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철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감염적 존재 ‘호모 인펙티부스’를 위하여)

팬데믹 시대, 철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감염적 존재 ‘호모 인펙티부스’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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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팬데믹 시대, 철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코로나 19는 인간의 물리적 육체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문화적 기반까지 공격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감염병이라는 의료 및 행정적 재난을 넘어 우리의 인식체계와 가치관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 규범적 위기이기도 했다. 이 위기에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안전, 책임과 권리 등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했고,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실천적 대안이 요구되었다. 이 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여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개념공학적 접근과 새로운 윤리적 프레임의 정립을 통해 제시한다.

개념공학과 언어의 사회적 효과

개념공학은 단순히 개념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념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며 어떤 규범적 결과를 낳는지 평가함으로써 더 나은 개념을 설계하는 실천적 철학 분야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 ‘슈퍼전파자’, ‘무증상 감염자’ 등 일상화된 용어들은 표면적으로는 중립적 사실을 기술하지만, 그 이면에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표적화하고 책임을 개인에게 환원하는 사회적 낙인효과를 내포했다. 이러한 언어는 공포와 비난, 배제와 권력관계를 재생산하며 방역의 신뢰 기반을 약화시켰다. 개념공학은 이처럼 사회적 담론 속에서 작동하는 개념들의 윤리적, 사회적 구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적 언어와 소통 구조를 설계하는 데 초점을 둔다.

소통과 참여의 구조 재설계

팬데믹 대응에서 국가 주도의 수직적 지시와 강제는 불가피했지만, 효과적 위기 대응의 핵심은 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에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을 방역의 객체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윤리적 주체로 존중하고, 신뢰와 공감, 참여를 기반으로 한 수평적 소통 구조가 필요하다. 언어와 담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인식과 행동, 사회적 질서를 구성하는 권력의 장치다. 따라서 감염병 윤리의 철학적 개입은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속성뿐 아니라, 그것이 어떤 언어와 개념 속에서 사회적 현실로 구성되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 개념의 재구성과 새로운 윤리적 프레임

팬데믹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다시 던졌다. 기존의 인간관은 자율적이고 분리된 개체로서의 인간을 전제했으나, 코로나19는 인간이 감염의 수용성과 전염 유발성을 동시에 지닌 ‘연결된 몸’임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건강과 질병은 단일 개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동물-환경의 상호의존적 관계망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하나의 세계, 하나의 건강(One World, One Health)’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또한, 인간은 바이러스뿐 아니라 마스크, 공기, 기술, 언어 등 비인간 존재자들과의 감응을 통해 존재가 구성되는 ‘감응적 존재’임이 드러났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감염병 대응은 통제와 처벌이 아니라 자율적 참여와 감응의 윤리, 공감과 연대를 기반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팬데믹 시대 철학의 역할은 기존의 개념과 인식체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보다 정의롭고 신뢰 가능한 소통과 협력의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책에서 인간을 ‘호모 인펙티부스(Homo infectivus, 감염적 존재)’로 재규정하며, 연결된 몸, 하나의 건강, 감응의 윤리라는 새로운 철학적 프레임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감염병 위기 대응은 단순한 기술적, 제도적 조치를 넘어, 인식과 가치, 언어와 소통의 구조적 전환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

강철

저자:강철
연세대학교보건대학원에서의료윤리를가르치고있으며,철학이야말로가장실천적인학문이라는신념아래,개념의비판과재구성을통해사회현실에개입하는작업을수행해왔다.현재의료윤리,인공지능윤리,기업윤리등에관심을두고연구하고있다

목차


들어가는글:왜지금‘팬데믹윤리’인가?
서론:감염병윤리의철학적재구성

1부―팬데믹위기와철학의소명
1장팬데믹은사회,정치,규범영역에어떤영향을끼쳤나
1.사회영역:감염의사회학,불평등한재난
2.정치영역:통치의형식과민주주의의경계
3.규범영역:규범질서의혼란과공중보건의의무

2장위기상황에서철학은무엇을해야하는가?

3장철학함의복원:누구나개념을만들수있어야한다

2부―개념공학과감염병윤리의재설계
1장이론적고찰
1.개념공학이란무엇인가?
2.개념공학적재구성:세계,개인­사회,인간

2장실천적고찰
1.개념공학의실제
2.대중의참여와넛지
3.도리(道理)로서의감염확산방지의무

결론:호모인펙티부스와철학의새로운소명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P.6
코로나19팬데믹은감염병이라는의료적,행정적재난은물론이고,우리가오랫동안당연하게받아들여온인식체계와가치체계에근본적인질문을던진규범적인위기이기도했다.다시말해,팬데믹은우리가서로를어떻게인식하고,어떤가치를우선시해야하며서로를어떻게대해야하는지를근본적으로재고하도록만든계기였다.

P.22
우리는이제‘건강이란무엇인가?’라는물음을,그동안당연시해왔던숨은가정을비판적으로고찰하면서물어야한다.그물음의범위를인간내부로제한하는것이아니라인간-동물-환경간의상호침투성과의존성전체로확장해야한다.이때중요한철학적자원이되는것이바로‘하나의세계,하나의건강(OneWorld,OneHealth)’이라는패러다임이다.


P.44
향후유사한감염병상황에대비하기위해서우리는방역정책의형평성과투명성뿐아니라,정치적대표성과참여의윤리적구조를새롭게설계할필요가있다.철학은여기서,단지‘통치의정당성’을비판하는수준을넘어,‘재난상황에서의민주주의란무엇인가’를공동으로사유하는인식의틀을제공할수있어야한다.

P.49
철학자는개념을제작하고,수정하고,필요하다면폐기하는일을하는사람이다.예를들어,팬데믹상황에서사용된개념들이어떤현실적효과를갖는지를분석하고,그개념들을윤리적,사회적측면에서더정당한방식으로개선하기위한일종의사고실험(thoughtexperiment)을수행하는사람이다.

P.81
팬데믹은통제와지배,훈육과억압이라는언어자체의권력을다시묻는계기가되었다.특히‘슈퍼전파자’,‘확진자’,‘자가격리자’,‘사회적거리두기’등의개념들이단순한기술어(descriptiveterm)가아니라정치적프레임이자규범적장치로기능하고있다는사실을여실히드러냈다.개념은단순히현상을반영하는거울이아니다.그것은특정한시선과방향성을부여하는창틀(frame)이며,세계를해석하고구성하는장치이다.

P.98
인간과동물,인간과환경이동등하게질병의원인이자해결의주체로존재한다는점을인정할때,팬데믹이후의세계에서지속가능한규범적인구조를구축할수있다.요컨대인간/비인간이라는가치론적이분법을그대로유지하는한,우리는팬데믹의반복을피할수없다.문제는바이러스가아니라,바이러스를가능하게만든인간중심적세계관이다.

P.124
코로나19팬데믹은이러한호모사피엔스의신화를전면적으로해체하였다.팬데믹은인간이언제나타자와환경속에서살아가는감염가능하고감염을매개하는존재라는점을극적으로드러내주었다.인간은독립적주체가아니라바이러스,미생물,타자,거리,공기,마스크,언어와끊임없이상호작용하며,이들에의해영향을받고영향을주는감염적존재자였다.이러한존재방식에주목하여,나는인간을새롭게‘호모인펙티부스(HomoInfectivus)’,즉감염적존재로재정의할것을제안한다.

P.159
요컨대우리는‘권리-의무’라는분리된몸과추상적개인을전제하는근대의법적틀을넘어,연결된생명체로서의인간이라는보다근본적인존재론적사실을성찰하고,거기서비롯되는규범적요청으로서의도리를윤리적기초로삼아야한다.이러한도리의윤리학은법과제도를초월한신뢰의기초이며,미래의재난에대응하는공적윤리의새로운출발점이될것이다.팬데믹이후의사회는이와같은존재론적,윤리적성찰위에서만다시설계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