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B의 혼잡

전차 B의 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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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일본 근대 물리학자 데라다 도라히코가 기록한 100년 전 세상이 어째서 지금 우리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걸까. ‘글 쓰는 과학자.’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속 등장인물 괴짜 물리학자 ‘간게쓰’ 군의 실제 모델. 뛰어난 과학자이자 문필가였던 데라다 도라히코는 독특하고 깊이 있는 통찰이 담긴 글을 많이 남겼지만, 놀랍게도 오늘날 거의 잊혔다. 사소하게 보이는 일상 소재를 통해 결코 사소하게 볼 수 없는 사회문제와 과학의 의미를 말하는 그의 글이 한 세기를 넘어 독자와 다시 만난다.
저자

데라다도라히코

寺田寅彦
1878년도쿄에서태어났다.어릴적아버지가사준현미경으로과학적호기심을키웠고,고등학교때영어교사였던나쓰메소세키를만나문학에눈을떴다.도쿄대학이학부에서박사학위를받아교수로학생들을가르치는한편소세키의소개로문인들과교류하며수필가로도활약했다.특히평범한일상에서사소한의문을찾아내물리학자특유의시선으로고찰한글을선보여호평받았다.1935년전이성뼈종양으로쉰일곱의나이에세상을떠날때까지병마와싸우면서도자연과동물,사회와사람을관찰하고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의글쓰기를멈추지않았다.
‘글쓰는과학자.’나쓰메소세키의『나는고양이로소이다』속등장인물인괴짜물리학자‘간게쓰’군의실제모델.일본근대물리학의선구자를묻는다면대다수일본인은데라다도라히코라고답한다.최초의과학커뮤니케이터를묻는다면이또한그라고답할것이다.훌륭한과학자도많고뛰어난문필가도많지만,데라다도라히코처럼두영역에서빛난이는드물다.

목차

전차B의혼잡
유언비어
관점과거리
벌이경단을만드는이야기
고양이
쇄골
어느탐정사건
물리학과감각
과학자와예술가
앎과의심
도깨비불하나
도롱이벌레와거미
쓰나미와인간
커피철학서설
행상인소리
기록광시대
지팡이
별사탕
쥣빛재생지
모기장연구
병원의새벽소리
빨강

저자연보
역자후기

출판사 서평

반복되는인간세상사
우리는원인을모르는걸까,
원인을잊고싶어하는걸까

“만원전차손잡이에매달린채떠밀리고부대끼며짓밟히는일은조금이라도성치못한육체와그로인해신경이쇠약해진사람에게는몹시견디기어려운고통이다.”
그야말로만원전차는모두에게견디기어려운고통이다.그런데도오늘날거의모든사람이그극심한고통을받아들이며산다.100년전이나지금이나,오히려전차혼잡은지금더잦고심해졌다.왜그럴까.
일본근대물리학의선구자이자,대중에게과학을쉽게설명하려왕성한저술활동을했던재능있는이야기꾼,20세기물리학자데라다도라히코는체질적으로몸이약해서더그랬는지,일상의불편함에강한의문을가졌다.그런데영혼을갉아먹는만원전차문제에대해그가찾은답은맥이빠질만큼간단하다.만원전차를몇대그냥보내고한산한전차를골라타는것이다.승객이적은전차가올때까지그저느긋하게기다리면된단다.그렇게한가한소리를하다니!21세기를몰라서그래!병약한물리학자의멱살이라도붙잡고싶어질지모른다.그시절한가로운물리학자나할수있는얘기라고치부하며분을삭이는것이좀더점잖은방법이려나.
21세기를사는억울한현대인의마음을조금가라앉히고,데라다도라히코가든또다른이야기를하나만더들어보자.기다란관속에수소와산소를적당한비율로섞어넣은다음관한쪽끝가까이에서작은전기불꽃을일으켜보라.연소가차례차례번져가폭발파가만들어진다.이것은엄연한과학적사실이다.몰랐다하더라도해보면금방사실임을인정하게된다.과학이란그런것이다.과학에절로고개를끄덕이는사이,그는유언비어가만들어지는과정을연소과정에빗대어설명한다.시민스스로가전파의매개체가되지않으면유언비어역시절대폭발파를만들어내지못한다.
뜬소문이퍼져나가는양상과연소과정은꽤유사하다.앞서수소와산소,폭발파가등장하는엄연한과학적사실을진지하게들은터라면이유사성역시수긍할수밖에없을것이다.결국남탓으로돌리곤했던뜬소문의책임에도고개를끄덕이게된다.유언비어를믿고속았다며피해자를자처하는바로자신에게거의모든책임이있다는엄연한사실을부인하기어렵다.유언비어란그런것이다.
그렇다면한가한소리를할수없을만큼빠듯한전차로상징되는지금사회를만든것은누구일까.이에대한책임은남탓으로돌릴수있는걸까.아니면100년전물리학자의탓?물리학자는그저실제만원전차가왜발생하는지관찰했을뿐이다.정류장에앉아오고가는전차의혼잡도를표로기록하고그가내린결론은이렇다.
“첫째,전차의승객대다수는비록무의식일지언정스스로원해서만원전차를골라탄다.둘째,그럼으로써그만원전차의혼잡도를더욱높이는데일조한다.”
결론에필요한것은가만히앉아서관찰할수있는체력과간단한수학,그리고원인과결과를잇는상식적이고논리적인사고력정도다.조금만생각해보면알수있는간단한이치이기때문이다.
복잡하고난해한21세기사회문제에둘러싸여산다고자부하는현대인은여전히억울한표정으로긁적인다.사회의고통과그심화에‘스스로원해서’‘일조’하려는사람은아무도없다고.그러나19세기도,20세기도난해하긴마찬가지였다.100년전에이미문제를알았고이를해결할답을찾았으나어느새잊어버리고만것은아닐까.인간은스스로망각한다는사실을알고있으면서도끊임없이망각하는존재다.자연은반복되고인간은망각해서곤란한상황은계속된다.이것이데라다도라히코가말하는인간계의자연현상이다.
얼핏취향이나편리함을요령껏취하자고하는이야기로비칠지모른다.그러나데라다도라히코가글을통해궁극적으로전하고자하는바는인간이과학에대해진정으로견지해야하는태도다.그는과학적으로사고한다는것이무엇인지역설하면서도인간의과학주의를경계했다.비과학적인사고와행동에의문을가지는동시에과학의한계역시계속해서지적했다.그가관찰로얻은과학적사실로무엇이옳다그르다쉽게비판하지않는이유는,과학으로써잘잘못을말하면이역시맹목적인과학주의에빠지기때문일것이다.
왜인간은빈약한데이터로도출한결론을자꾸긍정하려하는지,어떤이들에게는자명하다고여겨지는일이어떤이들에게는잠꼬대처럼들리는건지,그는세상을관찰하고이치를따져차분히들려줄뿐이다.왜우리는여전히전차혼잡을견디며살아가는가.어째서데라다도라히코가말한공리적이면서도자기자신이가장이로운방편은실현되지못하고잊히고마는지모두가스스로생각해보아야한다.

생명과애정사이를관찰하는
차가운물리학자의따스한시선

소설가나쓰메소세키의수제자데라다도라히코는청초한장면이그려지는서정성짙은글을많이남겼다.하지만이번산문집은그의문학적인면이드러나는작품보다100년전이나지금이나해결되지않는인간세상의독특한문제들에관한주제의식이돋보이는작품이주로엮였다.그럼에도물론그가표현하는아름답고문학적인삶의순간순간은이책에자주등장한다.
「고양이」역시그중하나.고양이에게별다른애정이없던물리학자는가족의등쌀에못이겨그의집에고양이는살게된다.모두가고양이를좋아하지만고양이의가슴안에서나는그르렁그르렁소리의정체는아무도모른다.물리학자는아무도관심없는그소리가어떤작용으로나는지조용히들어본다.그러면서이작은동물에대한애정이움트기시작한다.그의관찰일지에서고양이는너무도사랑스럽게뛰어논다.원래가그런동물이라서겠지만,관찰되는현상을있는그대로옮겼을뿐인그의글은인간이고양이라는동물과어떻게사랑에빠지는지를과학적으로설명해준다.
길고양이기질을타고났는지배변습관등여러버릇이좋지않은고양이를나무라고돌려보내자는가족들이야기를듣고도물리학자는‘과학적’으로대응한다.나쁜배변습관은조금만신경써서버릇을들이면금세고쳐질것같았다.지금고양이집사들이행하는과정을그도차근차근거쳐나간다.작은상자에흙을담아두고,흙냄새를맡게해주고,고양이를잠자리에옮겨주고,급할것이전혀없는한가한실험연구처럼보이는일을하루하루해나간다.고양이는곧우아하고새침한어른고양이의면모를갖춘다.그는글말미에고양이생활을되도록충실히기록해두고싶다고썼다.
세상에는인류를구하는가설과과학실험도있을것이다.하지만고양이에관한이사소한기록역시분명누군가의세상을구하리라.가능하다면오래살아서세상모든것에대해더기록해주었으면좋았으련만,그는쉰일곱이라는이른나이에병으로세상을떠났다.세상을떠난그해에도사라져가는행상인의소리를기록해야함을주장한「행상인소리」를써서발표했다.
과학을가장정확하고아름다운글로기록한물리학자.미사여구로꾸미지않은글에서세상은더찬란하고아름답게빛난다.그가살아있다면이렇게말할지모른다.전차혼잡에대해다소약오르게이야기한“만약이상하게느껴진다면그건내논리가아니라현실이이상한것이다”라는문장을비틀어서,“만약아름답게느껴진다면그건내글이아니라현실이아름다운것이다.”
눈앞에보이는현상에서단순하면서도신비한물리학적이치를발견해보자.데라다도라히코는달까지가지않고도고양이가뛰어놀고도롱이벌레가매달린작은정원에서과학의진보가이뤄질수있다는것을보여준다.과학이란진정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