,더나아가,이방안에서겪게되는앨리스와도로시의모험을다룬다.
<블루벨벳>에등장하는도로시는그녀세계에살지않던제프리와샌디를자기안으로끌어온다.거기,샌드맨,아이들의꿈속에나타나마법을걸며,음습한세계로영혼을끌고가는프랭크가있다.≪블루벨벳≫은입구부터출구까지,대체‘영화’라는것이무엇인가를다루기위해만든영화이다.블루벨벳커튼안의세계는럼버튼이라는마을이며,막영화를보러온우리에게인사를건넨다.도로위에세워진일상적세계의표지판을걸고있다.거기,‘WelcometoLumberton’이러쓰여있고,지금부터당신이방문할세계임을보여준다.정신나갈만큼매혹에대해말하는이영화는어떻게‘영화’가우리에게말을거는지가쓰여있다.‘Iwalkwithyou,Italktoyou…’이세계에서당신은내것이라말한다.하지만어떤이들은이마법에걸리지않는다.지적으로무장하고냉정한판단과명징한주관적세계에살며,한갓몽상에이끌려웃는이들을조롱한다.그들은앨리스나도로시의삶을잊었으며어른이되어버린,그러니까한편으로는이제늙을일밖에남지않은자들이다.
‘영화’는하지만그냉정한의식에게도말을건다.그래서‘매혹’을빼고,‘좋아,당신이냉정하다면나도그렇게말을걸어보지’하며어른이된뒤의건조한풍경을더듬는다.성장후에,자기눈으로세상을보지만,거짓투성이의인식,은그렇게난이도있는세계,지적무장과예술적감수성의인식에돌을던진다.이번에는냉철하다는의식에파장을일으킨다.공없는공놀이사람들이끌려가는모습이우습겠지만이사진작가도결국에는보이지않지만존재하는세계에빠져든다.거기서,있어서는안되는소리(테니스놀음)와여태껏꽉차있던소리(공원의풀잎과가지를뒤흔드는바람소리)가어떻게만나고겹치는지깨닫게된다.
‘영화’는늘이런방식으로우리에게말을걸어왔다.마치,<노스페라투>의뱀파이어가마을전체에,우리가살던이곳으로건너와최면을걸고,없는것을있다고여기고빨려들게만들며,영혼을자기눈동자로넣어,흐물흐물,분명하다고여긴의식이허물어진다.하지만다행스럽게도전생애,영혼의모든것을빨아가는것이악에반해,영화는정해진시간의유희를즐긴다.<황혼에서새벽까지>,어둠의방안에서맞고있던빛과는다른세상의진짜빛이파고들때까지…먼과거부터지금까지의악몽이지만,폭풍우속에밤이사라질때까지(<샤이닝>)….
우리가영화와함께어떤향연을즐기는지,세계를다루면서(<블루벨벳>),의식을다루면서(<블로우-업>),혹은멕시코로건너가다잠시들른요란한술집이야기를하면서(<황혼에서새벽까지>),악의연대기에대해말하듯오버룩호텔의끔찍한공허와영혼의몰락,즉,공포를말하며(<샤이닝>),이영화들의감독들은우리가보고있는‘영화’에대해말한다.과연그럴까?역설적으로결국이들은어떻게‘영화’가우리를보고있는지말하는중이다.우리는영화를보는데,그때‘영화’는우리를보고있다.이역사,지난1세기에인류가미친듯이빨려들었던이세계,프리츠랑이숨이다할때까지추적했듯,<마부제박사>는살았거나죽었거나우리를몽롱한세계로끌어들인다.‘살았거나죽었거나’.
뱀파이어!마부제,그가곧‘영화’이며,‘영화’가해온일을한다.이책에서다룬뱀파이어는,이노스페라투,악과삶의,실제로우리삶에얹힌두차원의묘한뒤섞임을선사하는흡혈귀이며,곧그는다른이름을가지고있다.바로,‘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