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이젤 앞에서 서성입니다 (박수철 산문 | 양장본 Hardcover)

오늘도 나는 이젤 앞에서 서성입니다 (박수철 산문 | 양장본 Hardcover)

$29.96
Description
끝내 붓을 내려놓지 않은 한 인간의 기록그릴 수 없음의 절망 속에서, 그래도 살아 있었던 시간들
이 책은 1950년 포항에서 태어난 화가 박수철이 남긴 50년간(1969년~2022년)의 일기와 편지를 엮은 기록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채 그림을 그려왔다.

“나는 예술가인가?”
“나는 화가인가?”

그는 이 질문들 앞에서 끝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이 책에 담긴 박수철의 삶은, 예술가로서의 열망과 가장으로서의 무능감이 충돌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림 앞에서는 늘 절망했고, 생활 앞에서는 늘 미안했다. 작업실에서 그는 자신을 “버려진 폐농기구처럼 녹슬어 있는 존재”, “절망에게 죽은 자로 끌려가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그림은 위안이 아니라 싸움이었고, 창작은 성취보다 패배의 감각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성공한 예술가의 연대기’도 박수철의 예술론도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 한 인간의 고백에 가깝다.
그릴 수 없음의 절망 속에서도, 그는 매일 작업실에 가서 무엇이 그림이 될 수 있는지 판단하지 못한 채, 이젤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끝없이 기록했다.
그래서 책에 실린 일기와 편지들에는 거창한 사건 대신, 햇살이 깊숙이 들어오는 늦가을 작업실, 휘어진 빈 가지의 벚나무, 아들이 보내온 생일 축하금 십만 원, 아내가 무심코 툭툭 쳐주는 손길 같은 순간들이 등장한다. 그는 그런 사소한 장면들 속에서 잠시 자신을 용서받고,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나의 못남이, 나의 무능함이 말갛게 지워지는 순간”은 늘 일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찾아온다.

박수철에게 일기를 쓴다는 것은, 하루를 견뎌냈다는 증거이자 삶을 붙들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다. 빛과 바람, 하늘과 들판, 시든 꽃은 그날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 되었고, 그림은 완성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행위였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끝내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계속 그리는 사람을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다시 생을 시작한다면, 이보다 나을 수가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패배감 속에서도 살아낸 시간, 무너짐 속에서도 이어진 박수철의 삶의 기록들, 그가 남긴 문장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만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이 다가가길 바란다.
저자

박수철

1950년 포항 출생. 포항동지상고 야간학부 졸업 이후 독학으로 그림 시작. 포항문화예술회관 기획 초대전 <박수철>(2005), 포항문화재단 <포항 우수작가 초대전 Ⅱ>(2017), <뱅이 숲 속의 카페>(2020), <The cross40>(2023),<정물풍경>(2024), 포항시립미술관 초대 지역 원로작가 <박수철, 오래된 꿈>(2025) 등 전시

목차

1 때묻지 않은 황토의 알몸이 내게 쏟아지면
2 바다의 숨소리가 내 영혼에 밀려올 때
3 빛도 어둠도 지극히 아름다운 삶의 기법이기에
4 나는 당신이 그린 밑그림

출판사 서평

일흔 다섯의 화가 박수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산문집“그림아! 내 그림아! 나를 떠나 너는 어디에 있느냐?”
그림을 사랑했지만 평생 확신하지 못했고 작업실에 머물렀지만 언제나 스스로를 의심한 박수철. 그에게 그림은 소유한 대상이 아니라 늘 도망치는 존재였고,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작품’이 아닌 ‘추억의 형상을 더듬는 일’, 나아가 “삶의 그리움에 대한 자위”라고 말한다. 끝없이 미끄러지는 실패와, 그 실패를 끌어안은 채 다시 작업실로 돌아오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도 그는 말한다.

“어디 내가 이 끈을 놓고서야 살 수 있겠는가?”

그림은 그에게 생계도 명예도 아니었다. 생존 그 자체였다. 작업실로 돌아와 “기침 소리를 내고” 잠들어 있는 그림들을 다시 깨워야 한다는 그의 메모는, 예술적 소명이라기보다 살아 있음에 대한 최소한의 증명에 가깝다.

“지금 내가 죽기에 가장 안타까운 일은 아직도 내가 그려야 할 캔버스가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것”

그가 쓴 어느 날의 일기에서 우리는 박수철에게 그림은 살아야 할 이유이고, 남은 물감과 캔버스는 그의 욕망이 아니라 그의 생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직은 더 살아야 한다.”고.
햇살, 빈 가지, 낡은 작업실. 그 속에서 박수철은 자신을 발견했고, 그 자신 역시 하나의 정물처럼 늙어가고 있음을 받아들였다.

이 산문집은 예술가의 성공담도, 미학적 선언도 아니다.
끝내 확신하지 못한 채 그림을 그려온 한 인간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나이에 이르러 남긴 마지막 기록이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살 수 없었고, 그려도 늘 부족했던 사람의 솔직한 문장들이 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며, 시기별 기록(1~3부)과 함께 40여 년간의 스케치 원본(4부)을 수록했다. 또한 책의 마지막에는 QR코드를 통해 박수철의 회화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해, 그의 삶을 읽은 뒤 그림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구성이 ‘그의 삶이 곧 그의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설 것이다.

1부(1969~1995)는 옐로우 오커(Yellow Ochre),
2부(1996~2012)는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
3부(2013~2022)는 크림슨 레이크(Crimson Lake),
4부(1977~2018)는 에메랄드 그린(Emerald Green)이라는 색을 각 부에 배치했다. 이는 박수철의 삶과 작업에 깊이 스며든 정서와 시간을 ‘색’으로 다시 읽도록 하기 위한 출판사의 기획이다. 독자는 글을 읽는 동시에, 색을 통해 작가의 내면과 시기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이젤 앞에서 서성입니다』는 화가 박수철의 처음이자 마지막 산문집으로, 한 시대를 살아낸 지역 작가의 기록을 넘어, 예술과 삶의 본질을 묻는 귀중한 증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