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띤오색무지개,삶을일구는녹색찬가_(이도연론)
-권대근{(중)하북미술대학객좌교수,문학평론가}
I.
릴케는“사물은인간안에서비로소완성된다”고말했다.세계는처음부터의미를갖고있는것이아니라,인간의내면을통과하면서비로소새로운문장이된다.시는바로그‘다음문장’을발견하는일이다.눈앞의사물을단순한대상으로보지않고,존재의떨림과시간의흔적을읽어내는일이다.이도연의네번째시집《나는사물의다음문장이다》를읽으면서평자는먼저,시란결국사물속에잠들어있는또하나의생명을깨우는행위라는사실을떠올리지않을수없었다.
이도연시인은자연과사물의외형을단순히묘사하는데머물지않는다.그녀는사물의침묵속에서다음문장을듣는다.꽃이지는자리에서희망을읽고,바람의결속에서인간존재의흔들림을포착하며,일상의작은풍경속에서삶의본질을길어올린다.그녀는자연으로상징되는생명의소리를들을수있는영적귀를가졌을뿐아니라,자신의마음깊은곳에잠겨있는순수와체험을시적으로변환할수있는뛰어난감수성을지녔다.특히세계를상관물로치환하여현상학적으로인식하는능력은그녀의시를더욱깊고풍성하게만든다.사물은그녀에게단순한배경이아니라,존재의내면을비추는거울이며또다른자아다.
무엇보다이번시집의제목인≪나는사물의다음문장이다≫는이도연시세계의본질을함축하고있다.‘사물’은눈앞에놓인현실이자자연이며,‘다음문장’은그것을넘어생성되는새로운의미다.사물은멈춰있지만시는그안에서움직인다.돌멩이하나에도시간이스며있고,낙엽하나에도생의윤회가숨어있으며,찻잔속흔들리는물결에도인간존재의고독과희망이출렁인다.시인은그미세한떨림을언어로건져올린다.결국그녀에게시란사물의침묵을인간의언어로번역하는작업이며,존재의이면에숨겨진문장을끝없이이어가는행위라할수있다.
“한번사는인생인데,인생백년의기로에서서하나하나배워가면좋은일이반드시내곁을지켜준다는희망을품었습니다.이론적인‘왜’에대한해답에도창조적인‘어쩐지’에대한심상을살려나가는데에도관심을기울였습니다.”라는시인의고백은그녀의시작태도를잘보여준다.시창작은단순한감상의기록이아니라삶과존재를새롭게읽어내는작업이라는사실을그녀는누구보다진지하게받아들이고있다.민들레홀씨처럼척박한자리에서도다시뿌리내리려는의지,화려하지않지만꿋꿋하게자신의생명을밀고나가려는생의태도는그녀의시편곳곳에녹아있다.
시의숲을헤맨지도며칠이지났다.시집에실린작품들을한편한편읽어가면서평자는사물의내면으로스며드는한인간의고독한사유와조우할수있었다.그녀의시는서정시학의전통위에서있으면서도,단순한감상에머물지않고존재론적질문을품고있다.시를읽는다는것은결국시인의내밀한경험과마주하는일이다.그런데이도연의경험은언제나사물과연결되어있다.그녀는사물을통해자신을바라보고,자신을통해세계를읽는다.따라서그녀의시에서사물은대상이아니라관계이며,존재를이해하기위한통로다.
본래시란자동화된감각을흔들어깨우는예술이다.익숙함속에잠든세계를낯설게바라보게함으로써우리는사물속에숨어있던또하나의의미를발견하게된다.이도연의시는바로그지점에서빛난다.그녀는오래바라보고,천천히느끼며,사물의침묵속에서미세한숨결을읽어낸다.그리고그숨결을자신의언어로새롭게탄생시킨다.그렇기에그녀의시는단순한묘사가아니라생성이다.하나의사물이끝나는자리에서또다른문장이태어난다.
시인은〈시인의말〉에서“나는어린시절민들레꽃이지고나면솜털처럼바람따라저멀고도가까운어느곳이든지현실에연연치아니하고적당한자리잡아잘살아가는민초의민들레홀씨가되고자했습니다.”라고말한다.이진술속에는삶을향한겸허한태도와존재에대한따뜻한연민이담겨있다.그녀는거창한구호보다작은생명의움직임에귀기울이며,화려한수사보다진실한떨림을더소중히여긴다.그래서그녀의시는읽는이의마음을조용히흔든다.
이도연시인이찾고자하는것은거대한이념이나관념이아니다.그것은사물속에숨겨진생명의온기이며,존재의다음문장이다.그녀는시를통해세계를다시읽고,삶을다시쓰고자한다.그래서그녀의시는끝이아니라시작이다.한문장이끝나는자리에서또다른문장이이어지고,하나의사물이침묵하는자리에서또다른의미가피어난다.동편하늘이서서히밝아오듯그녀의시또한어둠속에서작은빛을길어올린다.이도연시의정체를찾아나서는길은그래서행복하다.그녀는오늘도사물의침묵앞에귀를기울이며,아직쓰이지않은다음문장을향해조용히걸어가고있다.
Ⅱ.
슈바이쳐는〈나의생애와사상〉에서,“나는처음에아프리카로갈때,세가지희생을각오하고있었다.오르간예술을체념하는것,애착이깊은대학교수의활동을포기하는것,경제적독립을상실하고앞으로의생계를친구의원조에의뢰하는것등이다.그런데이들을희생하려했을때아브라함과같은운명이나에게베풀어진것이다.그와마찬가지로나도희생을면제받았다.파리바흐협회에서선물받은페달달린열대지대피아노와열대기후에도태연한건강을유지하므로나는오르간연주기술을잃지않았다.대학의강사로서의활동은체념했지만그대신많은대학의강단에서강의를하게되어서보상은충분했다.경제적독립은잠시어려웠으나지금은오르간연주와저술에의해서다시금회복할수가있었다.이미한번버린삼중의희생을모두면제받은사실은나에게있어서실로마음을감동시키는경험이었다.”고썼다.슈바이처는기존의성공적인삶을뒤로하고,의학을통해아프리카에서의료활동을시작했다.희생을각오하니희망이찾아오더라는감동적인고백이다.
‘생즉사,사즉생’이라는이순신의어록을떠올리게하는슈바이츠는말이다.프로이트는“정신분석학을발전시키기위해서존경하며원조자이기도했던프로이엘과의우정까지도희생하지않으면안되었다.나로서그대가를지불하기가쉬운일이아니었지만학문을위해서피할수없었다.”고말했다.나는이도연시인이네번째시집을에세이문예사에맡기겠다고한데서이도연의마음속에있는무엇을각오한듯한결기를볼수있었다.그결기에서“우리는최후까지싸워이길것이다.우리는프랑스의전장에서싸워싸울것이며,어떠한희생을치러더라도단연우리국토를지킬것이다.”라고한영국의수상처칠의결연한도전같기도하고,들뢰즈의아장스망같은것을찾을수있었다.이도연시는처음부터끝까지희망과순수를노래한다.무엇보다도그녀는거친삶속에서타자의실체를알리고자했고,자신을위협하는많은사회적기제들을깨어있는의식으로탐색하며,오랜시간동안시로풀어내고자했다.그녀의시는동일성의원리에따른불변의가치를지향하기보다는차이의원리에따른생성의가치를추구하고있어삶의전반을타고흐르는시적인식은들뢰즈의‘주변부타자의담론’으로채워져있다.차이를가치화하는인문적사유의흔적들인셈이다.시가삶이되고,삶이시가되었던과정을애정의눈으로살펴본다.
바람은선을긋는다
이곳과저곳,
멈춤과떠남사이
나는그경계에서있다
아직오지않는차,
그차를향해시간은길게늘어지면
휘날리는먼지속에서
누군가의발자국이희미해진다
유리창너머스치는얼굴들
모두어딘가로가고있다
나는아직도착하지않은이름을품고
그저바람의방향을듣는다
경계는늘흐릿해서
어쩌면나도떠있는건지도모른다
기다림이내몸의무게를덜어내면
시간은서서히투명해진다
바람위의그차가
오늘은나를태워줄까
-〈바람의정류장〉전문
이도연의「바람의정류장」은‘정류장’이라는일상적공간을존재론적경계의장소로변환시키며,기다림과부유(浮遊)의정서를섬세하게형상화한작품이다.시에서바람은단순한자연현상이아니라‘이곳과저곳’,‘멈춤과떠남’을구분짓는보이지않는힘으로제시된다.화자는그경계위에선존재로등장하는데,이는아직도착하지못한삶의상태,혹은정체성과미래사이에놓인인간의불안한실존을암시한다.“아직오지않는차”는단순한교통수단이아니라희망변화구원같은상징적의미를띠며,그차를기다리는시간속에서화자는점차현실적무게를벗어간다.특히“기다림이내몸의무게를덜어내면/시간은서서히투명해진다”는구절은기다림이단순한지연이아니라존재를비물질화하고내면을성찰하게하는과정임을보여준다.이작품은외부풍경을통해내면의상태를드러내는현대서정시의미학을잘구현하고있다.
이시의미덕은설명을절제하면서도이미지중심으로정서를환기한다는데있다.“휘날리는먼지속에서/누군가의발자국이희미해진다”거나“유리창너머스치는얼굴들”같은표현은지나감과소멸의감각을시각적으로드러내며,현대인의고독과유동적삶의감각을효과적으로환기한다.또한마지막연의“바람위의그차가/오늘은나를태워줄까”는끝내확정되지않은질문형식으로남아있어시적여운을깊게만든다.목적지보다‘떠날수있을까’라는가능성자체에초점이놓여있다는점에서,이작품은기다림의본질을존재의유예상태로형상화한시라할수있다.다만일부표현은다소관념적으로흐를위험도있으나,전체적으로는바람정류장차라는상징적사물들을통해인간존재의불안과희망을균형있게구축하였다.
낡은티셔츠의주름사이
묵은여름이다시스민다
식은땀냄새가몸의기억을흔든다
회전의심연,세탁통의별들속에서
나는돌고,헹구어지고,지워진다
거품의입김이내이름을덮는다
무언의물이나를건너갈때
하루의그림자가희미해진다
깨끗해진것은옷일까
말갛게사라진나일까
탈수의진동끝에서
나는한겹의바람이되어
물의기억속으로스며든다
-〈물의기억〉전문
이도연의〈물의기억〉은일상의사물인세탁기와낡은티셔츠를통해존재의소멸과정화,그리고자아의흔들림을탐색한작품이다.시는“낡은티셔츠의주름사이/묵은여름이다시스민다”라는감각적인이미지로시작되는데,여기서티셔츠는단순한의복이아니라시간과육체의기억을저장한매개체로기능한다.특히“식은땀냄새”라는후각적이미지는과거의체험을현재로소환하며,몸의기억이물질속에침잠해있음을보여준다.이어지는“회전의심연,세탁통의별들”이라는표현은세탁기의반복운동을우주적이미지로확장시키며,세탁행위를단순한청결의과정이아니라존재가해체되고재구성되는의식처럼형상화한다.“나는돌고,헹구어지고,지워진다”는구절은물리적세탁과함께자아의흔적까지씻겨나가는감각을드러내며,현대인의소진된정체성을은유적으로보여준다.
이시의가장큰성취는‘물’을단순한정화의상징이아니라기억과소멸을동시에품은존재로형상화한데있다.“무언의물이나를건너갈때/하루의그림자가희미해진다”는구절은물이언어이전의힘으로인간존재를통과하며삶의흔적을지워가는과정을섬세하게드러낸다.특히“깨끗해진것은옷일까/말갛게사라진나일까”라는자기반문은세탁이라는일상적행위속에서자아의공허와존재론적불안을끌어올리는핵심장치로작동한다.마지막연에서화자는“한겹의바람”이되어“물의기억속으로스며”드는데,이는고정된자아가아니라끊임없이씻기고흩어지며순환하는존재로서의인간을암시한다.전반적으로이작품은생활세계의익숙한사물을통해존재의흔적과소멸의감각을깊이있게탐색한시로,감각적이미지와철학적사유가조화롭게결합되었다.
산골굽이굽이저멀리능선
평화로운농가지붕위제일높은곳
따사로운태양하늘이불삼아
머리카락날리는바람가락에
흥겨워훌러덩옷을벗는다
반갑다고내리비치는
햇살집어삼키며하늘쳐다보니
푸른도화지에그린그림화가가따로없네
구름이동이도심에서는
총알같은데이곳산골은미동이없네
-〈시간의주름〉전문
무엇보다도이시에서는‘시간의주름’이란시제에주목할필요가있다.시간의주름에서‘주름’은들뢰즈의개념이다.질들뢰즈GillesDeleuze의철학은전통적인형이상학적사유를넘어,끊임없는생성과변화를중심으로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