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양형이유』『법정의얼굴들』박주영판사신작
읽고쓰는삶에충실한법률가의문학적시선과감각에관하여
빌어먹지않고벌어먹기위한독서
“멋진양형이유문구고민할시간있으면무고한피고인집어넣는게아닌지더고민해야하는게아닐지요.”
“이상한글좀그만쓰고기록이나열심히봅시다.”
20년남짓되는기간동안판사로살아온저자의전작들에달린코멘트일부다.“장차칼같아야할판결문에소설이나쓰고자빠진판사”(12쪽)는‘멋진양형이유’와‘이상한글’로화제가됐지만,바로그때문에여기서욕먹고저기서얻어터지기도한다.그럼에도그가감정을담아글을써내는이유는그것이마사누스바움이주창했던‘법과문학운동’이기때문이다.
『시적정의』로잘알려진마사누스바움은,법적판단에있어감정은결코장애물이아니며,재판관은분별있는관찰자로서문학적상상력과공감을통해합리적감정을추려내고,이를공적추론에활용해야한다고역설했다.(8쪽)
피고인과피해자,원고와피고등인간이어느하나의타이틀로만규정되는건법정에서나가능한일이다.법정에선한인간에겐무수한삶의레이어가켜켜이쌓여있다.그들을기록속글자가아닌,개별성과존엄성을가진인간으로보려면‘문학적상상력과공감’을기르고벼려야한다.
가장확실한수단은온갖종류의문학이다.사람은없고죄만남은듯한법정을지키던저자는빌어먹지않고벌어먹기위해읽기시작했다.『이방인』의뫼르소는외국인들을위한형사재판절차안내서를만들게했고,타국청년들의좌절이담긴이야기는전세사기로스러진청년들의영혼을위무하는판결문을낳았다.그의재판과판결문에담긴미세한온기는모두책에서온셈이다.
“박주영의인간연구는
우리에게도착한새로운문학”
“좋은법률가는좋은독자여야한다”(8쪽)는‘법과문학운동’의핵심을실천하는그에게책은,“규범과문장의행간에갇힌인간”(9쪽)을감각할수있는필수장치다.판사로서잘하기위해독자로서살아온세월은합리적판단과논리적인판결문뿐만아니라책을고르고읽고해석하는데도큰영향을끼쳤다.
특히이번『죄와책』은그가20년남짓되는법관생활을하며직간접적으로겪은재판사례들과그와연관된책을골라소개하는책이다.수십년간읽은책중좋은것만골라소개한다는것만으로도의미가있지만,판사의가장주된업무는글쓰기다.한달에책한권정도분량의판결문을써야하는법관의글은정성들여묵혀둔술처럼깊고묵직한맛을뿜어낸다.이책을먼저읽고추천사를쓴편집자이자문학평론가박혜진이“그가지금자신의문학을하고있다”고,“박주영의인간연구는우리에게도착한새로운문학일지모른다”고쓴이유이기도하다.
로봇이제한된단어만으로풍부한감정을표현할수있다면,승소,패소,기각,인용,징역,벌금,양형,구속,석방따위핏기없는단어라하더라도,인간인내가다루는한시가될수있지않을까,그단어들이시가되고,수필이되어야,영구미제로남아내법정을배회하는저유령들을집으로돌려보낼수있지않을까.(12쪽)
내일도모레도아마수십년뒤에도법정에는온갖유령이떠돌것이다.누구를잃어서,목돈을앗겨서,내것을쟁취하려고,네것을빼앗으려고,갖가지이유로탄식하고,악을쓰고,핏대를세운다.뜨겁기에차갑기만한법정한복판,핏기없는단어사이에서도한인간의삶을보려애썼던저자의노력은이책에도고스란히담겼다.
오해와몰애(沒愛)가아닌이해와사랑의독서
비로소‘너’를정독하는시간
〈2025사법연감〉에따르면2024년접수된전체소송건수는총6,915,400건이었다.그중온갖분쟁이몰려드는민사소송은4,709,506건(약68.1퍼센트)으로,1980년부터연평균약12퍼센트씩늘어나며꾸준히우상향하고있다.“송사좋아하면집안이망한다”는말은정말로옛말이돼서대한민국은인구대비소송건수가세계최고수준이다.사법관련전문가들은우리나라가분쟁을소송으로처리하는성향이매우높은‘소송과잉사회’로전환되었다고지적한다.우리는왜이렇게다투는걸까?
그러나안타깝게도요즘사람들은책을너무안읽는다.경제는발전하고,법과기술은눈부시게진보하는데,세상살이가갈수록팍팍해지는가장큰이유가‘책을읽지않아서’에있다는데,내재산의절반정도는걸수있다.이토록문해력이떨어지는데사람을이해하는인해력(人解力)이어떻게생길수있겠는가.이해조차어려운타인들과사는세상에서어찌공감과행동을기대할수있겠는가.(9~10쪽)
쉬지않는스크롤,휙휙지나가는릴스와쇼츠.쉽게짓는웃음,더쉽게쏟아내는비난,더욱더쉽게퍼붓는저주.고작두시간짜리영화조차몇분짜리축약본으로소화하는요즘,책같은걸읽는이들은한자밤도안된다.영화와책에도이럴진대한인간의생을들여다보려는사람은얼마나될까.갈수록단면만보는사람이늘어난다.그러나“CT사진한장을앞에놓고,한인간을평가하고규정짓는것은얼마나엉터리인가.”(279쪽)
어쩌면그래서우리는계속다투고있는지도모른다.나는정상이고너는비정상이야.나는이성적인데너는몰상식해.나는말했는데네가듣지않았어.‘나’와‘너’는좀처럼같은페이지에적히지못한다.저자에게도불화한장(章)이있었다.돌아가신아버지였다.그러다박민규의소설속기린이된아버지를조우했다.저자는비독(飛讀)해왔던자신의아버지를,추레하고마른몸으로법정에선누군가의아버지를비로소정독(精讀)할수있었다.
사실한꼬집도안되는재주를가진전업작가보다,책많이읽고문학적상상력을가진전업판사가,직업정치인이,경제관료가,과학자가,교사가,프로야구선수가훨씬더세상에필요하지않을까,자위해본다.모두가다양한책을읽고,자신의일에문학적향취를불어넣을수만있다면,세계는훨씬더살기좋은곳이될거라고확신한다.(11쪽)
다양한책을많이읽고문학적상상력을가진사람이많아질수록,자신의자리에서각자의문학을하는사람이늘어날수록세상이더좋은곳이된다는건,이상적으로들린다.그러나헌법학자이자법철학자인로널드드워킨은“이상과현실이다르다고이상을항상포기해야하는것은아니”(295쪽)라고했다.
『죄와책』은묻는다.현실에짓눌려지레이상을포기한건아니었는가.조금도헤아리지않고으레비난한건아니었는가.이제,‘너’를정독할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