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읽는 한국침례교회사

새로읽는 한국침례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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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36년 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말콤 C. 펜윅 선교사를 보내시어 한국침례교회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하셨습니다. 이름 없이 헌신한 수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가 씨앗이 되어, 오늘의 한국침례교회는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역사적 기록과 연구가 쌓였고, 그 가운데 『대한기독교 침례회사』, 『한국침례교회의 산증인들』, 『한국침례교인물사』, 『한국침례교회사』, 『말콤 C. 펜윅』, 『시대를 앞서간 말콤 펜윅』, 『한국침례교회 100년의 향기』, 『신사참배 거부로 수난당한 침례교 대표 32인』, 『한국침례교사상사』, 『침례교 선교의 발자취』 등 귀중한 저술들과 각 교회 역사책들이 교단의 정체성을 밝혀주고 우리의 지난 과거를 조명해 주었습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갈 길을 보여 주며 내일을 준비하게 합니다.
이번에 발간된 『새로 읽는 한국침례교회사』는 35년 만에 총회 차원의 공식 역사서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학문적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속에 교단 전체가 함께 세워 온 믿음의 유산을 새롭게 확인하는 사건입니다.
저자

김용국

저자:김용국
김용국저자는부산대학교영어영문학과를졸업하고,미국SouthernBaptistTheologicalSeminary에서목회학석사(M.Div)와철학박사(Ph.D)를취득했다.1998년3월부터2002년7월까지한국성서대학교교수로봉직했다.2002년8월부터현재까지한국침례신학대학교교회사교수로재직하고있으며,학생실천처장,출판부장,기획실장,사무처장을역임했다.학회활동으로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편집위원장,총무이사,부회장,회장을역임했으며,교단사역으로기독교한국침례회역사연구회부회장과이단대책위원회위원으로활동했다.현재사랑의교회(대전)협동목사로섬기고있다.저서로는『한국침례교사상사,1889-1997』(2005),『미국침례교회사』(2014),『꿈의교회120년사』(2016),『세계침례교회사』(2020),『침례교회사』(2024)등의단행본이외에역서들과수십편의논문이있다.

목차


발간사|이욥목사004
머리말|김용국목사006
제1장
한국침례교회의시작(1889-1905)
기독교의한국전래017
한국침례교회의시작022
말콤펜윅의신앙배경과내한029
펜윅의목사안수와엘라씽기념선교회039
엘라씽기념선교회의한국선교047
펜윅의한국순회선교회설립과엘라씽기념선교회인수066
스테드맨의재방한과충청도상황081
사진논쟁084
제2장
일제강점기한국침례교회(1906-1944)
대한기독교회시대(1906-1920)095
교권파동과「포교계」사건124
전도인과순교자들133
펜윅의성경번역과복음찬미141
동아기독교회시대(1921-1932)143
동아기독대시대(1933-1939)155
동아기독교시대(1940-1944)171
대한기독교회와항일운동179
제3장
교단의재건과남침례교회한국선교시대
(1945-1958)
8·15해방과교단재건189
미국남침례교회와의제휴192
남침례교선교사들의입국과한국적응모습215
구호사업222
의료선교228
전도와교회개척240
침례교정체성의주입254
교회부서와총회기관설립257
결론및평가272
제4장
교단분열시대(1959-1968)
교단분열의배경과원인279
교단분열의과정284
교단분열의결과와평가308
분열이후포항총회313
분열이후대전총회316
교단의재통합331
성령운동과교육목회334
제5장
한국침례회연맹총회시대(1968-1975)
교회개척과한미기금위원회344
한미연합전도대회345
총회의상황350
총회기관현황353
김장환목사와1973년빌리그래함전도집회359
제6장
기독교한국침례회시대(1976-현재)
남침례교선교부의지원과교단부흥368
한국목회자들과교단부흥376
오관석목사와하늘비전교회377
김충기목사와강남중앙침례교회382
김장환목사와수원중앙침례교회388
이동원목사와지구촌교회397
안희묵목사와꿈의교회406
김성로목사와춘천한마음교회412
호칭장로제논쟁416
여성목사안수논쟁426
침례병원문제436
한국침례신학대학교현황447
그외기관들의현황459
맺는말469
[부록1]역대총회장과총회시대구분437
[부록2]한국침례교순교자명단482
후주484

출판사 서평

새로읽는한국침례교회사는교단의역사를새롭게조명하여교단의미래를향한정체성과정통성을계승하고학문적성취가아니라하나님의은혜와인도하심속에교단전체가함께세워져온믿음의유산을새롭게확인하는발걸음이된것이다.

책속에서

한국침례교회의역사는말콤펜윅(MalcolmC.Fenwick,1863-1935)의내한으로부터시작된다.펜윅은초교파독립선교사로‘오와리마루호’(OwariMaru)라는일본증기선을타고1889년12월11일부산항에입항했다.그는부산에서며칠머문후육로로서울을향해갔다.

펜윅은아치발드펜윅(1813-1868)과바바라라담(1823-1901)사이의7남4녀중10번째자녀로1863년캐나다토론토마캄(Markham)에서태어났다.5살때아버지아치발드가세상을떠나펜윅은경제적어려움으로정규교육을받을수없었다.그렇지만어머니와도널드매킨토시(DonaldMcIntosh)목사의가르침으로건전하게성장했다.아치발드는동네에서평판이좋았으며바바라는신실한기독교인으로자녀들을기독교신앙과경건한삶으로이끌었다.매킨토시는은퇴한나이많은목사로펜윅의집에서여러해유하며신앙적영향을끼쳤다.펜윅은그에대해서다음과같이말했다:

매킨토시목사님은글래스고우대학교에서금메달을획득할정도로우등생이었다.그는한시간내내시를외울수있었다.그는정말로비상한두뇌를가진사람이었다.그러나그의위대함은이러한것에있지않았다.비록그는공부를많이하고지혜도풍부하며,문학적능력도뛰어났으나,이런것보다겸손하고꾸밈이없으며,어린이같은예수님의제자였다.그의위대함은바로여기에있다.

펜윅은한국교인들에게어린이같은겸손을강조했는데,이는매킨토시의영향에서비롯된것이다.매킨토시는펜윅이18세에온타리오프라이즈모델농장(PrizeModelFarmofOntario)에취직하여마니토바라는지역으로갈때,안식일을거룩하게지킬것을당부했다.이에관해펜윅은다음과같이말했다:

그의작별을나는기억하는데왜냐하면그말은내인생에큰영향을끼쳤기때문이다:“말콤아기억해라.안식일을거룩하게지켜라.그러면너는아무문제가없게될것이다.나는많은젊은이의삶을지켜보았는데,인생의내리막길로가는출발점은안식일을기억하는일에실패하면서부터였다.”그말은나를정규적으로교회에출석하게했다.…짧게말하면그말은이땅에서나의가장좋은친구가되었다.

19세기후반북미의복음주의자들은안식일성수를강조했다.그들은안식일의신성함을분명하게인식하는것이기독교문화와교회를이루는기초라했다.매킨토시는전형적인복음주의자였고그의복음주의적신앙은어린펜윅에게깊이영향끼쳤다.

어머니의신앙과영성역시펜윅에게큰영향을끼쳤다.펜윅은가족을떠나마니토바에서일하며생활할때,어머니와누이들의신실한신앙생활을기억하며죄악에빠지지않았다.그는온타리오프라이즈모델농장에서3년간일한후잠시집으로돌아왔다.그때어머니는사고로누워있었다.펜윅이얼마간간호한후다시직장으로돌아가려할때,등뒤에서“아들아,너의마음을예수님께드리기만한다면,나는네가아무리멀리떠나있어도걱정이없을거야”라는말이들려왔다.어머니의간곡한권면은펜윅으로하여금예수님을진지하게찾게했다.그는그리스도를만나기위해긴신앙적고통을경험했다.펜윅은당시경험을다음과같이회고했다:

나는그때기차를타고가던중에그분을발견할때까지찾아나서기로결심했다.강한확신이들기까지2년동안나는그리스도를발견하기위해알고들었던모든방법을동원했다.예를들면,숲속에혼자있으면서그분을찾는가하면,밤새워기도하거나,그외모든자기의의로움을이루기위해노력했다.그러나이러한모든노력은결국절망감과함께포기하게되었고,나는하나님께구원받을가치가없는사람이라고백했다.…토론토의어는거리의어떤장소,그곳은이전에가본적이있는곳이었는데,거기에서나의오랜갈등의날들가운데나의왕나의구원자를만났다.내가그분의평화로운얼굴에서나오는광채를바라보고있을때그분의음성이들렸다.“너는가치가없지만나는가치가있다.나는네가살수있게하려고죽었다.”나는그때내가구원받았음을알았다.

펜윅은2년간산기도와철야기도를비롯한많은방법을통해주님을체험하려했다.그러던중23세가되던1886년토론토의어떤거리에서예수님에대한환상을보며회심을경험했다.펜윅은어머니의권면으로회심했을뿐만아니라재림신앙도물려받았다.펜윅이한국으로떠날때어머니는마지막작별의말을했다:“내아들아괜찮다.…예수님이곧다시오실것이고,그때우리는다시만나게되며작별이란영원히없을것이기때문이다.”어머니의경건한신앙생활과재림신앙은펜윅의마음에깊이뿌리내렸다.
---본문중에서

펜윅은회심이후1886년부터나이아가라사경회(NiagaraBibleConference)에정기적으로참석하며신앙체계를세웠다.본사경회는1884년을제외하고1883년부터1897년까지나이아가라폭포에서22km떨어진나이아가라호숫가에있는퀸스로열(Queen’sRoyal)호텔에서매년여름개최되었다.나이아가라사경회는북미신학교와교회가유럽의자유주의신학을받아들이는현상에반대하여,성경의진실성과보수신앙을지키려는목적으로만들어졌으며,성인이된펜윅에게지대한영향을끼쳤다.사경회는성서주의,세대주의,경건주의,세계복음화를표방했는데,그것은사경회가플리머스형제회,부흥주의,케직사경회로부터영향받았기때문이다.그러나개혁주의전통도상당히보존하고있었다.펜윅은나이아가라의보수·근본주의신학을진리로받아들였다.

펜윅은회심이후막연히해외선교사의소명을느꼈으나거부했다.그러던중1887년7월나이아가라사경회에서미국학생자원운동(StudentVolunteerMovement)의창립회원이며인도선교사였던로버트윌더(RobertWilder)가해외선교의긴급성을호소했고,펜윅은그의설교에감동받아서소명에순종했다.펜윅은이에관해다음과같이말했다.
---「2.나이아가라사경회와학생자원운동」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