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의 일본: 메이지 시대의 변곡점

장래의 일본: 메이지 시대의 변곡점

$35.00
Description
메이지 2세대 사상가의 기수. 앞세대를 부정하면서 일본의 미래를 그리다.
미성년 상태에서 메이지 유신을 경험한 젊은이들에게 이미 근대 문물은 어려서부터 익숙했다.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보다도 어떻게 저들을 따라잡을 것인가가 당면 목표였고 세상에는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쿠토미 소호는 구마모토 시골에서 태어나 구마모토 양학교와 도시샤 영학교에서 공부했다. 신식 교육이긴 했으나 체계적이진 못했고 그나마 중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소호는 스스로 공부했고 아버지와 함께 사설 학숙을 열었는데 갓 20세의 소호가 가르친 것들은 대단히 폭넓었다. 그렇게 가르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다듬어 출간한 것이 『장래의 일본』이었다. 이것이 일본 전역에서 읽히며 소호는 단번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곧 잡지 『국민의 벗』을 창간하고 이어 『국민신문』을 창간하며 소호는 언론계의 중요 인물이 되었다.

젊은 소호는 『장래의 일본』에서 `평민주의'에 기반한 자기 사상을 펼친다. 군비 확장보다는 생산력 증대와 문화 발전을 목표로 삼았다. 서구화가 필연적이라 하더라도 정부주도의 상명하달식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개화가 강조된 것이었다. 국수주의자들에게 영합하지 않은 급진적 사상이라 해도 좋았다. 소호의 글은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유명 언론인 야마지 아이잔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소호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획득한 `정당한' 전리품을 강대국들의 삼국간섭으로 빼앗기는 경험을 보면서 조금씩 힘의 논리를 긍정하는 국가주의자가 된다. 이후 일본 제국이 태평양 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수십년간 일본 언론의 거물로 지내며 영향력을 발휘했고, 결국 전범이 되어 몰락하게 된다. 그의 성공과 패망은 당시 일본의 사상계가 걸어간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메이지 초기까지 일본의 사상가들은 서구에 비추어가며 근대국가와 국민 만들기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들은 문명개화를 통해 만들어낼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짧았고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체화하며 조금씩 위험한 나라가 되어갔다. 일본이 근대화와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가 된 것은 아니다. 그 역사적 변화를 제대로 짚기 위해서 우리는 중요한 `제국주의자'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

도쿠토미소호

徳富蘇峰,1863-1957
메이지부터쇼와에이르는근대일본에서활동한언론인,비평가,사상가이자역사가다.대표작『장래의일본』의성공으로세간을주목을받으며언론계의주요인사가되었다.젊은날에는주로평화주의와자유주의,평민주의를주장했지만청일전쟁이후에는국가주의자로,제국주의자로변모했다.

목차

제I편장래의일본(1886)11

제II편주요논설190
제5장메이지23년이후정치가의자격을논함(1884)191
제6장자유,도덕,그리고유교주의(1884)228
제7장아아,국민의벗,탄생하다.(1887)289

제III편해제307
제8장도쿠토미소호:메이지의청년에서메이지의노인으로(류애림)308