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내연애는로코가아니라스릴러일까?’
미디어가가르쳐주지않는‘남녀불행의메커니즘’
연인관계는왜이렇게힘든걸까.수많은로맨틱코미디영화와드라마는남녀가온갖역경을딛고결합하는과정을찬미하며,그것이곧‘행복’의완성이라고속삭인다.많은이성애자들이“남녀는원래다르다”거나“맞는사람을아직못만난것”이라는답으로위안을삼고,자기계발산업이만들어낸수조원규모의시장(연애코치,픽업아티스트부트캠프,‘남자의마음을읽는법’류의베스트셀러들)에서불안을달랜다.이에대해저자는묻는다.이모든교정(repair)과처방이쏟아지는데도왜이성애관계는나아지지않는가?
저자는이비극의원인이이성애문화자체에구조적으로내장된여성혐오에있다고진단한다.이를여성혐오의역설(misogynyparadox)이라명명하며현대이성애가여성을욕망의대상으로삼는동시에경멸해온모순위에세워져있다는점을꼬집는다.사랑과혐오가공존하는이구조안에서여성은친밀함을원하면서도끊임없이대상화되고,남성은여성을원하면서도진정한동반자로대하는법을배우지못한다.‘남녀는근본적으로다르다’는성별이분법적신화를토대로미디어는남성과여성을화성인과금성인처럼타자화한다.이러한프레임안에서남녀는공략해야할대상이나견뎌야할숙제로인식될수밖에없었다.
재산이전과출산을위한제도였던결혼이‘사랑에기반한동반자관계’로전환되는과정에서,가부장제는조용히그형태만바꿔살아남았음을보여준다.저자는우리가흔히접하는‘결혼은무덤이다’라는식의농담들이사실은이성애라는제도가가진구조적결함을방증한다고말한다.미디어가전시하는낭만적환상의이면에는,서로를미워하면서도제도적안정감을위해관계를유지해야만하는‘비극적메커니즘’이작동하고있다는것이다.저자는19세기이전부터미투(#MeToo)이후까지진행되어온이비극이일부나쁜남성의성격결함이아니라,우리모두가내면화한문화의문제라는것을날카롭게폭로한다.
“이성애자분들,정말괜찮으신가요?”
냉소를넘어선상생의로드맵:역설적인‘이성애관계심폐소생술’
《이성애의비극》이라는제목만보면이책이이성애자체를조롱혹은부정하거나폐기할것을주장할것같다고오해할수있다.하지만저자의논지는오히려역설적이다.워드는이성애관계가진정으로‘행복’해지기위해서는현재까지의가부장적이성애모델을완전히해체하고,그자리에‘깊은이성애’라는신규운영체제를설치해야한다고주장한다.그역설이이책을단순한페미니즘비판서와구별되게만드는지점이다.작가스스로퀴어여성임을밝히면서도,이성애자독자들을향해냉소가아닌재치넘치는위로와진지한연대의시선을보낸다.
저자가제시하는‘깊은이성애’는여성혐오를걷어낸자리에진정한상호존중과욕망이공존하는관계를놓자는제안이다.그모델로워드는퀴어문화를주목한다.단순히퀴어관계를이상화하는것이아니라,젠더권력의고정된각본없이관계를끊임없이협상하고설계해온퀴어커뮤니티의실천적지혜에서배우자는것이다.‘남자는이래야해’,‘여자는이래야해’라는낡은역할모델에서벗어나인간대인간으로서관계를재설계할수있다는것,욕망과존중이동시에가능하다는것,그것은퀴어문화가이미증명해온사실이라고말한다.
이로드맵이현실적으로느껴지는이유는워드가뜬구름만잡는당위론에머물지않기때문이다.픽업아티스트의수업을직접참관하고,결혼지침서와연애코치의언어를촘촘히분석하며,이성애자커플들의실제언어와관행속에서변화의실마리를찾는다.이성애관계속의당사자들을가해자나피해자로단순화하지않고,모두가불완전한문화속에서저마다의행복을찾으려분투하는존재로바라본다.그시선이이책을읽는내내독자를방어적으로만들지않으면서도,깊이성찰하게만드는힘이다.
지금한국사회가이책을읽어야하는이유:‘젠더갈등’과‘연애기피’의교착상태를깰텍스트
2024년일본어판출간당시“언제까지케어만을바라는남성과소모적인연애를지속할것인가?”라는도발적인화두로뜨거운관심을받았던이책은미국사회를배경으로쓰였지만,지금의한국사회에서도놀라울만큼직접적으로읽힌다.유례없는‘젠더갈등’과‘연애·결혼기피현상’의한복판에서있는한국사회의2030세대에게이성은인생의동반자이자낭만의대상이아닌,잠재적가해자혹은혐오의대상으로전락했다.이러한상황에서제인워드의메시지는단순한해외문화비평을넘어하나의사회분석처럼작동한다.한국의변화는기존의이성애각본이더이상매력적이지도안전하지도않다는집단적각성의결과이기때문이다.
한국사회의여성들은더이상독박육아와감정노동이당연시되는이성애관계에진입하려하지않으며,남성들역시권위주의적가장의무게와여성들의변화된요구사이에서메타인지의어려움을겪고있다.《이성애의비극》은이갈등의원인이특정성별에게있는것이아니라,우리가물려받은가부장적이성애라는‘구식시스템’의수명이끝났기때문임을보여주며,혐오와방어기제로점철된현재의젠더담론은결국서로를비극의주인공으로만들뿐임을증명한다.
나아가이책은한국의독자들에게혐오와고립을넘어선제3의길을제시한다.‘남vs여’구도를자극하기보다,현재의관계문화자체를다시생각할기회를제공하며서로를향한공격을멈추고,우리를불행하게만드는사회적각본자체를함께비판할수있다면,지금의교착상태는오히려새로운형태의친밀감을발명하는기회가될수있음을암시한다.지금의이성애문화를그대로유지한채관계기피현상을탓하거나출산율하락을걱정하는것에무슨의미가있겠는가.이성애를살리고싶다면,그구조부터바꿔야한다고말하는이책이지금한국사회에유효한이유가바로여기에있다.
국내에페미니즘독서열풍을선도한독보적인‘젠더·페미니즘전문번역가’노지양의탁월한번역과,한국퀴어문화운동의최전선에서활동해온인권운동가한채윤의다정한해제로더욱풍성해진《이성애의비극》한국어판이라우더북스의첫번역서로출간된다.2026서울국제도서전기간에맞춰한국을방문할예정인제인워드는국내퀴어페미니즘연구자들과의세미나및일반독자대상의북토크등을통해한국독자들과의만남을앞두고있다.한국사회가연애와친밀성의미래를어떻게다시설계할수있을지함께고민하게될그자리에서제인워드가선사할독보적유머와삶의지혜에귀추가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