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있었던 곳 (정찬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 (정찬 장편소설)

$18.00
Description
꿈으로 질주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인간에 대한 믿음,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간직했던 그들
그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도저한 감동

하지만 우리는 과연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걸까?
잊을 수 없는 오월의 상흔
타인의 고통과 함께 머물렀던 '그들'의 자취

5ㆍ18 정신을 뼛속 깊이 되새기는 문학적 묘비명!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올해의예술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받은 소설가 정찬은 5·18민주화운동을 총체적 시각에서 그린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을 내놓았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 시민들은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죽음으로 저항하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 이정표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캄캄한 역사의 밤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 민주 시민들을 국회로 불러들여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웠다. 평화학과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 『그들이 있었던 곳』의 인물들이 현재성을 가진다고 말한 것은 그런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이 작품은 24년 전 출간됐던 장편 『광야』를 바탕으로 쓴 것으로, 바뀐 내용에 맞게 새로운 제목(『그들이 있었던 곳』)을 달았다. 특히 작가는 12·3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그것을 막기 위해 국회로 달려갔던 사람들을 보면서 5ㆍ18의 경험이 현재화되는 신비를 느껴 『그들이 있었던 곳』을 쓰게 되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소설가 정지아는 ”광주항쟁을 제대로 다룬 작가는 드물다. 한 세대 뒤인 한강 작가가 긴 침묵을 깨트렸고, 한국문학의 숙원이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이 있었던 곳』은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광주항쟁의 전모를 섬뜩하게 우리 앞에 들이민다.“라고 추천사에 썼다.
한반도의 역사와 실핏줄처럼 연결된 광주민주화운동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왜 시작되었고,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갔으며, 어떻게 끝났는지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독자들은 『그들이 있었던 곳』을 통해 5월 광주의 전체 모습을 구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조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광주 시민들이 겪었던 영혼의 상처와 만나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또한 비극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그들’의 도저한 열정에 큰 감동을 얻게 된다.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5·18정신은 불의에 대한 주권자 시민의 저항 정신, 공동체의 연대, 민주주의 열망과 수호 의지이다. 정찬 작가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이 5·18정신이 새겨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저자

정찬

1983년무크지‘언어의세계’에중편소설「말의탑」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기억의강』『완전한영혼』『아늑한길』『베니스에서죽다』『희고둥근달』『두생애』『정결한집』『새의시선』,장편소설『세상의저녁』『황금사다리』『로뎀나무아래서』『그림자영혼』『빌라도의예수』『광야』『유랑자』『길,저쪽』『골짜기에잠든자』『발없는새』와산문집『슬픔의힘을믿는다』가있다.동인문학상,동서문학상,올해의예술상,요산김정한문학상,오영수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작가의말
운명
해방광주
역사의영혼
주요참고도서

출판사 서평

꿈으로질주하는사람의모습은아름다웠다.사람이그렇게아름다울수있다는사실은경이로웠다.혁명의시간은,사람을아름답게한눈부신시간은너무짧았다._226쪽

비가내리고있었다.구름에가린저녁하늘은거무스레했다.축축한바람이흐린빛에싸인도시를훑고지나갔다.도시는적막에잠겨있었다.그런도시의모습이대단히비현실적으로보여어떤마술로도시전체가잠들어있는것같았다.그리하여길을잃은유령들이황혼도저녁별도잃어버린하늘아래서소리없이배회하는듯했다.깨어진가로등과부서진공중전화박스들은그런느낌을조금도훼손하지못했다.훼손은커녕오히려짙게했다.강선우는상념을쫓기위해머리를흔들었다.헬멧에서빗물이후드득떨어졌다._34쪽

머리가깨어져피범벅이된남자를부둥켜안고통곡하는여자의모습이보였다.그녀의옷도피범벅이었다.깨어지고부서진차들사이에부상자들이즐비했다.저문하늘의잔광은그들의모습을비현실적으로드러내고있었다.피흘리는그들의몸은검붉은물감으로덧칠한그림의일부처럼보였다.길바닥에고인핏물도마찬가지였다.시간은그속으로흘러들어가지못했다.소리도움직임도지워져있었다._46쪽

또하나이해할수없는것은무정부상태에서수만의인파가사나흘동안밤낮을휩쓸고다녔는데도비정치적범법행위가발생하지않았다는사실이다.기름과차량을징발한것이나,식품회사대리점에서다량의빵을가져간것은시위를위한정치적행위였다.방화사건도마찬가지였다.방송국과10여곳의파출소가불탄것은정치적행위의표출이었다.그가주목한것은비정치적범법행위였다.정치적범법행위는비정치적범법행위를불러들이기마련이다.무정부적상황이파괴욕구와범죄충동을자극하기때문이다.하지만이도시에서그런일이발생하지않고있었다.그로서는대단히불길한현상이었다._62쪽

여섯명의청년들이앞으로뛰어나왔다.한청년은대형태극기를들고있었다.시위대는물론이고건물에서시위대를내려다보는이들의시선이청년들에게집중되었다.청년들은도청광장으로부터300여미터떨어진길한복판에서태극기를흔들며구호를외치기시작했다.
“계엄령해제하라!”
“전두환물러가라!”
그들의몸짓과펄럭이는태극기는텅빈길위에서하나의세계를이루고있었다.생명으로충만한세계였다.생명의원천은자유였다.투명한자유가펄럭이는태극기와함께춤을추었다.죽음과맞닿은춤이었다.
타타타타앙.
귀를찢는총소리와함께여섯명의청년이동시에쓰러졌다.놀라움과탄식속에시민들이달려나와그들을옮겼다.춤의공간이비기가무섭게청년들이또뛰어나와피묻은태극기를흔들었다._74쪽

창가에선박태민은바깥을물끄러미내려다보았다.거리가깨끗했다.격렬했던전쟁의흔적을찾기힘들었다.전쟁이할퀸거리를청소하는작은손들이눈에보이는듯했다.눈물이핑돌았다.도청으로진격하던시민군속에중학생들이있었다.나이가너무어려무기를주지않으려했지만눈물로호소하는그들을뿌리치기힘들었다.형의원수를갚겠다며총을달라는초등학생도있었다.눈앞에벌어진참극을어린영혼들은어떻게견디고있을까?눈을감았다.어둠의군단이보였다.도시를유린하는군홧발소리는날카롭고음산했다.해방광주는,이유일한빛의나라는어린영혼들에게무엇이되어야하는가?칠흑같은어둠을헤치고나아가야할그들에게.눈을떴다.햇살이눈부셨다.절해고도이기에더욱눈부신해방광주의햇살이었다._114쪽

“우리에게계엄군을막을힘이없습니다.그들은해방광주의시간을탈취할것입니다.하지만그들에게결코탈취당할수없는시간이있습니다.진실이만들고있었고앞으로도만들시간입니다.진실은인간의혼을가장격동적으로움직이게합니다.그움직임이만드는시간은일상의시간과다릅니다.공수특전단의무참한폭력은시민들에게진실을일깨웠습니다.진실은시민들의혼을흔들어죽음을넘어서는싸움을시작했습니다.죽음은진실을지키기위한불꽃이었습니다.죽음을껴안고싸웠던이들은알것입니다.해방광주는죽음의혼이켠진실의등불임을.비통하게도우리는해방광주를지킬수없습니다.하지만우리가지킬수있는것이있습니다.진실의등불입니다.죽음이라는불꽃을통해.”_210쪽

“신부님이저지른죄가구체적으로무엇이지요?”
“칼을든자를두려워했습니다.”
“누구든지두려워하기마련입니다.”
“그두려움을이겨낸분들이적지않습니다.그분들은갑옷을입지않았음에도두려워하지않았습니다.하지만전갑옷을입고서도두려워했습니다.”
“하느님은용서하시는분이아닙니까?”
“그분은저를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왜스스로벌을받으려하십니까?”
“도청으로가는것은벌을받기위함이아닙니다.”
“그러면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집이기때문입니다.”
“도청이그리스도의집이라고요?”
“그렇습니다.그리스도의집이야말로사제가가야할곳이죠.”
“이해가안되는군요.”_222쪽

전투초기시민군은적극적으로사격했다.계엄군특공조가어둠에몸을은폐하고있었기때문이다.그러니까어둠을향해무작정총을쏜것이었다.방어선이무너지고특공조가건물로접근하면서상황이달라졌다.표적의실체가눈에보이자차마방아쇠를당기지못한것이었다.시민군가운데총을처음만져본이들이적지않았을뿐아니라,총기조작에능숙한군제대자도사람을표적으로하는사격에낯설었다.한생명을살해한다는것은그만큼어려웠다.시민군사령관역할을했던박남선조차접근하는계엄군을조준까지했으나끝내방아쇠를당기지못했다.그들이총을든것은승리하기위해서가아니었다.승리를믿었던이는아무도없었다.계엄군을죽이기위해서도아니었다.그들이총을든것은침몰하는해방광주와함께하기위해서였다._2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