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날들은 그림자도 떼어 놓고 (노진화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그림자도 떼어 놓고 (노진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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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늘은 바다를 이야기하자

깊은 밤 현玄의 시간
정박한 배들의 나라
고성 맥전포항
살아있는 모든 소리 잠들고
배들의 숨소리도 멈췄다
물고기가 오지 않는 낚싯대에는
바람도 잔다

잠든 바다를 깨우는
우리의 저문 이야기가
덥석 미끼를 물고
하이탁주 술잔 속에 넘실거린다

그러나 오늘은 바다 이야기를 하자
그래 오늘은 바다 이야기만 해도 되지
아버지의 숨결도 느껴지는데
슬프고 실패한 이야기는
통발처럼 바다에 던져두고
오늘은 그리운 바다에 왔으니까.



아침 바다에서

은빛 물결이 찬란한 아침 바다에는 푸른 바다의 색이 보이지 않는다 푸른 물빛은 은빛 햇살이 사그라졌을 때 비로소 푸른 숨을 뿜어낸다 그러니 늘 빛나는 것들도 가끔은 구석을 채워도 좋으리 아직 빛난다는 것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미약한 것들이 타오를 수 있도록 아침 바다의 은빛 햇살 같은 것들도 한 번쯤 숨죽여 볼 일이다.



갯벌

강렬한 태양이 펼쳐놓은 갯벌 속 구멍들은
무한한 생명의 집인가
뻘을 뒤집어쓴 채 칠게 짱뚱어 갯지렁이들은
먹이와 집을 두고도 다투지 않고
집이 길인 줄 알고 뱅뱅 제 집에서 산다
그런 집은 얼마나 깊어 안전한 것인지
타오르는 햇빛 속에서
아직 떠나지 못하는 슬픔이 갯벌에 눕는다

바다를 비우고 들이며
두 개의 몸을 가진 갯벌에
무한정 생명이 일어나는 것은
구멍과 구멍 사이 아름다운 간격 때문이리라
푸른 이상을 좇아 한 생을 밖으로 내달렸던
아버지
한 개의 깃발만 줄창 흔드셨지
집은 고달프고, 가팔랐던 우리들
자꾸만 생겨나던 슬픔 애끓는 숨을 붙잡고
희망의 씨를 뿌렸던,
목숨을 다하고서야 집을 떠난 엄마는
경이로운 갯벌이었네.
저자

노진화

저자:노진화
경남삼천포에서태어나효성여자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2005년계간『생각과느낌』에시「그림자」외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계간『생각과느낌』발행인겸편집인을지냈으며한국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대구가톨릭문인협회회원으로있다.첫시집으로『외로운사람은그림자가길다』가있다.

목차

시인의말ㆍ5

┃차례┃

1부

전어ㆍ12
화해의제물-비비안나의장어국ㆍ14
갯벌ㆍ16
내가눈물이되는시간ㆍ18
목섬*에가면ㆍ20
그시절연애는공중전화기를타고ㆍ22
은방울꽃ㆍ23
오늘은바다를이야기하자ㆍ24
엄마의텃밭ㆍ26
흘러가는구름처럼친구여ㆍ28
그리우니까별이다-아들에게ㆍ30
술나누는밤ㆍ32
떠나보내는시간-딸에게ㆍ33




2부

사랑ㆍ36
식은피ㆍ37
헌신짝ㆍ38
안부ㆍ39
인생ㆍ41
눈물ㆍ42
매혹ㆍ43
해방에대하여ㆍ44
강물은흐르고ㆍ45
아침바다에서ㆍ46
열망ㆍ47
염원ㆍ49




3부

만추ㆍ52
장마ㆍ53
가을밤ㆍ54
오월ㆍ55
빗소리듣는밤ㆍ56
꽃과새ㆍ57
겨울나무ㆍ58
2월,거룩한달ㆍ59
매미소리ㆍ61
여름ㆍ62
비의마법ㆍ63
배롱나무가거느린여름ㆍ64
4부

격포해변ㆍ66
레꽁프바게트*ㆍ68
검은여백사장*ㆍ70
세화바닷가ㆍ71
칠산바다ㆍ72
종포마을*에와서ㆍ73
삼천포ㆍ75
구봉산에서ㆍ77
위미리동백나무ㆍ78
유배의시간ㆍ79
제주도푸른그림자ㆍ80
이중섭의팽나무ㆍ81
운문사처진소나무ㆍ83
이지러진달ㆍ85





5부

애동지ㆍ88
흐튼미역국을끓이며ㆍ90
상실의시간ㆍ92
반영-성당못ㆍ94
폭설,광치기해변ㆍ95
가지치기ㆍ97
가시의바다ㆍ98
파도ㆍ100
성모님의미소가피어오를때ㆍ101
순교자들의바다-갈매못성지에서ㆍ103
사랑을다쓰지못하여ㆍ104
수국이전하는말ㆍ105
전진ㆍ107

해설┃근원의바다,혹은헤테로토피아┃박남희(문학평론가)ㆍ109

출판사 서평

오늘은바다를이야기하자

깊은밤현玄의시간
정박한배들의나라
고성맥전포항
살아있는모든소리잠들고
배들의숨소리도멈췄다
물고기가오지않는낚싯대에는
바람도잔다

잠든바다를깨우는
우리의저문이야기가
덥석미끼를물고
하이탁주술잔속에넘실거린다

그러나오늘은바다이야기를하자
그래오늘은바다이야기만해도되지
아버지의숨결도느껴지는데
슬프고실패한이야기는
통발처럼바다에던져두고
오늘은그리운바다에왔으니까.



아침바다에서

은빛물결이찬란한아침바다에는푸른바다의색이보이지않는다푸른물빛은은빛햇살이사그라졌을때비로소푸른숨을뿜어낸다그러니늘빛나는것들도가끔은구석을채워도좋으리아직빛난다는것의기쁨을알지못하는미약한것들이타오를수있도록아침바다의은빛햇살같은것들도한번쯤숨죽여볼일이다.



갯벌

강렬한태양이펼쳐놓은갯벌속구멍들은
무한한생명의집인가
뻘을뒤집어쓴채칠게짱뚱어갯지렁이들은
먹이와집을두고도다투지않고
집이길인줄알고뱅뱅제집에서산다
그런집은얼마나깊어안전한것인지
타오르는햇빛속에서
아직떠나지못하는슬픔이갯벌에눕는다

바다를비우고들이며
두개의몸을가진갯벌에
무한정생명이일어나는것은
구멍과구멍사이아름다운간격때문이리라
푸른이상을좇아한생을밖으로내달렸던
아버지
한개의깃발만줄창흔드셨지
집은고달프고,가팔랐던우리들
자꾸만생겨나던슬픔애끓는숨을붙잡고
희망의씨를뿌렸던,
목숨을다하고서야집을떠난엄마는
경이로운갯벌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