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모형 속을 걷다

다시, 모형 속을 걷다

$20.36
Description
채나눔의 건축가 이일훈이 다시, 모형 속을 걷다
이웃의 삶을 건축으로 껴안은 건축가의 빼어난 에세이

“그러나저러나 할 말은 남고, 모형은 사라졌다”
아직도 건축의 힘을 믿는 한 건축가의 고백

채나눔의 건축가 이일훈은 생전에 글맛과 입담 좋기로 유명했습니다. 그가 20년 전 건축물 모형을 모티브로 건축과 세상, 사람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쓰던 공간을 이사하면서 그동안 쌓아둔 모형을 버려야 했고, 아쉽고 아까워서 부서져 나가는 모형을 쫓기듯 사진에 담았고, 그 사진들이 씨앗이 되어 글이 되고 책이 되었습니다. 깊은 사유와 통찰을 바탕으로 쉽게 풀어낸 이 건축 이야기는 널리 읽혔고, 건축가 이일훈과 건축주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책, 《모형 속을 걷다》(2005, 솔) 속 글과 덧댄 글을 여기에 함께 담았습니다. 이웃의 삶을 건축으로 껴안은 건축가이자 빼어난 에세이스트이기도 했던 이일훈이 다시, 모형 속을 걷습니다.

이 책에는 그때 모형 사진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모형도 모형 사진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글을 읽으며 모형을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형 사진이 없는 글들과 더불어 책을 내고 난 이후에 쓴 글 몇 편을 실었습니다(‘이일훈의 또 다른 글’). 건축가의 하드 디스크에 남아 있는 글입니다. 그곳엔 없었지만, 받은 이가 소중히 간직한 프린트물도 가져왔습니다. 건축 지도와 건축 사진도 모았습니다.
저자

이일훈

1953년에태어났다.1978년한양대학교건축과를졸업하고김중업건축연구소에서건축수업을했다.이후이일훈연구소설계집단후리(StudioforNepsis&FreeMedia)를열어건축작업을지속해왔다.
1990년대초에는삶의태도에대한질문을담아‘채나눔’건축론을폈다.불편하게살기,밖에살기,늘려살기가환경에도이롭고더건강하게살수있다는설계방법론이다.채나눔은탄현재,궁리채,퇴계불이,등촌불이,가가불이,재색불이등과같은1990년대주택부터잔서완석루까지이어진다.자비의침묵수도원을시작으로,숭의동성당을마지막으로꾸준히종교건축작업을해왔다.아울러기찻길옆공부방을비롯해전국국어교사모임살림집등사회적건강함이읽히는건축에마음을쏟았다.지은책으로는《가가불이》(공저),《나는다르게생각한다》,《뒷산이하하하》,《모형속을걷다》,《불편을위하여》,《제가살고싶은집은》(공저),《사물과사람사이》,《이일훈의상상어장》등이있다.이웃의삶을건축으로껴안고지속가능한미래사회를건축으로그려온건축가이일훈,2021년7월세상을떠났다.

목차

다시드리는글
이일훈의머리말

하나.사라진모형의꿈

생각을담을수있으니모형은생각의집이며꿈의집이다
맹지때문에사라진그모형이세상의아름다움에눈뜨라고날깨운다
나는겨우난간을만지작거리며계단에서놀았다
제발저에게알려주세요.살고싶은당신의집을,꾸고싶은당신의꿈을

이일훈의또다른글1
그러니건축(집)의말은결국건축주(사람)의말이요,생각이다
_가가불이/작은큰집/잔서완석루

그집에만들고싶었던정자와심고싶었던나무,결국내마음속에짓고말았다
놀이터보다도더작은,장난감을계속만들고싶다
때묻은모형처럼내기억에도먼지가앉았다
도면을,모형을,기억을떠올리는나는도면속을,모형속을걷고싶어진다
그래서집을보면사람이보이는법이다

이일훈의또다른글2
그럴때마다당부한다.“이웃과웃으며즐겁게잘사는방법은멋있게다투는것”이라고_소행주


둘.또다른모형의꿈

사라진모형사진을보며난또사랑을배운다_도피안사향적당
산다는것은결국꾀를부리는일이아니던가_궁리채
첫경험의기억은이리도오래간다_탄현재
건축은공간으로드러난다.나는그렇게믿는다_천주교우수영공소
어쩌면‘작은’것을지향하는것이더‘큰’욕망인지도모른다
그렇다.건축가와는사는방식을상의하는것이다_자비의침묵수도원

이일훈의또다른글3
원래그랬던것처럼가재리수도원이있다.‘자비의침묵’

셋.또다른건축의말
건축공간은삶과죽음의실체적효용에바쳐진다
건축에서이웃을잃으면그것이폐허와무엇이다를까
폐허속에숨은이야기를위해서는좁고깊은창이제격이다
어슴푸레한그늘로속삭이던동네풍경은바둑판같은그리드로질러간다
자본이야기가나오면건축가는우울해진다

이일훈의또다른글4
건강한건축은건강한뜻에서잉태한다_밝맑도서관

멈추어선벽체와자라는나무,그둘이보여주는계속변하는장면으로서의건축이라니
밤의불빛은자본과정비례한다.밝은곳은비싸고어두운곳은싸다
집에‘정신’이들어가면그런집이바로이시대의‘한옥’이다
산다는것과시시콜콜함은늘붙어있고,건축또한그사소함을껴안고존재한다
지반사정이험할수록멋있는다리가만들어진다.조건이나쁠수록해법이멋지다

아직도건축의힘을믿는한건축가의고백
건축가이일훈

출판사 서평

도면을,모형을,기억을떠올리는나는도면속을,모형속을걷고싶어진다

이일훈은그책을엮을때이렇게말합니다.“모형사진은내건축의일부이며또그모형에대하여,모형을통하여보이는이야기는내생각의일부분이다.누구든‘너자신을알라’고일갈(一喝)하지만,둔한나는아직도나를모르겠다.원래모르는놈이말많고가방큰놈이살림복잡한법이다.그티를잔뜩묻히고서부끄럽게도건축을대하는속내를묶는다.”

이일훈에게모형은무엇이었을까요.“우리의생각을담을수있으니모형은생각의집이며꿈의집이다.꿈은삶이고삶또한꿈이다.꿈이든삶이든깨기도하지만이루어지기도하니까.모형의운명또한꿈의운명을닮았다.”종이나스티로폼은가벼워서모형만들기가비교적쉽지만,그렇다고버릴때의아쉬움마저가벼운것은아닙니다.“이때의아쉬움은무거운안타까움에쓸데없는아까움까지겹쳐있다.버려지기직전의모형을보면세상에할말이많이남은듯조바심이가득하다.”고털어놓습니다.

이일훈은집의구성과공간이그려진평면도‘위’를걷는다고합니다.“아니,평면‘속’을걷는셈이다.그럼누가아나,늘사는집의평면을연상하며건축적이해에도움이되는버릇이생길지도모르니까.그러고보니무엇이든평면/입면/단면이라는도면의형식으로파악/표현하려는건축가의버릇/습관이배어난디자인인지도모르겠다.”그러면서도면에대해한마디덧붙입니다.“책처럼악보처럼지금나와대화하는상대처럼,아니마음처럼도면을‘읽는다’.‘보다’와‘읽다’의큰차이는상상력의진폭이다.”

이일훈은땅과건축물사이를이렇게말합니다.“땅의특성과건축물을어떻게유기적으로관계맺게하는가,안전성에서위생적처리까지많은사항을조직하고구성하는것은건축가의몫이다.건축은아주보편적인것에서부터아주특별한것으로해법을찾아나아가는것이다.”그리고궁금해합니다.“눈이없으면보지못하듯길이없으면집에이르지못한다.길과붙은집들이길과의연관성을소홀히하면집은그저콘크리트상자일뿐.집한채지으며동네를바꾸는꿈을꾸고그렸는데,10년도더지난지금그주변은어떻게변했을라나.”

이일훈은늘새로운지형(地形)을꿈꿉니다.“건축또한지형의일부다.지난한삶의지형/건축!건축이삶의전부인양생각하면서도건축을통해서내삶을건지지는못했다.결국꿈꾸는건축/지형을통해좌절하고또실망하면서도건축을버리지못했다는고백이뒤따른다.”


건축에서이웃을잃으면그것이폐허와무엇이다를까

채나눔의건축가이일훈은유쾌합니다.자발적인불편함을받아들이고(불편하게살기),될수있으면자연을가까이접할수있는바깥공간을만들고(밖에살기),동선을늘려공간을더욱풍요롭게한다면(늘려살기)환경에도이롭고더건강하게살수있다고제안합니다.“채나눔’은작은집만을위한설계방법론이아니라,이세상을향해서한건축가가제안하는,아주보편적이기를갈망하는주장이다.말하자면‘작을수록나누자’는주장이작은집만다루는건축가로소문이난셈인데,그래도유쾌하다.즐거운오해다.”

이일훈은꾸준히종교건축작업을해왔습니다.“수도원건축물의형태가번잡하고요란하면왠지경망스럽다.아니수도원/종교건축물만그런것이아니라모든집이그렇지않은가.집을보면주인이보인다는말은그래서맞다.건축가의말에예의를갖추는건축주를보면나는그만감동하고만다.”주어진조건에따라설계방법론을건물과엮어내거나사용자로부터결정적단서를찾아내는방식으로말입니다.

이일훈은희망과위로를건네는공간,사회적건강함이읽히는프로젝트도꾸준히해왔습니다.“비움의장치가가능했던것은세상을껴안는뜻과정신을먼저품고그렇게살고계신여러분들이계셨기에가능한일이었습니다.”비록거칠고질박한모습이지만그들의삶을있는그대로껴안은공부방에서부터녹록하지않은상황에서도심장같은방하나는꼭두고싶었다는평화센터까지.

이책을먼저읽은전진삼(격월간와이드AR발행인)의추천사입니다.
“돌아보니건축민박학교에서형과함께했던추억은시간상자라는모형속을걷는일과다르지않음을깨닫는다.그런면에서이책의제목이기막히게예지적이다.건축설계를업으로사는이들에게애물단지가돼버리기일쑤인모형이타임머신이자서사의샘이라는것을간파하고있고,걷기라는천천히사유함의속도계까지부착시켜놓았으니건축함에관한더이상의간명한정의가있을까.건축설계를하던매순간성찰의계단을오르내리며건축가는어떻게사는가를질문하는사람이라고에둘러정의하고는우리곁을떠나모형속으로걸어들어간형에게서평생참건축을향해정진했던수행자의모습을발견한다.세상과사람과건축을믿고짝사랑한사람,건축가이일훈형을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