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훈민정음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23.00
Description
세종이 꿈꾸고 기획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신미를 포함한 집단지성이 협력하지 않았다면, 한글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세종의 언어에 관한 계획부터 집단지성의 협력 과정에 관하여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야말로 백성을 위한 글자를 원했던 세종대왕과 중생을 교화할 글자를 원했던 신미를 포함한 집단지성의 합작품이라고 한다면 자연스러운 설명일 것이다. 임금, 왕자들, 신하들의 조화로운 협력으로 인류의 값진 유산이 태어난 것이다! 세종대왕의 훌륭한 리더십에 맞추어, 그 어려운 과정을 수행한 집단지성의 헌신과 용기는 오늘날까지, 아니 먼 훗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DNA에 녹아있으리라! 창제 당시 조선의 정신은 협업과 창조로 이어진 시너지적 유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에게도 역할을 주고 공로를 돌린다. 과연 대왕의 리더십은 편가르기나 분열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종은 왜 신미를 포함한 집단지성이 실제 한글 창제를 도왔다는 그 사실을 비밀로 하였는가? 그것은 숭유억불, 사대주의라는 엄중한 시대에 세종이 훈민정음의 탄생을 지켜나가고, 또한 신미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리라. 파스파 문자가 몽골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것과는 달리, 다행히도 훈민정음은 생명을 유지하였고, 결과적으로 디지털 시대가 발달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더욱 꽃피우고 있다.
세종대왕은 온갖 분야를 총지휘하였고, 수많은 분야에서 문화적 중흥이 이루어졌고, 대마도 정벌 및 4군 6진 개척으로 국토가 확장되었다. 대왕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쓴 용인술이 뛰어났다. 의견의 충돌이 있는 경우, 백성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론을 내었다. 이때 수많은 책자가 보급되었고, 장영실이나 박연 같은 학자도 활동하였고, 결과적으로 경제와 문화가 크게 발전하였다. 이런 배후에는 대왕의 확고한 지휘와 지지가 필수적이었으리라. 그리고 책임감 있는 대왕답게 1등 공신 신미에게 선교종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내렸다. 과연 의리의 왕이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 역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다행히도 수수께끼의 해답은 곳곳에 남아 있다. 보통의 지능과 상식적인 추리력만 갖고 있다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신미의 역할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후세의 우리는 선인들에게 감사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
저자

김순기

저자:김순기
보성고등학교졸업
서울대학교의과대학졸업
서울대학교병원소아청소년과수련
인하대학교의과대학교수
안양시동안구보건소장(현재)

목차


I.서론10

II.본론
1.역사적사실18
2.『훈민정음해례본』및『언해본』에나타난증거44
3.동일인의저서에서보이는상반된맞춤법67
4.동일인의저서에서보이는상이(相異)한한자표기법84
5.훈민정음을만드는데범자(梵字)자모를참고했다는증거88
6.아시아의여러문자109
7.세종과신미의만남118
8.훈민정음창제의동기와목적149
9.우국이세혜각존자(祐國利世慧覺尊者)법호수여162
10.누가훈민정음으로기록을남겼는가?183

III.맺음말216

참고문헌224

출판사 서평

프롤로그

대한민국국보1호는무엇인가?이질문의답은남대문으로알려져있긴하지만,진정으로국보1호의자격이있는것은무엇인가?라고질문하면,대부분『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대답한다고한다.나역시그렇다.

나는보성중학교에이어서보성고교를다녔다.보성고교는간송전형필선생이이사장으로계셨었고,그의아들인전성우선생이교장으로계셨다.전형필선생은1940년,훈민정음해례본의가치를간파하고이를고가로사들여,철저히보관하였고,마침내는간송미술관에보관한바로그주인공이다.

나는영산김(영동김)씨장수파(長水派)이다.우리집안에전해지는족보,즉,永山金氏大同譜에,4세(世)김훈(金訓)의가계도가기록되어있고,장남김수성(金守省)및3남김수온(金守溫)에대한기록이가장많은지면을차지하고있다.그대동보에서金守省은집현전학사로서세종의총애를받았다는기록이있다(集賢院學士,得寵於世宗).나는막연한의문을품고있었고,언젠가는이에대한진실을알아보자고하여,관련된책을구해서놓았고,자료도정리하고있었지만,일의진척은더뎠다.그동안,각계에서주장하는信眉의업적도듣고,나랏말싸미영화도보고,책도읽고,속리산복천사에이어오대산상원사도방문하였지만,막연히수수께끼를풀어야겠다는생각만있을뿐이었다.신미대사는영산김씨5세이고나는23세이니18세(世)의차이로,계산하자면552년먼저태어나신분이다.

2년전,보성고최광호동문의주도하에식혜방(識慧房)이만들어졌다.식혜방은각분야에서일했던전문가들이있는일종의집단지성모임으로,중고교때,같이겪었던경험이공감과추억을불러일으키고,각자의노력여하에따라서는매우효과적인학문적토론이가능하다.매주또는격주수요일오후8시에한시간여온라인토론으로진행되는데,처음의주제는각개인이남은삶에서진정으로추진하고싶은일을발표하자는것이었다.일종의버킷리스트로서,1시간남짓발표할만한내용이면좋은것이었다.인터넷이므로,장소의제약을뛰어넘어경향각지에서참석할수있었고,실제로미국과호주에서도접속하여참석하곤했다.

이모임에서나는의사로서건강관련주제로몇번발표하였다.어느날내가진정으로추진하고싶은다른것이라면훈민정음창제의비밀이라는것을밝혔다.그리고여기서훈민정음창제와관련된주제를발표하였을때,비상한관심을끌며,방장을비롯한동창들로부터적극적으로추진하라는격려를받았다.한편으로는책임을완수하라는압박으로도느껴졌다.나역시高校나門中둘다나와연관이있으므로나에게딱맞는적합한일이라고생각했다.

나는중3때자유교양경시대회에서고전읽기로수상한적도있었고,고교진학후,文科班이되어,중학교에이어계속雪嶽山人김종권선생께한문을배웠는데,이지식이큰도움이되었다.나는형님의권유로의과대학에입학하여의사가되긴했지만,2020년인하대학교의과대학정년퇴임후,안양시보건소장으로일하게된것은또하나의새로운경험이고도전이되었다.

나는심한근시로,안경을쓰고다니는데,생활에불편한적이많았지만,경전이나논문의깨알같이작은글자는안경을벗으면글자가다보이므로,눈나쁜것이오히려축복인셈이었다.

꼭문중의일이라하여열심히한다는것보다는역사의진실을밝히는것이야말로중요한일이라고생각한다.그간훈민정음창제와관련된책자의발간은영산김씨문중에서보다는오히려다른사람들이하였다.그런노력은이책의곳곳에설명되어있다.진실을밝히려는일념에서열과성을다한그들의노력에경의를표한다.

우리영산김씨장수파(長水派)역시정례적으로문중모임을하고시제를지내왔다.나는이런모임에훈민정음창제시,우리조상이어떤역할을하였는지밝혀보겠다고제안하여,씨족(氏族)의고향인영동(永同)에서직접발표할기회도가졌다.단순히조상의제사만지내는것보다는남는에너지를조상과관련된업적을발굴하고기념하는사업도해보자는취지였고,당연히우리문중의첫째작업은훈민정음창제와관련된조사와문화유적답사로정해졌다.모두들필자의제안에흥미를느끼고협조해주었다.이런기회로다같이축제의場이된것역시즐겁고바람직한성과였다고생각한다.

역사에서진실을밝히는것은아무리강조해도지나치지않을것이다.역사가에드워드카는『역사란무엇인가?』란책에서,“역사란역사가와그의사실들사이의지속적인상호작용의과정이며,현재와과거사이의끊임없는대화이다.”그런면에서『조선왕조실록』은엄청난보고의역할을했다.이책의많은내용이실록의내용을토대로작성되었고,인용되었다.실록에실린한자원문은대체로인용하지않았는데,내용이많아지기도한데다가,인터넷검색으로도간단히찾을수있기때문이기도하다.

한문을읽고해석하는데,대개친절한번역과주석이많은도움이되었다.우리나라각분야의인프라가잘되어있다는것을느끼곤한다.조선왕조실록이나많은문헌이인터넷을통하여쉽게접근할수있었고,고문헌이나자료역시안양과서울의여러도서관에서쉽게검색하여찾아볼수있었다.마치둘레길이잘조성되어있는것처럼,도서관자료이용에도대한민국의인프라가아주잘되어있다는느낌을받았다.

훈민정음에관한내용은마르지않는샘과같다.끊임없이이야기를제공하고,많은흥미와학문적관심을제공하고있다.필자역시재미있게일을시작하고마무리지었음을밝히고,한편으로는지금까지여러학자와연구자에의해거론되었던내용을한데묶을수있었음에감사를표한다.가온누리조현수회장과좋은인연이되어,부족한졸저를출판하게됨은또다른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