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번 더 나은 실패를 한다.

나는 매번 더 나은 실패를 한다.

$11.00
Description
curation book, RUNNER’S BOOK
큐레이션북, 러너스북
고유명사의 큐레이션 북, 러너스 북 〈RUNNER’S BOOOK〉시리즈는 책과 달리기로 일상의 건강성을 회복하자는 모티브에서 출발되었습니다. 책은 우리의 정신을, 달리기는 우리의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달리기의 정신과 철학을 바탕으로 러너스북 시리즈는 인생의 마라톤으로부터 지친 러너들에게 책이라는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고전속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작가의 문장을 선별해서 모은 큐레이션 북 시리즈입니다. 여행자들에겐 쉘터가 있고 순례자들에게는 알베르게가 있듯이 잠시 삶을 정비하고 다음 트랙으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워터포인트〈water point〉같은 책이 되고자 합니다.


러너스북 시리즈 3편, 『나는 매번 더 나은 실패를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별계획』

일본 근대문학 특유의 문학 장르인 사소설을 개척한 작가로 손꼽히는 다자이오사무는 남다른 독자성을 지닌다. 예리하고 섬세한 감수성과 뛰어난 스토리텔러로서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으며, 삶에 대한 불안감을 성찰하면서 암울한 내용에서부터 가볍고 유머러스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창작을 했다. 생가인 츠시마 가문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스스로의 눈으로 목격하고 자랐기에 그의 마음속에는 강자를 향한 비판과 약자를 향한 사랑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인간의 속성과 삶의 모습들에 대한 유머와 인간의 고뇌와 진실을 고즈넉하게 파헤치고 있어 때로는 잔잔한, 때로는 벅찬 감동을 안겨준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인간실격》은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판매수를 기록하였다. 특히 여성 화자가 주인공이 된 1인칭 작품을 많이 집필하였고, 여성 작가나 여성 문예평론가들로부터 "남성임에도 이 정도 수준으로, 여성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니" 하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러너스북 트랙 3 〈나는 매번 더 나은 실패를 한다〉에서는 다자이오사무의 많은 작품 중에서 이별과 사랑에 관한 기록들을 선별하여 독자에게 선사한다.
저자

다자이오사무

(1909-1948)

다자이오사무(일본어:太宰治,1909년6월19일~1948년6월13일)는일본의소설가이다.1936년(쇼와11년)에첫작품집『만년(晩年)』을간행하였다.1948년(쇼와23년)에애인야마자키도미에(山崎富栄)와함께다마가와(玉川)죠스이(上水)에투신자살하였다.주요작품으로는「달려라메로스(원제:走れメロス)」,「쓰가루(津軽)」,「옛날이야기(お伽草紙)」,「사양(斜陽)」,「인간실격」이있으며,사카구치안고ㆍ오다사쿠노스케(織田作之助)ㆍ이시카와준(石川淳)등과함께신희작파(新戱作派)ㆍ무뢰파(無賴派)등으로불린다.

본명은쓰시마슈지(일본어:津島修治)인데,필명을쓴까닭은쓰가루지방(아오모리현서부)출신인스스로가본명을읽으면쓰가루방언의영향으로지시마(チシマ)로들리지만이필명은방언투로읽어도발음이그대로이기때문이었다고한다.[1

아버지는공무로늘바빴고어머니는병약했으므로,다자이자신은유모등의손에서자랐다.
1916년(다이쇼5년)에가나키제일심상소학교(金木第一尋常小學校)에입학하였다.4년만인1922년(다이쇼11년)4월에소학교를졸업하고학력보충을위해현지4개마을에서조합으로세운메이지고등소학교(高等小學校)에다시1년간통학하였으며,1923년(다이쇼12년)에는아오모리현립아오모리중학교(靑森中學校)[2]에입학하는데,입학직전인3월에다자이의아버지가도쿄에서세상을떠났다.

프랑스어를전혀하지못하면서도프랑스문학을동경해4월에동경제국대학문학부불문학과에입학하지만,높은수준의강의내용을전혀이해할수없었던데다친가에서부쳐주는돈으로마음껏방탕하고호사스러운생활을하면서그에대한자기혐오,내지다자이자신의처한위치와더불어마르크시즘에심취해갔고,당시치안유지법에서단속하고있던공산주의활동에몰두하느라(다만공산주의사상자체에진심으로빠져들었던것은아니었다)강의조차대부분출석하지않았다.또한소설가가되기위해5월부터이부세마스지(井伏鱒二)의제자로들어갔는데,이때부터본명인쓰시마슈지가아닌다자이오사무라는이름을쓰게된다.대학은거듭된유급에수업료미납으로제적된다.[5]재학중에만나동거하던술집의여급으로유부녀였던18세의다나베시메코(田部シメ子)와1930년월에가마쿠라의고시고에(腰越)바다에서동반투신자살을기도하였으나,시메코만죽고다자이는혼자살아남았다.이일로다자이는자살방조혐의로검사로부터조사를받았지만,형분지(文治)등의탄원으로기소유예처분을받았다고한다.[6]

「인간실격(人間失格)」,「앵두(櫻桃)」를마무리한직후1948년6월13일,타마가와(玉川)죠스이(上水)에서애인야마자키토미에(山崎富栄)와동반자살하였다.[14]이때그의나이는39세였다.이사건은발표직후부터온갖억측을낳았는데,도미에에의한억지정사설,희극심중실패설등이다.다자이가생전에아사히신문에연재중이던유머소설「굿바이」도미완의유작으로남았는데,공교롭게도13화에서작가의죽음으로절필되었다는데에서기독교의징크스를암시하는다자이의마지막멋부림이었다는설도있고,그의유서에는'소설을쓰는것이싫어졌다'등의취지가적혀있었는데,자신의컨디션저조나다운증후군을앓는저능아였던외아들의처지에대한비관도자살의한원인이되었을거라는설도있다.기성문단에대한'선전포고'로까지불리던다자이의연재평론「여시아문(如是我聞)」의마지막회는다자이사후에게재되었다.유해는스기나미구호리노우치에서화장되었다.계명(戒名)은문채원대유치통거사(文綵院大猷治通居士)였다.

다자이의사체가발견된6월19일은공교롭게도그의생일이었는데,죽기직전에쓴단편「앵두」와도관련해,생전에다자이와는동향으로교류가있던곤간이치(今官一)에의해'앵두기일'이라불리게되었다.이날은다자이문학의팬들이그의무덤이있는도쿄도미타카시의젠린사(禪林寺)를찾는날이기도하다.또한다자이가태어난아오모리현카나기마치에서도'앵두기일'에맞춰다자이를기념하는행사를열었는데,다자이의탄생지에서다자이의탄생을축하하는것이옳다는유족의요망도있어다자이오사무탄생90주년이되는1999년부터는「다자이오사무탄생제」로이름을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